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일! (롬 1:16-17)
▶오늘은 세계 교회가 함께 드리는 487주년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지금 세상은 모든 분야에서 개혁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정치개혁, 기업개혁, 심지어 교회개혁 등 사회 모든 분야가 개혁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구호도 바로 '개혁'이라는 단어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도 비록 정권의 정통성 시비 때문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부르짖었습니다. 김영삼 정권 때는 군사독재 정권을 청산했다하여 이름을 문민정부라 부르면서 정권의 정통성 위에 고 강도 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했었고,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 와서도 전 방위 개혁을 부르짖었고, 지금 노무현정부에서도 연일 개혁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개혁이 완성되었습니까? 보다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습니까? 더 이상 부정도 없고 부패도 없는 밝고 맑은 세상이 되었습니까? 요즘 개혁하자는 구호는 큰데 내실이 없습니다. 사회도 그렇고, 교계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왜 개혁의 구호는 많은데 개혁이 되지 않은가? 이것은 자기 개혁이 없는 사람들이 개혁을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먼저 지도자들이 자기 개혁의 증거가 있을 때 개혁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개혁의 선봉에 선 사람들이 자기 개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 쪽에도 그렇고 모든 분야의 개혁이 안 되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은 중요한 것이지만 먼저 교회가 개혁되어야 합니다. 신앙인 개인 개인이 먼저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개혁의 축은 복음(예수)입니다
갈1:6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의 비장한 개혁투쟁선언이 나옵니다. 율법주의자와 영지주의자와 이단들을 향한 강력한 투쟁선언입니다. 여기에 사도 바울의 개혁의 원칙은 오직 예수입니다. 갈1:7절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의 개혁의 중요한 주체는 복음입니다. 내가 전한 이 복음 외에는 천사가 와서 다른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은 저주를 받는다, 우리가 전한 이 복음 외에 다른 것은 믿지 말라, 우리가 전한 이 복음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확실하게 예수만 믿으면 개혁은 됩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고전1: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행4: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개혁의 원동력이 됩니다. 예수 바로 만나기만 하면 변화됩니다. 죄인도 깡패도 술꾼도 노름꾼도 사기꾼도 도둑놈도 변화됩니다. 그래서 기적은 예수 만나는 것이 기적입니다. /믿/ ◀제목소개!▶
바울이 로마서를 써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낼 그 당시에 세상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로마인들에게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그 당시 로마인들에게는 이 편지가 참 가소롭기 짝이 없는 그런 말입니다. 그러나 수백 년이 지난 뒤에 바울이 전한 기독교의 복음이 로마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칼과 창과 군사력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했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인 이 복음을 가지고 로마를 사랑으로 지배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16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말을 더 줄이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능력'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힘'을 나타내는 '두나미스'라는 말로 영어로는 '다이너마이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이너마이트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터지면 어마어마한 위력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이 능력은 어느 때 나타납니까? 복음을 믿을 때 나타납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요5: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할/ 이 말씀에서 구원에 확신을 붙잡아야 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의인이 누구인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의인이라고 불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의인으로 부르셨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입혔고, 죄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으로 받아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향하신 깊은 관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믿음입니다.‘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에 제자들에게 책망과 탄식의 말씀을 하신 것은‘믿음이 적은 자들아’이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보고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 왜 두려워하느냐, 왜 염려하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함양미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문제는 결국 믿음으로 돌아갑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물질문제, 건강문제, 인간관계 문제, 직업문제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이 문제의 궁극적인 해답은 믿음의 문제로 돌아갑니다.
1.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이 말씀을 붙들고 '루터'는 종교를 개혁했습니다.
●루터는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법관이 되기 위해서 '에루프르트' 대학에 들어가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같이 있다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옳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서 많은 고행을 했습니다. 심한 노동 명상 금식, 기도 그러나 그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죄는 분명히 더 적게 짖는데 마음의 가책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그리이스 성경책을 발견하고 보던 중 롬1:17절 말씀을 보게 된 것입니다. 루터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성구를 읽는 순간 그의 영의 눈이 떠졌습니다. 그가 수도하던 그 수도가 허무한 것이고 잘못된 것임을 깨달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 카톨릭은 썩을 때로 썩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면죄부 판매였습니다. 교황 레오 10세는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증축하던 중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기발한 착상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면죄부'를 사면 연옥의 고통에서 면제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에 나오지도 않는 연옥을 말하면서 이 연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면죄부를 사면 '돈궤에 돈이 떨어지면서 댕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연옥에서 나와 죄 사함을 받고 저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고 면죄부를 샀던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테첼'이라는 사제가 파송을 받아 면죄부 판매에 앞장을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여기에서도 면죄부를 판매한 액수의 절반 정도가 '알베르트'라는 신부가 대주교직을 사는데 소용된 빚을 갚는데 사용되기까지 했습니다.
