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눅2:1~7)
눅2: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눅2: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눅2: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눅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눅2: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눅2: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눅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금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맞이했습니다. 12월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의 달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 달 동안은 누가복음 2장에 기록된 성탄에 대한 말씀을 차례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런 가운데 성탄의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성탄에 대한 말씀이 신약성경에 와서 비로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성경에는 성탄을 예언하는 말씀이 적어도 350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성탄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되었고, 신약성경에서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예컨대 구약의 선지자 미가는 예수님의 탄생이 유대 베들레헴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700여 년이나 앞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이미 오래 전에 예언했습니다.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창35:19에 의하면, 베들레헴의 원래 이름은 에브랏 곧 에브라다였습니다. 그러다가 에브라다는 점차 “떡집”을 의미하는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본시 이 베들레헴은 유다 지파에 속하는 하나의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선지자 미가는 장차 이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메시야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근본은 상고부터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참고로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은 유다라고 하고,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은 유대라고 합니다. 똑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유다, 곧 유대에 속하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눅1:26에 의하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본래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던 곳은 갈릴리의 나사렛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마리아가 자신이 살던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예수님을 낳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절대적인 권위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도 메시야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를 위해서라도, 예수님은 반드시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셔야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과연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게 되었는지를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을 위하여,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서 한 가지 특별한 사건을 예비하셨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호적이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는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의 명에 따라서, 로마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호적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갈릴리의 나사렛을 떠나 유대의 베들레헴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섭리를 밝히기 위하여,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의 상황을 세 분야로 나누어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로마 제국 전체의 세계적인 상황입니다. 둘째,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상황입니다. 셋째, 요셉과 마리아의 개인적인 상황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이와 같이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부터 이번 한 달 동안 성탄에 대한 말씀을 계속해서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 모두 성탄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과 평강을 풍성하게 누리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로마 제국의 세계적인 상황(The World Setting, 1~2절).
눅2: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오늘 본문은 “그 때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눅1:5을 보면, “유대 왕 헤롯 때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 나라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세워서 유대 나라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구약의 에돔 사람, 곧 신약의 이두매 사람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과 에돔인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점을 이용해서, 로마는 이두매 사람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마태복음 2장을 보면, 동방의 박사들이 헤롯 왕에게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았습니다. 그러자 헤롯 왕은 자기의 왕위가 위태롭게 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베들레헴과 그 근처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게 했습니다.
바로 이 헤롯이 유대의 왕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 기록된 대로, 그 때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천사 가브리엘이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그에게 아들을 낳아줄 것임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여섯 달이 지났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또다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갈릴리의 나사렛에 살던 한 처녀 마리아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그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될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과연 천사가 전해준 대로, 먼저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곧바로 아들을 잉태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후에 해산할 기한이 차서, 엘리사벳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예수님의 사자로, 예수님보다 여섯 달 먼저 온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여섯 달 후, 하나님은 드디어 자기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도록, 모든 상황을 섭리하셨습니다. 우선 하나님은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를 사용하셨습니다.
여기서 “가이사”라는 말은 로마의 황제를 가리키는 칭호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아구스도”는 하나의 형용사로서, 그 뜻은 “매우 존귀한”(highly honored)입니다. 그러니까 “가이사 아구스도”라는 말의 뜻은 “매우 존귀한 황제”가 될 것입니다.
그의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 63 B.C.~14 A.D.)였습니다. 그는 주전 31년부터 주후 14년까지 45년 동안 로마를 통치했습니다. 그는 강대한 로마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이른바 “로마의 평화”(the Pax Romana)를 이룩한 인물이 바로 그였습니다.
그래서 주전 27년 로마의 원로원은 그에게 “아구스도”라는 칭호를 부여했습니다. 그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본시 이 “아구스도”라는 말은 신들에게 붙이는 칭호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신으로 숭배를 받아, 여러 곳에 그를 위한 신전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가이사 아구스도는 천하를 제패하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대로,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인구 조사입니다.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에 의해서, 모든 사람은 14년마다 한번씩 호적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의 호적, 곧 인구 조사의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징병과 세금 징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경우는 로마군으로 징집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호적은 순전히 세금 징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이방 나라인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일을 좋아했을 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호적하기 위해서 각자가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니 여간 불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 때 갈릴리에서는 이것을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행5: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주후 6년에 호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갈릴리에서는 그 것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주동자는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 곧 그리욧의 유다가 아닌 갈릴리의 유다였습니다. 그러나 그 폭동은 곧 진압되었습니다.
눅2: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그 당시 성지 이스라엘은 크게 보아 수리아의 관할 구역에 속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수리아의 총독은 구레뇨였습니다. 그는 두 번에 걸쳐서 수리아의 총독이 되었습니다. 처음은 주전 6년~4년이었고, 나중은 주후 6년~9년이었습니다.
