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목차 돌아가기] |
볼그 마이어라는 독일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전쟁 중 러시아군에게 포로가 되어 우크라이나의 포로 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 또한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웨일즈 수용소에 갇혀 있었는데. 그는 특사를 받아 베를린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흩어진 가족을 모으기 위해 사방으로 연락을 취하여 간신히 세 자녀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과 세 자녀는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러시아의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던 마이어 여사는 남편과 세 아기가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도 이 포로 수용소에서 어떻게 해서든 나가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포로 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임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임신한 여자는 석방한다'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이어 역사는 고민하다가 자기에게 늘 친절히 대해 주던 간수에게 자신이 임신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임신하게 된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온 가족들이 이 아이를 사랑하였습니다. 그 아이로 인해 가족이 모두 다시 모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 여인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러한 이 상황윤리 이론에는 네 가지의 맹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상황윤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상황윤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혼동합니다.
세째로 상황윤리는 상황만을 중시할 뿐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간과합니다.
네째로, 상황윤리는 절대적인 도덕 기준을 폐기합니다.
당신이 만일 마이어 여사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그 행동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2.교리와 윤리
한국에서 나서 한국에서 많은 시간을 지냈던 한 미국인 의사가 쓴 [코리아 패턴](Korea Pattern)이란 책을 읽어 보았다. 복잡하고 미묘한 우리나라의 여러 패턴을 책 한 권에 집약한다는 것은 무리지만, 그런대로 잘 표현해 놓은 것 같았다. 그 중에서 한국의 기독교인에 대해서 평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미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성 Sex 대해 엄격한 도덕이 없고, 술·담배를 허용하는데 대해 놀란다. 한편 미국 신자들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기업윤리나 공중도덕이 부족한데 대해 똑같이 놀란다.”
“기독교인들만의 모임에서도, 기독교의 교리와 기독교의 윤리 사이에 커다란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많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실제 그들의 태도와 행동에서 기독교적이기보다는 유교적인 면을 많이 보여준다.”
일점의 오류도 없는 완전한 평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우리의 아니 나의 아픈 부분을 찔러 주는 것 같았다. 사랑보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앞서고, 하나님의 뜻보다는 체면이 앞서고,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내 교회가 앞서고.. 교리에 집착하는 만큼, 윤리에도 철두철미하게 '크리스챤'이 되어야 겠다.
3..자꾸만 시험에 넘어진다면
마커스 안토니는 ‘은빛 목청을 가진 로마의 웅변가’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강력한 지도자이자 용맹스런 군인이었고 잘생긴 외모에 머리도 비상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도덕과 인격의 결함이었다. 하루는 그의 스승이 보다 못해 면전에서 소리를 질렀다. “마커스, 이 거대한 아이야! 세상은 정복할 수 있으면서 한갓 유혹은 뿌리치지 못하느냐?” 그러나 그는 말초적인 욕구에 순종하며 시험에 굴복하는 습관을 고치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삶은 아무 일도 없는 듯 지속되는 것 같았지만, 이집트로 원정을 떠났을 때, 자신과 제국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는 번쩍이는 미끼를 보게 된다. 클레오파트라가 무방비 상태에 있는 그의 마음에 들어온 것이다. 순간의 쾌락을 위해 그녀와 불륜 관계를 맺은 그는 자신의 아내는 물론 세상의 지도자로서 갖고 있던 권력과, 마침내 생명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재능을 소유했더라도, 아무리 그럴듯한 명성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죄의 유혹에 자꾸만 힘없이 무너진다면 우리는 덩치만 큰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물론 누구나 시험에 넘어질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그런 연약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렇다고 유혹에 습관적으로 굴복하는 것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시험에 대한 선택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하라. 시험을 단호하게 다루고 그 속임수를 간파하라. 그리고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신분에 시선을 고정하라.- 「레몬, 레모네이드를 꿈꾸다」/ 이재기
