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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예배(엡4:13-17) /풍성한 생명으로 자라게 하소서

by 【고동엽】 2022.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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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예배(엡4:13-17) 

풍성한 생명으로 자라게 하소서

 

새 해를 맞이했습니다. 2011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한 한 해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 모두에게는 승리가 되기 바랍니다. 새 해를 맞이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합니다. “시간은 연속되는 데 왜 하나님은 시간을 구분하실까? 왜 어제와 오늘이 있고 1월, 2월이 있고 작년과 새 해가 있을까?” 그러다가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라고 시간을 구분하셨구나”. 시간은 연속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구분된 것은 새롭게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1월에 안됐어도 2월에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어제 실패했어도 오늘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작년에 잘못했어도 새 해에 다시 출발하면 됩니다. 이미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새해 들어 첫 주,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무엇을 새로 시작할까? 새 해에는 어디에 촛점을 두고 하나님을 섬길까? 예수님안에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안에 시작된 예수님의 생명이 더 풍성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토비 도슨이란 한국인 청년이 있습니다. 그가 3세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미국의 스키 스타로서 세계 챔피언이었습니다. 스키 월드컵에서 우승을 휩쓸었으며,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모굴에서 동메달을 땄습니다. 그는 동계 올림픽에 출전해 TV에 나와 자기는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인데 자기 한국인 친부모를 찾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TV를 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산에 사는 김재수 씨였습니다. 그가 TV에 나온 낯선 사람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상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를 보자 갑자기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김수철이란 아들을 부산 중앙시장과 자유시장 사이 뒷골목에서 잃은 뒤 26년을 눈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TV에 비친 선수가 자기와 꼭 닮은 모습에 운명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내 아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토비 도슨과 만났고 유전자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때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그랬잖아요? 내 아들이라고”. 토비 도슨은 그날 왜 TV에서 부모를 찾았을까? 왜 아버지는 하필 그날 TV를 보았을까? 26년이 지났는 데도 어떻게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보았을까? 정말 혈육의 비밀은 신비하기만 합니다. 26년이 지나도 아버지를 꼭 닮은 아들은 미국에 살고 있었고 둘은 약속도 하지 않았는 데 한쪽에서는 인터뷰를 하고 한 쪽에서는 TV를 보고 있고, 붕어빵처럼 닮은 두 사람은 26년을 넘어, 태평양을 건너 드디어 만났습니다.

 

여러분,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어도 변치 않는 사실을 아십니까?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부모와 자녀는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운명적인 끈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와 부모가 운명적인 혈육으로 연결된 것처럼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도 운명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그리워 하며 사는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도 서로 그리워 하며, 서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부모를 닮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닮도록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했는가? 어떻게 연결했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닮으려면 어떻게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과 영광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적 해답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했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한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다리입니다. 본래 하나님과 인간사이에는 연결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순간을 삽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땅에 있습니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접촉점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 분은 본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했습니다. 마치 전원에서 소케트가 뽑히면 전기가 나가 깜깜해지는 것처럼 하나님없어 어두어진 세상에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할 뿐 아니라 우리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떨어 뜨리셨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썩지 아니할 씨”라고 부릅니다. 벧전1:23절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딘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씨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썩을 씨와 썩지 아니할 씨입니다. 씨는 요즘 용어로 유전인자입니다. 두 종류의 유전인자가 있습니다. 사람의 유전인자와 하나님의 유전인자입니다. 사람의 유전인자는 썩을 씨입니다. 이 유전인자를 받으면 누구나 죽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유전인자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하나의 유전인자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유전인자입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말한 썩지 아니할 씨입니다. 이 씨를 받으면 영생합니다. 이 씨속에는 하나님의 신성과 영광이 있습니다.

 