그 무렵 독일의 마틴 루터가 천주교의 신부로써 사명을 띄고 로마에 갔을 때 그의 나이 30세의 꽃다운 청년이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에는 계단 성당이라고 불리는 '스칼라 상타'라는 성당이 있었는데, 28계단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계단은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면서 올라가신 28계단인데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천사들이 로마에 옮겨 놓았다는 학설과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가 팔레스틴에서 가져왔다는 학설로써 계단이 성당 중앙에 있는데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오르셨던 바로 그 계단을 옮겨다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계단을 무릎으로 한번 기어오르면 15년 간의 죄가 용서를 받는다고 하는 터무니없는 조작전설이 카톨릭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참배 객들이 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기도하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렸는지 기름칠을 한 것처럼 반질반질했다고 합니다.
루터도 동료 신부들과 함께 그 계단을 자기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차례 오르내렸습니다. 그러나 결코 죄 사함의 기쁨은커녕 더욱더 마음이 공허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계단 절반 정도를 올라갔을 때 평소에 읽고 은혜를 받았던 본문 17절의 말씀이 캄캄한 밤중에 샛별처럼 그의 마음에 밝혀 주는 것이었습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렇다. 바로 우리의 죄 사함,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거야! 소리를 지르며 그 계단을 뛰어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 말씀을 붙잡고 수도원을 뛰쳐나왔습니다. 굉장한 일입니다.
지금부터 오백년 전에 수도사가 수도원의 규칙을 위반하고 무단 이탈하는 것은 그 당시의 분위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잡히면 죽는 일입니다. 그러나 루터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수도원을 나오게 됩니다. 그는 정말 위대한 모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틴 루터와 동조해서 여러 수도사가 함께 나왔고, 수녀들도 9명이나 함께 나왔습니다. 수도사와 수녀들은 그저 수도원에서 수도만 했던 사람들입니다. 밖으로 나오니 직업이 없습니다. 생계가 막연합니다. 그 때 기도하던 중 마틴 루터에게 이런 지혜가 생겨났습니다. 그 수녀들을 보고 결혼을 권유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허용하는 것이고, 결혼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 수녀들을 전부 결혼시켰습니다. 그래서 생계를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수녀 중에 '카타리나'라는 한 수녀가 있었는데 혼담이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의 반응이 없습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카타리나는 얼굴이 매우 길었답니다. 긴 얼굴에 광대뼈가 불쑥 튀어나오고, 코도 균형이 잡히지 않고 길게 늘어져 있고, 이마가 불쑥 나온 그런 용모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이런 용모를 갖춘 카타리나는 혼담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애쓰는 중에 루터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저 여자와 결혼을 해야겠구나!' 그래서 카타리나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를 뒤흔든 놀라운 스캔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교회와 사회는 일제히 루터의 결혼을 공격했습니다. '타락한 성직자의 표본이다, 알고 보니 루터는 수도원에서부터 불륜을 저질렀고, 결국 수도원 밖에서 결혼하고 말았다' 그 당시 지성의 대표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은 코메디로 막을 내렸다'고 혹평을 했습니다. 루터와 카타리나의 결혼만큼 스캔들이 컸던 결혼은 역사 속에서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터가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근거는 '우리의 결혼은 하나님 앞에 정당하다', '우리의 결혼은 수도사와 수녀들에게 결혼을 금한 악법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승리한 것이다'라는 신념으로 공격을 이겨내면서 승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얼굴이 못난 이 카타리나에게 두 가지 은사를 주셨습니다. 카타리나는 그 당대의 지성이 뛰어난 수녀였다고 합니다. 원전을 해독하고 이해하는데 탁월했으며, 그는 타고난 천사와 같은 성품을 가졌다고 합니다. 루터를 개혁자로 성공시킨 배후에는 카타리나의 공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유명한 일화 중에 한번은 카타리나가 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루터가 돌아와서 놀라 물었습니다. "여보, 왜 상복을 입었소?' "하나님 아버지가 죽었소" "하나님이 죽다니?"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죽었기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때 루터가 깨닫고 용기를 얻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루터는 종교를 개혁하면서 정치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성경적이요 하나님 중심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1517년 자기가 설교하던 교회, 자기가 가르치던 학생들 앞에 95개조항의 성경에 기초한 반박 문을 걸고 개혁의 기치를 들었습니다.