4.새 성품에 물을 주라
그리스도인 중에는 별 죄의식 없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분들이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술집에서 “집사님!” 하고 부르면 반은 돌아본다는 우스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구원받은 새 성품과 죄악된 옛 성품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담배 한 대 피운다고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술 한 잔 마신다고 지옥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담배를 피울수록 내 안에 있는 옛 성품이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술을 마실수록 옛 뿌리에 거름이 더 뿌려질 것입니다. 이처럼 옛 뿌리에 물과 거름을 주면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반드시 독초와 쑥이라는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바르고 의롭게 사는 백성이 늘어갈수록 교회도 부흥하고 대한민국도 더 잘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나의 옛 뿌리와 옛 성품에 거름과 물을 줄 것인지, 아니면 주가 주신 바름과 의로움에 거름과 물을 주어 새 성품을 키울 것인지를 순간순간 잘 결정해야 합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5.현대인의 교육
미국 지도자의 조건은 3C로 요약된다고 한다. 그것은 실력(Competence)과 인격(Character)과 헌신(Commitment)이다. 그런데 이 3C를 갖춘 지도자들은 대부분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에서 배출된다. 왜냐하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의 자질은 학교교육보다 가정교육에서 길러진다. 특히 긍정적인 태도와 올바른 가치관은 가족 구성원의 생활 속에서 체득된다. 교육학자 에릭 에릭슨은 “자녀교육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무덤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처음 30년 동안 부모와 학교에서 영향을 받고, 남은 30년은 거기에서 배운 것으로 자녀를 양육한다. 60부터는 가족간의 사랑보다 넓은 인류애를 갖고 복되게 살아가야 한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3C를 갖추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하나님은 여러분이 위대한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인품을 갖기 원하신다. /설동욱 목사(예정교회)
6.네가 열심을 내라
본문 : 요한계시록 3;19∼22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한 교회였습니다(계 3:15). 이 교회를 향하여 마지막으로 최종적인 대책을 말씀하셨는데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입니다. 병들어 썩어진 부분은 쓰리고 아프지만 빨리 잘라내어 치료를 받아야 하고 잘된 부분은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아 합니다. 마귀는 삼킬 자를 찾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교회와 성도는 근신하고 깨어서(벧전 5:8) 마귀를 물리치고 이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여 처방을 내리고 치료해 주는 것과 똑같습니다. 21세기 현대인은 요한계시록의 교훈을 잘 받아들여야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이자 한국교회 제1대 목사인 길선주 목사는 일평생 요한계시록을 1만200독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뜨거운 열심을 갖고 기도 많이 하는 찬란한 신앙적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1907년 대 부흥운동은 기도운동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 기도운동이 식는다면 큰 위기입니다.
작년 미국에서 9·11테러가 있었던 직후는 미국인들이 온통 교회로 몰려들어 그렇게 기도하고 회개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뜸해졌다고 합니다. 우리의 생활이 여유있다 할지라도 영적 싸움터에 서있다는 것을 기억하여 늘 기도에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18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도덕과 윤리가 타락했던 영국에 영적 부흥운동을 일으켜 피없는 혁명을 주도했던 웨슬리는 원래 실패한 목회자였습니다. 그런데 1738년 5월24일 저녁 올더스 게이트의 어느 집회장소에서 말씀을 듣다가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일평생 35만㎞ 이상을 전도여행했고 4만회 이상 설교했다고 합니다.
오순절 최초의 성령강림은 “불의 혀같이”(행 2:3)라고 해서 성령님의 여러 속성 중 불같은 속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열심, 찬양의 열심, 예배의 열심, 전도의 열심 등 뜨겁고 거룩한 열심을 다시 찾읍시다. 열심의 불이 꺼지고 미지근하면 주님 입에서 토하여 내칠 것입니다.