여러분, 생명의 원리를 아십니까? 모든 생명은 세포에서 시작됩니다. 세포 하나의 지름이 2십 5만분의 1인치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가진 신비는 우주를 가득 채우고도 남습니다. 최근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연구한 사람에 의하면 한 사람의 유전 체계안에 들어있는 정보를 모두 수록하기 위해서는 성경책 크기의 책 800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세포 하나가 그렇게 신비합니다. 세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소우주입니다. 그런데 그 세포의 중심에 DNA, 유전인자가 있습니다. 유전인자는 세포의 핵심부에 위치하고 생명의 원칙과 원동력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우리안에 하나님의 생명의 유전인자가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가 DNA, 유전인자를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DNA는 Divine Nature of the Almighty, 곧 전능자의 신적인 본성이다. 여러분, 우리안에 하나님의 신적인 본성이 있음을 아십니까? 죄인이고 순간을 살고 피조물인 우리안에 하나님의 divine nature, 신성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은 어디에서 어떻게 온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된 것입니까? 하나님의 신성과 영광의 유전인자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 신성의 DNA가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말을 보시겠습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들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1절입니다. 우리안에 온 생명은 본래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안에 있던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이 나타납니다. 요일1:2절입니다.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그 생명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안에 있던 생명이 인간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요일1:1절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그러니까 세 종류의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본래적 생명입니다. 하나님안에 있던 생명입니다. 두 번째는 나타난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온 생명입니다. 세 번째가 체험된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체험된 생명입니다. 우리에게 들려지고 보여지고 만져지고 소유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에게 임한 생명입니다. 전수된 생명입니다. 주입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지금 우리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안에 하나님의 생명, 썩지 아니한 하늘의 DNA, 생명의 유전인자가 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고 영원을 산다”. 이렇게 믿습니까?

 

하나님의 생명은 자라야 합니다.

우리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의 원리는 자라는 것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자랍니다. 살아 있다 하면서도 자라지 않은 것은 죽은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습니다. 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 자랍니다. 아이가 청년이 됩니다. 청년이 어른이 됩니다. 자라지 않으면 문제가 있습니다. 자라지 않는 것을 자폐증이라 합니다. 그런데 생명이 자라는 원리가 있습니다. 스스로 자랍니다. 생명체안에 스스로 자라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요15:4절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못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여기서 “스스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스스로”는 생명이 살아가는 자생적 시스템을 말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자생적인 시스템에 의해 스스로 자랍니다.

 

막4:26-28절에서도 말합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충실한 곡식이라”. 예수님은 나사렛 농촌에서 사셔서 겨울에 심은 밀과 보리가 어떻게 자라 여름에 열매맺는지를 아셨습니다. 스스로 열매맺습니다. 헬라어 원어는 “아우토 마테”입니다. “아아토”에서 영어 “automatic”이 나왔습니다. 모든 생명은 생명의 자생적 원리에 따라 자라고 열매맺습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에 붙어 생명의 진액을 받으면 자동적으로 자라고 열매맺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고 열매맺는 가장 중요한 원리를 아십니까? 예수님안에 있으면 스스로 자라고 열매맺습니다. 스스로 자라는 자생적 시스템이 작동되려면 예수님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안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골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뿌리가 예수님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 진액과 영양분이 공급됩니다. 공급의 원천과 뿌리를 닿게 해야 합니다. 또한 가지가 줄기에 붙어야 합니다. 요15:4,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슴같이”.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맺지 못합니다. 공급받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사도 바울이 영적 성장의 원리를 말합니다. 16절에 “그로부터”, 16절,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다같이 "그에게서“, 원문으로 보면 ”그로부터“, ”그로부터“는 예수님으로 부터”입니다. 모든 영적 성장이 예수님으로부터 옵니다. 이스라엘 광야에서 물을 얻는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고인 웅덩이와 흐르는 시내물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웅덩이에 고였다가 더 많이 내리면 시내로 흘러갑니다. 비는 임하는 은혜를 말합니다. 웅덩이는 거하는 은혜를 말합니다. 시내는 흘러가는 은혜를 말합니다. 영적 성장은 하늘에서 비가 임해야 합니다. 하늘의 비가 내리면 영적 성장이 시작됩니다. 그 은혜의 비가 내 안에 거하면 내 안에서 영적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다가 은혜의 비가 밖으로 흐르면 영적 성장이 밖으로 나타납니다. 은혜는 임하고, 거하고, 흘러갑니다.

 

은혜는 물처럼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에덴의 물이 동산을 적시고 네 강으로 흘러갔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면 그 물은 배를 적시고 밖으로 흘러갑니다. 영적 성장은 늘 흘러 갑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안에서 밖으로 흐릅니다. 내린만큼 자라고 적신만큼 자라고 흐른만큼 자랍니다. 영적 성장을 이해할 때 고전1:30절이 중요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의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영적 성장은 내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예수님안에 있는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내게 임해야 합니다.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서 내게 오면 내 안에 거하고 나를 통해 그것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가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한 말이 이것입니다. “거룩은 예수님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완전함이 나의 부패한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나를 통해 나타나야 내가 거룩해집니다. 예수님안에 지혜, 의로움, 거룩, 구속함이 나에게 임하고, 내 안에 거하고, 나를 통해 흘러가야 거룩입니다. 여러분은 평생 예수님안에 있겠습니까? 거룩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니님으로부터 흘러오는 은혜라는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거하고 흐르면 거룩한 사람 된다는 것을 믿습니까?

