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가기 |
맥추절에 받아야 할 세 가지 영(靈)! (신 19;9-12)
다음 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그런데 맥추절을 안 지키는 교회가 점점 늘어 나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1. 농경사회의 유물을 도시화된 지금에 지키고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
2. 구약의 유산을 신약시대까지 지킬 것은 없다.
3. 지금은 보리 농사도 안 짓게 되니까 필요없다.
4. 내가 보리 농사를 안 짓는 데 나와 상관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절대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게서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7가지 절기를 지시하시면서 영원히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맥추절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맥추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회복하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1. 맥추절에는 사랑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절기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8.15 광복절은 해방을 기념합니다. 31절은 만세 사건입니다. 개천절은 나라를 세운 날입니다. 절기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유월절의 특징은 고난에서의 해방과 피입니다. 무교절의 특징은 유교병적 존재가 아닌 무교병의 존재라는 확인입니다. 초실절의 특징은 첫 열매를 통한 하나님께 헌신입니다. 나팔절의 특징은 환희의 모임입니다. 대속죄일의 특징은 죄로부터의 자유함입니다. 초막절의 특징은 심판입니다.그런데 맥추절의 첫 번째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 특징은 사랑입니다. 그 동안에 메말랐던 사랑을 다시 찾는 절기입니다. 무엇에 대한 사랑입니까?
맥추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절기입니다.
초실절은 보리를 추수하는 절기입니다. 그 때 보리의 첫 단을 드리는 것이 초실절입니다. 그리고 보리의 마지막 추수를 끝내는 것이 맥추절입니다. 첫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고 50일을 지나면 맥추절입니다. 그래서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이 때 마침 밀이 익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밀의 첫 이삭으로 떡을 만들어 하나님께 제일 먼저 드리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것은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게 말지며 너의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 지며>(출22;29)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 즉>(출18;12)
처음 것이란 모든 것의 대표입니다. 처음 것이란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그렇기에 처음 시간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사람은 나머지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열매를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사람은 나머지 모든 열매들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첫 아들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사람은 나머지 모든 자녀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는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3;9-10)
맥추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에 보리를 추수하는 법칙을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 땅에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22절)
추수 때 모퉁이를 베지 않아야 합니다. 일부러 귀퉁이를 남겨 두고 이삭을 줍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과 객이 같이 먹고 살게 하셨습니다. 맥추절은 이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이웃 사랑의 절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같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가난하였습니다. 대동법(大同法)이라는 토지 개혁법을 강행하였던 인조때 정승 김 육(金堉)이 빈부가 섞인 이상적인 마을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상적인 촌락 구조로 빈반부반(貧半富半)설을 주장하였습니다.
머슴을 둘 정도의 부농층이 10%,
자급자족하는 중농층이 40%,
땅 한 때기 없는 품을 그날 그 날 팔아야 먹고 사는 영세층이 40%, 늙거나 병들거나 고아거나 과부거나 노동력도 없어 남이 돌보지 않으면 당장 죽는 피보호층이 10%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들 사이에는 굶어 죽었다는 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아무리 극심한 흉년이 와도 다같이 먹고 살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음과 같은 5가지 아름다운 풍습이 이스라엘처럼 우리 조상들에게도 있었습니다.
(1) 복곡(福穀)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 몫으로 일정량의 곡식을 내어 이곡(利穀)을 놓습니다. 그리고 그 곡식으로 마을의 빈자, 행려병자, 노약자, 병약자들에게 베플면 그 베픈 것만큼 그 아이가 복을 받는다는고 믿고 살았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우리 조상들이었습니다.
(2) 마당쓸이
당장 먹을 양식이 떨어지면 마당 빗자루를 들고 새벽에 부잣집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 그리고 청하지도 않은 마당을 깨끗이 쓸어 놓고 집으로 가만히 돌아 옵니다. 주인이 일어나 누가 쓸었는 지를 조사합니다. 그리고 머슴으로 하여금 그 집에 며칠 먹을 양식을 보내주는 아름다운 관습이 마당쓸이입니다. 그 양식은 갚지 않아도 되는 양식이었습니다.
(3) 서덤
좀 넉넉한 집은 매일 밥을 지을 때 집안 식구수보다 3명 쯤의 밥을 더 해 두는 습관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가난한 사람이 찾아 올 것을 대비하고 사는 아름다운 습관이 서덤입니다.
