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감사, 드릴 수 있을까?
욥기1:13~22
주일낮 설교 (맥추감사절) 최일환 목사
1:13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1:14 사자가 욥에게 와서 고하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1:15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1:16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1:17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1:18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1:19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한지라
1: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 하지 아니하니라.
설교:
오늘은 맥추 감사절입니다. 어떤 분이 기독교 인터넷싸이트에 왜 현대에서도 맥추 감사절을 지켜야하느냐고 질문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요즘은 보리농사 짓는 사람도 별러 없는데 왜 유대인들이 지켰던 맥추절을 우리가 지켜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절기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나타난 절기는 그 의미를 잘 살려서 지켜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와 해당 사항 없다고 다 폐지시킬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맥추감사절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보리 농사 인구는 전인구의 0.1%도 안됩니다. 그런데 교회는 매년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맥추 감사절은 꼭 보리농사의 추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수천년 동안 1차 산업사회를 이루며 살다가 2차 산업인 공업사회, 상업사회로 바뀌고 이제 제 3차 산업인 서비스 산업 사회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제 4차 산업이란 인터넷, I.T산업이 돈버는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2001년 현재 우리나라 농업인구는 393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0%가 안되는 상황이며 그중 60대 이상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과거의 인구의 80~90%가 농사를 지을 때 보다 더 풍성하게 누리며 먹고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왜 맥추절을 지키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밭, 논농사는 안 짓지만 그러나 다른 일로 경제적 소득을 얻고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그것도 일종의 “농사”이며 “수확”이며 “추수”입니다. 꼭 보리농사 감사절기가 아닌 한해의 전반기의 수확을 감사하며 지내는 절기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한해의 뒤를 돌아보며 우리의 삶을 점검해 보아야 하고 또한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감사를 표시하는 절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형태의 감사를 드리며 살아야 할까요?
저는 오늘 성경에 기록 된 위대한 인물 한사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욥”입니다. 이 욥이란 인물은 모세시대의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자료에 의하면 그는 엄청난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욥기1장 1절을 보면 그는 대단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위인전이라 할지라도 역사이래로 이렇게 대단한 칭찬을 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1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者더라”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대단한 재산을 소유한 부자였습니다. 얼마나 부자였느냐? 그가 갖고 있는 재산만 살펴봐도 양이 7,000마리, 약대가 3,000마리, 소가500겨리, 암나귀가 500마리 있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종을 거느리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를 “동방 사람 중 가장 큰 자”라고 소개합니다. 저는 특히 약대 3,000이란 말이 마음을 끌게 합니다. 약대는 오늘날의 교통수단입니다. 그러니까 약대 3000마리를 소유했다면 영업용 택시 3000대를 부리며 상업을 했던 사람인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는 “자녀교육의 성공자”이기도 했습니다. 아들7명 딸3명을 슬하에 두고 있었는데 그 자녀들이 아버지가 섬기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녀 10명, 모두를 믿음으로 양육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정도 되니 하나님이 그의 신앙을 인정하고 자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도 좋고 부자도 되는 것,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많은 인물들이 그런 복을 누렸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그랬습니다. 또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욥도 그런 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감사하는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0절부터 22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 하지 아니하니라.”
생각해보세요.
자식 10명이 하루아침에 몰살을 당합니다. 엄청난 재산도 다 잃게 됩니다. 그런데도 그는 한마디 원망은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욥은 어떤 신앙을 가졌기에 그런 엄청난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1. 하나님 절대 주권을 믿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환란과 고난이 결코 우연히 생긴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모르시고 계신 것도 아닌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섭리가 있는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상황을 이해 못한다고 어찌하여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하며 원망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어느 것 하나라도 결코 우연히 없이 하나님의 손길로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고난과 역경을 통해 주실 선물이 있기에 하나님을 찬송하며 오히려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습니까?
혹, 내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은 믿고 그렇지 못한 것은 믿지 못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엄청난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우리는 “왜? 어째서?” 하며 “하나님은 뭐하고 계셨느냐”고 하진 항변하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 딱 벌어지면 누구나 원망과 불평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대학에 떨어졌을 때, 교통사고로 사랑하던 식구를 잃었을 때, 건강하던 사람이 어느 날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예기치 못한 태풍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았을 때, 이럴 때 “하나님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나이까?” 라며 원망 불평하게 됩니다.
성경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기적 같은 탈출을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가르고 건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얼마못가 물이 없어 고통을 당하자 모세를 향해 원망 불평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원망 불평입니다.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장안의 성도 여러분!