* 기도: 주님, 잘 살고 넉넉하다는 이 시대에 기도의 열심, 예배의 열심, 주님 사랑의 열심이 식지 않고 더욱 뜨겁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창준 목사
7.위선
위선은 한자로 ‘거짓 위(僞)’에 ‘착할 선(善)’을 쓴다. 즉 선한 것인 양 위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위선이란 결국 도덕적 결벽성 때문에 생긴 것이다. 미국 서부의 한 대형 교회에서 과거에 치명적인 도덕적 죄를 지은 적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더니, 이들 중 대부분이 평소에 “나는 절대 그런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라고 큰소리치던 도덕적 결벽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개혁을 한다. 부정부패를 척결한다. 새 역사를 만든다”고 하면서 정의의 칼을 높이 드는 사람들의 문제는 자기 자신이 가장 먼저 개혁되어야 할 대상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목사는 자신이 하는 설교를 자신이 가장 먼저 들어야 하는 부족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참된 목자의 자격을 갖게 된다. 남편이 잘못했다고 사과할 때 아내는 비로소 남편을 존경하고 위하게 된다. 부모가 말만큼 살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자녀들이 제대로 못 크고 있음을 인정할 때, 그 자녀는 비로소 부모의 마음으로 몰입해 들어온다. 인간은 한없이 약한 존재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약함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는 우리의 어줍지 않은 자존심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한 대로 일일이 다 보응하시면 우린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뻔히 아시면서도 모르는 척 우리 잘못을 덮어 주시고, 속아 주시고, 끊임없이 사랑해 주셨다.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때다.- 「칼과 칼집」/ 한홍
8.다윗의 실수
아브라함 마슬로는 인간의 욕구 5단계설을 말했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자아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그것이다. 질투와 시기심에 눈이 뒤집힌 사울 왕에게 미움을 받고 쫓기던 다윗은 무엇보다 생명안전이 급선무였다. 어느 날, 너무나 굶주린 다윗은 아히멜렉이란 제사장에게 “나는 지금 사울왕의 특명을 수행중이다”라고 거짓말로 둘러대면서 따뜻한 영접을 받는다. 그리고 기력을 얻어 피난과 망명길에 오른다. 물론 당시 다윗의 궁색한 입지를 상상하면 그런 거짓말쯤이야 무슨 큰 잘못이겠는가. 그러나 아히멜렉의 가문은 다윗을 선대했다는 이유로 훗날 사울 왕에게 억울한 살육을 당한다. 이 사건은 분명히 다윗이 빚어낸 실수요, 허물이었다. 이것이 인간 다윗의 한계점이었다. 지도자의 언행심사는 훗날을 염두에 두고 신중해야 한다. 비록 한순간이라 해도 도덕성을 해치는 치명적 약점은 그의 생애를 영원히 괴롭히는 악몽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장자옥 목사(간석제일교회)
9.마음의 눈
“다 잃었습니다. 겉만 보고 판단한 제가 잘못입니다.”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한 여인의 하소연이다. 한 여인이 아주 멋지게 생긴 기골장대한 얼짱을 만났다. 단지 상대방의 겉이 멋있고 매너가 좋아 신앙을 과감히 무시하고 결혼했는데 알고보니 유부남이었다. 그녀는 충격을 받아 자살하려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외적인 면에 치중해 사람을 바라보곤 한다. 그것은 책 표지가 예쁘다고 최고의 책으로 여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더 이상 외모로 사람의 인격까지 판단해 버리는 그런 실수는 없어야겠다. 우리들은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아야 한다. 마음으로 사람의 가슴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들은 상대방의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그리스도인은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 겉은 후패하나 속은 새로워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이다./김학중 목사(새안산교회)
10.아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개인적으로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를 좋아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라는 가사가 너무도 좋습니다. 저의 간증이며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코스타(국제복음주의학생연합회) 집회 첫날, 그날은 우연찮게도 제 생일이었습니다. 코스타 총무가 많은 학생들 앞에서 제 생일을 축하해 주었는데, 찬양을 인도하던 형제가 생일 축하 노래를 선창한다면서 짓궂게도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를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학생들은 친구들끼리 모여 생일 축하를 할 때 실제로 이 찬송을 부른다고 했습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몰라도 저 역시 진지하게 이 곡이 생일 축하곡으로 가장 어울리는 찬송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은 도덕적으로 훌륭하고 반듯한 사람을 귀히 여기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천히 여깁니다. 훌륭한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비인격적으로 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계 3:20). 함부로 열고 들어오지 않으십니다. 그냥 “나다” 하고 들어오셔도 되건만,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해 우리의 결정을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문을 열면 그때 들어오시겠다고 하십니다.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한다」/ 김동호
