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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조

by 【고동엽】 2022. 4. 21.

성경과 신조

 

1. 신약성경(新約正經)의 형성1) 배경

   신약성경의 형성 배경사는 신약개론에서 취급하는 학문이다. 신약 개론에서는 총론으로 정경론, 사본론, 배경론, 고등비평등을 다루고 각론에서는 신약 성경의 각권을 개론으로 다루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신약성경의 형성배경을 교회사적인 측면에서 다루고자한다.

 

1) 정경론(正經論)

 

  신약성경을 연구하다보면 그 제목이 정경론, 또는 영감론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같은 말이다. 정경론이란 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 성경 27권이 교회의 절대규범이 된다고 하는 것을 강조할 때 쓰이는 말이다.

정경이란 헬라어 카논(kavan)이란 단어로 규범(norm) 혹은 표준(standard)을 가르키며 교회는 이 단어를 성서와 관련하여 규범이라는 뜻을 나타낼 때 “정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성경을 정경이라고 부를때에는 완성된 성경 전체를 삶의 유일하고 긍극적인 규범으로 받아 들임의 고백이라 할수 있다.2) 그리고 헬라어의 정경(kavav) 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인물은 아다나시우스(AD352년경)이다. 

  정경론이라고 많이 쓰게된 원인은 초대교회 당시 흩어져 있는 문서들이 각 교회들에게 회람될 때 어떤 성문서가 교회의 규범이 될 수 있는가 교회마다 의견들이 분분하였다. 왜냐하면 전해지는 성문서들이 교회의 규범으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성문서들이 부분적으로 읽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 인쇄술이 발되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교회들이 전체의 문서들을 갖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이단자들은 제자들의 성문서 외에 다른 문서들 즉 가경과 외경들이 정경으로 함께 읽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내의 어떠한 신앙의 규범이 되는것을 정해야만 하는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롭게 편집된 신약성경 27권이 그 어떠한 성문서보다 교회의 규범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쓰여지게 된 용어이며 정경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교회의 규범이 될 수 있는 성경의 정경성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어떠한 관계가 있느냐에 따라 정경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좀더 구체적으로 교리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선포는 그의 화해사역에 초점을 맞춤으로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고 하는 배타적인 공식으로 표현할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선행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그 규범에 본질을 두는것이다.

  따라서 영감론이란 성경이 사람에 의하여 기록되어진 책이지만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저자들을 필자로 사용하실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기록되었다는 “신적 권위”를 강조할 때 쓰는 용어로서 이를 영감론이라고 한다.

신약의 정경론이란 구약성경에 상응하는 규범이 되고 새로 정리된 신약의 성경 27권은 특수한 책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위있는 말씀으로서 신약성경의 본질을 탐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가 이 규범적 단위를 승인하고 한계를 설정하게 된 과정을 연구하는 신약의 한 학문의 분야이다.3)

 

2) 성경의 형성배경

 

신약의 정경은 2세기 초부터 몇세기에 걸처 점진적으로 형성되었고 정경의 공식인준은 교회의 실제적 필요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사도들이 떠난뒤에 하나님의 말씀은 입에 입을 통하여 많은 구전(口傳)들이 사도들의 이름으로 떠돌아 다녔는데 개중에는 이단들에 의하여 다른 소리들이 나오게 되었다.

왜냐하면 예배때마다 읽혀지는 성경이 완전하게 편집되어진 것이 없고 회람용으로만 부분적으로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앙 규범이 되는 정경의 기준이 없고 때로는 가경(假經)이나 위경들도 함께 소개되고 있었기 때문에 초대교회의 영계가 흐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시대적 상황이다. 당시 초대교회는 외부의 핍밖으로 인하여 성문서들이 하나 둘씩 불태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교회들은 온전한 성문서들를 가지지 못하고 부분적인 성문서들만을 겨우 간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교회는 흩어져 있는 성문서들을 수집하여 전체를 소유해야만 한다는 간절한 열망들이 신약성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촉구하게 되었다.

  

1) 말시온정경 

 

  최초로 편집된 성경은 말시온 정경인데 말시온 정경은 AD. 140년경 그노시스파(Gnosis)의 말시온(Marcion)에 의하여 로마에서 만들어 진것이다. 그리고 말시온 정경이란 그의 이름따라 붙여진이름이다.