(4) 산나물서리
옛날의 보리고개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픔을 참아야 했습니다. 이 때 산촌의 여인들은 산나물을 한 광주리 캐어 머리에 이고 잘 사는 집으로 들어 갑니다. 그리고 장독대로 가서 그 산나물을 내려놓고 필요한 간장 된장 고추장등의 부식을 말도 없이 퍼갔던 습관입니다. 그래도 그를 도둑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5) 내장 나누기
명절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돼지나 소를 공동으로 잡아 나누었습니다. 이 때 살고기는 나누어 가지지만 내장은 마을의 가난한 노인 고아들에게 나누어 주어 온 마을이 명절을 지냈습니다.
이같은 아름다운 풍습이 우리 민족에게 있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밭모퉁이나 이삭을 일부러 남겨놓은 아름다운 사랑의 계절이었습니다.
이같이 맥추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절기입니다. 일년중 가장 사랑을 불태우는 사랑의 절기입니다. 잃어버린 사랑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2. 맥추절에는 회개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5가지 제사를 지내라고 하셨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그리고 속죄제입니다. 그런데 맥추절에는 속건제만 빼놓고는 모두를 드립니다.
한 절기에 이같이 4가지 제사를 드리는 절기는 드물 정도로 제사에 충성된 절기입니다.이 모두는 회개와 관계가 있습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새 출발하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7절기중에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그리고 맥추절이 약 50일간에 붙어 있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나팔절, 속죄일 그리고 초막절이 15일간 붙어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맥추절을 지나고 나팔절을 맞이 할 때까지가 약 5개월이 됩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에 회개하고 잘 지내다가 나팔절에 모여 속죄일에 원죄까지 씻고 초막절에 들림받겠다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에는 회개의 영을 받아 철저히 회개하는 절기입니다.
김 정준 목사님이 지은 <내가 죽는 날>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김 목사님이 폐병에 걸려서 마산 결핵 요양소 죽음의 병동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 곳에서 의사가 3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형선고였습니다. 김 목사님은 죽어가면서 <내가 죽는 날>이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내가 죽는 날
그대들은 “저 좋은 낙원이르니” 찬송을 불러 주오
또 요한 계시록 20장 이하를 끝절까지 읽어 주오
그리고 나의 묘비에 이것을 새겨주오
임마누엘이라는 단 한 마디를
내가 죽는 날은 비가 와도 좋다.
그것은 내 슬픔을 상징하는 슬픈 눈물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내 죄 씻음을 받은 감격의 눈물
내가 죽는 날은 바람이 불어도 좋다
그것은 내 모든 이 세상 시름을 없이하고 하늘나라 올라가는 내 길을 준비함이라...>
김 목사님은 죽음을 앞두고 그 동안에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을 낱낱이 기록하여 보았습니다.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는 나머지 3개월을 충성스럽게 살다가 죽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죽음의 병동에서 삶과 죽음을 오가는 순간에도 다른 환자들의 변기청소, 약수발, 각혈할 때 치닷거리, 봉사, 위로, 기도하여 주기, 복음 전하기, 죽은 자의 장례 치루기에 열중하였습니다. 의사는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충고를 20여 차례 거절하였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나니 봉사하게 되고 봉사하다 보니 기뻐졌습니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았습니다. 지옥에서 탈출한 것처럼 당당히 퇴원하였습니다. 그 동안 시편 150편을 모두 암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경건한 삶을 사셨습니다.
철저한 회개는 삶을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맥추절에는 회개의 영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3. 맥추절에는 감사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입니다(출23;14-16) 유월절과 초막절은 8일간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맥추절은 하루 동안 지켜졌습니다. 그 이유는 농번기 철이므로 바쁜 일손을 오래 동안 축제에 붙들고 있지 않게 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모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축제로 지냈습니다.
비를 주시고 해를 주시고 모든 것을 주신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더 위대하여 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위대하여 진다.>
칼 힐티는 그의 저서 <행복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
링컨은 말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있다.>
수탉이 물을 마실 때 그릇속에 있는 물을 주둥이로 물어 고개를 젖힌 뒤 삼키곤 합니다.이를 보고 세 종류의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도주의자는 혀를 차면서 말했습니다.
<저렇게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하려면 괴장히 힘들거야.>
현실주의자가 말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다 먹고 살자면 할 수 없죠.>
그리스도인이 말을 받았습니다.
<두 분 말씀이 맞군요. 하지만 저 수탉은 한 모금 물을 마실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자가 넉넉한 자입니다.