11.우리의 지나친 완고함
어느 교회에서 40대 부부를 대상으로 부부생활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중 “남편이나 아내의 신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한 사람은 모두 152명이었다. 그 가운데 성숙한 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4명,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4명, 그리고 부족하면서도 노력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은 무려 124명이었다. 이는 교회생활이 형식적이며 고쳐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심지어 예배만 드리면 모든 책임을 다한 것으로 착각하는 교인들마저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를 지는 삶은 자기 편한대로 믿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종교적 형식보다 더 깊은 사랑과 강한 희생을 주님은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일에 무딘 것은 우리의 마음 밭이 얼마나 완악해 있는가를 보여 준다. 우리가 갈아엎어야 할 땅은 우리의 지나친 완고함이다. 완고하다는 것은 우리의 본질이 변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질적인 것보다 비본질적인 것에 얽매일 때 더 완고해진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보다 향락에 더 집착하고, 도덕보다 돈을 우선하며, 쾌락을 가져오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 모두가 완고함에서 나온다. 검찰 출신 변호사가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모으기 위해 마약범을 풀어주는 데 힘쓴다 고 고발되기도 했는데 그것은 본질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은행장들이 대출비리를 통해 수억의 뇌물을 받은 것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 모두 마음이 완악해져 자기의 본분마저 잃었기에 나온 결과다.
- 「단순한 믿음이 주는 기쁨」/ 양창삼
12.품격지수
근자에 일간지에 우리 국민이 매긴 우리 사회의 '평균 품격지수'가 보도된 바 있습니다. 여기에는 특히 사회 지도층의 품격 불량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정치 지도층이 쓰는 언어의 품격지수는 28점으로 조사항목 중 가장 밑바닥이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에 걸맞는 높은 도의적은 의무를 따르는 것)에 대한 평점도 29점에 머물렀습니다. 사이버 공간의 네티즌 품격도 32점에 불과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언어폭력, 언어파괴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여론 진단 결과입니다. 오늘 나 자신의 '품격지수'는 얼마나 될까요? /이진우 목사
13.사람은 사람이 만든다
사람은 사람이 만든다. 요나단이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만든 것처럼 사울을 바울로 만든 것은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사울간의 오해를 풀어준 것도 바나바였고, 길리기아 다소성에서 사울을 안디옥교회에 불러 함께 일한 것도 바나바였다. 솔로몬은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말했다.
한 포털 사이트는 오늘날 직장인들의 41.15%가 직장의 상사나 동료, 후배와의 마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사람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 관계에서 실패하면 공들여 쌓은 탑도 무너진다. 교회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힘들여 쌓았던 행복이 일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바나바는 어떻게 사람 세우는 일에 성공적인 삶을 살았을까. 그의 인격이 예수의 품성과 닮았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14.절제와 덕
벤자민 플랭크린, 그는 가난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학교라고는 1년 밖에 다녀 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교육과 마아트 목사님의 청교도 교육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일하는 것과 독서하는 것을 체득했다. 그는 미국의 철학회 창시자가 되었고, 피뢰침의 발명가가 되었고, 초대 프랑스 대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그는 “재산을 얻기 위해 덕을 팔지 말고 권력을 얻기 위해 자유를 팔지 말라”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 또한, 그는 어릴 때부터 13가지 덕목을 정해서 평생 지켰다. 그 덕목의 첫 번째는 ‘절제’이다. 사도 바울도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성경에서는 덕의 최우선 지침을 ‘절제’로 보고 있다. 절제하는 자는 덕을 세우는 것이며, 덕을 세우는 자는 절제하는 자이며, 그는 시험에 빠지지도 않으며, 시험 들게 하지도 않는다. 덕은 헬라말로, ‘집을 세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덕성은 세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미국 사람들은 “미는 멸망해도 덕은 멸망하지 않는다.”는 속담을 가지고 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 찌니라”(롬15:2).
