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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을 막는 3대 대적 (학개 1장 2절)

by 【고동엽】 2022. 5. 25.

비전을 막는 3대 대적 (학개 1장 2절)          

 

왜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감격적으로 성전 건축에 나섰다가 도중에 중단했는가? 먼저 외부적인 요인이 있다. 첫째, 이방인의 방해공작이 있었다. 둘째,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셋째, 육신적인 피곤함이 있었다. 적은 인원이 자발적으로 성전 건축을 하니까 공사 기간이 늦어지면서 점차 몸이 힘들어지니까 건축 대열에서 이탈하는 자가 늘어났다. 여러 외부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실 더 큰 어려움은 내적인 대적이었다. 어떤 대적인가?

 

 첫째, 핑계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들어 성전 건축을 중단했지만 사실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이 세상의 어떤 비전도 처음부터 끝까지 순조롭게 되는 경우는 없고 다 어려움이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말하지만 사실 돈이 있어야만 어떤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경이 나빠서...”라고 환경 탓을 돌리고 핑계를 돌리며 성전 건축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안타까운 모습은 일을 못하는 것에 대해 남 탓을 돌리고 환경 탓을 돌리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핑계를 대면서 좋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은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 말은 분명히 핑계다. 뉴스를 보고 유튜브를 볼 시간은 있으면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문제다. 핑계하는 무책임한 인생이 되지 말라.

 

 둘째, 태만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 건축의 의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성전 기초석이 놓인 곳을 지나갈 때마다 “언제 상부 건축을 하나? 언젠가는 꼭 성전을 건축해야지.” 하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이 있을 때 바로 나서야 하는데 “아직 때가 되지 않았어.”라고 하면서 자꾸 성전 건축을 미뤘다. 더 나아가서 자기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남에게도 이런 말로 의욕을 꺾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우리의 현재 형편상 너무 어렵다. 나중에 형편이 풀리면 하자.”

 

 하나님의 때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고 적절하게 숨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성급하면 부작용을 낳는다. 때가 되지 않았는데 무조건 시작부터 해서 낭패를 보고 더 낙심에 빠질 때가 많다. 그러나 때를 기다린다면서 현재 해야 할 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기다리기만 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때만 기다리고 현재 헌신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지만 열심히 헌신하면서 때를 기다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때와 기회를 허락해주실 것이다.

 

 셋째, 불신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핑계를 대고 영적 나태에 빠지고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해졌는가? 간단히 말하면 불신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진정으로 믿지 않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살아계시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을 무시했다. 가장 단순한 축복 원리가 있다. 하나님을 최대한 높이면 하나님도 나를 최대한 높여주시고 하나님을 무시하면 하나님도 나를 무시한다는 원리다.

 

 본문 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호칭하셨다. “이 백성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 아닌 ‘이 백성’이라고 호칭하신 것에는 무서운 경고가 담겨 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은 나를 “너는 내 자녀다. 내 백성이야.”라고 생각하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로 여겨주신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떠나고 주님을 불신하고, 영적으로 나태와 무관심에 빠진다면 비유적으로 나에 대한 호칭이 ‘내 자녀’에서 ‘이 자식’으로 바뀔 수도 있고 ‘내 친구’가 ‘이 친구’로 바뀔 수도 있다.

 

 비유적으로 심하게 표현하면 주님은 나에 대해 “이 친구, 정말 못쓰겠네.”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른다. 무서운 일이다. 늘 주님의 일에 최상의 관심을 두고 적극 참여하라. 하나님은 나를 통해 큰 비전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그 사명을 생각하며 십자가를 회피하는 핑계를 대거나 영적 나태함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최상의 관심을 기울이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 우선순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믿음으로 거절감을 극복하라 (호세아 12장 6줄)          

 

< 하나님의 3가지 호소 >

 

 본문 6절에서도 하나님은 호세아의 입술을 통해 간절히 호소하신다.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3가지 간절한 호소가 나온다.

 

1.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왜 삶에 고난과 기도제목이 생기는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뜻이다. 왜 목자들이 양 옆에 염소를 두는가? 양이 배부르고 안전한 상태에서 누워만 있으면 운동 부족으로 건강을 잃기 때문이다. 염소가 누워 있는 양을 본능적으로 찌르면 양이 도망치면서 건강이 유지된다. 그 찌르는 염소가 삶의 고난이다. 고난이 힘든 것이지만 나쁜 것은 아니다. 고난은 영적인 건강도 지켜주고 나중에 주어질 영광의 기초다. 고속 승진만 좋아하지 말라. 고속 승진은 고속 추락을 낳기도 한다. 하나씩 고난의 계단을 잘 극복하고 오르는 것이 낫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데도 고난이 생기면 수동적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여기라.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대로 헌신해서 능동적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라. 그러면 얼마든지 고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 어디서든지 자기를 드릴 줄 알아야 작품 인생이 되고 교회생활에서도 기쁨과 보람과 행복감이 커진다.

