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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전도여행 [제 3-2순례] 사도 바울의 고향 '타르수스'(성경 상의 다소)

by 【고동엽】 2022.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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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일행은 사도바울의 고향, 다소(타르수스)를 순례하기로 했다. 흥분된다. 그리고 참 신기했다.
성경으로만 만났던, 저 위대한 믿음의 영웅, 복음전도자 바울의 고향을 가볼 수 있다니 말이다!..




다르수스로 가는 길, 우리가 가는 토로스산맥을 넘어가는 길목은 아침부터 비가 뿌렸다.






다소로 지나가는 길에 늘어선 현대적인 상점들이, 우리 나라의 지방 소도시같은 정겨움을 제공해 주었다.



타르수스는 오늘날 터키의 중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지중해로부터 16km 내륙으로 들어와 있으며, 고대 북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하나인 헤티트문명의 영향 하에 건설된 도시이다.

 

(Tip) 헤티드문명 이란? 성경에 나오는 헷족속(힛타이트)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가 죽자, 헤브론 지역의 막벨라에 있는 헷족속 헤브론이 소유하고 있던 굴을 하나 샀다. 거기에 아내 사라를 묻어 장사지내고, 후에는 자기도 아들, 이삭과 후손들이 쓸 무덤으로 사용하였다. 이 밭을 아브라함에게 팔았던 사람들이 바로 헷족속이다. 그런데 고고학적으로 이 힛타이트 족속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지금부터 불과 100여 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전까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힛타이트 족속이 그저 하나의 전설로 치부하여 왔었고, 이 때문에 구약성경을 허무맹랑한 책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100여 년 전부터 헷족속에 대한 고고학적인 증거들이 나타나고, 그들이 고대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찬란한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힛타이트의 수도는 ‘핫투사(Hattusha)’이며, 현재의 터키지역은 물론, 메소포타미아(비옥한 초승달) 전체를 지배하고, 심지어는 이집트까지도 점령하여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었다.

 

타르수스에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3000~4000년 전(前)이다. 도시는 천연적 항구 도시로서 지중해의 물물 교환과 교통 왕래를 통하여 빨리 발전하였으며, 기원전 7세기를 전후로 고대 그리스인이 소아시아 지역에 활발히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할 무렵, 이들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 건설됐고, 바울 당시 로마 비잔틴제국 시대에는 길리기아 지방의 핵심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다나(adana)>에 밀린 작은 도시가 되었고, 현재 거주인구는 약 2만 명에 불과한 소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로마제국 시대 때의 타르수스는 길리기아 지방의 행정 수도 역할도 감당하였으며, 도시의 문화적 수준이 심지어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 버금갔다. 이 도시는 스토아학파의 중심 도시 중 하나로, 디오게네스의 후계자인 아르케데무스(Archedemus), 기원전 3세기 초 스토아학파의 수장이던 제논(이 제논은 제논의 역설의 그 제논이 아님), 기원전 2세기 경 스토아 철학의 수장이전 안티파터(Antipater) 등을 배출하였다.


타르수스는 오늘날 터키의 중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지중해로부터 16km 내륙으로 들어와 있으며, 고대 북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하나인 헤티트문명의 영향 하에 건설된 도시이다.


(Tip) 헤티드문명 이란? 성경에 나오는 헷족속(힛타이트)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가 죽자, 헤브론 지역의 막벨라에 있는 헷족속 헤브론이 소유하고 있던 굴을 하나 샀다. 거기에 아내 사라를 묻어 장사지내고, 후에는 자기도 아들, 이삭과 후손들이 쓸 무덤으로 사용하였다. 이 밭을 아브라함에게 팔았던 사람들이 바로 헷족속이다. 그런데 고고학적으로 이 힛타이트 족속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지금부터 불과 100여 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전까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힛타이트 족속이 그저 하나의 전설로 치부하여 왔었고, 이 때문에 구약성경을 허무맹랑한 책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100여 년 전부터 헷족속에 대한 고고학적인 증거들이 나타나고, 그들이 고대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찬란한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힛타이트의 수도는 ‘핫투사(Hattusha)’이며, 현재의 터키지역은 물론, 메소포타미아(비옥한 초승달) 전체를 지배하고, 심지어는 이집트까지도 점령하여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었다.



타르수스에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3000~4000년 전(前)이다. 도시는 천연적 항구 도시로서 지중해의 물물 교환과 교통 왕래를 통하여 빨리 발전하였으며, 기원전 7세기를 전후로 고대 그리스인이 소아시아 지역에 활발히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할 무렵, 이들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 건설됐고, 바울 당시 로마 비잔틴제국 시대에는 길리기아 지방의 핵심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다나(adana)>에 밀린 작은 도시가 되었고, 현재 거주인구는 약 2만 명에 불과한 소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로마제국 시대 때의 타르수스는 길리기아 지방의 행정 수도 역할도 감당하였으며, 도시의 문화적 수준이 심지어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 버금갔다. 이 도시는 스토아학파의 중심 도시 중 하나로, 디오게네스의 후계자인 아르케데무스(Archedemus), 기원전 3세기 초 스토아학파의 수장이던 제논(이 제논은 제논의 역설의 그 제논이 아님), 기원전 2세기 경 스토아 철학의 수장이전 안티파터(Antipater) 등을 배출하였다.




다소 시내 도로변에 있는 '클레오파트라 문' 유적, 이 도시가 매우 깊은 역사를 가진 도시임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도 이곳에 다녀갔다고 한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배로 지중해를 건너 키드누스 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유혹하여 만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역사가 깊게 배어 있는 다소다.






현대적인 주거공간인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지금의 타르수스의 한적한 거리모습이다.




