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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감사하다! (골 3:15-17)

by 【고동엽】 2022. 4. 8.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감사하다! (골 3:15-17)

 

 

오늘은 2009년 맥추감사절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절에는 두 가지 감사절이 있습니다.
하나는 1년 농사를 짓고 거둔 수확에 대해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감사절입니다. 또 하나는 첫 열매를 얻고 그 첫 열매를 감사 예물로 드리는 맥추감사절입니다.
일반적으로 맥추감사절이 추수감사절만 못한 감사절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추수감사절을 큰 감사절이고 맥추감사절은 작은 감사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에 맥추감사절을 지키지 않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입니다. 감사의 깊이는 맥추절이 훨씬 더 깊습니다. 그것은 감사절을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실제로는 맥추감사절이 추수감사절보다 훨씬 더 영적으로는 깊은 은혜가 있고 중요한 절기입니다. 맥추감사절이 없이 추수감사절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절기로만 지키면 맥추감사절 지키고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되겠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역사를 보면 맥추감사절이 분명치 않은 성도는 추수감사절을 풍성하게 누리지 못합니다. 
맥추감사절은 믿음 없이는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 하나님의 은혜라는 분명한 감사가 없이는, 또 하나님이 첫 것은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성도가 아니면 맥추감사절은 잊어버리고 지나가고 또 힘들어서 지나가고 또 몰라서 지나가 버리는 절기가 되기가 쉽습니다.


저는 여러 번 눈물 겨운 첫 예물 감사헌금을 받아 보았습니다. 이것은 강요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감사 예물이 아니라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때는 대부분 풍성한 때가 아닙니다. 결혼하고 난 뒤, 입학하고 난 뒤,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 첫 아이를 낳고, 새 해가 시작된 후, 아직 안정이 되지 않고 들떠 있는 상황에서 첫 감사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특히 첫 수확을 얻었을 때는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 때이고 전혀 풍성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감사절 같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개가 강아지를 낳았는데 첫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가져오셔서 한동안 개를 길렀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나 첫 열매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시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첫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또 모든 복은 하나님이 주셨다는 그 사실을 정학하게 믿는 사람이 아니면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를 제대로 지키는 성도가 많지 않습니다. 오늘 맥추감사절 예배를 드리지만 마음에 아직도 첫 열매 감사가 분명치 않으신 분이 혹 계시다면 오늘 여러분 안에 이 복된 감사절을 반드시 회복하시고 여러분 삶 속에 분명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왜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실제로 첫 것이 깨달아지고 또 그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첫 열매 감사 신앙의 대표적인 예가 아브라함이 100세에 주신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던 일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셨으며,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맥추감사절은 믿음의 감사절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가진 자가 복된 추수감사절을 맞이한다고 성경은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맥추감사절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풍성한 추수감사절을 주시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 3:9  네 제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잠 3: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10절 말씀은 추수감사절을 말씀한 것이고 9절 말씀은 맥추감사절을 말씀한 것입니다.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이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특별한 감사절을 지키게 한 까닭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려고 맥추절을 지키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첫 열매는 내 것이다, 맥추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최초로 우리에게 임하셨던 일을 기록한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고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주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실 때를 이미 정해 놓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날 성령이 부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순절은 곧 맥추절입니다. 오순절은 맥추절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을 제대로 지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맥추절에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성령님께서 첫 열매의 의미를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 다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와 복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됩니다. 성령이 오시므로 인하여 구원의 복도, 그리고 우리 가운데 치유의 복도 그리고 교회의 복도 영생의 복도 사명의 복도 다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서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했습니다.
보증이라고 하신 것은 첫 열매의 가장 정확한 해석입니다. 보증이란 앞으로 전체를 소유하게 될 것을 전제로 하고 받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령을 받았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모든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면 구원의 약속도 교회의 약속도 천국의 약속도 믿음의 승리도 축복의 약속도 다 자신의 것이 되었음을 믿어도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성령님의 축복이 맥추절의 축복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맥추절의 중심인 첫 열매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우리 모두가 부활의 복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첫 열매를 강조하셨는가?
맥추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첫 열매를 드릴 때마다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게 되면 우리 안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데 우리의 모든 것이 다 감사의 제목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감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사람이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범사에 감사하게 됨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 골로새서를 기록한 곳은 별장이나 안락한 저택이 아닙니다. 로마의 감옥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힌 죄수의 몸으로 골로새 교인들에게 감사하며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성령님께서 지금 여러분 안에 오셨음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형편에서도 마음이 평안해짐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평안은 어떻게 오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 안에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이 너무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내 주위에 되어지는 일이 다 감사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감사는 마음의 평안에서 나옵니다.
15절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하시고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하신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평강과 감사가 항상 같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편안해져야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왜 감사하지 못하고 삽니까? 마음이 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 염려 때문에 내 마음이 긴장하고 있게 되면 모든 것이 짜증스럽고 화가 나고 싸우는 일만 생깁니다. 감사할 조건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 마음에 평강이 없으니까 감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긴장한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신경질내고 불평하고 싸움 밖에 안 나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계시면 아무리 주위 환경이 어둡다 하여도 두렵지 않습니다. 엄마가 함께 있는 것을 확인한 어린 아이는 방 안이 아무리 어두워도 두려움 없이 마음 놓고 평안히 잠을 잘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는 자는 감사가 넘칩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에게는 감사의 찬송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예수님께서 내가 겪는 모든 일, 내가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하여 말씀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다 이해가 되고 다 깨달아지고 그래서 모든 것이 다 감사하게 됩니다.
(16절)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 일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임하면 모든 것이 감사의 찬양 조건이 됩니다.


