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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성탄절 설교

누가 성탄의 주를 맞이하는가? /누가복음2:1~14

by 【고동엽】 2022. 4. 7.

누가 성탄의 주를 맞이하는가?

누가복음2:1~14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예배

2:1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戶籍하라 하였으니

2: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總督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2:3 모든 사람이 戶籍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2:4 요셉도 다윗의 집 族屬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2: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2: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2: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2: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 하는지라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설교:

    주님의 탄생 年度와 날짜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유인즉, 1세기는 그리스도인들의 逼迫으로 당시는 생일보다 死亡일을 더 기념하는 風習이 있어서 크리스마스가 없었습니다. 2세기도 거의 비슷한 이유에 쫓기던 사도들이 순교하여 체계적인 정립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당시 만연되었던 우상종교에 대항하기 위하여 주님의 생일을 성대히 경축하게 되었고, 4세기에 들어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탄생일의 중요성을 언급하였으나 354년 로마의 동짓날인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켰습니다.

12월 25일은 낮의 길이가 가장 짧았다가 차츰 길어지는 날이요, 이는 생명의 상징이므로 그 날로 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 황제가 주님의 탄생 날짜에 관한 여러 설을 칙령으로 다 폐기하고 12월 25일로 확정지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X-mass라고도 하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희랍어 첫 글자 "X"가 그리스도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여기에 중세에 사용하던 영어 고어 "mass(미사)"를 붙인 것으로 “주님 탄생하신 날 미사를 들인다”는 뜻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무시를 당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사람에게 “싫어버린바 된지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 없습니다.

필리핀에 가보면 사람들이 참으로 순지하여 보이고 친절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선교지 방문을 하시는 분들이 간혹 그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한답니다. 그러면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고 합니다. 그토록 순진한 사람들이 무시당하면 무서운 짓을 한답니다. 갑자기 칼을 들고 와서 찌르기도 하고 총을 난사하기도 한답니다.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그토록 모욕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교도소 집회를 몇 번 해보았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천진난만한지요, 그들이 장기수라고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번 화가 나면 자기를 통제하지 못해 그렇게 일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이토록 화가 나면 참기 어려운데 하물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푸대접을 당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일일까요?

그분이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무지한 인간들은 그를 기다린다고 하면서도 그를 박대했습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는데 그를 무시할 뿐 아니라 그를 박대하고 심지어는 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정말 기막힌 일이 아닙니까?  몰라서 그랬다면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탄생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으나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 몇가지로 살펴봅니다.

 

1. 베들레헴 여관 주인입니다.

그는 요셉과 마리아가 임신한 몸으로 방을 찾을 때 그를 박대했습니다. 실상 사람들이 너무 밀려 방이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방이 없어도 임신된 여인이고 해산의 진통이 닥쳐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도 무시했습니다.

왜요? 그 속의 탐심이 양심을 마비 시켰습니다. 한몫을 챙겨야 하겠다는 그 마음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돌볼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 인간의 탐심에 가득한 완악함이 예수를 외양간에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짐승이 사는 외양간, 그곳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입니다. 천지의 주인이신 그분이 우리를 구하러 오신 그분이 짐승대접을 받으셨습니다.

비극 중에 비극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아마도 그 여관주인이 천국에 있을지 지옥에 있을지 모르겠으나 믿었으면 천국, 인 믿었으면 지옥일 것이나 어디 있든지 참으로 가슴 아팠을 것입니다. “내가 그를 내쫓다니,,,,, 세상에 내가 미쳤지, 아이고 하나님이 내 집에 찾아오셨는데 그를 몰라보고 이 짓을 하다니...” 하며 애통해 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직은 이익에 눈이 어두워 예수님을 박대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혹시 생업에 너무 바빠서 도움을 요청하는 이웃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밖으로 내어 쫓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요즘 성탄절에 세상 장사꾼들은 난리입니다. 성탄절이 한몫 챙기는 시기입니다. 그들에게 성탄절이 뭔날이냐 하면 예수 탄생의 날이라고 앎니다. 그러나 믿지는 않습니다. “축 성탄”이라 새겨진 카드도 팔고 선물도 팔고 하지만 예수를 믿지도 않고 교회 다닐 맘도 없습니다.

바로 베들레헴 여관주인과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2. 당시의 제사장과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에게 어느 날 동방에서 박사들이 찾아와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십니까?” 그러자 헤롯 왕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서기관들이 모여 소동을 벌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장차 오실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고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대로 에스겔 34장과 미가5장2절을 인용하여 베들레헴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갈 때 당연히 따라가야 할 사람이 아닙니까? 동방박사들이 수천리 떨어진 곳에서 메사야, 우대인의 왕이 탄생한 것을 축하하러 왔다는데 그들은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한바탕 소동으로 끝을 맺곤 맙니다.

왜 그 동방 박사들을 안 따라 갔을까요?

