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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2,922편)〓/설교100가지 제언

설교자의 제스처 사용과 그 효율성

by 【고동엽】 2022. 4. 20.
 
 
설교자의 제스처 사용과 그 효율성    

정장복 교수
  

Q. 지난 호에서 설교자가 갖추어야 할 몸가짐 특별히 설교단에 섰을 때 갖추어야 할 바른 자세와 위치 등을 읽고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이어진 나의 자세가 쉽게 고쳐지지 않아 깊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하신 신체언어 중에 단순한 얼굴의 표정이나 몸의 움직임 보다 훨씬 많이 사용하는 것이 손을 이용한 제스처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이 제스처가 차가운 감정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전혀 발생되지 않고 있습니다. 뜨거운 열정이 있을 때만 종종 제스처가 발동됩니다. 이것이 정상인지 알고 싶습니다.

설교자가 사용하는 신체언어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바로 손을 이용한 제스처입니다. 이 제스처가 잘 사용되면 매우 효과적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동작이 됩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으나 설교의 전달에서는 현명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사실 제스처란 감정과 직결된 행위입니다. 설교자의 감정이 메시지와 함께 절박감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잘 사용됩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서술이나 차가운 가슴에서 나오는 서술들은 거의 제스처가 나오지를 아니합니다. 또 하나의 경우는 설교의 원고를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단에 올라가 원고를 읽거나 원고를 생각해 내는데 정신이 집중되면 제스처는 전혀 발동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설교의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고 그 설교 내용에 확신이 있을 때는 몸과 손의 움직임이 달라집니다. 특별히 자신이 신념을 가지고 상대를 설득해야 할 메시지가 있을 때는 감정이 뜨겁게 상승되면서 신체언어는 작동을 합니다. 그래서 제스처는 뜨거운 감정의 소유자들에게는 빼 놓을 수 없는 '설교의 도구'라고 말하게 됩니다.



Q. 우리의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마다 손을 사용한 제스처를 비교적 많이 사용하시는데 때로는 손은 위로 향하여 들고 눈은 원고를 쳐다보는 모습을 연출합니다. 보는 이들이 매우 어색함을 느끼면서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스처는 정상적인지요?

아닙니다. 그러한 형태의 제스처는 차라리 사용하지 않은 것이 훨씬 좋습니다. 설교를 듣는 회중의 시각과 느낌은 매우 정확합니다. 실질적으로 제스처의 활용이란 설교자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회중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설교자들이 제스처를 자신의 감정풀이의 한 수단으로 사용하여 많은 부작용을 가져옵니다.
설교자는 손을 사용하는 제스처의 방향에 가급적이면 자신의 눈의 방향도 함께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면서 두 손바닥을 펴들어 위로 들었다고 했을 때 설교자의 시선도 함께 위를 쳐다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손은 위를 가르키고 눈은 아래를 쳐다본다면 그것은 매우 어색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손을 사용한 모든 제스처가 손의 방향과 시선이 일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죄악이나 부정적인 문제를 표현할 때 손바닥을 밑으로 하는 제스처를 사용했을 때 얼굴도 함께 밑을 쳐다보아야 한다면 이 또한 어색한 표현이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데로 설교자가 원고를 완전히 소화했을 때는 제스처와 시선을 일치하는 적절한 조화를 이룩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감정대로 제스처는 움직이고 시선은 원고에 메어있는 모순된 모습을 연출합니다.



Q. 저는 설교의 효과적인 전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설교자입니다. 특별히 설교자들이 손을 사용하는 제스처를 유심히 보아 옵니다. 그 때마다 느끼는 것은 설교자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제스처 형태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설교자가 가지고 있는 성격과 연관이 있는 듯도 합니다. 저는 이 때 마다 제스처의 형태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일반적인 원칙 등이 있었으면 합니다. 설교의 전달론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아니한지 알고 싶습니다.

