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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교제 】 예화모음 16편

by 【고동엽】 2022. 6. 9.
[처음 목차 돌아가기]
 
 

1. 성도의 거룩한 교제

석탄 한 덩어리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나 그 한 덩어리들이 함께 모이면 그 힘은 겨울 추위를 물리친다. 그대가 성도와의 거룩한 교제 없이 홀로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것은, 석탄 한 덩어리로 인생의 겨울을 물리치겠다는 것과 같다.
-이재철 목사의 ‘새신자반’ 중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작은 조각배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암초와 폭풍에 맞서 싸우며 깊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홀로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의 인간된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동역자를 위해 늘 기도하십시오. 성도의 거룩한 교제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신앙의 기초입니다.
/새벽종소리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13: 20)

 
 


2.밑 빠진 항아리

우리 민속 설화 중에 <콩쥐 팥쥐>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팥쥐와 그 어미인 계모가 잔칫집에 가면서 콩쥐에게 잔치에 따라 오려면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시켰다. 콩쥐는 항아리에 열심히 물을 길어 날랐지만 항아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 항아리는 밑 빠진 항아리였기 때문이다. 그때 두꺼비 한 마리가 나타나 항아리에 난 구멍을 막아 주었고, 콩쥐는 그 덕에 잔칫집에 갈 수 있었다. 영적으로 볼 때 우리는 모두 일종의 항아리다. 주님은 이 항아리에 각양 좋은 은사와 선물을 가득 채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하지만 그 항아리에는 수많은 구멍이 나 있어서 아무리 좋은 선물을 채워 넣어도 결국엔 새어 나가고 만다. 왜 항아리에 구멍이 생기는 걸까? 그것은 죄 때문이다. 우리가 욕심과 고집만 앞세우면 항아리에 구멍이 생겨 주님이 주시는 축복과 선물을 담지 못하는 것이다. 죄는 우리 삶을 망가뜨린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죄와 싸우되 피 흘릴 때까지 싸우라고 권면했다(히 12:4).
죄 때문에 생긴 구멍을 막는 장치가 바로 기도다. 기도는 <콩쥐 팥쥐> 이야기에 나오는 두꺼비와 같다. 기도를 통해 주님과 교제를 나누면, 주님은 우리 죄 때문에 생긴 구멍을 막아서 새롭고 온전하게 만들어 주신다. 만일 죄를 지으면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항아리에는 무수한 구멍이 생길 것이다. 지금 당신의 항아리에도 구멍이 뚫려 있지는 않은가?
- 「기도라는 선물 바구니」/ 김경진

 

 
 



3.하나님과의 교제

본문: 고린도전서 1: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고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해로운 버릇이 있다고 목사에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와 같은 중독에 빠진 것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늘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나쁜 버릇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한 신자가 교회에서 예배가 끝날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삶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로막는 거미줄을 치워주세요.” 그는 항상 똑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기도에 지친 어느 목사님이 그 사람 옆에 와서 무릎을 꿇고는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주여, 그 거미를 죽여주소서!”
그렇습니다. 죄의 버릇을 없애려면 때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죄는 발본색원해야 합니다. 죄의 뿌리를 잘라내야 합니다. 동일한 죄를 반복하는 것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죄에서 떠나야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됩니다.


식물은 몸만 있고 동물은 몸과 혼이 있습니다. 식물은 생명은 있으나 혼, 즉 정신이 없기 때문에 지식도 감정도 의지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개나 원숭이 같이 영리한 동물은 혼이 있으므로 시장도 봐오고 신호등도 볼줄압니다. 그러나 동물은 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거나 기도를 드리거나 할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적 존재(apiritual being)이기 때문에 아무리 미개인이라도 하나님을 찾고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한대로 영혼이 죽은 상태에 있으므로 하나님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교제할줄을 보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그 피로 대속했으므로 그분을 믿을 때에는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가질수 있고 영생을 얻습니다.
"사망자 중에 던지운 바 되었으며 살육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다시 기억지 아니하시니 저희는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시 88: 5)


