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문부성에서 독도의 영유권에 관한 문제를
자기들 고등학교 역사 해설서에 싣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독도가 일본 땅임을 주장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독도 문제에 관해서 우리 정부는 그간 비교적 관대하게 대응해왔습니다.
딱 한 가지 사실 때문입니다.
독도는 누구 아무리 뭐라고 해도 우리 땅이라는 겁니다.
아무리 일본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을 하더라도
독도 자체가 우리 땅인 걸 어떻게 하느냐는 식의 대응이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독도가 우리 땅인걸 뭘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 정부의 그런 대응 방식이 세계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일본의 욕심에 근거한 집요하기만한 이런저런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
세계는 은근히 일본의 편에 기울어 있습니다.
이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또 현실입니다.
때문에 독도 문제에 관해서 마음이 급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장훈이라고 하는 가수가 워싱톤포스트라고 하는
미국 최대의 보수 신문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광고를 낸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사실 우리 민족은 살고 있는 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기록을 하거나 등록을 하거나 어디 써서 올린다는 것에 매우 약한 민족입니다.
땅문서 없어도,
집문서 없어도
그냥 지금 내가 농사 짓고 있고 살고 있는 것만으로
내 것이라고 여기고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렇게 살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내 것조차도 순식간에 남의 것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하더라도 확실하게 해둬야만 합니다.
독도문제도 단순히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라 일본의 치밀한 대응을
잘 판단해서 더 치밀하고 더 정확하게 대응해야만 합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독도가 아무리 우리 땅이라고 외쳐도
꼼짝없이 일본 땅이 되어버리는 때가 올 수 도 있습니다.
심각하게 긴장을 해야만 합니다.
오늘 길게 독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오늘 본문의 등장인물들 때문입니다.
어떤 인물들입니까?
동방박사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의 역사에 있어서 오늘 본문의 동방박사들은
정말 뜬금없는 사람들의 등장입니다.
이건 유대인들의 역사에 있어서 두고두고 치욕적인 것입니다.
왜 치욕적입니까?
유대인들은 사실 수 천 년 동안 메시야의 오심을 기대하고 살았던 민족입니다.
그들의 역사 전체가 다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참고 인내하고 견디고 사는 내용입니다.
사19:20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의 연고로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이스라엘 역사의 특징은 한마디로 모진 고난 속에서도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참고 견딘 역사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뭡니까?
바로 그 오실 메시야가 오셨을 때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아무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방의 박사들이 먼저 그 사실을 보고 알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자기들의 왕으로 오시고,
자기들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무도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동방의 박사들이 먼저 알고 예루살렘으로 찾아오자
그들의 성은 발칵 뒤집혀 버렸습니다.
그러니 수없이 많은 침략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결코 놓치지 않고 있었던
메시야를 기다리는 믿음은 결국 한 순간의 꿈에 불과했고
그냥 자기들의 영원한 희망사항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동방박사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해야만 할 일을 차지해버립니다.
한마디로 저들을 깨어 있지 못했으면서도 깨어 있는 척 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왕으로, 온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예수님이 오셨다고 잔치를 베풀면 원래 누가 베풀어야 합니까?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잔치는 고사하고 예수님께서 오시는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동방박사들이 잔치를 하는 겁니다.
그것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서 잔치를 합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의 잔치는 어떤 잔치입니까?
이건 사실 좋지 않는 쪽의 잔치입니다.
왜죠?
단 일회성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와서 경배는 했지만 그저 한 번 경배한 것으로 다 끝내버린 것입니다.
인사치례로 한 번 찾아 온 것 일뿐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겁니다.
왜 기독교가 썩어갑니까?
이렇듯
일회성으로,
행사로,
이벤트로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행사전문 성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여는 연례적인 행사들을 다 쫓아다니는 사람의 숫자가 갈수록 늘어납니다.
그러니까 속살은 전혀 찌우지 못하고 겉모습만 번드르르 하면 된다고들 생각을 합니다.
내용은 아주 부실한데 겉만 단단해 보이는 겁니다.
일주일 내내 딴 사람으로 살다가 주일 하루 와서 잠간 엎드리고
예수 믿는 도리를 다했다고 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아예 세상 것에 대해서 눌러 앉은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이미 그것으로 다 죽은 시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썩어서 악취가 나는 겁니다.
암 4:10 “내가 너희 중에 염병이 임하게 하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삶의 자리까지 하나님께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않고
주일 한 번 예배드리고 도로 제 자리로 돌아가 버리는 일회성 신앙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때문에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질 않고
온통 썩은 냄새만 가득한 것입니다.
세상으로 돌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 마음도 실력도 없는 겁니다.
주일 하루 나와서 밀린 예물만 갖다 바치는 것이 옳은 신앙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자리에서 더 잘해야만 바른 신앙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동방박사들은 경배만 하고 돌아갔고,
유대인들은 아예 경배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성탄절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지 않는지 확인해봐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만 합니다.
성탄절조차도 우리 것만을 한 몫 챙기는 날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삶의 어려운 질고를 지고 가는 이들에게
사랑과 이해와 관용과 나눔과 베품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말구유에 누워 있습니다.
어려운 형편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외침과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동방박사들처럼 별을 보고 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죽어가고 있는 어려운 이웃들의 소리는 들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러자고 오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누구에게 뺏겨 버리고 있는지 다시금 돌아보고
우리가 지고가야만 할 우리 몫의 십자가는 책임지고 지고 가는
착하고 충성된 하나님의 자녀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PS.. 다행스럽게도 일본 고등학교 역사지리 해설서에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하는 내용은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제 지금부터라도 독도가 정말 대한민국 영토인 것을
좀 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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