15.주초(酒草) 문제
한국 교회는 청교도적 계율의 전통에 따라 주초를 엄히 금하고 있다. 주초 문제는 구원과는 관계 없으나 금주와 금연은 경건과 건덕의 미덕인 것이다. 미국의 의학 협회지를 보면 술은 연간 500만 명을 정신분열증으로 만들고 2만 명을 교통 사고로 죽게하고, 국민병의 제 1위인 정신 분열증의 원흉이며, 도덕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적이며 영혼의 병원체이며 면허있는 도둑놈이라고 했다. 폐암 환자가 20년간 500퍼센트나 증가한 것은 흡연률과 정비례하고, 암 환자의 2분의 1이 술과 담배가 원인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술 때문에 능률이 연중 30일이나 손해이며, 알콜로 인한 손해 액수가 35~70억 프랑이라고 한다.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 하라.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다. 청교도의 전통을 지키자. -예수칼럼 : 김준곤-
16.좋은 품성
사람은 태어난다고 인격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어떤 교육을 받느냐가 곧 그 사람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누구나 자녀의 교육에 힘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의 차이를 산 자와 죽은 자로 비유했다. 사람은 가르치는 대로 된다. 그렇다고 기능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은 아니다.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것이 참된 교육이다. 아들만 둘 있으면 부모가 어디서 죽을지 모르고, 아들 하나만 있으면 부모는 골방에서, 죽고 딸 하나만 있으면 설거지를 하다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참다운 자녀 교육의 부재현상에 대한 경고이다.
자녀는 부모의 품성을 닮는다. 요셉의 좋은 품성은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미쳤다. 요셉은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을 이 두 자녀의 가슴 속에 심어 주었다. “마귀가 가르치기 전에 먼저 가르치라” 고 한 캐서린 부스의 권면 속에서 우리시대에 필요한 교육의 종소리를 듣는다./길자연 목사(왕성교회)
17.장자와 혜왕
중국의 장자가 어느날 남루한 베옷에 다 떨어진 집신짝을 신고 위나라의 혜왕을 배알했다. 왕은 장자를 보자마자 "선생은 어찌 그리 피폐하십니까?"하고 측은히 여겨 한마디 앴다. 이 말은 들은 장자가 "선비로서 도덕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이 피폐한 것입니다. 옷이 해어지고 신이 떨어진 것은 단지 가난한 것이지 피폐한 것이 아닙니다." /곽선희목사 설교예화
18.물증과 심증
오만불손하고 불의한 부자들의 재산을 훔쳐다가 의롭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의적이 된다. 실정법으로는 의적도 법의 심판을 받는다. 하지만 마음의 법으로는 칭찬의 대상이다. 우리 고전 가운데 홍길동 이야기가 아름다운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서양에는 로빈 후드 이야기가 있다. 홍길동이 조선사람이고, 로빈 후드가 영국인인 점만 다를 뿐 의적으로 추앙받기는 똑같다. 또 하나, 둘 다 실재 인물인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두고 왈가왈부하지는 않는다. 감동적인 일화의 주인공으로 우리 삶에 가르침을 주는 것만으로도 족하기 때문이다.
불후의 명작들이 반드시 사실적 역사물일 필요는 없다. 물증이
아니라 심증으로도 독자와 만날 수 있고, 감동을 주며, 독자의 삶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신앙과 도덕의 이야기가 과학일 필요는 없다. 다만 삶을 움직이는 감동이어야 한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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