이 반박 문에 나타난 종교개혁의 기본 원리는 세 가지입니다.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이 세 가지 명제를 걸고 루터는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2. 천주교와 기독교의 차이점 몇 가지만 알아보자!
①기독교는 성경만을 유일한 신앙과 행동의 표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성경뿐만 아니라 말씀 위에 교회의 전통을 첨가했고, 나아가 교황의 말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를 두고 있습니다. 교황이 신앙 문제나 행위 문제에 대하여 확정하면 교황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봅니다.
②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속죄 주로 믿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 구원이 있고, 주님의 보혈만이 죄 사함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성모 마리아도 속죄 권능이 있다고 믿고, 성자도 믿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공덕이나 선행으로도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③기독교는 성도 본인이 하나님 앞에 회개 기도를 직접 할 수 있으나 천주교회는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합니다. 신부는 죄 사함의 능력이 없는 그도 죄인입니다.
④기독교는 예수 믿고 죽은 자는 천국으로, 믿지 않은 자는 지옥으로 간다고 믿으나 천주교회는 지옥과 천당 중간 지점에 연옥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⑤기독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지만 천주교회는 미사를 드립니다. 미사는 성경에 없습니다. 미사는 종교 의식을 중요시합니다.
⑥기독교는 안수집사나 장로를 택할 때 투표로 합니다 만은 천주교는 기관장을 임명합니다.
⑦천주교는 로마 카톨릭을 한 국가로 봅니다. 교황청과 성 베드로 성당이 있는 바티칸을 왕국으로 봅니다. 교황청은 각 나라에 바티칸 국의 대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은 바티칸을 한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한 교회로 인정합니다.
3. 종교개혁의 세 가지 기본 원리를 자세하게 알아보자!
①오직 믿음으로! 기독교는 믿음에서 나오는 역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가 아닙니다. 우리가 무슨 공적을 쌓는다고 죄 사함을 받거나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엡2:8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갈2: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적 개혁은, 우리의 교회 개혁은 믿음 아닌 것들을 잘라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4복음서에 보면 '믿으라'는 말이 수 없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믿으라는 말씀을 강조할 때 두 가지 믿음의 장애물을 극복하라고 말씀합니다. 첫째는 '두려워 말고'믿으라고 했고, 두 번째는 '의심하지 말고'믿으라고 했습니다. 두려움과 의심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두려워하면 의심에 이릅니다. 의심에 이르면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장애물은 두려움과 의심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수없이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두려워하느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풍랑이 몰아치는 갈릴리바다에서 제자들이 두려워 떨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칠 때 주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지 않느냐?" 두려움과 의심 속에 있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라'는 말은 '의심과 두려움을 버리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약1:6-8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잠16: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벧전5: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시55:22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말씀합니다. 맡기라는 말씀을 시편 기자가 수없이 사용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믿으라는 말의 문학적 표현입니다.
▶'믿으라'는 말의 가장 실제적인 표현은 바로 맡기는 것입니다. 또 믿음으로 모든 것이 맡겨집니다. 히브리어에 '맡긴다'는 말은 '내어 던져 버린다'는 뜻입니다. 우리말과 표현이 반대개념입니다. 우리는 맡긴다는 것을 던져버리는 것이 아닌 소중히 보관한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내가 무엇을 맡긴다면 반드시 찾으러 온다는 개념으로 맡깁니다. 그렇지만 히브리적 뜻은 정반대입니다. 다시는 미련을 두지 않고 내어 던져 버리듯이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까?