매우 필요한 질문을 해 주시었습니다. 설교자는 어떤 원칙과 이론을 따르지 아니할 때 창작이나 모방의 길을 많이 걷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 하고 싶은 데로 제스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설교에 대하여 깊은 연구를 계속하면서 내놓은 전문가들의 이론과 충고를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교의 이론에서는 손을 사용한 제스처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여 내 놓았습니다. 이 이론은 단순한 어느 설교자 개인의 의견이 아닙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설교현장을 연구한 설교신학자들에게 의하여 정리된 이론들입니다. 자신의 고유한 제스처 형태 속에 묶여있지 아니한 설교자들은 크게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먼저는, 집게손가락을 사용하는 제스처입니다. 이 경우는 집게손가락 이외의 손가락은 모두 모아서 무엇을 가리킨 듯한 형태를 취합니다. 이 때는 말씀의 위치를 가르칠 때나 보통의 강조점을 말할 때 사용합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어떤 경우도 이 집게손가락이 회중 가운데 개인을 향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약간 위를 향한 각도를 취할 것을 권합니다.
둘째는, 주먹을 사용하는 제스처입니다. 이 제스처는 극적인 문제를 말하거나 크게 강조할 때 강한 어조와 함께 사용합니다. 이 형태 역시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설교자가 너무 이 제스처를 많이 사용함으로 강한 성향을 비추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셋째는, 손바닥을 펴서 위로하는 제스처입니다. 이러한 제스처는 긍정적인 표현을 하고 싶을 때나 절실한 설득을 하고 싶을 때 사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탄원이나 기도의 감정을 표현할 때도 많이 사용합니다. 이 때는 손바닥에 힘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는, 손바닥을 밑으로 하는 제스처입니다. 이 형태는 반대 의사를 나타날 때나 불명에 스러운 것을 말할 때 사용합니다. 때로는 경멸 또는 비난의 표현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제스처는 자주 사용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설교자가 이 제스처를 자주 사용할 경우 부정적인 인상을 회중들에게 심어주기 쉽기 때문입니다.



Q. 저는 설교를 한지 20년을 넘긴 설교자입니다. 처음부터 제스처 사용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고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뒷짐을 치고 설교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때로는 복부 앞에 두 손을 붙잡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교인들은 지적을 하지 않는데 저의 식구들이 종종 그 모습이 어색하다고 말을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질문에 따르면 귀하는 설교에 정렬을 거의 쏟지 아니한 분 인 듯합니다. 즉, 감정의 발동이 아주 약하고 머리에 담긴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선포보다는 강의를 하신 듯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할 회중을 사랑하는 열정(Pathos)을 가진 설교자는 그러한 자세를 설교단에서 지속할 수 없습니다.
두 손을 등뒤로 젖혀 마주 잡는 것은 설교자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자세입니다. 뒷짐을 진 자세는 흔히 어떤 일에 자신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구경만 하고 있을 때 보여주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말씀과 자신이 일체가 되지 않고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회중을 존경하지 않고 경시하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윗사람 앞에서나 대중 앞에서는 이러한 자세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손을 복부 앞에 마주 잡고 있는 것도 때로는 있을 수 있으나 설교가 끝날 때까지 그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어색한 표현입니다. 이러한 설교자는 흔히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설교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 모두는 설교자가 고쳐야 할 손의 자세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는 설교자가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서 나오는 경우이기도 합니다. 설교자의 손은 지난 번 글에서 언급한데로 설교단과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두 손으로 설교단의 양면을 붙잡던지 또는 한 손씩 번갈아 가면서 단을 붙잡던지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손의 위치는 어색함을 피할 수 있고 설교자의 몸가짐은 안정감을 가져옵니다.



Q. 저는 위의 질문과는 정반대의 처지에 놓인 설교자입니다. 저는 저의 성격 탓인지 모르나 단어마다 손을 올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제 자신도 이러한 습관이 설교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쉽사리 시정을 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어떤 역효과를 가져오는지 듣고 싶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필자는 귀하와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 설교자들을 저의 [설교의 실제] 시간에 종종 만나게됩니다. 저는 이러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신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혹독한 꾸지람을 하고 때로는 망치를 가지고 손을 두들겨 주면서 그 교정에 무척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설교자가 너무 경망스럽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지가 경망스러운 자세나 습관을 보이는 설교자를 통하여 나올 때 손상을 입게 되기 때문에 저는 더욱 이러한 제스처를 엄금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회중들이 안정감을 갖지 못합니다. 회중들은 설교자가 너무 고착된 모습을 보일 때는 그 생동감을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몸이나 손을 너무 무질서하게 움직일 때는 메시지를 안정감 있게 받아드리지 못합니다.
하나의 실례가 있습니다. 귀하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가 저로부터 혹독한 질책을 받았던 한 졸업생이 어느 날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서슴없이 저의 손을 붙잡으면서 자신의 습관적인 손의 제스처 때문에 자신이 혼났던 십수년 전의 이야기를 되새기었습니다. 그가 교회를 담임하고 설교할 때마다 손이 올라가려고 하면 무조건 설교단을 꽉 붙잡았다고 합니다. 그럴때마다 설교대가 움직였다고 합니다. 언제인가는 나이 많은 권사님들이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는 설교대가 들썩이는데 무슨 연고인지요?"라고 물어 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수개월 동안 이 못된 습관과 싸워서 이겼다는 이야기입니다.
고치겠다는 의지만 있으시면 얼마든지 이정도의 문제는 고칠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시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Q. 저는 평소에 설교자의 제스처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설교자입니다. 생각날 때 어쩌다 한번씩 손을 드는 제스처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설교에 한 두번 있을 정도입니다. 저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혹자는 너무 인위적이고 어색한 손의 연출이라고 지적합니다. 여기에 대한 충고를 듣고 싶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운반하는 현장에서 관심을 깊이 가져야 할 실질적인 질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설교하는 순간에 갖게되는 손을 사용한 제스처 역시 리듬을 갖추어야 합니다. 설교가 중반에 진입하도록 전혀 움직이지 않던 양손이 갑작스럽게 번쩍 치켜들면서 소리를 지르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참으로 어색함을 느낍니다. 늘 강조한데로 설교자는 언어의 속도나 음정의 높낮이에 있어서 리듬이 있어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제스처도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소폭의 범위에서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다가 큰 폭의 제스처를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설교단에 묶어둔 듯이 전혀 움직이지 않던 두 손이 순간적으로 번쩍 치켜들었다가 설교가 끝날 때까지 그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어색한 제스처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소폭의 제스처는 큰 폭의 제스처를 가져오는 예비적인 단계이기도 합니다.
이상과 같은 리듬이 없는 제스처의 등장은 바로 회중들의 눈에 인위적인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손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말씀을 완전히 소화한 설교자가 음성언어와 함께 작동하는 신체언어를 통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운반하려는 자연스러운 노력의 현상입니다. 설교에 한두 번의 제스처의 활용은 효과성을 가져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원고만 읽고 있는 경우에 이러한 현상이 흔히 나타납니다. 종전보다 더 적극적인 열정과 원고의 소화에 뜨거운 노력을 기울이십시오. 그럴 때 이러한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이 됩니다.
손을 사용하는데 자신이 어색함을 느낀다던가 거부감을 갖는다면 강조해야할 문장이나 단어에서 힘을 주면서 머리나 몸을 움직이는 제스처도 가능합니다. 강조해야 할 메시지가 나오는데 음정도 몸가짐도 변화가 없다면 설교자가 너무 기계적인 인상을 풍기게 되고 설교의 생동력이 사라지게 됨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Q. 앞에서 습과적인 제스처에 대하여 언급을 하시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모습들이 습관적인 것들인지 다시 언급하여 주시면합니다.