감리교 목회자 기도 모임에서 어느 목사 부부의 간증을 하셨는데 정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최근 셋째 아이를 얻었는데, 낳고 보니 다운증후군인 아이였습니다.
목사님 마음이 철렁 내려안더랍니다. 한동안 밥이 안 넘어가고 잠이 오지 않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원망같은 마음도 생기더랍니다. 어떻게 이 아이를 기르나> 한숨만 나오더랍니다.
그 때 지금까지 자신의 기쁨이 예수님 때문이 아님을 알았답니다.
그동안 기뻐했던 것은 마음에 드는 일, 좋은 일, 좋은 환경 때문이었고 조금만 환경이 어려우면 기쁨이 사라진다면, 내가 정말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깨달았답니다. 목사이면서도 내 기쁨의 조건은 환경과 여건이었지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믿음이 아니었구나. 셋째 아이가 다운증후군인 것을 보고 모든 기쁨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그것을 회개하며 기도하는 중에 그 아이가 다른 가정에 태어났다면 태어날 수 없었을 지 모른다. 먼저 검사하고 유산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버림 받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생각나면서 이 아이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사랑하셔서 맡겨주신 선물임을 깨달았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주신 것을 보면 우리 가정을 믿으시고 사랑하신 것이구나. 그것이 갑자기 너무 감사하더랍니다. 다음 날 어느 권사님이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더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하는 말을 듣고 확인을 하였답니다.
그 후 그 아이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로 보여서 너무나 감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걱정되지 않고 셋째 아이를 보고 목사님 마음에 너무 감사가 일어나는 것이 스스로가 너무 놀랍더라는 것입니다.
사모님의 간증은 너무 우리의 마음을 적셨습니다. 사모님은 다운증후군인 아이를 출산하고도 슬퍼하지도 괴로워하지도 못하였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내색도 할 수 없었답니다.
장애아를 둔 교인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에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예요. 힘을 얻으세요.” 그래놓고 자신은 셋째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고 낙심하고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면 그 교우는 어떻게 해요? 또 임신 중인 교인들이 있는데 사모님이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 임신한 교우들은 얼마나 불안해 할까?  두 아이는 엄마가 동생을 낳고 슬퍼하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러니 이래 저래 내색도 못하고 마음이 더 힘들었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물었답니다.
“하나님 이것이 저를 향한 선한 계획인가요?”
그 때 사모님 마음에 하나님께서 답을 주셨답니다. 갑자기 어느 날 여섯 살 된 딸에게 선물을 사다 주었는데, 그것을 뜯어보더니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던지며 화를 내고 울던 때가 생각나더랍니다. 그 때는 부모로서 도무지 딸을 이해시킬 수 없어서 힘들어 하던 일이 생각나고. ‘지금 내가 그렇구나!’ 하고 깨달아지더랍니다.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셨는데,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내 생각과 다르다고 원망하고 슬퍼하는 것이구나!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점점 깨달아지겠구나! 정말 이 아이가 축복이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삶,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겠구나!’ 생각되면서 너무나 감사하더랍니다. 슬픔과 고통이 다 떠나고 그 아이를 향한 계획이 깨달아지고 믿어지고 너무 감사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어떤 형편에서도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또 우리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인하여 내 삶 속에 있는 모든 것이 다 감사로 바뀌는 기적이 바로 맥추절에 담겨있는 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복된 삶을 살도록 감사를 깨닫게 해주시고 감사할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사할 때 하나님의 모든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도 예수님께서 힘을 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감사할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그 힘으로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리고 그 감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맥추절 감사를 드리게 되고 추수감사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17절)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에게 감사할 것에 대하여 감사할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도무지 감사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감사할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최근에 목사 안수 받는 것을 포기하신 전도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참 열정적인 예배 인도자였으며 성실한 사역자였고 최근 선교사로 헌신한 후 목사 안수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목사를 내게 바칠 수 있느냐?’ 물으셨답니다. 전도사님은 기도하다가 벌떡 일어나 예배당을 나왔답니다. 가슴이 벌렁벌렁거리는데, 다시 기도하기가 겁이 나더랍니다. “아니야, 이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야.” 부인하다가 다음 날 다시 기도하는데 ‘어제 그 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니?’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벌떡 일어나 나왔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문은 집요하였답니다. 왜 이러시나? 하나님 너무 하세요. 왜 제게 이렇게 엄청난 것을 요구하십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목사가 되기 위하여 준비해 왔는데, 목사가 아닌 평신도 신분으로 선교사로 가라니 너무 원통하고, 아버지가 얼마나 기다리시는 것인데, 장인 장모님은 무엇이라 하실까? 목사가 되어야 선교사로 갔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목회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목사가 아니면 앞 길이 다 막막해지더랍니다.
그 때 몇 년 전 들은 강의가 생각나더랍니다. “회교권 국가에 선교하려면 목사 신분이 아닌 평신도가 더 유리하다.” 머리에 망치로 맞은 듯 충격, 자신이 시리아로 선교사로 가기로 결정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깨닫고, 결국 “하나님 목사 안수를 포기하겠습니다.” 고백하였답니다. 그러나 통곡하였답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젠 목사도 아닙니다.” 그 때 ‘너 정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느냐? 그러면 되었다. 이제 나와 선교하자!’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답니다. “주님 저는 돈이 없어요.” 기도하고도 돈 걱정한다고 책망하실 줄 알았는데 ‘이제부터 내가 네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겠다.’ 하시더랍니다. 그 이후부터 너무나 모든 필요를 신실하시게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어느 사업체의 현지 책임자로 시리아에 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자기는 가장 큰 것을 드린 줄 알았는데, 목사 직을 드린 것은 너무 작은 것이고 너무나 많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얻었다!
이것이 맥추감사절의 복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예수님 안에만 있으면 어떤 처지와 형편에서도 감사할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감사가 삶을 바꾸는 기적이 됩니다.