 

 권투할 때 가볍게 날리는 주먹은 별로 소용이 없다. 몸 전체의 체중이 실린 주먹이 점수와 승리를 가져다준다. 거룩한 비전과 교회를 위해 몸 전체를 실어 헌신하고 고난도 감수할 때 참된 복과 기쁨을 얻는다. 고난을 복과 성숙의 재료로 삼으라. 고난에 져서 낙심하지 말라. 성도에게는 고난과 사탄을 이기는 유전자가 이미 주어졌다. 내가 도망가지 않으면 고난과 사탄이 도망간다. 잘 극복된 고난은 나를 망하게 하지 않고 영광스럽게 한다.

 

 하나님이 신실한 성도에게도 마음이 높아지지 말라고 작은 시련은 주지만 감당 못할 큰 시련은 주시지 않는다. 큰 시련을 특별히 주실 때는 그 시련을 이길 수 있는 특별한 믿음까지 주신다. 중요한 것은 시련이 있느냐가 아니라 시련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고 더 감사하고 겸손해지는 것이다. 시련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서서 더욱 겸손하고 성숙한 성도가 되면 ‘너의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고 점차 최상의 복과 천국 상급이 예비된다.

 

2. 인애와 정의를 지키라

 

 ‘인애와 정의’는 하나님의 2대 속성인 ‘사랑과 공의’를 뜻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면서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공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사랑 없는 공의는 공의가 아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 사랑을 바탕으로 공의를 실천하고 공의를 바탕으로 사랑을 실천하라. 양떼를 사랑으로 당기기만 하면 염치가 없는 사람이 되고 공의로 밀어내기만 하면 은혜가 없는 사람이 된다. 사랑 대상을 지혜롭게 섬기려면 때와 시기와 상황을 잘 고려해서 사랑으로 끌어안기도 하고 공의로 훈련하기도 하라.

 

 또한 인애와 정의를 지키라는 말은 편견을 잘 극복하고 의와 공평을 지향하라는 말이다. 편견은 힘 있는 사람의 상징조작으로 생길 때가 많다. 힘 있는 사람이 부당하게 힘을 계속 가지려고 상징조작을 통해 힘없는 자에게 편견의 올무를 씌우면 일반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강자들 편에 서기 쉽다. 그러면 강자의 부당한 권력 유지가 쉬워지지만 그런 식의 권력 유지는 장기적으로는 사회 갈등만 심화시킨다. 다수가 승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지만 다수가 선이 되지 않을 때도 많다. 거짓과 조작 때문이다.

 

 1981년에 당시 제도를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뽑을 때 대의원 2973표 중 2971표가 찬성했다. 99.9%가 넘는 지지였다. 자유 투표로는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도 그런 지지를 못 받는다. 그만큼 힘 있는 자의 상징조작이 쉽다는 암시다. 그러나 그 조작의 효과는 일시적이다. 점차 각성한 사람이 많아지고 팩트가 알려지면 결국 조작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불의한 현실에 너무 낙심하지 말라. 인내와 정의를 지키는 한 사람이 힘이 지금은 약한 것 같아도 그 힘은 자라는 힘이란 사실을 잊지 말라.

 

 불의한 상징조작이 나중에 하나님과 역사로부터 심판받을 줄 알면서도 힘 있는 자가 상징조작을 하는 이유는 일시적인 힘의 유지에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조작으로 차별과 편견과 소외가 생기는 인간 사회에 누가 필요한가? 인애와 정의를 지키는 신실한 성도 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지금 “네가 그 한 사람이 되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에 응답해서 인애와 정의로 상처 입은 심령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면서 의와 공평을 힘써 지향하라.

 