설교자가 설교하는 순간에 보여준 습관적인 모습들은 각각 다릅니다. 어느 것을 두고 습관적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필자가 지난 20년이 넘도록 설교의 이론을 강의하고 실제를 지도하는 가운데 발견되어진 '습관성 제스처'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어떤 설교자는 한 손만 계속해서 사용하고 다른 한 손은 전혀 사용하지 않아 신체 장애자 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두 손을 합치고 비비는 습관을 종종 보이는 형태도 있습니다. 간혹 어떤 설교자는 손가락을 의미 없이 펼쳤다 오므렸다 하는가 하면 아예 손을 호주머니에 넣는 습관을 보입니다. 이러한 형태들이 대제적으로 습관성으로 비쳐지는 현상들입니다. 이 모두는 설교자에게서 사라져야 할 부분들입니다.



대화의 정리

설교자는 회중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공급받아야 할 회중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야한다. 이러한 사랑이 설교자의 가슴에서 솟아 날 때 설교는 살아있는 메시지로 회중들의 가슴에 자리잡게 된다. 이럴 때 설교자는 열정(Pathos)을 갖게 되고 그 열정은 설교자의 몸 전체를 움직이게 만든다. 이 움직임이 있을 때 회중들의 심령도 움직이게 된다. 이 때 나온 제스처는 어떤 경우도 인위적인 것이 될 수 없고 순수한 메시지 전달의 방편이 된다.
설교를 진행하는 동안 적절하게 사용되는 제스처는 회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매우 효과적이며 설교자의 동작을 통한 회중들과의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룩하는데 필요한 도구가 된다. 인간언어는 단순한 음성에 실린 언어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언어보다 나의 얼굴의 표정과 몸의 움직임과 손의 움직임을 사용하는 신체언어가 의사소통에 훨씬더 큰 힘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의 설교자는 언제나 마음에 두어야 한다.
설교자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제스처는 선포와 함께 조화를 이루어 나타나야 한다는 점이다. 말씀의 선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제스처는 매우 어색할 뿐만 아니라 회중들에게도 설득력이 없게 됨을 인식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제스처가 먼저 나오고 언어가 뒤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퍽 자신이 없는 표정이고 선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어색한 것들이다.
설교자가 강조해야할 순간에 자신의 선포에 힘을 주고 강력한 결단의 선포를 위해 적절하게 사용되는 제스처는 매우 효과가 있다. 그러나 너무 자주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제스처는 회중들에게 산만함을 줄 뿐 선포의 효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점 또한 설교자의 마음에 두어야 한다. 동시에 거의 제스처를 사용하지 않고 선포하는 설교자에게는 열정도 선포에 대한 의욕도 없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게 됨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출처 :  송수천목사    https://cafe.daum.net/kmc4755/AT6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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