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설교자료 18,185편 ◑/곽선희목사 설교 1,910편

지혜를 얻으라(잠언 4장 1절~9절)

by 【고동엽】 2024. 9. 8.
처음 목차로 돌아가기
 
 

 

 

지혜를 얻으라(잠언 4장 1절~9절)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구약성경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지혜의 왕 솔로몬이 스물한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의 왕권은 매우 막중한 것이었습니다. 입법․행정․사법의 3권을 한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법을 만들어야 하고, 시행해야 하고, 사람들을 재판해야 합니다. 이토록 엄청난 분량의 일을 맡아야 하므로 스물한 살의 어린 솔로몬으로서는 참으로 걱정이 많았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기브온으로 갑니다. 가서 일천번제(一千燔祭)를 드립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을 상징하는 종교예식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드렸더니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 중요한 순간입니다. 과연 무엇을 구해야 할 것입니까? 얼마나 구해야 할 것입니까?

솔로몬 왕은 이 귀중한 순간에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그래서 선과 악을 분별하는 백성들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이어 10절의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솔로몬의 이 간구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십니다. 주님의 마음에 적중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맞아서 이제 솔로몬은 전무후무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전쟁 없이 4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온 세계가 그의 지혜를 흠모하게 됩니다. 오직 지혜로 태평시대를 열어갔습니다. '지혜'라는 말은 히브리 원문에서 '레브 쉬메'입니다. '레브'는 마음이라는 뜻이요 '쉬메'는 '듣는다'는 뜻입니다. 옛 성경에서는 이 말을 'hearing heart'라고 번역했습니다마는 새로 번역된 성경에는 'understanding mind'로 나옵니다. 말만 다르지 같은 의미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백성의 소리를 듣고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 솔로몬 왕은 그러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구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수(壽)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富)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왕상 3:11)" ---- 이것이 하나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 영화까지 덤으로 주십니다. 솔로몬의 일생이 그러했습니다.

옛날 아라비아의 어느 회교국에 한 칼리프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평생을 두고 자신을 즐겁게 해주던 유명한 피에로가 있었습니다. 잘해나가던 피에로가 어느 날은 그만 깜박하여 실수를 하게 됩니다. 이에 대노한 칼리프는 당장에 그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친 사람인데 그렇게 죽이기에는 참으로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의 자비를 베풀기로 합니다. "내가 이제 너를 죽일 것인즉 그 죽는 방법은 네가 스스로 선택하라." 화형을 당하든 교수형을 당하든 스스로 선택하게 합니다. 형장에 세워놓고 모래시계를 거꾸로 엎습니다. 모래가 밑으로 다 빠지기 전에 어떠한 방법으로 죽을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모래시계의 모래는 점점 흘러서 밑으로 내려갑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모래가 다 흘러내리자 왕이 그에게 묻습니다. "자, 이제 선택했느냐?" 두려움에 떨어야 할 피에로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예, 늙어죽겠습니다." 죽는 것이야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여러분, 지혜로 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질문을 해옵니다. 여러분들도 서로서로 질문하고 있을 것입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날처럼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하던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에 비하여 얼마나 많이 아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은 뱃속에서부터 배우고 태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그토록 아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공부를 많이 시키고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과학도 극도로 발달했습니다. 자연과학․인문과학․심리학․교육학․철학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의 학문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성만은 자꾸 악해갑니까? 사람이 그렇게 잔인할 수가 없습니다. 나빠질 대로 나빠졌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제가 그 해답을 드리겠습니다. 몸은 건강하고 힘은 있는데 그 몸을 지배할 지능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참으로 멍청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젊은이들, 옛날 같았으면 그 펄펄 끓는 힘을 논밭으로 나가 일하면서 분출시킬 것인데 요즘은 할 일이 없습니다. 그 힘을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끓어 넘치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밝은 이성으로 육체적 욕망을 다스려야 하는데, 그 이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 육체적 욕망으로 말미암아 멸망합니다. 동물성은 승하고 인간성은 소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성을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또한 도덕성이 있어야 합니다. 워낙 아는 것이 많습니다. 말도 잘합니다. 참으로 똑똑한 사람들뿐입니다. 그런데도 멍청합니다.

