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강 말씀과 기도(9:1-2)
9:1-2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서 9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1∼19절로서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입니다. 다니엘은 그의 기도 속에서 먼저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아울러 자신과 민족의 죄를 회개하며, 마지막으로 나라를 위해서 간구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기도 가운데서 본받아야 할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후반부는 20∼27절로서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의 기도에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칠십 이레에 대한 예언을 주셨습니다. 칠십 이레에 대한 예언은 성경 말씀 가운데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에 속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이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는 가운데, 나름대로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을 줄 압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단9:1∼2은 다니엘이 기도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바벨론의 벨사살 임금 때에 바벨론 제국은 드디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메대 사람 다리오에게 나라가 넘어갔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나타난 내용과 같이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보았던 신상의 금머리 시대는 지나가고, 그 대신 은으로 만든 두 팔과 가슴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또한 다니엘이 7장의 이상 가운데 본 그대로, 사자같이 생긴 짐승이 곰같이 생긴 짐승에게 먹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울러 8장에서 보았던 두 뿔 가진 수양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우리가 메대 사람 다리오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6장에서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졌던 왕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메대 사람 다리오였습니다. 왜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했습니까? 다니엘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나있는 창을 활짝 열어놓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할 경우에는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명을 어겨가면서까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2절 말씀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말하는 서책은 성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와 바사가 들어서면서 다니엘은 자기가 이상에 보았던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궁금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 민족의 장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부지런히 읽으며 묵상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다니엘은 자신이 읽고 있는 서책을 단순히 인간이 기록한 책으로 보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성경이 비록 인간의 손으로 기록된 책이지만,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확신했습니다. 다니엘은 여기서 하나님의 칭호를 무엇이라고 불렀습니까?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성호가 다니엘서에서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쓰여졌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칭호 가운데 특별히 언약적인 칭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이루시며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칠십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도록 정해놓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렘25:11의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을 예언했던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무한히 계속하는 것이 아니고 칠십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한 뒤에 다시금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 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넘어가서 렘29:10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칠십 년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금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실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렘29:11의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소망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재앙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인 우리가 평안하며, 소망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되, 언제 그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집니까?
렘29:12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렘29:13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십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가 다시금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뜻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사실을 예레미야서를 읽는 가운데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된 다니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니엘서 본문으로 돌아가서 잠시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다니엘은 자기가 기도할 때 왕명을 어긴 결과가 되어 사자굴 속에 던짐을 당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기도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기도할 때 무엇에 입각해서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윗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윗사람의 의중과는 전혀 상관도 없이 내 할 말만 다하면 그 얼마나 무례한 사람입니까? 내가 말하기에 앞서서 윗사람의 말에 공손히 귀를 기울이고 경청해야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의중은 무엇인지 그것을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먼저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내 육신을 위해서 간구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입각해서 기도할 때에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것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도할 때 비로소 이루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재앙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또 우리의 삶이 젖과 꿀이 흐르는 소망스러운 삶이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선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아침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하십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요,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비로소 이루어짐을 잊지 마십시다. 이 두 가지를 생각하시면서 오늘 하루도 복된 삶,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된 삶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시는 아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서 9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1∼19절로서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입니다. 다니엘은 그의 기도 속에서 먼저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아울러 자신과 민족의 죄를 회개하며, 마지막으로 나라를 위해서 간구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기도 가운데서 본받아야 할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후반부는 20∼27절로서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의 기도에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칠십 이레에 대한 예언을 주셨습니다. 칠십 이레에 대한 예언은 성경 말씀 가운데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에 속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이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는 가운데, 나름대로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을 줄 압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단9:1∼2은 다니엘이 기도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바벨론의 벨사살 임금 때에 바벨론 제국은 드디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메대 사람 다리오에게 나라가 넘어갔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나타난 내용과 같이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보았던 신상의 금머리 시대는 지나가고, 그 대신 은으로 만든 두 팔과 가슴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또한 다니엘이 7장의 이상 가운데 본 그대로, 사자같이 생긴 짐승이 곰같이 생긴 짐승에게 먹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울러 8장에서 보았던 두 뿔 가진 수양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우리가 메대 사람 다리오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6장에서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졌던 왕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메대 사람 다리오였습니다. 왜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했습니까? 다니엘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나있는 창을 활짝 열어놓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할 경우에는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명을 어겨가면서까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2절 말씀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말하는 서책은 성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와 바사가 들어서면서 다니엘은 자기가 이상에 보았던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궁금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 민족의 장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부지런히 읽으며 묵상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다니엘은 자신이 읽고 있는 서책을 단순히 인간이 기록한 책으로 보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성경이 비록 인간의 손으로 기록된 책이지만,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확신했습니다. 다니엘은 여기서 하나님의 칭호를 무엇이라고 불렀습니까?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성호가 다니엘서에서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쓰여졌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칭호 가운데 특별히 언약적인 칭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이루시며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칠십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도록 정해놓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렘25:11의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을 예언했던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무한히 계속하는 것이 아니고 칠십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한 뒤에 다시금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 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넘어가서 렘29:10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칠십 년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금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실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렘29:11의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소망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재앙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인 우리가 평안하며, 소망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되, 언제 그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집니까?
렘29:12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렘29:13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십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가 다시금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뜻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사실을 예레미야서를 읽는 가운데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된 다니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니엘서 본문으로 돌아가서 잠시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다니엘은 자기가 기도할 때 왕명을 어긴 결과가 되어 사자굴 속에 던짐을 당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기도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기도할 때 무엇에 입각해서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윗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윗사람의 의중과는 전혀 상관도 없이 내 할 말만 다하면 그 얼마나 무례한 사람입니까? 내가 말하기에 앞서서 윗사람의 말에 공손히 귀를 기울이고 경청해야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의중은 무엇인지 그것을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먼저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내 육신을 위해서 간구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입각해서 기도할 때에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것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도할 때 비로소 이루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재앙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또 우리의 삶이 젖과 꿀이 흐르는 소망스러운 삶이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선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아침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하십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요,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비로소 이루어짐을 잊지 마십시다. 이 두 가지를 생각하시면서 오늘 하루도 복된 삶,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된 삶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시는 아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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