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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구약성경(구약시대)의 마지막 역사를 다루는 아주 중요한 성경책입니다. 열왕기하와 역대하의 마지막 부분이 다윗의 왕조였던 남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으로 망하고(586 BC), 남 유다의 왕과 왕족들, 귀족들, 제사장들과 유능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열왕기하에는 605년, 597년, 586년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고 나옵니다. 605년 1차 바벨론 포로에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597년 2차 바벨론 포로에는 에스겔과 여호야긴 왕이 끌려갔고, 586년에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멸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3차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4차 바벨론 포로이야기는 예레미야 52장에 나오는데, 그때가 582년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 7년에 유다인이 3,023명이요, 느부갓네살의 제 18년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832명이요, 느부갓네살의 제 23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745명이니 그 총수가 4,600명이더라”
(렘 52:28-30)
바벨론 4차 포로 이야기는 예레미야 52장에만 나온다. 유다의 포로귀환과 멸망 이야기가 나오는 열왕기하에서는 유대인들이 세 번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고 나옵니다.
70년의 바벨론 포로기간이 끝나고, 유다 백성들은 세 차례에 걸쳐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1차 포로귀환은 538년,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2차 포로귀환은 458년,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3차 포로귀환은 444년, 총독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간단하게 말씀 드리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조국으로 돌아온 유대 백성들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건축(rebuilding)하는 이야기입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우리 성경에는 두 권의 책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은 한 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에스라가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원래 한 권으로 기록했는데, 라틴어로 번역하면서부터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두 권으로 책으로 분리했다고 합니다.
에스라서 1:1,2절 말씀은 역대하 마지막 두 구절과 똑같은 내용입니다. 포로로 끌려간 지 70년이 되던 해,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왕 고레스가 조서를 내려서 포로로 잡혀온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왕위에 오른 첫 해에,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고레스는 온 나라에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조서로 써서 돌렸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땅위의 모든 나라를 주셔서 다스리게 하시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그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이 나라 사람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모두 올라가게 하여라””(역대하 36:22,23; 에스라 1:1,2)
그런데 에스라 1:1절에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고레스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레스가 그냥 페르시아 왕으로 등장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등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무슨 약속을 하셨을까요? 예레미야 29:1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70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0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렘 25:11,12 참고)
고레스에 대한 이야기는 고레스가 역상 등장하기 177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셨습니다. 이사야 44:28-45:7절입니다.
“28)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1)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2)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3)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4)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 곧 너를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5)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6)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7)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이사야 44:28-45:7)
에스라서에는 에스라의 이야기만 나오지 않습니다. 에스라서 1-6장까지는 에스라가 안 나옵니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536 B.C)하는데, 사마리아사람들이 방해를 해서 520년까지 15년 이상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학개와 스가랴선지자를 보내셔서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백성들을 격려해서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여 B.C 516년에 완성했습니다.
에스라가 등장하는 것은 에스라서 7장부터입니다. 에스라는 아론의 후손이기 때문에, 제사장입니다. 또한 에스라는 학사(성경교사)입니다. 2차 포로귀환 때, 학사 에스라가 지도자로 포로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가 B.C 458년이었으니까 1차 포로귀환 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고 나서 꽤 많은 기간이 지났지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지 80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은 지, 58년 되던 해였습니다.
에스라서 1-6장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는 내용이고, 에스라가 등장하는 에스라서 7-10장은 유다 백성들의 영적인 재건(rebuilding)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세워지고,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보니까 백성들의 삶은 영적으로 완전히 다 무너져 있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는 드렸지만, 그것은 형식에 불과했고, 그들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삶이 아니었습니다.(로마서 12:1,2 참고)
그 모습을 본, 에스라는 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으며 주저 앉아 울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에스라서 9장은 에스라의 기도입니다. 유다 백성들을 위한 회개기도였습니다. 그 기도에 백성들이 동참했습니다.
남자, 여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많은 무리가 에스라 주변에 모여서 큰 소리로 슬피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이방여인들과 결혼한 지도자들은 자신의 잘못된 삶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결심하고 서약했는데, 에스라서 10장은 이방여인들과 결혼했다가 회개하고 서약한 지도자들의 명단들입니다.