맡길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석가도 마호메트도 공자도 김일성도 다 이루고 간 사람이 아닙니다. 다 이룬 분은 오직 예수 밖에 없습니다. 그 분은 십자가에서 마지막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신 예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길 때 그 분이 이루어 주십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이 원리는 지금도 살아있는 불변의 원리입니다. /할/
▶믿음으로 산다는 이 말 앞에는 불 신앙을 이긴다는 원칙이 들어 있습니다. 불 신앙을 이겨야 믿음으로 살아집니다. 이 불 신앙에 막혀 버리면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이 불 신앙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불 신앙과 영적 전투를 하는 삶입니다. 이 불 신앙과 부딪혀서 싸워 이겨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성립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전투적인 용어입니다.
▶영적 전투에서 이기려면 영적 무장이 있어야 합니다. 엡6:13-17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믿음으로 산다는 여기에 가장 도전하는 세력은 사탄의 세력입니다. 이 사탄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를 그냥 두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공격합니다. 불 신앙의 길로 가도록 충동합니다. 사탄은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가는 자들을 정확하게 구분합니다. 이 말을 역설적으로 말하면 마귀도 믿음으로 사는 성도를 좋아합니다. 불 신앙으로 사는 성도는 마귀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왜? 이미 자기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마귀의 시기 대상이 됩니다. 어떻게 하든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이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것이 세 가지입니다.
⑴우리 자신입니다. 불 신앙은 내 자신 안에 있습니다.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 신앙의 제1영역은 내 자신, 내 속에 있습니다.
⑵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믿음으로 살도록 그냥 두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온갖 일들은 모두가 사탄의 충동 하에 있습니다.
⑶사탄을 이겨야 합니다. 마귀는 내 자신 안에서 나를 공격합니다. 그러다가 안 되면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나를 넘어지게 합니다. 그러다가 안 되면 교회 안에서 나를 넘어지게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 아브라함 링컨에게 한번은 참모가 와서 "각하 안심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편입니다. 전쟁은 반드시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링컨이 그 때 조용히 말하기를 "이봐 하나님은 우리편에도 계시고, 저 쪽 편에도 계시는 거야.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야 되는 거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마15:21-28절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은 대단한 믿음의 여인입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예수님이 칭찬 하셨습니다. 그 여인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이었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믿음입니다.
⑴'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예수님의 평가입니다. 큰 믿음의 사람입니다. 큰 믿음은 큰 역사를 일으킵니다.
⑵가나안 여자의 믿음은 약속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선지자가 예언했던 메시야로 확신하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 가운데 이 고백을 하면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습니다.
⑶예수를 '주'로 믿는 신앙입니다. 주님이 박대를 해도 개로 취급을 해도 모욕을 주어도 주가 그러시는데 종 된 나는 주인의 처분대로 순종하겠다는 자세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내 주인이십니까? 그 분을 정말 주인으로 붙잡고 우리 믿음이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살아가는 것을 보면 예수님이 주인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개 취급을 받으면 절대로 그냥 안 있습니다.
⑷딸을 향한 사랑의 열정입니다. 딸이 지금 흉악한 귀신에 들려 폐인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 병든 딸을 부둥켜안고 고통하는 어머니로서 지금 주님 앞에 나아가서 애걸하고 있는 것입니다.
⑸끈기 있는 믿음입니다. 주님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많은 사람들 앞에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장해야 합니다. 엡4:13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앞부분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라고 전제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알 때 성장이 시작됩니다. 이 출발점이 분명치 않으면 성장이 안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바로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장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엡4:15절 "오직 그리스도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성장한 믿음은 신앙 공동체를 위하여 연합을 이룹니다. 엡4:16절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신앙의 성장은 개인적으로 자라는 측면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성경은 다 요구합니다. 믿음의 성장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한 지체를 이루고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연락하고 상합'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락해야 하고 믿는 자끼리 지체가 되어 상합해야 합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도 10년만 안보면 멀어집니다. 사촌도 10년만 안보면 남이 됩니다.
삼국지를 보면 유비와 관우와 장비가 나옵니다. 삼대영웅인데 이 세 사람은 개인적으로 보면 별 볼일 없습니다. 유비는 돗자리 장사하는 사람이었고 관우는 서당의 훈장이었고 장비는 백정이었습니다. 혼자서 살 때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 친구가 뭉치니 그 시대를 정복하는 영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주안에서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갈 때 그 안에서 능력이 나오는 줄 믿습니다.