도덕성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헛점입니다. 재산도 있고 기술도 있고 재능도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 그 재산과 재능을 올바로 쓰지 못하는 사람을 봅니다. 바른 인간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 있고 재간 있는데 사람 못된 것처럼 볼품없는 것도 없습니다. 자신도 괴로울 뿐더러 많은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맙니다. 좌충우돌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성에 있습니다. 제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13년 동안 주교로 계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제가 그분께 물어보았습니다. "공산주의가 이렇게 몰락하고 말았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분은 선뜻 '인간학의 문제(anthropological problem)'라고 대답합니다. 공산사회 하에서 인간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인간성의 파괴는 신학적인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성이 파괴되었고, 인간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고 단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보십시다.

지능과 기술, 이성과 양심, 이 모든 것을 총괄하여 주관할 수 있는 영성(靈性)이 있어야 합니다. 영성이 없는 도덕이나 이성은 타락하게 마련입니다. 지능, 재산, 기술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몸집은 큰데 지능이 없어서 문제요, 지능과 지식은 있는데 도덕성이 없어서 문제요, 물질은 점점 풍요해지는데 그것을 주관할 수 있는 인격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지혜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끔 주위에서 보면 "이럴 줄 알았으면"하고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암에라도 걸려 사형선고를 받게 되면 지난 일들을 몹시 후회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술 마시지 않는 건데" ---- 그런데 그 당시에는 죽을 테면 죽어라 하고 마셨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방탕하지 말 것을" "담배 피우지 말 것을" "못되게 굴지 말 것을" 하면서 후회막급해합니다. 보십시오. 후회의 고통은 모두 지혜 부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앞에 닥칠 일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혜는 미래지향적입니다. 저 앞을 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멀리 있는 것을 오늘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깊은 세계에서 이해합니다. 영원한 세계에서 이해합니다.

그리고 신령한 세계에서 이해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여기서 지혜와 지식을 한번 비교해보십시다. 한마디로 '무엇을 할까?' 하는 것이 지식이요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식은 쪼개고 분석하는 능력입니다. 지혜는 인격적 통찰력입니다. 지식이 물질을 본다면 지혜는 인격을 봅니다. 지식이 과거에 대한 기억이라면 지혜는 미래를 봅니다. 지식은 평면적이요 지혜는 입체적입니다.

그러면 이 귀한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말씀대로 하면 먼저, 지혜는 그 뿌리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비로소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경건과 신앙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로서 오는 지혜를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지혜는 부모로부터 옵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 나도 아버지로부터 배웠고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네 아비의 말을 들으라 하고 훈계합니다. 부모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지혜를 얻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그가 평생토록 경험한 것, 그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서 아들에게 한 유언이 '술을 마시지 말라'였다고 합니다. 단지 이 한마디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술 때문에 자신의 전 생애를 망쳤던 것입니다. '술만 아니었더라면'하는 후회가 너무나 뼈저리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 소중하고 값비싼 지혜를 아들에게 전해줍니다. 그러나 그 아들 좀 보십시오.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여 그대로 지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겠는데, 부전자전이라고 그마저 술을 마십니다. 이제 그 집안은 망한 것입니다. 악순환이 그칠 날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요즘의 부모들, 자녀를 보기만 하면 '공부해라, 공부해라'하고 성화가 대단합니다. 그런 부모들이 어떤 부모들인지 아십니까? 공부 못한 한을 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공부한 것 같기는 하지만 알고 보면 성적이 형편없었습니다. '나는 공부를 못했기에 한이 많다. 너라도 좀 잘해다오'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값비싼 것입니까? 잔소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지혜입니다. 이를 받아들여서 다른 말도 필요 없이 그저 '내가 지키리이다'라고 한마디만 했더라면 지혜로운 가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축해버렸습니다. 다시 대를 이어 어리석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모름지기 부모의 교훈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여러분, 효자가 되고 싶습니까? 지혜를 얻으십시오. 지혜를 얻고 싶습니까? 효자가 되십시오. 부모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십시오.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사람들은 전승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조상들이 물려준 교훈이면 그 어떤 것이든 '전승(tradition)이다'하고 받아들여 소중히 생각합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왔고 그 경험을 내게 가르쳐준 것이기에 당연히 소중한 지혜가 됩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노 코멘트(No comment)' 입니다.