에스라서는 Rebuilding(재건/ 다시 지음/ 다시 쌓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서는 단순히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건물을 다시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무의 뿌리와 같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백성들의 삶(열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영적인 부흥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스라서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한 스룹바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사람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처럼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린 유다 백성들을 다시 살리기 위해(백성들의 영적인 부흥을 위해) 헌신한 제사장이자, 학사인 에스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에스라가 그냥 혜성같이 등장한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에스라가 느헤미야서 8장에서 백성들 앞에 서서 반 나절 동안 하나님의 율법을 읽어주기 전에 무엇을 했을까요? 에스라서 7장에 보면, 에스라는 늘 여호와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에 있을 때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도 말씀대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458년부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444년 사이 14년 동안 에스라는 말씀을 연구했습니다. 그런 영적 내공이 쌓이고 쌓였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무너진 성벽과 성문을 다시 쌓고 난 후에 수문 앞 광장에모인 백성들 앞에서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줄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바벨론, 예루살렘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하나님의 율법을 깊이 연구하고 준행하면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바로 에스라와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에스라와 같이 열심히 말씀을 연구하고, 행하면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에스라이야기 1부입니다. 에스라이야기 2부는 느헤미야서 8장에 나옵니다.
느헤미야서도 느헤미야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느헤미야 8장부터 에스라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스라서는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는 이야기(스 1-6장)와 에스라를 중심으로 유다 백성의 영적인 삶을 재건하는 내용(스 7-10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는 총독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성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이야기(느1-7장)와 에스라를 중심으로 영적인 삶의 벽들이 무너져있던 유다 백성들의 영적 부흥(8-13장)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느헤미야서이기 때문에 마지막 장인 13장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 이야기도 나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 때, 왕에게 술을 따르는 일을 한 신하였습니다. 왕을 독살하려는 시도가 빈번했기 때문에, 왕 곁에는 항상 왕이 마실 술을 미리 맛보는 신하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느헤미야였습니다. 왕의 생명을 지킬 책임이 느헤미야에게 있었습니다. 왕과 느헤미야의 관계가 아주 각별했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 느헤미야의 형제 하나니가 예루살렘에서 와서는 포로로 끌려오지 않고, 예루살렘 성에 남아있던 유다 사람들이 고생이 아주 심하고, 그들의 자기 나라, 자기 고향에서 업신여김을 받고 있다는 소식과 더 안타깝게는 예루살렘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이 다 불에 탔다는 소식을 느헤미야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느헤미야는 주저앉아 울면서 며칠 동안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 혼자 온 게 아닙니다. 느헤미야를 필두로 바벨론에 포로로 있던 유다백성들이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가 444년이었습니다. 3차 포로귀환이 이때 이루어졌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12년 동안 총독으로 일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백성들의 짐을 덜어주고자 12년 동안 월급을 받지 않았습니다. 흉년과 과도한 세금으로 고통 받던 백성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고리대금으로 가난한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는 귀족들과 감독들을 혼내줬습니다. 매일 자기 음식을 150명 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불에 탄 성문들을 재건하는데, 월급 한푼 받지 않고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벽재건 공사를 52일만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데, 방해하는 놈들이 있었습니다. 호론사람 산발랏, 종 노릇하던 암몬사람 도비야와 아랍사람 게셈이 성벽을 다시 쌓는데 방해하던 나쁜 놈들입니다. 그 놈들이 너무 심하게 성벽 쌓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원수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쳐들어와서 우리를 죽여서 일을 못하게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느 4:11).
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느헤미야는 젊은이들을 무장하게 하고, 지도자들과 함께 성벽을 재건하는 백성들을 지켜주었습니다. 짐을 나르는 이들은 한 손으로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았습니다. 성벽을 쌓는 이들은 저마다 허리에 칼을 차고 일을 했습니다. 이런 긴장 상황에서 성벽을 다시 쌓을 수 있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경비병들을 잘 때도 옷을 벗지 않고 성벽을 재건하는 사람들을 지켜주었습니다. 물을 길러가는 이들도, 무기를 들고 다녔습니다. 느헤미야와 지도자들, 모든 백성들은 성벽 쌓는 일에만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벽은 52일 만에 완공되었습니다.(느 6:15)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은 후에,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다스릴 지도자들을 세운 이야기와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1차 바벨론 포로귀환자들의 명단이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라 2장에 나온 1차 바벨론 포로귀환 명단과 거의 비슷합니다.