3.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질투와 핍박이 더 있다. 세상은 유달리 성도를 싫어한다. 때로는 가족도 반대한다. 이단 교회에 빠질 것을 염려해 반대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바른 교회에서 바른 말씀을 듣는 것도 싫어한다. 자기 말을 더 듣고 자기를 더 바라보라는 뜻이다. 그렇게 자기만 바라보라고 하면 오히려 행복을 잃는다. 사람은 바라볼 대상이 아니다. 사람은 강한 존재지만 때로는 아주 약한 존재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당시 최고의 육상 스타였던 100미터 선수 우사인 볼트가 입국하자 한국 언론들이 그에게 ‘총알 탄 사나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당시 그의 100m 세계기록은 9.58초였다. 그 보도를 다른 동물들이 들으면 어이가 없어서 웃을 것이다. 100m를 치타는 3.8초, 영양은 4.0초, 누와 가젤은 5.5초, 말은 6.0초, 경주견은 6.3초, 사자는 7.0초, 호랑이는 7.5초로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너무 높이지 말라. 사람은 가능성도 많지만 약점도 많기에 사람을 바라보면 고난 가능성도 커진다. 세상은 사람을 잘못된 곳으로 이끌 때도 많다. 그 위험을 누가 막아주는가? 교회와 말씀이 막아준다. 사람과 세상을 의지하지 말라. 세상의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인 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하나님만 신실하게 바라보면 세상과 사탄이 영혼을 삼키지 못한다.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남이 나만 바라보지 않는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더 나아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길을 그치지 말라.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표식이 아니라 오히려 변함없이 사랑하는 표식이다. 믿음으로 고난을 잘 통과하면 고난 뒤에는 축복이 있다. 지금의 힘든 현실과 환경으로 인해 낙심하지 말라. 힘들 때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더욱 놀라운 비전의 세계로 나를 이끄실 것이다. 살다 보면 나의 자존심을 흔드는 상황을 수시로 맞이하지만 그때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놀라운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되고 어디선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신비한 축복이 예비되고 있음을 믿으라.

 

< 믿음으로 거절감을 극복하라 >

 

 어느 날 한 교회가 출장 뷔페 업체에 다음 주일 저녁 행사를 위해 1만원짜리 100명분 예약을 했다. 그런데 몇 분 후 그 업체에 다른 교회에서 같은 날 저녁에 2만원짜리 100인분 예약을 할 수 있느냐고 했다. 직원이 모자라 동시에 뷔페를 진행시킬 수 없으면 뷔페 주인은 선 예약을 지켜야 하는데 돈 욕심 때문에 먼저 교회와의 약속을 취소하려고 전화를 걸어 거짓말을 했다. “손님, 죄송합니다. 그날에 먼저 예약이 된 것을 깜짝 잊었네요.”

 

 가끔 특혜의식에 젖은 사람의 횡포로 나의 선약이 거절당하는 일을 당할 수도 있다. 물론 진실한 강자는 돈과 힘의 위력으로 남이 먼저 한 약속을 가로채서 깨려고 하지 않고 앞선 사람의 약속을 존중해준다. 그러나 천박한 강자는 돈과 힘의 위력으로 누군가의 약속을 깨고 자신이 그 약속을 가로채는 것에 헛된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살다 보면 천박한 강자에게 약속이 탈취당해 거절감을 느끼고 자신이 경시되는 느낌을 받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그때 믿음으로 그 거절되는 감정과 섭섭한 감정을 잘 다스리라.

 

 어떤 때는 정말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만 대개는 약속 대상을 경시하거나 욕심 때문에 약속을 깬다. 사실상 예약 관리자가 선약을 모르고 예약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상대의 경시나 욕심 때문에 약속을 깨는데 그때는 대개 이런 핑계를 댄다. “몸이 아파서 못 나가겠습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른 약속이 있는 것을 깜빡 잊었네요.” 사실일 수도 있지만 일단 약속 취소 대상이 되면 거절감이 들고 기분이 나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작은 약속도 힘써 지켜서 신용을 쌓아야 한다.

 

 만약 약속이 취소당할 때 그 거절감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다른 큰 고난 대신 거절이란 작은 고난이 있었던 것으로 여기고 감사하며 넘기라. 그러면 그 거절 상황이 신비하게 변화되어 다른 곳에서 놀라운 영접과 축복이 예비될 것이다. 작은 고난의 시험을 잘 치르면 큰 고난의 시험에 면제됨을 믿고 작고 사소한 거절과 상처의 고난들을 “허허!” 하며 기쁘게 웃어넘기라. 하나님은 나의 사소한 믿음의 행동 하나까지 가볍게 웃어넘기지 않고 큰 축복의 원인과 재료로 삼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큰 축복은 없다.

 

 세상의 금맥을 찾아 너무 헤매지 말라. 하나님을 굳게 믿는 것이 최고 금맥이다. 세상 것을 잃었다고 죽겠다고 하지 말라. 그런 식으로 죽겠다고 하면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작은 일로 너무 흥분하거나 억울해하거나 죽고 싶다고 하지 말라. 그러면 누구나 열 번도 더 죽어야 했을 것이다. 늘 희망을 품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극복하라. 조금만 더 믿음으로 견디면 해결의 길이 보이고 생긴다. 지금 다짐하라. “힘들 때 조금만 더 견디자.” 그처럼 믿음으로 잘 인내하고 감사해서 위대한 반전의 역사를 이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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