최초의 성경이 만들어지게된 형성배경은 이때부터 시작이 되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말시온 정경은 당시 교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가져오게 되었다. 말시온은  바울만이 유일한 사도적 권위를 소유한자라고하여 성경을 바울주의적인 입장에서 신약성경을 편집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신학적으로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과 신약의 그리스도안에 계시된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엄격히 구분을 하고 또한 그들은  구약 성서속의 하나님 안에 속한 모든 것들은 다 버려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즉 선한 아버지 하나님 만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하여 구약과 신약을 분리했기 때문에 큰 문제로 나타났다.

2). 무라토리 정경

 

  무라토리 정경(Muratorische Fragment L.A. Muratori) 은 로마계의 것으로 2세기경에 편집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무라토리 정경은 1740년 이태리의 고고학자 무라토리가 밀라노에 있는 암부로시우스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처음으로 공개하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라 무라토리 정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무라토리 정경은 많은 부분들이 회손되었지만 말시온의 정경과는 달리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도 편집이 되었음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이 세 번째 복음서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도 편집이 되어 있었는데 회손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크다.

  또한 무라토리의 정경속에는 요한복음과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이 교회에 보내는 9편의 서신과 개인에게 보내는 4편의 서신인 빌레몬서, 디도서, 디모데전후서와 유다서, 요한의 두서신 요한계시록 베드로의 묵시록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교회의 규범이 될수 있는 정경이 되기에는 미흡하였다.

 

3) 성문서들

 

  성경은 예배때마다 읽혀지게 되었는데 완전한 성경이 편집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때로는 가경(假經)이나 위경들도 소개되고 어떤 지역에서는 지금의 신약성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문서들이 정경으로 취급되기도 하였다.4)

예컨데 시내산 사본에는 [바나바의 편지]와 AD.110년경의 [헤르마스의목자]등이 정경으로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사본에는 [클레멘트의 제1 제2 서신]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당시에는 이문서들이 신약성서의 다른 문서들과 함께 정경의 지위로 받아 들여지고 있었음을 뜻한다.

  초대 교회는 사도들이 하나 둘씩 순교함에 따라 구전을 통하여 전해저 오던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갈래로 흩어저 방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교회들은 이를 통제하지 않으면 않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급기야는 성경 전체를 모아 정경을 확정해야만 한다는 열망과 교회들의 필요 요청에 의하여 신약성경의 편집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교회들로 하여금 정경을 형성하도록 촉구하게된 요인을 다시한번 정리해 보면 말시온파가 만든 나름대로의 정경이주는 자극과 무라토리에 의하여 만들어진 단편들에대한 도전 그리고 페쉬도가 수리아 교회의 정경으로 읽혀지는것과  노스틱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위경과 외경, 또한 신령한 자들이 주장하는 계시등이 난무하였기에 정경의 필요성이 더욱 간절하였다.

 

3). 신약 정경론의 기준

 

초대교회의 학자들은 신약성경의 정경을 결정하는 기본 여건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고센, 위필드, 하지등과 같은 학자들과 개신교도들은 정경을 결정하는데는 영감성과 사도성과 정경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나 이레니우스는 일차적으로 사도성이 아니라 역사적 진정성 관심을 두었다.

정경이란 단순한 사도적 저술만이 아니라 정경성에 대한 우선적인 태도로서 사도적 권위의 실제성과 승인이 있느냐는것과 신적인 권위의 영감성이 있느냐에 중점을 두었다.5) 그러나 영감성이나 사도성이나 정경성이란  같은 종류이다. 다만 세 용어는 성서의 책들을 접하여 편집하는 방법을 타나낼 뿐이다.

정경의 결정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 판단의 기준은 그 문서들이 사도적인가에 두었다는것은 첫째로 사도들 자신이 직접 쓴 것 이어야 한다는 것에 앞서 신뢰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둘째는 사도들과 함께 동역한 사람들이 쓴것이어야 한다.