생물학자 배스티언(S.L. Bastian)은 작은 나뭇가지나 덤불 속에 집을 짓고 사는 거미류를 관찰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거미는 나뭇가지나 덤불에 걸쳐 있는 울타리 속에 새끼들을 부화하는데, 만일 그곳에 약간이라도 위험한 일이 발생해 새끼들이 놀라게 되면 즉시 어미 거미가 달려와서 새끼들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어미 거미가 새끼들의 동요를 그렇게 금방 알아차리는지 궁금해서 배스티언이 주의 깊게 관찰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미 거미가 새끼들의 몸에 연결해놓은 가는 비단줄 같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새끼들이 적들의 위협을 받아 몸을 심하게 움직이면 그 줄이 팽팽하게 잡아당겨지므로 어미가 즉시 달려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미 거미와 새끼들 사이에 연결된 줄은 생명줄과 같습니다. 새끼 거미들은 그 줄이 자기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끊어지지 않도록 많은 신경을 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하나님의 손에서 끊어지면 무덤에 누워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가 우리를 생명의 삶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이 귀해 오염된 물만 먹고 살던 아프리카 콩고 사람이 미국여행 중에 호텔에 묵게 되었습니다. 호텔에 있는 수도꼭지를 돌리니까 깨끗한 물이 한없이 쏟아집니다. 그러자 콩고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저것을 고향에 선물로 가져가야 되겠다. 저것만 있으면 물걱정은 없으리라.’ 그래서 밖에서 렌치를 사가지고 와 수도꼭지를 뜯어내 가방에 넣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았습니다. “내가 이제부터 우리 동네의 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그는 수도꼭지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원지와 분리된 수도꼭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복을 부어주십니다.
* 기도: 사랑의 주님, 내가 주님을 더욱 깊이 알기 원하며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 원합니다. 주님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얻게 하소서. 매일매일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욱 깊어지며 단절되지 않도록 힘쓰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자양고등학교 교사)

 

 

 
 

4.교제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2장 17∼20절

캘리포니아의 스퀘어 나무는 300 피트 정도의 높이까지 무성하게 잘 자랍니다. 특이한 것은, 이 거목의 뿌리가 얕고 사방으로 길게 뻗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군집을 이룬 이 나무들의 뿌리가 서로 뒤엉켜 거센 비바람에도 잘 쓰러지지 않도록 서로를 지지해 주기 때문에 거대한 나무로 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스퀘어 나무들처럼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 아픔을 나누고 중보기도로 도우며 상부상조할 때 능히 견디고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근세의 유명한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라는 사람이 ‘나와 너’라는 책을 썼습니다. 거기서 말하는 세 가지의 인간관계가 있습니다. 첫째 ‘그것과 그것의 관계’입니다. 인간관계를 마치 물건처럼 서로를 이용하다가 가치가 없으면 버린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무인격 관계입니다. 둘째로는 ‘나와 그것의 관계’입니다. 이 말은 상대방은 나를 물건처럼 이용해도 나는 상대방을 끝까지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로 발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부버는 내가 당신을 인격으로 믿어주고 당신이 나를 인격으로 대해 준다고 하여도 이 관계가 항상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깨질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너 사이에 언제나 이러한 관계를 중매하는 촉매자가 필요한데 그것을 영원자인 ‘너’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마찬가지입니다. 그 관계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깨지게 됩니다. 모든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교제는 믿는 자들과 많이 다릅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술로 교제합니다. 골프와 화투로 교제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다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성도의 교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랑의 교제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할 때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고 나옵니다. 교통이 바로 교제입니다. 신앙생활에는 예배와 기도도 중요하지만 성도간의 교제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데살로니가에 갑니다. 그곳에서 3주 동안 있으면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강론하며 증거하였습니다. 그때 경건한 헬라파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베뢰아로 피신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데살로니가교회를 생각하면서 이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그는 떠나 있었지만 성도들이 보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교제는 보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성도의 교제는 이성간의 ‘에로스’의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 사랑으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영적인 교제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교제는 세속적인 교제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령한 교제,영적인 교제를 해야 합니다. 사단은 이러한 교제를 훼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제는 성도의 영혼을 살찌게 하고 교회를 부흥하게 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셋째로 자랑의 교제입니다. 나의 자랑은 조심해야 하지만 상대에 대한 자랑은 많이 해도 좋습니다. 오늘 본문 19∼20절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자랑하는지 모릅니다. 교회 자랑은 할수록 좋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교회와 성도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의 교제,영적인 교제,자랑의 교제를 통하여 주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의 향기를 날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관계의 회복