저는 내일부터 한 달 동안 장로님들과 교인들의 배려로 안식월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과만의 시간을 갖도록 소환하심을 느낍니다.
지난 2007년 10월, 갑작스런 수술로 강제적으로 한 달을 쉬어야 했었습니다. 그때는 강제적으로 예수님과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 주님과 사이에 아주 조그만 틈이라도 있으면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주님만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후 1년 반 동안 저와 교회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준비된 마음이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재 소환령을 내리셨습니다. 주님은 제 마음으로 사모하며 준비하게 하시고 이제 안식월을 시작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한달 간을 지내려고 합니다. 저는 교우들에게도 이 한달이 예수님만 마라보는 아주 귀한 기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동안 혹시 담임 목사 때문에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 바라보는 눈 때문에 예수님만 바라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담임 목사가 없는 한 달, 예수님께서 오히려 교회 안에 예배 때나 모든 사역에 더 분명하고 더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한 달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월 이후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에 느끼는 것은 놀라운 일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그렇고 우리 교회에도 그렇고.
벌써부터 주님이 하실 일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성도 여러분, 명심해야 합니다. 맥추 감사절이 분명한 성도에게 풍성한 추수감사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로 시작하고 감사로 끝마치는 참으로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이 시간,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분명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다 감사 제목이 됩니다.

매번 맥추감사절은 성찬 주일과 같이 드리게 됩니다. 매월 첫 주일은 성찬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성찬을 받게 되는데, 이 성찬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놀라운 은혜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첫 열매를 드리는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정말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의 삶 속에 모든 것이 다 감사가 되는 기적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지금 너무너무 힘든 문제가 있습니까? 너무 슬픈 문제가 있습니까?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평강을 주시고 말씀을 주시고 감사할 힘을 주시는 시간이 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 기도하겠습니다.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님, 제가 이 시간 첫 열매로 주님께 감사합니다. 제게 평강을 주시고 그리고 제 문제에 대해 말씀을 주시고 그리고 감사할 힘을 주시옵소서.”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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