마가와 베드로는 사도들의 동역자들이었음으로 포함이 되었다. 그리고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3서, 유다서, 계시록등은 정경에 포함된 것이 늣어진 것은 그 문서들이 사도들에 의하여 쓴것인지의 여부가 분명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바나바 서와 헬마스의 목양자와 클레멘트의 서신과 솔로몬의 지혜등이 제외된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영감성이란 헬라어의 데오프뉴스토스(theopneustos) 즉 “하나님의 입김으로된” “하나님의 감동의로된”(딤3:16절) 것이라는 의미이다. 책을 저술할 때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역사에 의하여 쓰여 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전문용어이다. 성경을 기록할 때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필자로 사용하셨는데 사도들의 인격과 지식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경험을 다 동원하게 하시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지만 기록자는 하나님이시며 성령님이 제자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기록하도록 만들었다는것을 강조하는 뜻이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는 성경의 영감성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교에서는  영감이 일종의 접신이라는 이론이 대중적으로 받아 들여 지기도 하였고6) 필로는 선지자들이 영감을 받을 때 의식을 잃었었다고 하여 부정적인 명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4세기의 유명한 교부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선지자들의 글과 사도들의 글에 아무런 착오가 없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자들은 악을 해하는자라고 하였고 폴리갑은 성경에 대하여 그릇된 견해를 가지는자는 누구든지 사단의 맏아들이라고 까지 강조하며 오리겐은 복음서 기자들이 성령과 동행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문서에 그릇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4). 정경(正經)의 결정(決定) 시기(時期)

 

   성경말씀은 모두가 1세기 이전에 기록되어졌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300여년 동안 성문서들을 정경으로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회람용으로만 널리 유포되고 되고 있었다. 그 이유중에 하나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들은 교회의 규범이 될 수 있는성경을 편집해야될 필요성을 느끼고 흩어져 있는 성문서들을 수집하여 성경을 편집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편집된 성경은 교회 회의의 결정에 의하여 정경화가 된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 동안 정경으로 인정하고 받아 내려오던 것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정경으로 인정한 것 뿐이다. 즉 정경이 아닌 것을 사람들이 수집하여 성경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교회의 정경으로 쓰자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경으로 쓰고 있던 성문서들을 함께 모아 한권의 책으로 묶어 정경으로 결정하게 된것이다라고 한다.

AD 303년 디오클레시안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의 성경을 없애 버리려고 칙령을 내리고 수 많은 밖해를 가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막지 못하였다.

AD 367년 알렉 산드리아의 아다나시우스는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최초의 신약성경 목록을 언급하였는데 그것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신약의 27권의 성경과 같았다.  아다나시우스 이후 제롬과 어거스틴도 신약의 정경을 27권으로 정의 하였으며 교회 회의에서는 27권의 성경을 처음으로 인정하게된 것은 A.D393년 횝포대회에서이다. 그러나 횝포 대회에서도 성경의 정경성에 대한 어떤 권위를 부여했던 것이 아니고 다만 이전에 결정되어 사용해 오던것을 정경으로 다시한번 확인하여 기록을 남기게된 것이다.

  그후 4년이 지난 A.D 397년 어거스틴이 주도한 카르타고 회의에서 현재의 27권에 정경목록과 목차를 완전히 결정하여 공포하다. 신약 27권의 성경은 로마 카톨릭교회이건 개신교이건 어떤 의문도 갖지 않고 정경으로 받아들여 사용하게 되었다.  1세기 때부터 성문서들이 분리되어 정경으로 받아 드리지 못하던 성경은 결국 4세기에 이르러서야 정경으로 확정이 되었고 그 뒤부터는 어느 누구도 이를 반밖하지 못하게 되었다. 

  동방교회는 AD367년 아다나시우스가 처음으로 부활주일날 자기 교구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으로 현재 우리가 소유한 성경을 정경으로 밝힌바 있다.

서방교회에서는 382년 로마 회의에서 정경목록이 작성되어 채택을 하였다. 그리고 393년에는 히포대회에서 395년에는 어거스틴의 주도아래 카르타고 대회에서 현재 27권의 정경목록과 그 목차가 결정이 되게 되었다.7)

 

5). 영감론과 계시

 

1) 영감론(靈感論)

 

영감이란 단어는 라틴어(inspiro) 또는 불가타의 inspiratio에서 유래되었는데 헬라어로는 데오프뉴 스토스 (theopneustos) 라는 단어로 “하나님의 입김으로된” “하나님의 감동으로된”(딤후3:16)것이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역시도 성경을 구약의 성경을 유대인들과 같이 무오한 책으로 인정하셨다. 이런 점에서 초대 교회의 교부들도 예수님과 같이 성경의 영감성을 인정하였다.