그는 주후 6년 유대 나라에 있었던 호적을 책임졌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탄생하시고 난 뒤에 이루어졌던 호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호적은 그 14년 이전인 주전 8년에 있었던 것입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주전 8년에 호적에 관한 영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첫 번째 실시되었던 호적이었던 관계로, 시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리아 지역에서는 구레뇨가 총독이 될 때까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를 못했습니다.
주전 6년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이 되면서, 수리아 지역의 호적은 드디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유대를 다스리고 있던 헤롯 왕에게 전달되어 시행되는 데에 또한 1~2년이 소요되었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 연대를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레뇨가 수리아의 첫 번 총독이 된 주전 6년 이후에 탄생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호적이 1~2년 안에 이루어졌다고 보면, 예수님은 주전 4년 무렵에 탄생하셨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이 탄생할 당시의 세계적인 상황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천하로 호적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수리아의 총독 구레뇨는 이 명을 유대 왕 헤롯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다 호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가이사 아구스도나, 수리아의 총독 구레뇨나, 또한 유대의 왕 헤롯이나 모두가 하나님에 의해서 쓰임을 받은 도구들에 불과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사의 왕 고레스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을 위해서, 가이사 아구스도와 구레뇨와 헤롯 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류의 모든 역사를 홀로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와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을 힘있게 의뢰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하늘 나라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을 호적한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을 앙망하며,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언제나 그 선하신 뜻 가운데서, 우리의 발걸음을 선하신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눅2: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눅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당시 로마인들은 각자가 살고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호적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게 손쉬운 호적 제도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독자적인 호적 제도에 따라서, 각자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을 했습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대로,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이전에 어떠한 선례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헤롯 왕은 유대인들의 방식에 따라서 지파별로, 족속별로, 집별로 인구 조사를 행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족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법적 아버지인 요셉은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따라서 요셉은 그의 본적지인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해야만 했습니다.
요셉은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향했습니다. 때는 겨울철이었습니다. 비가 내릴 때였습니다. 게다가 요셉의 아내 마리아는 해산할 기한이 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먼길을 떠나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에 따라서, 수리아의 총독 구레뇨는 자기 구역 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적을 끝마쳐야 할 기한을 확실하게 못박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셉은 힘든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없이 먼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수리아의 총독 구레뇨는 이 호적으로 말미암아, 가이사 아구스도의 상당한 신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이 호적이 성공적으로 잘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임기가 끝나고 나서, 뒤에 다시 한번 더 수리아의 총독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눅2: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여기서 밝히고 있듯이, 요셉은 호적하기 위하여 자기 혼자 베들레헴으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내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요셉의 아내 마리아를 가리켜서, 요셉과 약혼한 사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1: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천사의 분부에 따라서, 요셉은 그의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는 분명히 약혼을 끝내고, 그들이 결혼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아직도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 상태에 있는 것처럼 언급을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그들은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그들이 동침하지 않았음을 밝혔습니다. 이 사실을 누가복음은 오늘 본문에서 다른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법적으로는 결혼을 했지만, 아직도 그들은 약혼 관계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직선 거리만 130km에 이릅니다. 만일 요단강을 건너서 베뢰아 지방으로 돌아간다면, 그 거리는 훨씬 더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베들레헴은 해발 600m 고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호적하러 “올라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그러한 몸으로 먼길을 여행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요셉은 마리아를 데리고 갔습니까? 마리아도 다윗의 자손이었기에, 베들레헴으로 가서 호적해야만 했었습니까?
오늘 본문은 마리아가 동행한 것이 의무적인지 자발적인지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여자도 세금을 내기는 하지만 본인이 호적하러 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한 가정의 호주가 그의 가족을 대신해서 호적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가 나사렛에 혼자 남아서 아들을 낳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했다는 사실을 천사를 통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사람들은 마리아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요셉은 마리아를 주변의 비난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갔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무엇입니까?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영을 내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만일 수리아의 총독 구레뇨가 호적하는 기일을 정하여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만일 헤롯 왕이 각자의 처소에서도 호적할 수 있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은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에서 탄생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는 예언은 응하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 성경은 절대적 권위를 상실하게 되고, 아울러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도 분명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그 당시 로마 제국의 세계적인 상황과 그 당시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상황을 섭리 가운데 주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들로 하여금 베들레헴으로 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눅12: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눅12: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든 일을 당하셨습니까? 처해 있는 상황이 너무 어렵습니까? 그럴지라도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섭리하시며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의 손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의 세세한 것까지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정녕 늘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날마다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요셉과 마리아의 개인적 상황(The Personal Setting, 6~7절).
