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분 전12:9-14 (2000/7/2) 사람다움 우리말 접미사에 '∼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앞의 단어가 지니는 성질이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군인답다'는 말은 씩씩하다는 말이고, '학생답다'는 말은 행동거지가 반듯하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고 '장사꾼답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가 이재에 밝고 이해타산에 따라 처신한다는 말일 겁니다. '기독교인답다' 그러면 뭐지요? 이 세대의 가치관을 추종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살려는 열망으로 산다는 말일 겁니다. 여러분은 '목사답다'는 말을 어떤 때 사용하세요? 교회 세습하지 않는 사람이요? 요즘 큰 교회의 세습 문제 때문에 기독교가 아주 부끄러운 지경에 이르렀어요. 저는 교회 세습은 자기가 평생토록 수고해 온 복음 사역을 일거에 부정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목사답다'는 말 저도 깊이 생각할께요. 아무튼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본분을 잘 지키며 산다면 세상은 한결 아름다워질 거예요. 옛말에도 있지요?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백성이 백성다워야 나라가 바로 선다.' 우리들 각자가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것은 개인적인 덕을 쌓는 일이기도 하지만 우주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해요. 그런데 가장 근원적인 물음이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사람답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람이 어떨 때 사람다우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흉측한 범죄자나, 파렴치한 사람,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하면서 혀를 찹니다. 사람답지 못하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막상 사람다운 게 뭐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한 게 사실이에요. 굳이 말하라면 '사람다운 사람이란 나무를 닮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무를 보세요. 뿌리는 땅에 깊숙히 내리고 가지는 하늘을 향한 뻗어오르지 않아요? 땅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하늘을 향한 열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사람다운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잘 산다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때 '그저 한번 살아보라'고 하신 것은 아닐 거예요. '살되 잘 살아라'. 우리는 이런 명령을 받고 태어났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잘 사는 거지요? 이것은 비교적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잘 산다는 것은 우리를 보내신 분의 뜻을 받들어 사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참 잘 사신 분입니다. 물질적인 풍요, 명예 누림, 남들 위에 군림함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시종일관 보내신 분의 뜻을 여쭙고, 그 뜻에 순종했어요. 그게 비록 고난의 길이라 해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철저히 일치하는 삶을 추구했기에 예수님을 가리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잘 살아야 해요. 하나님은 순간 순간마다 우리와 함께 어떤 일을 하시기 원하십니다.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이 진짜 잘 사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잘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이미 주셨어요. 다만 우리가 그 힘과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거지요. 사람은 자기 뇌의 20%도 채 사용하지 못하고 죽는다지요? 사실 인간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을 뿐이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을 돕고, 사랑하고, 섬기며 살 능력도 넉넉히 주셨어요. 그런데도 자기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다고, 혹은 그럴 능력이 없다고 자꾸 물러서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점점 무력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거듭거듭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지만 우리가 끝내 응답하지 않으면 우리를 그냥 버려두세요. 이게 제일 무서운 겁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게,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롬1:28) 가슴에 새길 것 힘들어도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려고 애쓸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과 지혜를 주십니다. 지혜란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는 능력입니다. 智慧라는 단어에 있는 '慧'는 '빗자루, 혹은 혜성을 가리키는 彗'에 '마음 心'이 결합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지혜는 본래부터 우리 속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혜성처럼 내려와 우리 마음에 파고드는 것입니다. 주어지는 것이란 말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지혜로운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전도서의 저자도 이런 말을 하잖아요? "책은 아무리 읽어도 끝이 없고, 공부만 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한다."(12)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보면 자기들에게 복음의 말씀이라고 하겠네요. 하지만 이 말은 책을 읽지 말라거나, 공부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에요. 지혜의 뿌리에 닿지 않은 공부가 병이 될 수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말은 제대로 공부하라는 말인 셈이지요. 우리는 지혜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해요.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찌르는 채찍 같고, 수집된 잠언은 잘 박힌 못과 같다. 이 모든 것은 모두 한 목자가 준 것이다. 여기서 '찌르는 채찍'이란 소나 말 등 가축을 몰 때 사용하는 끝이 뾰족한 막대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때로 영적으로 둔감한 우리의 평온을 깨뜨려요. 불편하게 하는 거죠. 쓴 약이 몸에 좋은 줄은 알지만 어쨌든 쓴 것 싫은 거예요. 이게 우리예요. 지혜의 말씀은 이런 우리의 실상을 보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제일 보기 싫어하는 게 뭔지 아시지요? 자기의 실제 모습이에요.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 자기의 추한 모습 말이에요. 사람들이 제일 성낼 때가 언젠지 아세요? 내가 대면하기 싫은 내 꼬락서니를 누가 내 눈 앞에 탁 들이댈 때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참 사랑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참 자기가 아닌 자기의 이미지만 사랑해요.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자기 허상 말이에요.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묻는 것은 바로 우리들인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자기와 만나는 고통스런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소음 속으로 들어가거나, 뭔가에 집착합니다. 취해버리는 거지요. 하지만 지혜자의 말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살 때 우리는 비로소 가야 할 곳으로 바로 갈 수 있어요. 뾰족한 막대기에 찔리는 것은 아프지만, 그 아픔 덕분에 다른 길로 가지 않는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리고 지혜자가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연구해서 정리해 놓은 지혜의 말씀은 마치 '잘 박힌 못'과 같다고 했어요. 못을 제대로 박아야 가구나 집이 바로 서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든든하려면 지혜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銘心) 살아야 합니다. 내면의 중심에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삶에는 매듭이 있게 마련인데 삶의 어떤 계기마다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고, 그 말씀이 우리 삶을 인도한다면 우리는 든든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 말씀이 떠오르는 법이 없는 사람이 혹시 계신가요? 각성하세요. 사람의 본분 전도서의 편집자는 자기 글을 마무리하면서 사람답게 산다는 게 뭔지 아주 소박하지만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첫째,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어요. 이때 두려움은 이중적입니다. 일단 다소 소극적인(negative) 의미의 두려움이 있어요. "하나님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행위를 심판하신다"고 했어요. 우리는 다 하나님께 가서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판단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얼마나 성실하게, 아름답게, 잘 해냈는지 검사를 받는 거지요.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고 칭찬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는 책망은 듣지 말아야 할 텐데요. 그런데 적극적(positive) 측면의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서 비롯된 두려움이에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할까 봐 늘 조심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삶을 팔지 않습니다. 값싼 위안거리를 얻으려고 자기 생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늘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청합니다.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진심으로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인정하고, 참회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둘째,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해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지속적으로 대화하다보면 우리는 어느 결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참 쉽고 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오늘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 과거(후회, 미화된 기억)에 매이지도 않고,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오늘을 유보하지도 않는 거지요.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행복을 경험합니다. 이런 사람은 주변을 평화롭고, 자비롭고, 즐겁게 만듭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계명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의 보증인 셈이지요.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라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는 게 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질문이었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이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잘 이루며 사는 사람이라 했지요? 사람마다 소명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의 지혜자는 그 소명의 바탕이 되는 요소를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1)하나님을 두려워하라 2)하나님의 계명을 지켜라. 여러분, 이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사세요.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일에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분주하다는 핑계로, 능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믿음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초대에 응하는 순간부터 우리 삶은 새로워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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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날 짜 |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0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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