지식적으로는 메시야가 베들레헴에 탄생한다는 사실을 아는데 실제로는 못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수천년을 기다린 메시야가 오셨다는데도 잠시 소동을 피우고 마는 것입니다.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대제사장이, 성경을 가르친다는 서기관이 어찌 이 엄청난 일을 했을까요?

아마도 그들도 마찬가지 그 기회를 잃고 예수를 무시했던 그 일로 영원토록 후회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옆집인 사람들, 축복이지만 또한 불행입니다. 믿으면 축복이지만 안 믿으면 불행입니다. 교회 옆에 살면서 천국복음이 날마다 외쳐지는데도 그 소리를 듣지도 알지도 못하여 지옥 갔다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3. 예수를 제거하려던 헤롯 왕입니다.

그는 동방박사들이 묻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유대인의 왕!” 당시는 반역, 혁명이 자주 일어나던 때라 유대 땅을 다스리던 헤롯에게는 유대인의 왕이란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할 소립니다. 왜냐하면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도 아닌 사람이 유대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니 구테타 같은 것이 일어날까 늘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런데 유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뇨? 하니 소동이 벌어질 수밖에요,

그래서 제사장 서기관 모아다가 메시야가 어디서 나냐고 묻습니다. 그리고는 동방박사들에게 찾거든 내게도 알려서 나도 경배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거짓입니다.

예수를 죽이려는 간계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를 축하하고 경배하지는 못해도 정권욕에 사로잡혀 죽이려는 짓을 한 사람이 헤롯입니다.

나중에 동방박사들이 다른 길로 돌아 가버리자 군대를 보내 배들레헴의 아기들을 몰살시키는 짓을 합니다.

 

이 헤롯은 마귀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사악한 마귀의 앞잡이입니다. 하나님이 자기가 통솔하는 영역에 탄생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리려고 했던 권력에 사로 잡혔던 헤롯, 그는 분명 지옥행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그 곳에서 얼마나 통탄해 할까요?

 

오늘 우리 시대에도 헤롯 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대적하는 세력, 하나님 나라를 향해 칼을 들고 있는 세력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대표적인 세력이 공산주의이고 모슬렘입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가두고 죽이는 세력, 우리나라는 그런 일이 없어 잘 모르지만 세계 각국에서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헤롯 같은 이들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할까요?

 

1. 양들을 지키는 목동입니다. 

베들레헴 들판에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듣습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양을 치던 목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양과 함께 밤을 새우는 중에 정말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즉시 베들레헴으로 갔고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성탄의 아기 예수, 그 예수는 목동에게 경배를 받았습니다.

왜일까요?

왜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나타났을까요? 차라리 헤롯왕에게든지, 아니면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에게 나타나지 왜 목동일까요?

두가지 이유입니다. 1)하나는 예수님이 장자 목자로 사역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또 하나는 그들이 바로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로 믿어야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일에 성실하기도 해야 하나 예수를 올바로 믿어야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2. 하늘을 연구하던 동방박사들입니다.

동방박사가 몇 명입니까? 세 명이라고 하나 실상 정확한 것은 모릅니다. 예물이 세 개이기에 세명일 것이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 먼 곳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별을 연구하던 사람들입니다. 이를테면 천문학자들입니다. 그들이 어느 날 이상한 한별을 발견하고 그 별이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별만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오늘 우리도 동방박사들이 만난 그 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별은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상징합니다. 동방박사들을 예수님께로 인도 한 그 별, 오늘 우리에게는 성경이 그 역할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며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바로 알아 그분을 영접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성경을 통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완전히 거짓이며 속임수입니다.

그러기에 참 믿음으로 성경을 배우고 그 진리를 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성전에서 주님을 기다리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탄생8일만에 할례를 받으러 예루살렘 성전에 갔을때 그를 기다리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이고 또 하나는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여선지자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聖殿 중심의 생활을 했으며 晝夜에 금식하며 기도로 섬기던 사람입니다. 두 사람 다 나이 많아 세상의 소망이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생활하다가 어느 날 아기 예수를 만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그 아기 예수를 안고 찬송을 돌리며 영광을 돌렸던 사람들입니다. 

 

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1)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던 사람이며  2) 믿음을 갖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살아 있는 믿음을 가졌고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 그 약속을 삶 속에서 실천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왜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치 못했나요? 

두가지 이유입니다.

1)알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지식으로는 알았으나 실제로는 믿지 않았습니다.

혹 우리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할 수 없습니다. 

 

2)설마 했습니다. 

설마 예수가 이렇게 초라하게 오실려고 ?

설마 예수가 우리 동네에 오시려고 ?

설마 예수가 내 옆에 오실려고 ?

 

그 설마가 영광의 주가 이 땅에 오신 것을 온전히 영접치 못하고 비극의 인물들로 성경에 기록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어린이들에게 성탄절이 무슨 날이냐 물으면 싼타 크로스 선물 받는 날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어떤 이에게는 성탄은 축복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성탄은 심판의 서곡입니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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