에스라 2장에 나오는 1차 바벨론 포로귀환자들의 명단은 바벨론을 떠나기 이전의 것이고, 느헤미야 7장에 나오는 1차 바벨론 포로귀환자들의 명단은 실제로 예루살렘에 도착한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느헤미야 총독이 예루살렘을 다스릴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수를 49,942명으로 집계했습니다. 이것은 에스라가 기록하고 있는 49,897명(스 2:64,65)과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서 8장에 모든 백성들이 수문(예루살렘 여러 성문 가운데 하나/ the Water Gate) 앞 광장에 모였을 때, 새벽부터 낮 12시까지 서서 율법을 읽어주는 에스라 이야기가 나옵니다. 백성들은 에스라가 읽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울면서 회개하며,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에스라 곁에는 에스라가 읽어주는 하나님의 율법을 설명해주는 레위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수고로 인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알고 기쁨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느 8:7,8,12) 에스라는 제사장 출신이었기 때문에 영적 부흥을 위해 무엇보다 먼저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 제사장을 돕는 일도 중요한 임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각성읍을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지파에게 기업을 주시지 않고 48개 성읍으로 흩으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유다 왕 여로사밧은 열심으로 여호와를 섬겼는데, 그가 왕이 된 지 삼 년째 되던 해, 자기 신하들을 모든 마을에 보내서 백성들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그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에게 각 성읍을 돌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그가 유다의 왕이었을 때,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가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할 만큼 강력했습니다. 당시 유다 군사들의 숫자가 100만을 넘었다고 합니다. 유다의 엄청난 군사력 때문에 유다 주변 모든 나라가 여호사밧을 두려워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들로 여호사밧을 두려워하여 싸우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대하 17:10).
블레셋 사람들 중에서는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은으로 조공을 바쳤습니다. 아라비아사람들도 짐승 떼 곧 숫양 7,700마리와 숫염소 7,700마리를 드렸습니다. 모압, 암몬, 에돔의 연합군이 공격해왔을 때, 여호사밧의 군대 숫자가 많음에 놀랐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사밧은 자신의 군사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하게 했습니다(대하 20:3). 그 결과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했습니다(대하 20:4).
물론 전쟁에서 크게 승리했습니다. 전쟁에 승리하고 전리품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주워 담는 데만 3일이 걸렸습니다. 엄청난 승리를 거둔 거지요. 여호사밧이 이런 승리를 얻은 비결이 뭘까요? 여호사밧 왕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가르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그렇게도 열심인데, 어찌 그의 나라가 강력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호사밧이 한 일 중에서 가장 귀한 일은 그의 신하들과 레위 사람들(제사장)에게 온 유다 성읍에 두루 다니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가르친 것입니다.
역대하 17:7-9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여호사밧 왕)가 왕위에 있은 지 3년에, 그의 방백들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 또 그들과 함께 레위 사람 스마야와 느다냐와 스바댜와 아사헬과 스미라못과 여호나단과 아도니야와 도비야와 도바도니야 등 레위 사람들을 보내고 또 저희와
함께 제사장 엘리사마와 여호람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대하 17:7-9)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즉각 회개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 모여 금식하며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의 회개 기도의 내용과 하나님 앞에 다시 언약을 체결하는 내용이 느헤미야서 9장에 나옵니다.
느헤미야 9장에 나오는 회개기도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신 놀라운 구원이야기를 하면서 반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반역과 불순종입니다. 세상에 둘도 없을 만큼 좋으신 하나님께 불순종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회개한 후에,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서명한 사람들의 이름들이 느헤미야서 10장에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에 나오는 족보나 이름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것도 남의 나라 역사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라 더 그럴 겁니다. 하지만 느헤미야 10장에 나오는 이름들이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서 11장은 예루살렘에 거주한 지도자들의 명단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성은 황폐한 성읍이었습니다. BC 605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대부분 엘리트 그룹이었고,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은 농사나 지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완전히 무너졌고, 예루살렘성전도 원수들의 손에 박살이 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도시에 누가 살고 싶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느헤미야가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BC 444년, 예루살렘성은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는 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서 돌아온 지도들이 솔선수범해서 황폐한 성 예루렘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해서 황폐한 땅으로 이사 가겠다고 결단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자이기 때문에 가서 살고 싶지 않은 곳에 억지로라도 가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가서 살고 싶지 않은 곳에 안 가도 됩니다. 느헤미야는 일반 백성들 중에서 10분의 1을 제비 뽑아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살게 했습니다. 제비를 뽑았지만 그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자기 성읍 자기 기업에 거주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한 그 지방의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유다 지파 – 468명(4-6절)
2)베냐민 지파 – 928명(7-9절)
3)제사장 – 1,192명(10-14절)
4)레위인 – 284명(15-18절)
5)문지기 – 172명(19절)
느헤미야서 12장에는 1차 포로귀환 때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에스라가 율법학자이면서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레위인과 제사장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과 레위사람들 명단이 나오고, 느헤미야가 성벽을 봉헌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별히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을 할 때,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했습니다.