 

범사에 예수님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우리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임하면 자라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랍니까? 15절입니다. 엡4:15,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까지”를 말합니다. 13절의 말대로 하면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입니다. “그로부터”가 영적 성장의 출발이라면, “그에게까지”는 영적 성장의 목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할 것처럼 예수님에 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성장의 목표입니다. 그러니까 한계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 예수님까지 자라겠습니까? 누가 예수님처럼 되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역사상 가장 예수님을 닮았다는 분이 있습니다. 성 프란스시코입니다. 누가 성 프란치스코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사람들이 선생님이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았다 합니다”. 성 프란스시코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만일 나를 자세히 본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 프란시스코를 볼 수 있게 될 것이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처럼 된 성인은 없습니다. 그뤼셀이 말한대로 "성인은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회개하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까지 자랄 수 없지만 그러나 예수님까지 자랄 수 있다는 목표는 영광스러운 목표입니다. 안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범사에”라는 말입니다. 영어로 하면 in everything. 왜 everything입니까? 우리의 영적 성장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범사에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에는 많은 요소가 있습니다. 다양한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 다양한 요소중에서 크게 세 요소가 중요합니다. 방향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안으로, 위로, 그리고 밖으로입니다.

 

먼저 “안으로”입니다. “안으로”는 우리 인격과 성품의 성장입니다. 우리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반드시 첫 번째로 영향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격과 성품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안에 계시는 데 우리의 타락한 인격과 옛 성품이 그대로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믿어 달라진 것이 세 가지입니다. 신분이 달라집니다. 신분은 우리를 구원받게 하고 천국에 가게 합니다. 성품이 달라집니다. 성품은 사람을 사랑하게 하고 사람에게 사랑받게 합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거룩하게 합니다. 능력이 달라집니다. 능력은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합니다. 결국 승리하게 합니다. 예수믿으면 세 가지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누구나 신분은 달라집니다. 예수믿으면 그 즉시로 신분이 달라집니다. 평소에 망나니같이 살던 사람도 그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면 그 즉시 대통령아들이 됩니다. 대통령 아들다운 성품과 인격이 없어도 대통령 아들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청와대를 무상으로 출입합니다. 그래서 능력도 생가고 힘도 생깁니다. 그러나 그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두고 두고 대통령을 괴롭힙니다. 과거의 대통령 아들들이 그랬습니다.

 