일본 동경 은혜 교회 부흥회를 다녀 왔습니다. 나는 이 교회에서 세 번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40명 정도 모이는 작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많은 여자들이 술집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술시중을 드는 여자들은 아니었습니다. 뒤에서 안주를 만들거나 뒷일을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근무 시간은 저녁 7시경부터 밤 1시경까지 정도입니다. 사람들이 술 마시는 시간이 근무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와는 전혀 다른 저녁 예배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녁 5시에 부흥회를 하고 7시에 부흥회를 마쳐야 합니다. 그리고 7시에 출근합니다. 이들은 보통 밤 1시경에 퇴근하여 집에 와서 잠에 들면 2시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4시 30분이면 일어나서 새벽 예배에 전원 출석하였습니다.
그 아픔속에서도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그들의 모습은 숭고하여 보였습니다.
이들은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생활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 이 에스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매년 자녀를 위하여 생일이면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10살이면 10만원, 11살이면 11만원을 드렸습니다. 나이가 성장하면서 감사헌금도 늘어났습니다.
지난 해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차가 다리에서 난간을 받고 굴러 물속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차가 굴러 떨어질 때에 충격으로 아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난간에 거꾸로 걸려 있었습니다. 조금도 다치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늘 감사드리니 하나님이 늘 감사한 일만 생기게 한다고 간증하였습니다. 감사하는 이에게는 성숙이 있습니다.
인도에 가서 의료 선교를 하던 폴 브랜드(Paul Brand) 박사가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늘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저 나병에 걸려 죽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주신 명령이기에 충실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그의 발뒷굼치가 무디어 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그는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는 실험실에 가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발목을 힘껏 찔러 보았습니다. 어찌나 아픈지 닭기 똥같은 눈물이 펑펑 나왔습니다. 그 순간 그는 너무나 기뻐서 외쳤습니다.
<오! 주님! 아픔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아픔도 감사입니다. 감사하는 이에게는 모두가 감사입니다.
까마귀는 바람부는 날에만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래야 그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길을 가면서 높은 나무위에 해가 지난 까마귀집이 그대로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감사하면서 그 환경을 이용하는 까마귀는 지혜로운 새입니다.
이상한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똑같은 밥을 두 유리병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한 병에는 <감사하다>라고 써붙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병에는 <망할 자식>이라고 써붙였습니다.
그리고 두 초등학생에게 시켰습니다. 한 학생에게는 <감사하다>라고 쓴 병앞에서 늘 감사하다고 외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병 앞에 가서는 다른 학생이 <망할 자식>이라고 외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한 달 들은 병에 들은 밥은 발효되어 향기로운 누룩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망할 자식이라는 말을 한 달 들은 병에 밥은 썩어서 나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악취가 진동하였습니다.
감사는 좋은 에네지를 공급하는 것을 실험을 통하여 밝혀 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같이 맥추절에는 세 가지 영을 받아야 합니다.
1. 사랑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2. 회개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3. 감사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미국에 하이네 라는 한 재벌이 있습니다. 그는 한 때 사업이 잘 되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교만하여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업이 항상 잘 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려움이 몰아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업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돈을 갚지 못 하자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도산하여 빚더미 위에 올라 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도산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1만 달러 천만원을 숨겨 두었습니다. 자기가 감옥에 들어가면 가족들이 잠시나마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지난 날 축복해 주셨을 때 감사하지 않은 것을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겨두었던 1만 달러를 가족에게 주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헌금으로 드렸습니다.
하이네가 부도난 것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교회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은 것을 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보고 교회에서 당회가 열렸습니다.
하이네를 불러서 사연을 물었습니다. 하이네는 사정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당회에서 그를 돕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돈을 갚아야 할 사람들 명단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들을 찾아 다니며 호소하였습니다. 우리가 하이네에게 다시 사업할 기회를 만들어 주어서 돈을 갚게 만들터이니 감옥에 보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일일이 다 찾아 다녔습니다.
빚쟁이들의 명단을 써 달라고 해서 그들을 만나 시간을 연장해 주면 갚겠으니 감옥에 넣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발벗고 나서는 것을 보고 믿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성금을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이네는 그 성금으로 모여진 돈을 가지고 조그만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교인들 성금으로 모아 사업을 하는 것이니 이제는 내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 사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최선을 다 하였습니다. 사력을 다 하였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대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는 후에 말했습니다.
<내가 재벌이 된 출발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감사한 결과였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탄과 하나님의 역사 섭리누가복음2:1~7 (0) | 2022.04.09 |
---|---|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감사 /왕상3:1~15 (0) | 2022.04.09 |
예수님 마지막 옷의 비밀! (요 19;23-25) (0) | 2022.04.09 |
성탄절 설교 /마태복음 2;1-12 (0) | 2022.04.09 |
어버이에 대한 자녀의 책임 (엡 6:1-3 ) (0) | 2022.04.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