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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연약한 사람들이 종교를 의지하러 가는 곳이라고 비하하며 무시했던 아인슈타인이 활동할 당시에 독일에서 나치스가 일어났습니다. 그 때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대학의 지성인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대학 교수들은 즉시 나치즘에 무릎을 꿇고 아첨했다. 그들은 나치즘이 주장하는 잘못된 인종이론을 마치 옳은 것인 양 떠들어댔다. 또 나는 신문과 언론인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신문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필봉을 놓았다. 그런데 오직 교회만이 독재자에 항거하여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줄지어 감옥으로 향했다. 나는 교회에 한없는 찬사를 보낸다.”
교회가 불의하면 이 사회는 아예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교회조차 불의하다면 이미 다른 집단은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항상 정의롭고 공의롭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사회를 향해 광야의 소리를 발할 수 있습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2.성막과 교회
유대인들에게는 단지 한 곳의 예배 장소만 있으나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많은 예배 장소가 있다. 대부분 예배 장소들은 존경과 관심의 주된 중심지며,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변함 없이 서 있다. 선조들은 그 교회의 상수리나무 밑에서 안식하고자 떠나버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교회들의 뾰족탑들은 갑작스레 죽은 마을 사람들이 본 마지막 장면들이었다. 수천 가지의 기억들은 우리에게 있어 교회가 귀중한 곳이 되게 한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들임을 배워 온 곳은 바로 교회였다. 우리의 모든 이해력을 초월하는 커다란 하나님의 평강이 헤르몬 산의 이슬처럼 내려온 곳도 교회였다. 우리가 시내 산의 천둥보다 더 큰 힘을 지닌 '조용한 작은 음성'을 들어온 곳도 바로 교회였다.
* 참고: 왕상8:27-53, 대하6:10-42, 합2:20, 엡2:20,21, 계11:19
3. 마르틴 루터의 교회론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다. 교회는 피 흘림이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 까닭은 교회의 원수인 사탄이 기만자이고,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언제나 나의 피를 흘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하였다. 이 세상에 완전히 순결하고, 정화된 교회를 바라는 사람들과는 고별하라. 이들에게서 확실한 것은 그들이 교회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의 형태와 외모는 낙원과 같으나, 참 교회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누추하고, 모양 없고, 거리낌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귀중하고, 애호 받고, 높이 평가를 받는다. 제사장 아론은 성전에 나타날 때에, 장식품과 부유한 자태를 가지고, 향기를 풍기며, 영광스럽게 나타났으나, 그리스도는 가장 천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4.교회 참석의 동기
에머슨 파스틱이라는 설교가는 미국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데는 4가지 동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생활 습성이나 관습 때문에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떤 목사님의 설교 때문에 그 설교를 듣기 위하여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란 좋은 곳이라 교회에 나가서 활동하면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기 때문에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일시적인 위안을 얻기 위하여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동기들은 교회에 나가는 주체적인 동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은혜를 받는 곳입니다. 당신은 왜, 그 무엇 때문에 교회에 참석하고 있는 것입니까?
5.교회는 병원이다
이상적인 교회에서 교회 생활을 하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교회를 찾자면 먼저 이상적인 교회가 어떤 것인지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에베소 교회가 우리가 찾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상적인 교회가 될 수 있는 조건 -좋은 위치, 문화적·경제적 중심지, 훌륭한 창립자와 훈련받은 지도자- 을 다 갖춘 곳 같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본문을 보면 에베소 교회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에베소서는 에베소 교인 중에 거짓말쟁이들과 혈기 부리는 사람, 도둑질하는 사람, 쌍소리나 음담을 지껄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회는 성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를 보고 실망합니까? 교회에서 천국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병원입니다. 거만하고, 이기적이고, 혈기 부리고, 술 담배, 노름에 중독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변화 받는 치료의 장소가 바로 이상적인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 합니다.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병원입니다. 교회는 병원이기 때문에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치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나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치료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