▶미국의 '에커드 드럭'은 세계적으로 1,700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기업형 마켓입니다. 이 회사의 '잭 에커드' 회장은 주일 날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에 감동을 받고는 그의 모든 연쇄점에 연간 3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도색잡지 '플레이보이와 팬트하우스'를 판매하지 말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 지시를 받은 각 연쇄점 사장들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단호했습니다. 그런 도색잡지를 팔아서 수입을 올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수입이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서 강력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자기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자기 안에 사신 그리스도의 뜻대로만 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더욱 번창하여 나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길입니다.
▶일제 시대 때 최봉석 목사님은 능력을 많이 받은 목사님입니다. 그래서 최권능 목사라 했습니다. 최목사님은 일본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평양 감옥에 갇혔습니다. 일본 형사가 주일날 목사님을 불러내어 조사를 했습니다. 어떤 말을 물어도 대답이 없으니까 매를 가지고 칩니다. 그때 목사님 입에서는 '예수'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쳐도 '예수', 저렇게 쳐도 '예수'입니다. "이 영감쟁이, 어째서 예수뿐이냐?"고 형사는 야단을 합니다. 이때 최목사님은 "내 몸 속에는 예수만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아무리 때려도 예수 밖에 나올 것이 없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의 선배들은 이렇게 예수를 진실 되게 믿었습니다. 오직 예수뿐이었습니다. "아침에는 예수로 눈을 뜨게 하시고, 저녁에는 예수로 잠을 자게 하소서. 예수여 내 주여 내 중심에 오셔서 예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소서." 진정한 성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②오직 성경(말씀)입니다.
서양은 교인들을 네 종류로 나눕니다. ㉠피쉬(fish) 물고기 크리스찬입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성도를 가르켜 피쉬 크리스찬이라 합니다.
㉡버드(bird) 새 크리스찬입니다. 새는 생리적으로 9일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1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오는 크리스찬을 버드 크리스찬이라 합니다.
㉢도그(dog) 개 크리스찬입니다. 개는 20일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교회에 나오는 사람을 도그 크리스찬이라 합니다.
㉣터틀(turtle) 거북이 크리스찬입니다. 거북이는 500일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1년에 한번씩 나오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보다 서양에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부활절/크리스마스/추수감사절에 한 번씩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말씀으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벧전1:23절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은 생명입니다. 이 말씀은 죽은 자를 살려내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롬10: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말씀을 많이 먹어야 합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말씀은 아닙니다. 저는 말씀을 인용하고 이 말씀을 해석하고 이 말씀의 뜻을 여러분 앞에 전달할 뿐입니다. 성령은 오늘 저의 설교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달해 주십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영의 양식이 됩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살리고,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고, 생명력을 일으킵니다. 그 말씀이 내 속에서 레마로 변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떤 성도가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책을 펼쳐서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집어서 성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짚어 보니, 마5:39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지 말라 하였으나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그래서 오늘은 사람조심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손가락으로 짚어 보니, 딤전6: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이니" 그래서 오늘은 돈 쓰는데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또 손가락으로 짚어 보니, 살전5:16절 "항상 기뻐하라" 오늘은 아무리 속상해도 미소를 띄고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또 손가락으로 짚어 보니, 마27:5절 "유다가 스스로 목매어 죽으니라" 이건 기분 나쁜데, 이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이 아니야, 한번 더 해보자. 또 해보니, 눅10:37절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건 아니야, 삼 세 번이다. 또 한번 짚어 보니, 요13:27절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이 이야기는 말씀은 점괘처럼 대해서도 안되고 요행의 수단으로 해서도 안되고 이단자들처럼 부분적으로 말씀을 대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성경구절 하나만 붙잡고 하나님을 설명하면 안됩니다. 성경 전부를 보고 복음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말씀으로 살았는가?
마4:1-10절 예수께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사단이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여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때 주님은 신8:3절을 인용하시면서 "사람이 떡으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주님의 선포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신앙생활의 원칙이 됩니다.