부모의 교훈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지혜를 얻습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 훌륭한 부모, 믿고 따를 수 있는 스승의 지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인격이 있어야 합니다. 선배는 어디까지나 선배입니다. 먼저 경험한 사람의 교훈을 소중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겸손한 인격이어야만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주석가로 유명한 매튜 헨리는 그의 저서 가운데서 지혜로울 수 있는 길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 우리에게는 많은 기회가 다가오는데 그 기회를 놓치기 때문에 지혜롭지 못하다고 합니다. 둘째, 늘 배우는 자세를 가지라 ---- 어떤 경우든 마음을 열어놓고 듣는 자세로 임하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셋째, 인내를 가지라 ----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너무 속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꾹 참는 것 하나만으로도 50퍼센트는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천천히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하면 좋을 것을 너무 빨리 내뱉어버립니다. 너무 지나치게 민감합니다.

그래서 후회가 됩니다. 좀더 깊게 생각하고 좀더 기도하고 좀더 경건했어야 하는데 그대로 행동해버렸습니다. 인내가 부족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모름지기 인내할 것입니다. 끈기가 있어야 하고 겸손히 순종해야 한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교만한 자에게 지혜를 가르치는 것은 당나귀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보다 어렵다'고 칼뱅은 말한바 있습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다시 말씀합니다. '지혜를 얻으라' ---- 네 번씩이나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라(buy)는 것이 됩니다. 무엇으로 지불하든지 그 값을 정당하게 치르고 지혜를 얻어내라는 것입니다.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고 먼저, 지혜를 버리지 말고 간직하라고 합니다. 한번 얻은 지혜는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지혜가 제일이다, 히브리어로 머리(head)라 합니다. 모든 것 중에 머리요, 그처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지혜를 사랑하라, 지혜를 가슴에서부터 즐기라 합니다. 지혜를 사랑하고 즐겨야 합니다. 어떤 값을 지불해서라도 지혜만 얻으면 그만입니다. 재산을 잃어버려도 지혜 얻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심지어 건강을 잃어도 지혜만 얻으면 됩니다. 지혜, 그 값을 높여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왕 헨리 4세 때의 일을 하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왕은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했는데 부녀자들이 지나치게 사치해집니다. 사치풍조가 곧 망국지본(亡國之本)이 아닙니까? 왕은 부녀자들이 금붙이와 보석을 지니는 것을 금하기로 작정을 합니다. 금령을 내렸습니다마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자,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모조리 잡아다가 벌을 줄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왕은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드디어 지혜를 짜냈습니다. 새로운 법령을 발표합니다. '모든 부녀자들이 금붙이와 보석을 지니는 것을 금한다. 단, 창녀에게만은 허락한다.' 이러한 내용의 법령이 발표되자 사치풍조가 깨끗이 일소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지혜입니다. 요즘도 보면 벌금 물린다, 세무감사 한다, 구속하겠다 합니다마는 그것으로는 안됩니다. 정치가들, 지혜를 가져야 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 음악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막이 올라가는 순간 매니저는 커다란 모자를 쓴 채로 객석에 앉아 있는 한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공연장 내에서는 모자를 벗어주세요'라는 안내판이 분명히 붙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매니저는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말합니다. "May l have your attention, please." 그리고 이어서 "당 극장에서는 나이 많은 분들께 모자 쓰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 모자를 쓱 벗더라는 것입니다.

이 역시 지혜입니다. 매로 힘으로 다스릴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 다스려야 합니다. 또한 본문은 지혜를 품으라고 합니다. 지혜를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보십시다. 지혜가 보호하리라, 지혜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너를 높이리라, 지혜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사상가 칼라일(Thomas Carlyle)은 말합니다. '사람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행운과 행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 재산보다 지식을 소중히 여깁시다.