병원에서는 아픈 사람이 제 구실을 못한다고 나무라지 않습니다. 교회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인격이 모자란다고 나무라면 안 됩니다. 치료받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회의 분위기가 가족적이어야 합니다. 가정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허물이 용납되는 곳입니다. 이러한 가족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나님께서는 치료의 역사를 나타내 주십니다. 또한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분위기가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하지 말아라" 하는 말을 하고 난 다음에는 즉시 "하라"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무슨 결심을 하든지 간에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어서 하시기 바랍니다. 겸손해지고 싶으신 분들은, 자신을 낮추려 마시고 남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도 잔소리하지 말기를 결심하지 말고 칭찬을 많이 하겠다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치료는 부정적인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치료하고, 치료받는 병원 분위기로 바뀌겠습니까? 치료의 역사는 언제든지 조그만 그룹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교회는 작아야 합니다. 앞으로 가족을 생각할 때는 부인 혹은 남편, 자녀들을 비롯해서 가정교회에 속한 8명 내지 15명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들 앞에서는 나의 치부를 내어 보일 수 있어야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도움을 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영기 목사 중에서-
6.공동 묘지화된 교회당
구라파 도처에 궁전 같은 교회들이 있고 교회 경내에는 대개는 공동 묘지가 있다. 구라파인들은 98%가 크리스찬이라고 등록이 되어 있으나 결혼식과 장례식, 평생 두 번 교회에 가는 교인이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주로 노인들이 교회에 참석하는데 평균 3%가 출석 교인이어서 공동 묘지화된 교회를 보는 느낌이다. 미국 교회를 빌려서 예배 드리던 한국 교인들이 점점 주객이 전도되어 미국 교인수가 줄어들자 많은 교회들을 한국 교회가 접수하는 중이다. 미국 교회도 최후의 몸부림을 다하지만 미국의 영성의 시간은 오후 6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기독교의 기류가 태평양 시대 기류를 타고 한국에 그 중심이 머물고 있다. 이 부흥을 잘 감당하면 영광스런 통일 복음 민족이 될 수 있으나(겔39장, 신28장) 잘못 감당하면 지금 짓는 거대한 교회들이 공동화하고 공동 묘지 같이 텅 비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예수칼럼 : 김준곤-
7. 맑고 아름다운 목회자와 교회
사람들이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헌금이 많이 나오고, 커다란 건물을 가지고 있으면 큰 교회라 합니다. 모이는 사람도 몇 명 안되고, 아직도 보조를 받아야 교회가 유지되고, 예배 장소도 상가에 세 들어 있다면 작은 교회, 또는 개척교회라 합니다. 이러한 평가 기준은 거의 보편적이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은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사람들 숫자나, 헌금 액수나, 건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부자 교회에 이렇게 경고합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계3:17)
어떤 목회자가 교회를 개척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애를 썼는데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목회를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합니다. 희망과 기도와 낙담과 용기와 믿음과 뭔지 모르는 것들이 뒤죽박죽 됩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그 목회자가 아집과, 교만과, 욕심과, 야망을 내려놓고 낮아지고 낮아져서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면 그는 어느새 성도들의 숫자는 하나님 앞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숫자와 상관없이 영혼이 맑고 아름답고 투명한 목회자와 교회가 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런 교회가 큰 교회입니다.
ⓒ최용우
8.교회는 구원의 우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그 육신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했습니다. 그 신령한 몸이 40일 동안 제자들과 같이 있다가 마지막에는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이 신령한 몸이 하늘로 승천한 후에는 이 땅위에 보이는 몸을 대신 세웠습니다. 그 몸이 곧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문자 그대로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수를 주는 구원의 우물이 되는 것입니다. 일세기에도 많은 목마른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생명수를 마시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2세기에도 그러했고, 3세기에도 그러했고, 오늘날 20세기에 와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거스틴은 성경만 읽은 것이 아닙니다. 주일마다 진실되게 근실하게 밀리노 교회에 나가서 여러 성도들과 같이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때 로마 제국 일원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하는 성 암부로스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더욱 깊은 자리에 들어갔고 풍성한 생명수를 마신 것입니다. 이 교회야말로 이 광야같이 메마른, 아니 사하라 사막같이 쓸쓸한 세상에서 영적 오아시스의 역할을 하고 있는 그대로 구원의 우물이 되는 것입니다.