바울과 다소
사도 바울의 고향인 다소의 현재명은 타르수스(Tarsus, 그리스어:Ταρσός)다. 소아시아 지방의 도시로, 로마시대에 이 지방에서 주로 생산하던 것은 염소 털로 짠 천막이었는데, ‘길리기아’라는 지역 명칭은 ‘길리기움’에서 온 것으로, ‘길리기움’이란 ‘염소 털로 짠 천막’을 말한다. 로마 군대의 막사용 천막을 주로 공급하는 지역이었다는 거다. 바울이 장막을 짓는 자비량 선교사로 활동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봐서, 바울도 길리기아 지방 다소에서의 직업적 환경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또한, 바울 자신이
(행21:39)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행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이처럼, 본인이 '다소 출신'이라는 것을 자주 말하는 것으로 볼 때, 바울은 저신이 이 지역 출신이었던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래서인지, 사도 바울의 생가(生家)에 들어서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 바울! 2천 년 전의 바울의 생가가 발굴된 것은 최근인데 이것은 확실하다고 한다. 또 그 집터 옆에 우물도 있었는데, 어린 사울(Saul 큰자)이 율법을 공부하다가, 청소년기의 사울이 세수한 우물이기도 했을 거고, 더운 날엔 등목도 했을 것을 생각하니, 바울과 사도행전이 생생하게 살아옴을 느꼈다. 물론 지금 이곳은 터키 이슬람인들이 지배하는 곳이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 물론 여전히 부족했지만 - 비교적 잘 보존하는 듯했다. 한쪽으로는 공원도 조성했고, 바울 생가를 설명하는 안내판, 설명판, 곳곳마다 장소를 표시한 이름판 등도 꼼꼼히 붙여 놨다.






바울 생가에 드디어 도착했다. 진짜 바울의 생가일까? 했더니, 이곳의 진정성은 믿을만한 하다고 현지 터키인들이 강조한다.






'바울의 우물(The Paul's Well)' ; 바울의 생가로 믿을만 하다고 하니, 이 우물에서 바울이 목을 축이고, 세수도 했을 거다.






바울생가를 매니지먼트하고 있는 터키 현지 관리인과 간단한 영어로 주고받다가 찰칵!^^






기독교를 짓밟고 구축된 이슬람의 땅 터키에서 관광자원으로 개발한 기독교 문화유적(?)이라....
사도바울의 우물(st. Paul's Well)이라고 애써 강조해 놓은 표지판에서 매우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유리판으로 덮어놓은 바울생가의 구조. 유리판 밑으로 보이는 저곳에서 바울이 살았고, 자라났단다. 님의 숨결이 한껏 느껴졌다.






다소에 있는 '처치모스크(church mosk)'




'처치모스크(church mosk)'
타르수스에는 기념적인 기독교 교회가 하나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슬람에 의해서 모스크로 사용된단다. 그 모스크의 이름이 굴욕적이게도 교회를 짓밟고 섰다는 뜻의 ‘처치모스크’란다. 사도 바울이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떤 마음일까? '처치모스크(church mosk)'는 말 그대로, 과거에 '기독교회'로 사용되던 곳을 개조해서 '이슬람 사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눈물 흘리는 '처치모스크(church mosk)'는 터키가 기독교를 짓밟고 세워진 이슬람 국가임을 대표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다소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대형마트 까르푸가 지금이 21세기 시점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우리 순례 일행은, 그렇게 타르수소를 아쉽게 뒤로 하고 클레오파트라 문이라고 불리는 남문을 돌아서 갑파도기아로 향했다. 가이드가 타르수스에서 갑파도기아까지는 약 3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타르수스에서 갑파도기아로 올라 갈 때에는 터키 남부에서 터키 중앙부로 올라가는 여행 코스다. 그러다 보니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타우루스 산맥(이 산맥이 히말라야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넘어가야 하는데 이게 그리 만만치 않다. 게다가 오후쯤부터 눈이 오기 시작했고, 워낙 산세가 심한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눈이 많이 내렸고 영하의 추운 날씨가 되었다. 눈길에 길가 옆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친 트럭도 볼 수 있었다.



▪ 그러니 놀랍지 않은가!
사도바울은 2천 년 전에, 예수 복음 하나 때문에 이 험산준령을 걸어서 넘어 다니곤 했다는 것이다. 이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버가~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비시디아의 안디옥을 넘나들었던 것이다. (우리보고 하라면 못한다.) 숲이 울창하다 못해 어둡고, 산세는 험하고, 길은 없고, 길이 있다 하여도 가파르고, 돌과 바위의 힘든 길.. 이 험한 길을 예수 복음의 열정 하나 가지고 넘어 다니셨던 것이다. 강도의 위협과 강물의 위험과...



고린도후서 11;22~28 (바울의 참된 자랑)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구브로 바보),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루스드라),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당시에는 여기 갈라디아 사람과 비시디아 지역의 사람들이 강도(산적)짓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위경의 기록을 보면, 도적 떼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숫자가 어느 정도 차면 산맥을 넘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복음의 열정 하나 때문이었다. 베드로도, 바울도, 또 바나바도 회심한 바울을 데리러 다소(타르수스)에 까지 갈 때 이 산을 넘어 다니곤 했다. (지금은 터널이 뚫려 있다.) 대관령보다 높은 해발 1000미터다.


그렇게 우리를 태운 차는, 눈길 6시간, 마침내 갑파도기아의 Nevsehir시내에 있는 ALTINOZ 호텔(호텔이라기보다는 유스호스텔에 가까웠다.)에 우리를 풀어놨다.

출처 : https://cafe.daum.net/ccm/6Km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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