그러나 지식보다 지혜를 사모하십시다. 경건에서 지혜를 얻고 믿음에서 총명을 얻습니다. 순종과 경건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얻고 그리스도인의 참된 인격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다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  

지혜를 얻으라(잠언 4장 1절~9절)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구약성경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지혜의 왕 솔로몬이 스물한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의 왕권은 매우 막중한 것이었습니다. 입법․행정․사법의 3권을 한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법을 만들어야 하고, 시행해야 하고, 사람들을 재판해야 합니다. 이토록 엄청난 분량의 일을 맡아야 하므로 스물한 살의 어린 솔로몬으로서는 참으로 걱정이 많았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기브온으로 갑니다. 가서 일천번제(一千燔祭)를 드립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을 상징하는 종교예식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드렸더니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 중요한 순간입니다. 과연 무엇을 구해야 할 것입니까? 얼마나 구해야 할 것입니까?

솔로몬 왕은 이 귀중한 순간에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그래서 선과 악을 분별하는 백성들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이어 10절의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솔로몬의 이 간구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십니다. 주님의 마음에 적중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맞아서 이제 솔로몬은 전무후무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전쟁 없이 4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온 세계가 그의 지혜를 흠모하게 됩니다. 오직 지혜로 태평시대를 열어갔습니다. '지혜'라는 말은 히브리 원문에서 '레브 쉬메'입니다. '레브'는 마음이라는 뜻이요 '쉬메'는 '듣는다'는 뜻입니다. 옛 성경에서는 이 말을 'hearing heart'라고 번역했습니다마는 새로 번역된 성경에는 'understanding mind'로 나옵니다. 말만 다르지 같은 의미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백성의 소리를 듣고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 솔로몬 왕은 그러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구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수(壽)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富)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왕상 3:11)" ---- 이것이 하나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 영화까지 덤으로 주십니다. 솔로몬의 일생이 그러했습니다.

옛날 아라비아의 어느 회교국에 한 칼리프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평생을 두고 자신을 즐겁게 해주던 유명한 피에로가 있었습니다. 잘해나가던 피에로가 어느 날은 그만 깜박하여 실수를 하게 됩니다. 이에 대노한 칼리프는 당장에 그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친 사람인데 그렇게 죽이기에는 참으로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의 자비를 베풀기로 합니다. "내가 이제 너를 죽일 것인즉 그 죽는 방법은 네가 스스로 선택하라." 화형을 당하든 교수형을 당하든 스스로 선택하게 합니다. 형장에 세워놓고 모래시계를 거꾸로 엎습니다. 모래가 밑으로 다 빠지기 전에 어떠한 방법으로 죽을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모래시계의 모래는 점점 흘러서 밑으로 내려갑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모래가 다 흘러내리자 왕이 그에게 묻습니다. "자, 이제 선택했느냐?" 두려움에 떨어야 할 피에로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예, 늙어죽겠습니다." 죽는 것이야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여러분, 지혜로 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질문을 해옵니다. 여러분들도 서로서로 질문하고 있을 것입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날처럼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하던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에 비하여 얼마나 많이 아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은 뱃속에서부터 배우고 태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그토록 아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공부를 많이 시키고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과학도 극도로 발달했습니다. 자연과학․인문과학․심리학․교육학․철학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의 학문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성만은 자꾸 악해갑니까? 사람이 그렇게 잔인할 수가 없습니다. 나빠질 대로 나빠졌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제가 그 해답을 드리겠습니다. 몸은 건강하고 힘은 있는데 그 몸을 지배할 지능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참으로 멍청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젊은이들, 옛날 같았으면 그 펄펄 끓는 힘을 논밭으로 나가 일하면서 분출시킬 것인데 요즘은 할 일이 없습니다. 그 힘을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끓어 넘치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밝은 이성으로 육체적 욕망을 다스려야 하는데, 그 이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 육체적 욕망으로 말미암아 멸망합니다. 동물성은 승하고 인간성은 소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성을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또한 도덕성이 있어야 합니다. 워낙 아는 것이 많습니다. 말도 잘합니다. 참으로 똑똑한 사람들뿐입니다. 그런데도 멍청합니다.