우리는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행복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만일 내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내 인간관계가 왜곡되어 있거나 뒤틀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도 관계에서 비롯된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될 때 우리는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며,인간과 자연이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할 때 무서운 질병이 창궐하게 된다. 나의 장기와 조직이 뇌의 명령을 거부할 때 내 몸은 균형을 잃어버리고 작동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 존재이다. 부부관계,부모와 자녀관계,스승과 제자관계,이웃과의 관계 등. 우리는 이런 관계가 회복될 때 비로소 건강해지며 궁극적으로 나와 하나님의 관계 회복이 올바른 건강의 첫걸음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를 지으셨고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관계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 깊어지기 마련이다. 매일 아침 누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시간은 내 모든 세포가 그분 안에서 질서를 회복하는 치유의 시간이다.
/박상은 박사(안양병원장)

 

 
 

6.밥의 세 가지 의미

예수님은 밥인데, 밥에는 다음과 은 세 가지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밥은 필수적인 음식입니다. 밥은 절대로 사치품이 아닙니다. 밥은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밥 먹는 것이 자랑일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밥 먹은 것을 자랑하는 분이 있습니까? 이것을 예수님이 밥이라는 상징에 적용하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우리 삶의 악세사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분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밥이란 뜻은 모든 사람의 구미에 맞는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짠 음식을 못 먹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 음식을 못 먹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고기를 못 먹습니다. 그러나 밥을 못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밥에 숨겨진 예수님의 뜻입니다.
셋째, 밥은 매일 먹는 음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과의 교제도 하루도 끊이지 않고 매일같이 이루어져야 함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밥은 매일 먹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일용할 영적 양식입니다. 매일 교제함으로 채워야 할 분이 바로 우리 영혼의 밥 되신 예수님입니다.
/ 전병욱

 

 
 

7.젊은이들 가슴을 파고든 할머니

일흔여섯 살의 거르티 할머니는 교회 안의 젊은이들을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고등학생들을 돕기로 자원했다. 성경 공부를 인도하거나 청소년 캠프에 참여하는 일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그녀는 카메라로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사진을 찍어 플래시 카드에 붙이고 뒷면에 각 사람에 대한 정보를 적어 넣었다. 그렇게 해서 학생들을 기억하고 주일마다 교육관 입구에 서서 학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모임이 끝나면 다시 문 앞에 서서 학생들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고민과 문제를 갖고 거르티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10년 후에 여든여섯 살이 된 거르티는 뇌졸중으로 세 번이나 쓰러졌다. 다가온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학생들은 모두 걱정과 비탄에 잠겼다. 어느 날 리더 중 한 사람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거르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미리 장례를 치러 드림으로써 그녀가 교회와 학생회에 얼마나 소중한 분이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젊은이들이 예배당을 꽉 채웠다. 장례식 예배가 끝나갈 무렵 학생들이 무언가를 감추고 예배당 앞쪽으로 모였다. 그들은 크고 진귀한 향수병을 각자 들어올렸다. 순간, 그들은 병을 깨뜨려 거르티의 발에 향수를 부으며 그녀가 한 모든 일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거르티 할머니가 젊은이들에게 준 것은 그녀가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 「뒤엉킨 영성」/ 마이클 야코넬리

