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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막6:39-44

by 【고동엽】 2022. 7. 5.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막6:39-44
(2014/10/12, 청파 한마음 체육대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하여, 모두들 떼를 지어 풀밭에 앉게 하셨다. 그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앉았다.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고 축복하신 다음에, 빵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그리고 그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빵 부스러기와 물고기 남은 것을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빵을 먹은 사람은 남자 어른만도 오천 명이었다.]

• 느티나무를 닮은 사람
이 아름다운 가을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벌써 설악산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빚어내는 삶의 풍경이 어떠하든 말없이 제 역할을 다하는 자연이야말로 마음이 스산해질 때마다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향 상실, 뿌리 뽑힘, 불안…. 이것이 우리네 삶의 풍경입니다. 무거운 마음 하나 부릴 곳 없어 우리는 늘 먹구름처럼 살아갑니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허공에 몸을 던지는 낙엽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마음의 고향이 있습니다. 언제라도 찾아가 마음 내려놓아도 못났다 탓하지 않으시는 분 말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향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이르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따랐던 것은 주님을 통해 나타난 이적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유년 시대 이후에 잃어버렸던 품을 느낀 것 같습니다. 주님은 마치 오래된 시골 마을의 느티나무가 그러하듯 다가오는 모든 이들에게 그늘을 드리워주셨습니다. 누구도 밀어내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은 우리 속에 있는 상처를 낫게 합니다. 예수라는 그늘 아래 머물다 간 이들은 누구나 생기를 얻었습니다.

어느 날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외딴 곳으로 물러나려 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삶을 나아감과 물러남의 유기적인 순환으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또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펼치기 위해 주님은 아픔의 자리를 향해 언제나 나아가셨습니다. 하지만 그 나아감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물러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홀로 있는 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재창조하시는 시간입니다. '홀로 있음'을 뜻하는 영어 단어 'solitude'를 '하나님과만 함께 있음'이라고 풀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잠시 외딴 곳으로 물러나 고독의 시간을 누리려는 주님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이동하셨는데, 사람들은 벌써 육로를 통해 그곳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주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의 허한 마음을 보셨고, 그들의 내면에 깃든 목마름과 간절함을 아셨기에 차마 그들을 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격려하고 가르치셨습니다.

• 새로운 고향
어느덧 저녁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초조했습니다. 이제는 그들을 돌려보내야 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아와 사람들을 돌려보내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 많은 이들이 먹을 것도 없는 들판에서 밤을 지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판단은 지극히 상식적입니다. '빈들', '어둠', '배고픔'이 무리가 처한 상황입니다. 딱하기는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이 그들을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주님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허기진 그들을 차마 그냥 돌려보내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펄쩍 뜁니다. 주님이 불가능한 일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먹이려면 적어도 200데나리온 어치의 빵이 필요한데, 그럴 돈도 없고 또 설사 있다 해도 빵을 구할 데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빵이 얼마나 있느냐? 가서, 알아보아라."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알아본 후에 말합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주님은 많다 적다 평가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시켜 무리들을 떼를 지어 푸른 풀밭에 앉게 하십니다. 무리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앉았습니다. 우리는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잘 압니다. 주님은 빵과 물고기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축사하신 후에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을 거두니 열 두 광주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 마음을 사로잡는 대목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앉도록 하셨다는 대목입니다. 배분의 편의를 위한 조치였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저는 다른 점에 주목합니다. 주님은 무리를 공동체로 만들고 계십니다. 중증 장애인들의 공동체인 라르쉬 공동체의 설립자인 장 바니에는 "공동체란 모든 사람이―아니 좀 더 현실적으로 보아 대다수가―자기중심이라는 그늘에서 빠져나와 참된 사랑의 빛 속으로 들어가는 장소"(<공동체와 성장>, 성바오로출판사, 1992, p. 17)라고 말합니다. 무리는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기는 하지만 역사 변혁의 주체가 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공동체는 다릅니다.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느끼고 괴로워하고, 서로의 필요에 응답합니다. 공동체는 우리가 일어버렸던 소속감을 회복시켜 줍니다. 공동체는 우리의 새로운 고향입니다. 작은 공동체야말로 세상 변화의 초석입니다.

•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좋아라
주님은 자칫하면 익명성 속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들을 공동체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그 광야에서 사랑의 기적을 함께 체험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내면의 어둠이 스러지고, 상처가 아물고, 함께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참 사람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방송인 김제동 씨가 도무지 공감할 줄 모르는 정치인들을 향해 "정치인 여러분, '사람'해요"라고 말한 것이 화제입니다. 사람의 사람다움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대방에게 선물이 되려고 할 때 발생합니다. 김준태 시인의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좋아라>라는 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좋아라
빽빽한 시내버스 속이
이다지도 좋을 수 있으랴
가난한 마음들이 서로
옷을 부비며 살갗을 부비며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늦여름 시내버스 속은
좋고도 정말 좋아라
땀냄새를 섞으며 함께 흔들리는
때론 하느님을 서로 나누어 갖는
한 시대의 슬픈 살덩이들
정말로 아름답고 좋아라
정말로 소중하고 소중하여라
손잡이 하나에 몇 명씩 매달려도
이웃의 발등을 쬐끔이라도 밟지 않으려고
벌컥벌컥 숨을 쉬는 사람들…
내 이대로 돌이 되어도
백년 만년 바라보고 싶어라.

시인은 사람들이 질색을 하는 만원 버스에서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땀냄새를 섞으며 함께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살아있음의 징표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도심의 거리는 익명성으로 넘칩니다. 적대적인 눈빛, 경계하는 눈빛들이 우리 가슴에 자꾸만 생채기를 냅니다. 주님은 익명의 대중들이 경계심을 풀고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공동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입구임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준비한 한마음 체육대회는 그런 익명성이 깨지고, 다른 이들과 흉허물없이 어울려 놀고, 음식을 함께 나눔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푸른 풀밭 위에 앉아 소박한 음식을 함께 나누었을 때 그들은 실은 물질로서의 음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골방에서 벗어나와 광장으로 나갑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형제자매의 손을 붙잡고 대동의 춤을 함께 춥니다. 그 하나 됨의 경험을 통해 조각난 세상을 깁는 사랑의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보고 더덩실 춤을 추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4년 10월 12일 11시 16분 1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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