도덕성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헛점입니다. 재산도 있고 기술도 있고 재능도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 그 재산과 재능을 올바로 쓰지 못하는 사람을 봅니다. 바른 인간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 있고 재간 있는데 사람 못된 것처럼 볼품없는 것도 없습니다. 자신도 괴로울 뿐더러 많은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맙니다. 좌충우돌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성에 있습니다. 제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13년 동안 주교로 계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제가 그분께 물어보았습니다. "공산주의가 이렇게 몰락하고 말았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분은 선뜻 '인간학의 문제(anthropological problem)'라고 대답합니다. 공산사회 하에서 인간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인간성의 파괴는 신학적인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성이 파괴되었고, 인간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고 단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보십시다.

지능과 기술, 이성과 양심, 이 모든 것을 총괄하여 주관할 수 있는 영성(靈性)이 있어야 합니다. 영성이 없는 도덕이나 이성은 타락하게 마련입니다. 지능, 재산, 기술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몸집은 큰데 지능이 없어서 문제요, 지능과 지식은 있는데 도덕성이 없어서 문제요, 물질은 점점 풍요해지는데 그것을 주관할 수 있는 인격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지혜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끔 주위에서 보면 "이럴 줄 알았으면"하고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암에라도 걸려 사형선고를 받게 되면 지난 일들을 몹시 후회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술 마시지 않는 건데" ---- 그런데 그 당시에는 죽을 테면 죽어라 하고 마셨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방탕하지 말 것을" "담배 피우지 말 것을" "못되게 굴지 말 것을" 하면서 후회막급해합니다. 보십시오. 후회의 고통은 모두 지혜 부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앞에 닥칠 일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혜는 미래지향적입니다. 저 앞을 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멀리 있는 것을 오늘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깊은 세계에서 이해합니다. 영원한 세계에서 이해합니다.

그리고 신령한 세계에서 이해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여기서 지혜와 지식을 한번 비교해보십시다. 한마디로 '무엇을 할까?' 하는 것이 지식이요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식은 쪼개고 분석하는 능력입니다. 지혜는 인격적 통찰력입니다. 지식이 물질을 본다면 지혜는 인격을 봅니다. 지식이 과거에 대한 기억이라면 지혜는 미래를 봅니다. 지식은 평면적이요 지혜는 입체적입니다.

그러면 이 귀한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말씀대로 하면 먼저, 지혜는 그 뿌리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비로소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경건과 신앙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로서 오는 지혜를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지혜는 부모로부터 옵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 나도 아버지로부터 배웠고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네 아비의 말을 들으라 하고 훈계합니다. 부모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지혜를 얻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그가 평생토록 경험한 것, 그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서 아들에게 한 유언이 '술을 마시지 말라'였다고 합니다. 단지 이 한마디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술 때문에 자신의 전 생애를 망쳤던 것입니다. '술만 아니었더라면'하는 후회가 너무나 뼈저리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 소중하고 값비싼 지혜를 아들에게 전해줍니다. 그러나 그 아들 좀 보십시오.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여 그대로 지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겠는데, 부전자전이라고 그마저 술을 마십니다. 이제 그 집안은 망한 것입니다. 악순환이 그칠 날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요즘의 부모들, 자녀를 보기만 하면 '공부해라, 공부해라'하고 성화가 대단합니다. 그런 부모들이 어떤 부모들인지 아십니까? 공부 못한 한을 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공부한 것 같기는 하지만 알고 보면 성적이 형편없었습니다. '나는 공부를 못했기에 한이 많다. 너라도 좀 잘해다오'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값비싼 것입니까? 잔소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지혜입니다. 이를 받아들여서 다른 말도 필요 없이 그저 '내가 지키리이다'라고 한마디만 했더라면 지혜로운 가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축해버렸습니다. 다시 대를 이어 어리석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모름지기 부모의 교훈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여러분, 효자가 되고 싶습니까? 지혜를 얻으십시오. 지혜를 얻고 싶습니까? 효자가 되십시오. 부모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십시오.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사람들은 전승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조상들이 물려준 교훈이면 그 어떤 것이든 '전승(tradition)이다'하고 받아들여 소중히 생각합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왔고 그 경험을 내게 가르쳐준 것이기에 당연히 소중한 지혜가 됩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노 코멘트(No comment)' 입니다.