 
 

8.영적 교제의 필요

어느 날 그리스도인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 아침이나 점심을 함께 들면서 하나님이 각자의 삶에서 이루신 일들을 얘기하고 격려하며 기도 제목을 나누는 사이였다. 내가 그를 훈련시키는 것도, 그가 나를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여느 때와 달랐다. 친구는 상처를 안고 있었고 점심을 먹으면서 자신이 직장에서 직면하게 된 몇 가지 어려운 문제를 털어놓았다. 나는 귀 기울여 들었고 그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에 대해 성경 말씀을 토대로 한두 가지를 제안한 후 그를 위해 기도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그의 필요를 ‘긴급 기도 목록’에 기록했다. 그의 상황이 한순간에 극적으로 좋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달 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그동안 나는 계속해 그를 격려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 때까지 다양한 대안을 찾아왔다. 이 사건은 영적 교제가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보여 준다.
영적 교제란 사회 활동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둘 이상의 그리스도인이 갖는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은 그분을 의지하며 서로를 의지하는 존재로 우리를 창조하셨다.
「날마다 자라는 믿음」/ 제리 브리지스

 
 

9.교제를 방해하는 것

얼마 전에 놀라운 그리스도인이었고 위대한 설교자였던 레스터 롤로프 목사님이 한 수요일 저녁 예배에 우리 교회에서 설교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날 밤에는 그는 오하이오주의 캔턴에서, 나는 오하이오주의 애크론에서 설교를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내게 자기 개인 비행기로 함께 에크론 캔턴 공항으로 가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기로 동의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귀한 교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롤로프 목사가 입술이 새파래져 말을 했습니다. "잭 목사님, 우리가 길을 잃었습니다! 나침반이 고장이 났습니다! 우리는 지금 에리 호수 상공을 날고 있는데 연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만일 이 나침반이 빨리 고쳐지지 않으면 우리는 호수 위에 바상착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둘의 마음이 불안하였던 것만큼은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비행기의 계기판 위에 있는 피칸땅콩 깡통을 집어 몇 개를 꺼내 먹었습니다. 내가 그 깡콩을 치웠을 때 그 나침판이 온전하게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장소에 놓여진 작은 땅콩이 우리를 항로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자신과 기도 생활 사이에 어떤 것을 두면 그는 곧 영적 항로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10.성도의 교제와 사귐

성경: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행 2:46)

그리스도인들은 성도들간에 교제와 사귐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와 사귐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이 집 저 집에 모여 떡을 나누면서 성도들의 사귐을 끊임없이계속했습니다. 이것이 복음 전파와 교회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우리는 성도들과의 사귐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혹시 성도들간에 불화를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미워하고 시기하지는 않았습니까? 서로 돌아보며 사랑하며 성도간의 교제와 사귐을 다시 한번 새롭게 다져봅시다.

 

 
 

11.신과 교제하는 존재

식물은 몸(쏘마)만 있고 동물은 몸과 혼(쏘마, 푸쉬케, 푸뉴마)이 있습니다. 식물은 생명은 있으나 혼, 즉 정신이 없기 때문에 지식도 감정도 의지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개나 원숭이 같이 영리한 동물은 혼이 있으므로 시장도 봐오고 신호등도 볼줄압니다. 그러나 동물은 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거나 기도를 드리거나 할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적 존재(apiritual being)이기 때문에 아무리 미개인이라도 하나님을 찾고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한대로 영혼이 죽은 상태에 있으므로 하나님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교제할줄을 보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그 피로 대속했으므로 그분을 믿을 때에는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가질수 있고 영생을 얻습니다.

 

 
 

12.내 말을 들어줄 사람 없소?