눅2: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드디어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마리아가 만삭의 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여행길을 재촉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가급적 천천히 움직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나사렛을 출발한 지 아마도 닷새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베들레헴에서 얼마 동안을 머물렀는지 알지를 못합니다. 호적할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의 순번이 될 때까지 기다렸을 수도 있습니다. 호적은 끝이 났지만,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찼기 때문에 그 곳에 그대로 머물렀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때 그들이 갈릴리 나사렛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반드시 그대로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섭시다. 그리하면 우리가 붙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찼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님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이는 분명히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는 모두 정상적인 방법을 따랐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은 마리아의 태중에서 10개월을 자라셨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태어나셨습니다. 눅2:21 말씀처럼, 예수님은 난지 팔 일이 되어 할례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지혜도 자라시며, 그 키도 자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탄생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기 위해서는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지시고, 우리와 똑같은 성장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능히 도우시며, 우리를 모든 고통 가운데서 능히 구원해 내십니다.
히2: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히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셨습니까? 혼자서 괴로워하지 맙시다. 예수님에게 아뢰며,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합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시험을 능히 이겨내게 하실 것입니다.
눅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마리아는 “외아들”을 낳은 것이 아니라, “첫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후에, 계속해서 자녀들을 낳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후, 동정녀의 상태를 그대로 지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마13:15~16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막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눅8:19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요2: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이와 같이 예수님의 형제들과 누이들에 대해서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후에 자녀를 낳지 않고 끝까지 동정녀로 살았다는 천주교의 주장은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내용입니다.
마리아는 그의 첫아들 예수님을 낳아서 강보로 쌌습니다. 강보는 갓난아기를 둘러싸는 천을 뜻합니다. 강보는 갓난아기의 체온을 보호해줍니다. 그리고 몸에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보호해줍니다. 아울러 팔과 다리가 곧게 자라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모양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도 알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키도 얼마 안되고, 몸무게도 얼마 나가지 않는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태어나시자 말자, 다른 아이들처럼 강보에 싸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놀라운 말씀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구유에 뉘었으니.” 아기 예수님은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구유는 가축의 꼴을 담는 그릇, 곧 여물통을 의미합니다. 갓난아기가 태어나면 따뜻한 방안에 눕혀야 하는데,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구유에 눕혔습니다.
우선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구유에 누이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음이 분명합니다.
오늘날 유대 베들레헴에 가면, 「예수 탄생 교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을 기념해서, 그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장소를 가보면, 그 곳은 동굴로 되어있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동굴이 가축을 기르는 마구간으로 이용되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 당시 마구간에서 사용하던 구유는 갓난아이를 누이기에는 적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강보에 싼 아기 예수님을 임시로 구유에 뉘었습니다. 그러면 왜 아기 예수님은 마구간의 구유에 뉘일 수밖에 없었습니까?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이와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베들레헴은 작은 동네였기에, 그 곳에 숙박 시설이 발달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호적하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 곳의 숙박 시설이 동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숙박 시설 앞에는 으레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당시의 숙박 시설 앞에는 으레 마구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나귀나 노새와 같은 짐승들이 교통 수단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여관에 딸린 마구간에서 그들의 짐을 풀었습니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이 더럽고 냄새나는 그 곳에서 아기 예수님을 해산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후에 준비해온 강보에 아기 예수님을 싸서 구유에 눕혀야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며칠이나 마구간에 머물렀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를 못합니다. 단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호적을 마친 사람들이 되돌아가고 난 뒤에는, 그들이 여관에 머물 곳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이와 같이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에게 이르렀을 때, 아기 예수님은 더 이상 마구간의 구유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는 이미 집으로 옮기고 난 뒤였습니다. 말하자면 여관에 있을 곳이 생겼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베들레헴에서 탄생시키기 위해서 가이사 아구스도를 사용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로마의 황제를 동원하시는 하나님이 왜 그 아들의 탄생을 위해서는 마구간과 구유만을 준비하셨을까요?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서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난해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부요해졌습니다. 예수님이 마구간의 구유에 누이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서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구간이 어떠한 곳입니까? 더럽고 지저분한 곳입니다. 추하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마구간은 우리의 죄를 잘 상징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마구간보다도 우리의 죄를 더 더럽게, 더 역겹게 여기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더럽고 추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를 모두 담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우리의 모든 허물이 깨끗하여진 것입니다.
또한 구유는 어떠한 곳입니까? 짐승들에게 줄 먹이를 담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구유에 뉘이신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생명의 양식으로 주신 것을 잘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몸과 마음과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기쁨으로 예수님을 위하여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뜻깊은 성탄의 달을 맞이해서, 우리 모두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본받읍시다. 우리 모두 가난한 심령이 되어, 우리 속에 천국을 풍성히 소유합시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마음을 예수님의 보혈로 청결하게 하여,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밝히 바라봅시다.
아울러 우리 모두 성탄의 기쁨으로 충만해서, 우리를 짓누르는 죄의 짐과 세상적인 근심과 염려 및 두려움에서 온전히 벗어납시다. 그리고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우리 주변의 모든 이웃들과도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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