부모의 교훈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지혜를 얻습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 훌륭한 부모, 믿고 따를 수 있는 스승의 지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인격이 있어야 합니다. 선배는 어디까지나 선배입니다. 먼저 경험한 사람의 교훈을 소중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겸손한 인격이어야만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주석가로 유명한 매튜 헨리는 그의 저서 가운데서 지혜로울 수 있는 길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 우리에게는 많은 기회가 다가오는데 그 기회를 놓치기 때문에 지혜롭지 못하다고 합니다. 둘째, 늘 배우는 자세를 가지라 ---- 어떤 경우든 마음을 열어놓고 듣는 자세로 임하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셋째, 인내를 가지라 ----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너무 속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꾹 참는 것 하나만으로도 50퍼센트는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천천히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하면 좋을 것을 너무 빨리 내뱉어버립니다. 너무 지나치게 민감합니다.

그래서 후회가 됩니다. 좀더 깊게 생각하고 좀더 기도하고 좀더 경건했어야 하는데 그대로 행동해버렸습니다. 인내가 부족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모름지기 인내할 것입니다. 끈기가 있어야 하고 겸손히 순종해야 한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교만한 자에게 지혜를 가르치는 것은 당나귀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보다 어렵다'고 칼뱅은 말한바 있습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다시 말씀합니다. '지혜를 얻으라' ---- 네 번씩이나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라(buy)는 것이 됩니다. 무엇으로 지불하든지 그 값을 정당하게 치르고 지혜를 얻어내라는 것입니다.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고 먼저, 지혜를 버리지 말고 간직하라고 합니다. 한번 얻은 지혜는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지혜가 제일이다, 히브리어로 머리(head)라 합니다. 모든 것 중에 머리요, 그처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지혜를 사랑하라, 지혜를 가슴에서부터 즐기라 합니다. 지혜를 사랑하고 즐겨야 합니다. 어떤 값을 지불해서라도 지혜만 얻으면 그만입니다. 재산을 잃어버려도 지혜 얻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심지어 건강을 잃어도 지혜만 얻으면 됩니다. 지혜, 그 값을 높여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왕 헨리 4세 때의 일을 하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왕은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했는데 부녀자들이 지나치게 사치해집니다. 사치풍조가 곧 망국지본(亡國之本)이 아닙니까? 왕은 부녀자들이 금붙이와 보석을 지니는 것을 금하기로 작정을 합니다. 금령을 내렸습니다마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자,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모조리 잡아다가 벌을 줄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왕은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드디어 지혜를 짜냈습니다. 새로운 법령을 발표합니다. '모든 부녀자들이 금붙이와 보석을 지니는 것을 금한다. 단, 창녀에게만은 허락한다.' 이러한 내용의 법령이 발표되자 사치풍조가 깨끗이 일소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지혜입니다. 요즘도 보면 벌금 물린다, 세무감사 한다, 구속하겠다 합니다마는 그것으로는 안됩니다. 정치가들, 지혜를 가져야 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 음악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막이 올라가는 순간 매니저는 커다란 모자를 쓴 채로 객석에 앉아 있는 한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공연장 내에서는 모자를 벗어주세요'라는 안내판이 분명히 붙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매니저는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말합니다. "May l have your attention, please." 그리고 이어서 "당 극장에서는 나이 많은 분들께 모자 쓰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 모자를 쓱 벗더라는 것입니다.

이 역시 지혜입니다. 매로 힘으로 다스릴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 다스려야 합니다. 또한 본문은 지혜를 품으라고 합니다. 지혜를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보십시다. 지혜가 보호하리라, 지혜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너를 높이리라, 지혜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사상가 칼라일(Thomas Carlyle)은 말합니다. '사람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행운과 행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 재산보다 지식을 소중히 여깁시다.

그러나 지식보다 지혜를 사모하십시다. 경건에서 지혜를 얻고 믿음에서 총명을 얻습니다. 순종과 경건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얻고 그리스도인의 참된 인격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다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