▶말씀을 존중히 여깁시다! 계1: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라!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 분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 분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라! 사랑하는 연인의 편지는 읽고 또 읽습니다. 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라! 잘 듣는 자가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라! 행17:11절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또 들은 다음에는 그것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라! 시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라! 계1: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③오직 은혜입니다.
실제로 로마 천주교는 구원받기 위해서는 선행을 해야 하고, 고해성사도 해야 하고, 7성례에 참여도 해야 합니다. 특히 고해성사는 죄에 따라 신부들이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무엇인가 하도록 명합니다. 예를 들어 사도신경을 몇 번 쓰라든지, 주기도문을 몇 번 암송하라든지, 고아원에 가서 청소를 하라는 것 등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롬3:23-24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분명히 '값없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대가 없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덕을 세우고, 공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감사의 응답입니다. 조건이나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공덕을 쌓아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았기에 이제는 감사한 마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답게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봉사도 하고, 덕도 세우고, 공도 쌓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충만한 은혜 속에 살아야 합니다.
요1:16절"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은 우리말 문자로 보면 은혜 위에 중복해서 받는 은혜, 거듭 받는 은혜라는 의미입니다. '충만'이라는 말은 채워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세 가지 의미로 채워집니다.
①공간적으로 채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컵에 물을 가득 채우는 것은 공간적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교인들이 가득 앉아있는 것은 공간적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②시간적인 충만이 있습니다. 때가 다 되었다, 결혼할 때가 되었다, 군대에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은 시간의 충만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면 취학연령이 오게 되는 시간적인 충만이 있습니다.
③제일 중요한 충만입니다. 내용의 충만, 가치의 충만입니다.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가치에 있어서 그 충만의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충만을 받은 우리는 은혜 위에 은혜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충만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을 소유하면 모든 것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얻으면 공간적으로 하늘나라를 얻습니다. 예수님을 얻으면 시간적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소유하면 지옥에 갈 죄인도 구원을 받습니다. 그 완전한 충만의 실체, 그 예수 그리스도를 얻은 자는 은혜 위에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인생은 세 가지 인생관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①운명론적 인생관입니다.
모든 것은 운명이다. 이미 다 정해져 있다, ‘전생의 업보’다 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운명을 초월할 수가 없다고 운명론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사주팔자는 운명입니다. 사주는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변경시킬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사주팔자 이론이고 운명론입니다. 토정비결도 운명론입니다. 역술가들의 속임수가 무엇인줄 압니까? 당신의 사주는 도무지 손을 못 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운을 바꾸는 비법이 있다는 이것이 역술가들의 사기라는 것입니다. 사주팔자는 손 못 댄다고 해 놓고 자기는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속임을 당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많습니다.
②인본주의 인생관입니다.
사람이 다 한다는 것이고 사람이 중심입니다. 나치의 히틀러가 바로 그 표본입니다. 히틀러는 헤겔의 철학을 붙잡고 인간의 절대정신을 믿었습니다. ‘인간은 못 하는 것이 없다, 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놀라운 절대정신을 가진 민족이 게르만 민족이다’라고 해서 히틀러는 이 지구촌에 나치 왕국을 건설하는데 가장 방해되는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벨탑의 사상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쪽에 있는 김일성 주체사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김일성 주체사상이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와 자유를 준다는 이론입니다.
③은혜론적 인생관이 있습니다.
고전15:10절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인생관입니다. 곧 하나님의 자녀들의 인생관입니다.
단10:19절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가로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즐겨 쓰시는 용어 가운데 '더욱'이란 말이 있습니다. "더욱 사랑하라"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라"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는 말을 사용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항상'이란 말을 좋아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이 '항상'이란 말은 시간성의 용어이고 '더욱'이란 말은 질적인 등급입니다.
더욱이란 말은 이전보다 더욱, 어제보다 더욱이란 뜻으로 사용되어집니다. 야고보가 더욱 큰 은혜를 말하면서 겸손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야고보 장로님은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하나님이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더욱 큰 은혜는 겸손함으로써 받습니다. 은혜는 단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 누리는 것입니다. 은혜는 한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오늘의 은혜를 오늘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광야 40년 동안 그날에 만나를 새벽에 주셨습니다. 그 만나가 내리는 것이 바로 은혜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겸손한 신앙인들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속에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2004년 10월31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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