그때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에서 모여들었습니다.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예루살렘 사방에 마을들을 이룰 정도였습니다. 성벽 봉헌식을 할 때, 감사 찬송하는 자들의 큰 무리를 둘로 나누어 한 무리는 에스라가 앞장을 서고, 다른 한 무리는 느헤미야가 앞장을 서서 두 무리를 성전에서 만나도록 했습니다.
찬양대가 둘로 나누어 성벽 위로 걸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기 전에 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먼저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정결함과 거룩함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는 비결입니다.
성벽 봉헌식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심히 즐거워한 이유는 찬양대가 노래를 잘 해서도 아니고, 성벽 봉헌식이 성대하게 잘 진행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해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느헤미야 12장 마지막 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건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새로 짓는다고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이 임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도록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도 재건해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삶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룹바벨 때와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되 그들이 성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성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섬김에 대한 교훈입니다. 섬김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만 말씀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섬김, 돌봐야 할 사람에 대한 책임감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책임지고 섬겨야 합니다. 그게 바로 십일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십일조로 레위인들이 살아가고, 레위인들의 십일조로 아론의 자손(대제사장)이 살아갑니다.
느헤미야 마지막 13장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이야기입니다. 12년 동안 예루살렘 총독으로 섬긴 느헤미야가 잠시 페르시아를 다녀온 사이 벌어진 일을 설명합니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다녀와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방 중에서 성전 뜰 안에 있는 제사장들과 제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방을 어떤 놈이 개인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헤미야가 알게 되었습니다. 정치권과 결탁한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암몬 사람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만든 악한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암몬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못 들어옵니다(신 23:3,4). 그런데 감히 암몬 사람 도비야에게 성전에 있는 방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라고 내주었습니다. 도비야가 혼인을 통해 당시 예루살렘의 유력한 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느헤미야는 그 방에 있던 암몬사람 도비야의 살림살이를 바깥으로 다 내던져버렸습니다, 도비야가 개인용도로 사용하던 성전의 방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그 방에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들여놓았습니다. 성전 창고에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를 모으로, 레위인들이 제자리에서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종교개혁을 감행 한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안식일인데도 장사꾼들을 예루살렘 성으로 들여 물건을 사고 파는 일을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레위 사람들을 거룩하게 준비시키고 성문마다 지키게 함으로 백성들이 안식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유대인 남자들이 이방여인들과 결혼함으로 생긴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혼서약을 깨뜨리고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라 10장의 죄를 반복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부흥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열심히 일만 한 게 아니라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서 13장 마지막 부분에도 느헤미야의 기도가 나옵니다. 정치권과 결탁한 제사장들의 영적 회복과 이방여인과 결혼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결한 삶을 위해 끝까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느헤미야를 만나보세요!
느헤미야서는 그저 "무너진 예루살렘성의 성벽을 다시 쌓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느헤미야서는 무너진 성벽을 52일 만에 다시 쌓았다는 게 이야기의 결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서를 통해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의 삶에 무너진 성벽이 무엇이니? 너의 삶 가운데, 불에 타 없어진 성문은 무엇이니?"
나의 삶, 나의 인생을 에워싸는(보호하는) 성벽들과 문들 중에서 지금 무너진 벽과 성문은 무엇입니까? 무너진 성벽과 성문들은 쉽게 무너져버리는 나의 연약한 성품, 나의 약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신의 연약함, 약점, 무너진 성품들을 살펴보고 다시 쌓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서를 읽으면서 제가 가장 도전을 받은 부분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을 때,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한 손으로 그 일을 했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고, 불에 타버린 성문을 다시 세우는데,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모습에서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왜 한 손에 무기를 들고 한 손으로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았을까요? 두 손으로 일하는 것도 힘들텐데, 어떻게 한 손으로 성벽을 쌓았을까요? 원수들이 성벽을 다시 쌓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에, 원수들과 싸우기 위해서 그랬을까요?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벽과 성문이 무너지면 그 누구도 안전하게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든든한 성벽과 성문이 나의 가족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나의 가족을 위해서도 무너진 나의 성품의 벽들(나의 연약한 부분들/ 사탄에게 내준 영역들)과 불에 타버린 인격의 문들(힘들면 쉽게 드러나는 나의 약점들)을 다시 쌓아야 합니다.
내가 무너지면 나의 아내도, 남편도, 나의 자녀들도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한 손에 무기(하나님말씀)를 드십시다. 그리고 한 손으로 최선을 다해 무너진 성벽과 성문을 다시 쌓읍시다.
느헤미야서.............. 정말 제겐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출처 : http://gyusikjung.blogspot.com/2016/08/db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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