안톤 체홉의 단편소설 ‘비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가난한 마부 이오나 포타포브는 얼마 전 아들이 죽었다.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이노나는 마차를 타는 손님들에게 눈치를 봐 가며 얘기를 했다.
“며칠 전에 제 아늘놈이 죽었답니다.”
첫 번째 손님은 “허, 무슨 병으로 죽었노?” 하고 말대답은 했지만 즉시 마부에게 마차를 잘못 몬다고 야단을 쳤다.
두 번째 손님은 “사람이란 모두 죽는 법입니다” 하고 초연한 반응을 보인다. 모두들 건성으로 들을 뿐, 이오나의 슬픔을 함께 나누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온 이오나는 젊은 동료에게 얘기를 붙여 보지만, 그는 두 마디도 듣지 않고 잠에 곯아 떨어져 버렸다. 이 불쌍한 이오나가 드디어 이야기 상대를 생각해 찾아간 곳은 그의 말이 건초를 씹고 있는 마구간이었다.
“아무렴, 내가 이제 마부 노릇 하기는 너무 늙었지? 내 아들놈이라면 얼마나 잘할까? 틀림없이 일등 마부일 텐데, 살아 있기만 하다면 말야.”
우적우적 건초를 씹는 말 앞에서야 비로소 이오나는 아들 이야기를 마음놓고 꺼낼 수 있었다.
- 「신실한 믿음을 위한 예화선집」/ 강일석 편저

 

 
 

13.거룩한 교제를 힘쓰라

그리피스 존은 20년이 넘도록 중국에서 지내면서 젊은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경건해지도록 힘쓰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1877년 상하이에서 열린 선교회의에서 그는 “선교사는 무엇보다도 거룩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중국사람들은 선교사들이 거룩한 사람이길 기대합니다. 나는 별로 경건하지 않은 채 큰 영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목회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목회자는 착한 사람이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 지방 사람들의 언어와 문학을 익힐 뿐만 아니라 경건해지기에 힘써야 합니다. 형제들이여, 이것이 바로 이 큰 나라가 우리를 통해 변화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삼위일체시요 거룩하신 분이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거룩함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를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시간을 나누십시오. 이처럼 거룩한 교제를 위해 시간을 내어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친히 우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십니다. 끊이지 않는 교제를 경험하십시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습니다.”라고 했다.
/ 앤드류 머레이
* 기도: 사랑의 주님, 내가 주님을 더욱 깊이 알기 원하며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 원합니다. 주님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얻게 하소서.

 

 
 

14.사귀어도 될 사람

맥스 루케이도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게 하십시오. 사람들은 우리가 말하는 것을 듣기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고 그의 책에서 권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의 신실성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과 행실이 늘 모니터 당하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의 일치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 사람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도덕적인 사람입니다. 신실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귀어도 유익이 될 사람입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15.함깨 동락하라

성경: 롬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빅토르 프랑클 (Frankl) 은 2차 대전중 나치 독일의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때의 체험담인 "밤과 안개"라는 책에 이런 경험을 고백하였습니다. 수용소의 유태인들은 병으로 죽어가고 차례차례 가스실로 보내져 학살되고 있었습니다. 프랑클 교수 자신도 영양실조로 몹시 쇠약해졌으며 언제 가스실로 끌려갈지 죽음의 날만 기다리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때 그는 체포되는 당시 뿔뿔이 헤어져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아내를 생각하였습니다. 자기도 고통스럽지만 여자의 몸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며 날마다 기도를 할 때, 이상하게도 자신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고 약한 몸을 일으켜 노동을 감수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프랑클 교수는 이런 말을 썼습니다.
"누구든지 좋으니까 그대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그 사람과 함께 고통을 나누어 가지면서 살아 보라. 그대는 예상치도 않았던 힘이 어디선가 솟아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되 특히 주님과의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16.함께 있고 싶어요

D. L. 무디가 하루는 서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5살 먹은 그의 아들이 들어왔다. 무디는 그 아들이 자신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무얼 원하니, 얘야?'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꼬마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요.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서 들어왔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마루에 앉아서 조용히 놀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그는 아버지와의 교제만을 원했던 것이다. 우리들도 우리 아버지와의 교제를 사모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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