지난 6개월을 돌아보세요. 어려움도 있었고 힘든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때론 왜 하나님은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시나? 원망이 생기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무조건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모든 만물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럴 때 욥의 신앙을 우리도 소유케 되는 것입니다.
2. 빈손신앙을 가졌습니다.
욥은 고백합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무슨 말입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한차원 더 높습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되 주신분도 하나님이다,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 어떻게 되든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세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빈손 신앙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주신분도 하나님,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 우리는 결국 빈손입니다. 문제는 맡기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잘 사용하다가 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언젠가는 다 그대로 두고 떠날 인생입니다. 죽어서도 가져가고 싶어 관속에 여러 가지 넣고 하지만 그러나 다 헛수고입니다. 죽는 날에는 오직 몸둥아리도 땅에 두고 영혼만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설사 안다 해도 아직은 죽을 때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고 아등바등 움켜잡으며 사는 것입니다.
욥은 재물관, 즉 물질 소유관이 분명하게 정립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엄청난 재산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그래서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국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고 싶은 생각을 해보신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수원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신적은 있습니까? 꿈에라도 그런 일이 없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에게 맡기실까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만물이 하나님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셨다. 언젠가는 다 거두어 가실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는 성도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빈손 신앙을 정립하셔야 합니다.
1)내가 가진 것은 다 주님의 것이다.
2)그 모든 것은 주님이 맡기신 것이다.
3)주님은 필요해서 우리에게 맡겨 주셨다.
4)때가 되면 주인이신 하나님은 거두어 가신다.
5)맡기신 주님은 그 맡은 분량에 대해 계산하실 날이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젠가는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신앙만 제대로 세워진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능력을 갖게 되고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환경에 영향 받지 않는 성숙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진정한 크리스챤은 범사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재정 집사님들이 재정을 정리한후 제게 빈 봉투를 전해 주십니다. 그중에 “범사에 감사합니다.” 라는 봉투가 몇 개씩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무심코 그 범사가 뭘까 생각하게 됩니다. 범사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즐거운 일, 기쁘고 잘 된 일만 감사한다면 그것은 평범한 신앙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크리스챤은 역경과 환난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저히 감당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 때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놀라운 복이 됩니다.
욥은 그런 신앙을 가졌기에 그는 그 엄청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감동시킬 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숙한 성도는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그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더 크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욥이 가졌던 믿음의 자세를 보세요.
그는 우리 같으면 심장마비 일으킬만한 소식을 듣고도 1)겉옷을 찢고 애통했습니다. 그리고 2)오히려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그러면서 단 한마디라도 3)하나님을 향해 원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에게는 절대로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욥이 당한 그런 환난과 역경 속에서 찬송과 영광을 돌리며 감사할 수 있다면 그 욥이 누렸던 복을 우리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아주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사단이 하는 짓입니다. 1)사단은 지금도 땅에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살피고 있다는 것이며 2)어찌하든지 성도가 복을 받지 못하도록 시샘하며 질투를 하고 있으며 3)결국 성도를 공격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며 대적하여 망하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라는 것입니다.
그 시험의 방법은 대게 3단계입니다.
1)일단계 시험인데 그것은 물질의 시험입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날려보기도 하고 도적질을 당하기도 하고 천재지변을 겪게도 합니다.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경제적 손실 앞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가? 많은 분들이 이 첫 단계는 통과합니다.
2)두번째 단계는 자녀를 건드리는 시험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녀들을 놓고 시험을 합니다. 욥이 10명의 자녀가 하루에 몰살당하는 상황을 맞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기절할 상황이고 심장이 멈출 상황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찌될까요? 아마도 하나님을 향해 수없이 욕을하고 하나님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을까요?
많은 분들이 이 두 번째 단계에서 넘어집니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하나님이 자랑스럽게 여기십니다. 아브라함도 이 단계 시험에서 성공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3)세번째는 건강 시험입니다.
몸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질병이 생겨 고통스럽습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또 예상치 못한 불치병의 선고를 받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위협을 겪게 해봅니다. 그때 진정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송을 드릴 수 있는가를 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도 넘어집니다.
그러나 욥은 극복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립니다.
성도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런 욥의 믿음을 소유하기 원합니다. 바라기는 욥은 원래 뛰어난 사람이니 그렇게 할 수 있고 나 같은 사람은 안돼 하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욥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통성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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