폴리갑은 성경에 대하여 그릇된 견해를 가지는자는 누구든지 사단의 맏아들이라고 하였는가 하면 오리겐은 영감받는 성경의 저자들과 이교도의 황홀경적인 신탁을 서로 비교하는 온갖 시도를 물리치고 성경의 기능은 성경 저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자유의지를 정지 시키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여 신적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파악하도록 해 주는데 있다고 하였다.

어거스틴역시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글에 아무런 착오가 없다고 하면서 사실을 의심하는자는 악을 행하는자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환상을 세가지로 구분하여 설명을 하였다. 성령께서 어떤때는 선지자들에게 직접적인 환상을 통하여 보여주기도하고 그들의 지성을 통하여 알게도 하시며 또 다른 경우는 알지도 못하는 그 어떠한 신비속에 신적 진리를 발견할수 있도록 알려 주신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영감성에 대한 비평의 견해도 있다. 알렉산드라이의 유대교에서는 영감이 일종의 접신(접신)이라는 부정적인 이론이 대중적으로 받아 들여졌는가 하면, 필로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영을 받았을 때 그들이 의식을 잃는다고 하였다.

(1). 축자적 영감론

 

축자적 영감설이란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들에게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을 때 한자 한자 불러 주는대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기록된 성경의 말씀은 한자도 오류가 없다는 설이다. 벌코프는 영감론에 있어서 단지 사상만의 영감이 아니라 언어까지도 영감되었으며 성경의 어느 부분만이 아니라 모든 부분에 다 해당된다고 말하므로 결국 그런 의미에서 축자적 또는 완전한 영감이라고 한다.

칼빈도 축자적 영감설을 말했는데 이장식교수는 그의[기독교 사상사] 제 2권에서 칼빈의 영감론이 축자적 영감설이 아니라고 한다. 칼빈은 성경을 영감으로 쓰인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저자의 인간적인 불완전에도 불구하고 무오하다는 것을 말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인간의 불완전에서 피할수 없이 생기는 문자적 오류가 생길수 있다는것을 인정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칼빈의 성서적 영감설은 후대 칼빈주의 신학자들이 말했듯이 문자 주의적 축자 영감이 이라기 보다는 인격적 영감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후대 칼빈이 문자적 축자 영감설을 믿었느냐 하는 것에 대하여는 계속적인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의 권위를, 한편으로는 그들의 신적인 기록위에, 한편으로는 성령의 증거위에 세운다.

그런가 하면 개혁자 루터에게 있어서도 그의 성서영감론에 대한 평가는 칼빈과 같이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태도를 가졌다는 입장과 축자 영감을 믿었다는 견해로 나누어진다.

 

(2). 기계적 영감설

 

기계적 영감설은 소위 받아 쓰기식으로써 성경의 저자들은 단순한 필자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저자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성령께서 인도 하심따라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3). 유기적 영감설

 

유기적 영감설은 성령께서 저자들의 손을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그들 자신의 내적 존재의 법칙과 잘 조화하여 그들의 성품과 기질과 재능과 교양과 용어와 어법과 문제등을 다 사용하여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아마 칼빈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나 후대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의 영감론이 유기적 영감론과 축자적 영감론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카이퍼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사진이다”라고 하였다.

 

2). 계시론(啓示論)

 

계시란 하나님께서 자신을 뜻을 인간들에게 열어 보이시는 것인데 때로는 사건으로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자연을 통하여 나타내신다. 계시란 단어는(unveiling) “벗겨낸다”는 뜻으로 감추어진 것을 벗겨내어 알게 하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계시는 자연계시와 초자연계시가 있는데 자연계시를 일반계시라고 하며 초자연계시는 특별계시로 구분이 된다.

자연계시는 인간의 구조와 자연의 현상속에 감추어진 무궁한 계시의 사실들을 알게 하시는 것을 말한다. 벌코프는 자연이란 하나님께서 대소문자를 가지고 쓰신 한권의 방대한 책이다.라고 말한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택한자들에게 자연을 통하여 날마다 자신의 뜻을 말하고 계신다. 영안이 열린자는 보기도하고 듣기도하고 깨닫기도 한다.