신분이 달라지고 능력이 달라졌어도 여전히 문제는 성품입니다. 성품은 사람 됨됨이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오랫동안 성도들의 삶을 관찰해왔습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언제나 신앙의 문제는 성품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신분으로 시작합니다. 다음은 능력입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가는 것은 성품입니다. 성품이 최종적인 것을 결정합니다. 언제나 문제가 생길 때 보면 성품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앤디 스탠리가 쓴 책이 있습니다. “성품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한다”. 이 책에서 그는 성품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합니다. “당신의 성품이야말로 당신의 참 모습이다. 당신이 평생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룰지는 성품의 영향을 입는다. 당신이 남들이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도 성품으로 결정된다. 당신의 모든 인간관계는 성품 때문에 잘 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한다. 외모와 재산으로 결혼은 성사될지 모르나, 결혼을 유지시키는 것은 성품이다. 하나님께 받은 생식 기관으로 자녀는 낳을지 있지만 자녀와 관계를 맺는 능력은 성품으로 결정된다. 모든 것이 성품으로 결정된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안으로의 영적 성장입니다. 우리안에 계신 예수님이 그렇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본래 성품이 어떻했습니까? 14절입니다. 엡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고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어린아이는 자기만 압니다. 잘 속고 잘 유혹 받습니다. 약합니다. 고집이 셉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툭하면 울고 잘 넘어집니다. 이것으로부터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성픔으로 가야 합니다. 벧전1:4-7과 같습니다. ”이로써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예수님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에게 계속 생명을 공급하시면 우리가 안으로 성장합니다. 그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 “위로” 성장합니다. 위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성장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계속 생명을 공급하면 우리는 점점 하나님과 가까워 집니다. 하나님과 같이 있고 싶어 집니다.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행복해집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게 되고 하나님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안에 하나님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떠나서는 살 수 없게 됩니다. 은혜는 훈련으로 가고 훈련은 은혜로 갑니다. 예배 참석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주일예배만 참석하던 사람이 수요예배도, 금요예배에도 옵니다. 새벽기도의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용규 선교사가 쓴 <내려놓음>이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교사가 몽골의 어느 시골교회를 방문해서 예배드리는 데 한 자매가 몸에 땀이 범벅이 된 채 교회에 달려 왔답니다. 이 자매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듣지 못하던 자매인 데 기도하다가 귀를 고친후 은혜를 받고 예배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서 소를 찾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예배 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고, 소를 버려 두고 교회로 달려왔습니다. 소를 키우는 사람에게 소가 전부인데 소를 버리고 하나님께 달려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영적 성장은 곧 하나님을 향한 성장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말은 시간도 관심도 우선순위로 사는 목적과 방식도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둔다는 뜻입니다. 다 버리더라도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밖으로” 자랍니다. 우리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면 안에만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생명은 밖으로 자라고 뻗어갑니다. 위에서 내려 나를 적신 비는 반드시 밖으로 흘러갑니다. 16절입니다. 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우리안에 있는 생명은 밖으로 흘러갑니다. 사람을 향해 흘러가면 사랑이 되고 섬김이 됩니다. 다른 사람이 고통가운데 있는 데 나만 살자고 모른척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돕고 사랑합니다. 세상을 향해 흘러가면 사명이 되고 선교가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반드시 나눠집니다. 그 생명이 본래 십자가에서 왔기 때문에 반드시 십자가의 희생과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믿는 성도들에게는 사랑으로, 우정으로 나타나고, 믿지 않은 세상에 대해서는 전도와 선교로 나타납니다. 환경이 파괴되는 곳에는 자연에 대한 사랑과 환경에 대한 보호로, 독재와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정의와 공의로, 물질적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구제와 나눔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생명이 성장하고 자라면 세상은 점점 하나님의 나라로 변합니다. 초대교회가 그랬습니다.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자 그들속에 영적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음이 바뀌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사람이 달라지고 성품이 변화되었습니다. 안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자 성전에 모여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썻습니다. 위로 성장했습니다. 그 사랑이 밖으로 흘러갔습니다. 서로 떡을 떼며 사랑을 나눴습니다. 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하며 격려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자기 것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남는 것을 나눠준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팔아서 나눠줬습니다. 밖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처음에 그 수가 12명이었습니다. 그 12명이 120명이 되었습니다. 120명이 500명 되었습니다. 500명이 3천명 되었습니다. 3천명이 5천명 되었습니다. 그 5천명이 핍박이 오자 두루 퍼져 안디옥으로, 소아시아, 부르기아로, 갈라디아로, 본도로 갔습니다. 핍박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은 민들레 홀씨처럼 여기 저기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소아시아 교회가 되고 갈라디아 교회가 되고 로마 교회가 되고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이 1884년 한국에 떨어져 한국 최초의 솔내교회가 되고 1885년,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새문안 교회가 되고 순복음교회가 되고 그리고 한신교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새해 이 찬란한 꿈을 꾸시지 않겠습니까? 예수안에서 자라는 꿈, 예수님의 풍성한 생명으로 자라 나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꿈, 예수님 생명으로 안에서 자라 우리 인격과 성품이 예수님처럼 되고, 예수님 생명으로 위로 자라 예배와 기도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 생명으로 밖으로 자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어 기필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꿈, 그 꿈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수님의 풍성한 생명으로 자라고 자라 이 꿈을 이루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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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예배(엡4:13-17) 

풍성한 생명으로 자라게 하소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했습니다.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딘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DNA=Divine Nature of the Almighty(전능자의 신적 본성),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들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일1: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요일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세 종류의 생명

본래적 생명

나타난 생명

체험된 생명

 

하나님의 생명은 자라야 합니다.

요15:4,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못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막4:26-28, “또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충실한 곡식이라”. 골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요15:4,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슴같이”.

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의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오스왈드 챔버스, “거룩은 예수님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완전함이 나의 부패한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범사에 예수님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엡4:15,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 안으로 성장=우리 인격과 성품의 성장

 

예수믿어 달라진 세 가지

신분

성품

능력

 

앤디 스탠리, <성품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한다>”.

“당신의 성품이야말로 당신의 참 모습이다. 당신이 평생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룰지는 성품의 영향을 입는다. 당신이 남들이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도 성품으로 결정된다. 당신의 모든 인간관계는 성품 때문에 잘 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한다. 외모와 재산으로 결혼은 성사될지 모르나, 결혼을 유지시키는 것은 성품이다. 하나님께 받은 생식 기관으로 자녀는 낳을지 있지만 자녀와 관계를 맺는 능력은 성품으로 결정된다. 모든 것이 성품으로 결정된다“.

 

엡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고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벧후1:4-7, ”이로써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2) 위로 성장=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성장

 

(3) 밖으로 성장=세상으로의 성장

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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