9.중매쟁이
나는 얼마 전 아주 친한 친구로부터 자기 아들을 중신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친구 아들은 서울의 우수대학원을 졸업한 전자학 석사이고 우리나라 최고의 회사인 S전자 사원이길래 그에 걸 맞는 여성을 소개해 주기 위해 수소문해서 현재 서울에 있는 명문 의과 대학 본과 2학년 여학생을 만나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만난 후의 결과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좋지 않은 말이 들려왔다. 이 일로 나는 중신하는 것의 어려움을 더욱 실감했다. 목사는 신랑 되신 하나님과 신부 될 사람과의 중매쟁이이다. 요사이 신랑감과 신부감이 맞선을 보는 곳은 보통 호텔 커피숍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만약 신부감 여성이 신랑의 인품을 보려고는 하지 않고 맞선 장소인 호텔 커피숍의 조명이 어떻고, 의자가 어떻고, 커피 값이 너무 비싸다고 하면서 신랑을 거부한다면 과연 그 여자를 현명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최근 전도를 하다보면 신랑 되신 주님의 성품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주님을 만나는 장소인 교회가 어떻고 신자가 어떻고 하면서 신랑되신 우리 주님을 거부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본다. 이 지구상에는 온전한 교회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고, 죄인이기 때문에 완전한 교회를 이루기는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보고 혼인잔치에 참여할려고 준비하는 신부가 되어야지 신랑과 만나는 장소에 너무 집착하여서는 안 된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10.신나는 교회 생활
어떤 사람은 주일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주일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에서 분주하게 하루 종일 지내면서도 별로 피곤해하지 않고 밝은 얼굴로 보낸다. 어떤 사람은 주말이 되면 또 어느새 일요일이 돌아왔는가 하면서 짜증스러워 하기도 한다. 예배가 시작된 예배당에 걸어들어와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털썩 자리에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성경책을 들고 오지도 않고 멍청하게 앉아서 찬송을 부를 때에는 다 죽어가는 것처럼 개미 소리만하게 따라 부르고, 헌금하는 시간에는 주머니에서 부시럭거리면서 구겨진 돈을 꺼내서 언짢다는 듯이 헌금 주머니에 넣는다. 설교가 시작되면 영락없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설교가 끝나면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축도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교회 문을 나서는 것이다. 신나는 교회생활을 하고 싶은가? 우선 "내가 정말 예수님을 바로 믿고 있는가?"부터 다시 검토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사람이 축쳐진 어깨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느릿느릿 가겠는가? 시간에 늦을까봐 부리나케 달리고 서둘지 않겠는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정직한 마음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마음으로 나의 믿음을 재확인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11.교회의 적
백합은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꽃이지만 썩으면 극심한 악취를 내는 꽃이다. 이러한 반대적 현상은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돌아선 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독일의 사회주의자 '칼 막스'(K. Marx)가 한 때 신학생이었다는 사실은 기독교 변절자가 오히려 기독교에 미치는 악영향이 어떠한 것인가를 대변해 주는 가장 훌륭한 예이다.
교회에 가장크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것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기독교인들이라고 말하면서도 기독교인처럼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라는것이 마음아픈 일이다.
12.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가 그의 몸이기에 성경은 교회를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고 했다(엡 1:23). 이 말의 의미는 교회가 온 세상에 가득해야 하고 이 세상을 온통 교회로 충만케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교회가 이 세상에 가득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돌과 나무로 지은 성전을 자기 처소로 삼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돌과 나무로 지은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성전을 세우셨다. 바로 그 새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상 안에 거하시고 그 거하심을 통해 만물을 충만케 하시기로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새로운 성전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성전인 교회에 거하시고 교회를 채우시기 때문이다.
물론 이 교회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그를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를 그의 몸으로 하는 생명체를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 교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거소요 성전이다. 그러나 교회는 단번에 하나님의 완전한 거소가 될 수 없고 만물을 충만케 할 수가 없다. 교회가 하나님의 완전한 거소가 되기 위해서는 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야 하지만 양적으로도 온 세상에 가득하고 충만해야 한다. 교회를 통해서만이 이 땅에 하나님의 거룩한 거소가 확대되어 가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 분이다.
온 땅에 안 계신 곳이 없이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만이 자기의 성역화된 처소를 확대시켜 가시고 진정한 통치 영역을 확장시켜 가신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곳이다. 비록 녹슨 종탑과 초라한 간판을 건 아주 작은 개척교회라도 청와대·백악관보다 더 영광스러운 곳이다. 교회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기에.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교회는 더 많이 부흥해야 하고 이 땅에 더 많이 존재해야 한다. 또한 땅끝까지 더 많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야 한다. 누가 감히 이 땅에 교회가 너무 많다고 했던가.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한 거소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기에 지금보다 더 많아야 하고 온 땅에 가득해야 한다. 그리고 지상의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온전한 거소가 되기에 합당한 교회로 갱신되고 새롭게 정화되어야 한다.
/소강석(분당새엔덴교회 목사)
13.진정한 교회
성경: 눅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참으로 누추하고 보잘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귀중하고 사랑스러우며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제사장 아론은 성전에 나올 때, 장식품을 걸친 화려한 외모로 향기를 풍기며 영광스럽게 나타났으나, 그리스도는 가장 천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점차 대형화되고 있는 현대 교회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건물의 크기와 화려함으로 자신들의 교세를 과시하려는 것입니다. 이미 일부 대형화된 교회들은 자기들 위주의 공동체 모임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 주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은 꺼려합니다. 교회가 너무 깨끗하고 화려해서 남루한 옷차림의 가난한 사람들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모습을 입으면서까지 낮아지셨던 주님의 사랑을 돌이켜보면서, 화려한 교회 건물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려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 기도: 교인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교회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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