자연계시는 자연속에 간섭하시고 섭리하시는 것을 통하여 인간에게 알게 하시는 계시인것이다. 따라서 자연계시를 일반계시라고 한다면 일반계시는 창조와 관련이 있다.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은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다는것과 관련이 있을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초자연적인 계시 즉 특별계시는 구원과 관계가 있다. 여기서 특별계시는 성경이다.그러나 성경이 특별계시의 모든 것이 아니다. 성경속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특별계시의 주체요 전부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다 계시하셨다.

특별계시인 성경은 모두 종결이 되었지만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초자연적인 계시의 역사는 지금도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믿는자들을 통하여 생활 가운데 은사로 나타나고 있다.

 

6). 외경

 

개신교회 성경은 66권이다 그러나 로마 카돌릭교회는 73권이고 이디오피아 교회의 신약 정경은 일반적인 27권보다 훨씬 많은 38권이다. 왜 이렇게 성문서들이 차이가 나고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었일까 우리는 오늘 시야를 넓혀 세계속의 다양한 계시 종교들의 맥락속에서 잘 살펴 보아야 할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왜 오직 성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다른 거룩한 책들은 인정하지 않을까 깊이 연구해 보아야 할것이다.

초대교회 당시 동방교회는 66권의 정경을 소유했던 반면에 서방교회는 73권을 정경으로 받아 들이고 있었다. 서방교회는 제롬의 반대 저항에도 불구하고 외경들을 구약성서의 일부로 간주했기 때문에 향후 천년이 지난후에도 계속되어 왔다.

외경이란 용어는 통상적으로 회당에서 더 이상 쓸 수 없는 사본중에 “숨겨진 것”을 지칭하거나 회당에서 “사용이 금지된 책”들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고 한다.8)

단어의 기원은 영지주의적 기독교 저자들이 “외경”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숨겨진, 혹은 신비로운전서들을 가리켜 사용한데서 유래가 되었다.

  외경이란 단어는 이레니우스가 자신들의 집단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이다. 오리겐 역시 외경이란 용어를 다소 긍적적인 색채를 띠기도 하였으나  4세기후 부터는 순수하게 부정하며 신구약 정경으로로부터 단호하게 배제된 책들과 관련하여 사용하 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천주교에서는 신약과 구약의 중간에 외경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목록은 다음과 같다.

 

7. 사본의 문서설

 

왜 이렇게 단편 문서들이 많이 난무하게 되었을까? 당시에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성문서들을 부분적으로 필사하여 사용 하였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사람들이 쓴 사본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문서들만해도 부분적이든 완전한 상태의 문서든간에 헬라어 사본은 약 5000개 가량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훈륭한 것은 약350년경의 것으로 로마의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바티칸사본(codex Vaticanus)과 영국 정부가 1933년 10만 파운드를 주고 소련으로부터 사들인 시내사본(codex Sinatitcus)으로서 시내산 사본은 대영 박물관의 대표적인 보물이다.

또하나 특별한 가치를 지닌 사본 가운데 5세기 경에 기록된 것으로서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대영 박물에 소장 되어 있으며 5세기 혹은 6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베자 사본이 캠브리지 대학의 도서관에 보관이 되어 있는데 이 사본들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각각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구약의 사본은 약 AD9 세기 경의 것으로 파피루스에 기록된 단편으로 초대 교회시대의 것이다.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수천개의 신약의 사본들 가운데 4세기에 기록된 2개의 사본뿐아니라 그보다 약 100년이나 200년 앞선 파피루스의 단편들이 얼마든지 있다.

약 100년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3건의 저작물 가운데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바나바 서신 Brief desBarnabas]과 약 AD 90년경에 수리아 혹은 팔레스타인에서 기록된으로 보이는 [12사도의 교훈집 Zwo lfapostellehre] 이라고도 불리우는 [디다케] 가 있으며 AD 96년경의 것으로 고린도 교회에 보낸 로마의 [클레멘스트 편지 Brief- des Clemens]등 있다. 그들의 저작속에는 복음서와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에베소서, 디도서, 베드로전후서 히브리서등 신약성서들을 자유롭게 인용하여 사용하였다.

 

출처 :   https://cafe.daum.net/kmc4755/AT6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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