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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골로새서3:1~11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예배 설교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3: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3: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3: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3:11 거기는 헬라 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 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설교:
여러분의 한해가 주안에서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많이 받으셨습니까? “어떤 분에게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했더니 “복 좀 줘“ 하데요.
여러분! 어떻게 살아야 복된 한해가 될까요?
여러 가지 생각을 해야 하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 그 秘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누가 복을 주느냐 하는 것이며 또 중요한 것은 그 복을 누가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읽은 골로새서 3장은 골로새서 전체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특히 3장 초반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1장, 2장에서 言及한 교리부분을 마감하는 부분이요 3장, 4장의 생활의 권면이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더 나아가 거짓 사역자들의 말도 안 되는 이론을 반박하면서 거기에 대한 바른 대답을 제시하므로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자들의 삶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새롭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 5절, 初頭에 나오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뒤 따라 나오는 말들이 앞부분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금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만을 상기시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 즉 그와 함께 일으키심을 다시금 회상시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명합니다. 그리하여 또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명령을 발할 준비를 합니다.
왜 그리스도인은 위엣 것을 찾아야 합니까? 복을 받기를 원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왜 복받기 위해 위엣것을 찾아야 하나요?
1. 우리는 과거를 그리스도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본문 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란 조건절 속에 제시합니다.
바울은 2장 20절에서 이 사실을 이미 말한 바 있습니다. 거기서는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이라고 회상시켜줍니다. 함께 죽었을 뿐 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함께 장사까지 지냈다는 사실을 이미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2:12).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되고 일으키심을 받은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새신자를 심방하여 면담할 때 거의 빼놓지 않고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에 언제 첫 발을 딛었는지 언제쯤 주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주님과 함께 한 과거를 가졌는지에 대해서 확인해 봅니다.
주님과 함께 한 과거가 없이는 아무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죽은 그 분과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그 분과 함께 살아났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장사지낸 그 분과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그 분과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들은 모두 과거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만약 그와 함께 한 여러분의 죽음이 여러분을 얽맨 옛 질서로부터 단절시켰다면 그와 함께 한 여러분의 부활이 새로운 하늘 질서에 여러분을 편입시켰습니다.
2. 그곳에는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를 바라봐야 합니다. 위엣 것을 찾으란 말은 그분을 바라보고 그를 닮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삶이 복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거기는 무엇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시선을 위를 향할 때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을 받았습니다. 무덤에서 나와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보좌에 앉아서 지금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것이 여러분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엄청난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운명과는 필연적인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와 함께 일으킴을 받았기에 여러분도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신 그 최고의 존경의 자리에 여러분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묵상하십시오.
골로새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에 참여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關心을 그리스도께 두어야 합니다. 그가 통치하시는 영역에 속한 것들에 여러분의 관심을 쏟기를 바랍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로서 이제 생각하십시오. 하나님 우편에서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로서 관점을 회복하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 우편에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신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늘 영역의 중심에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최고 위엄의 장소에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표현은 존귀해지신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다시 말해 하늘은 우리를 함께 살리신 그리스도를 중심한 영역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최고의 權能을 가지신 위치에 계시기에 그 어떤 정사나 권세도 우리로 하여금 하늘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을 결코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는 그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계신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최고 權座에 계신다는 사실을 두고 사도 바울은 다시금 권면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이 2절의 권면은 1절에 나타난 권면을 표현을 달리해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찾으라"는 말 대신 "생각하라"고 권합니다.
여기 생각한다는 말은 강력한 의미의 말입니다. 한 번 생각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끈질기게 집요하게 계속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결혼을 하기 전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보았다고 합시다. 길에서도 좋고 모임에서도 좋습니다. 하여간 처음 볼 때 호감이 가는 사람이라면 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립니까? 그렇다면 인연은 끝납니다. 하지만 가슴 설레이는 대상을 보고 나면 헤어져도 생각이 납니다. 돌아서서 오는 길에도 생각이 납니다. 집에 들어서도 생각이 납니다. 방문을 닫고 자리에 눕는다고 생각이 사라집니까? 아닙니다.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써도 생각이 납니다. 집요하게 생각이 계속되는 것을 여러분은 경험해 보셨습니까?
아니 여러분의 삶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했다고요? 혹시 그렇다면 각박한 세상을 살기 위해서 증권투자를 하신 분들은 없습니까? 그런 분들은 일반 뉴스만 듣지 않습니다. 밤 9시 뉴스를 시청해도 끝까지 다 봅니다. 반드시 주식 등락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시청할 것입니다. 어찌 밤 9시 뉴스시간 만이겠습니까? 눈뜨면 주식시세고 틈나면 알아보려고 할 것입니다. 계속 주식시세를 생각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자들입니다. 거기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그 관점을 상실하지 마십시오.
그 때 비로소 세상을 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세상의 실체를 바로 알게 될 것입니다. 잠깐 지나가는 세상의 정체를 바로 인식할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의 관심이 '잠시 잠깐 후면 오실' 그분께로 향할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은
3.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살아온 것과는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한 차원 높여야 합니다. 우리의 옛 생명은 끝났고 주님이 주신 새 생명으로 살기 때문에 주님 뜻대로 이제는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라 주님이 관심사에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생명 살리는 일에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좀 더 가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의 방향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여러분의 태도와 야망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와 같아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하늘에 있는 것들을 계속 그렇게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땅에 있는 사소한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하늘에 있는 중요한 사실들을 생각하라고 권합니다. 땅에 있는 지나가는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에 있는 항존하는 것에 집념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 보좌, 존귀와 능력의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거기에 있는 하늘 기쁨과 보화에 계속 마음을 주라고 권면합니다. 하늘이 우리의 생각을 가득 채우도록 하라고 권면합니다. 땅 위의 자질구레한 것들을 염려하느라고 시간을 소모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는 어떤 삶을 사느냐를 결정합니다.
여러분이 염려하며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늘에 속한 것들입니까? 아니면 땅에 있는 사소한 것들입니까? 여러분이 시간을 들여 걱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늘에 속한 것들입니까? 아니면 땅에 있는 지나가는 것들입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즉 "위엣 것을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어디서 사물을 보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릴 때 다녔던 초등학교 교정에 어른이 되어서 가보셨습니까? 갑자기 운동장이 좁게 느껴질 것입니다. 터가 작아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뛰놀던 동네에 어른이 되어서 가보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멀리 보이던 앞동산이 논 하나 거리로 가까워져 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1 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던 동네와 1.6 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동네는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리스도인은 위엣 것을 찾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는 미래를 그리스도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4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여기서 바울은 놀랍고도 생생한 언어로 우리의 미래를 표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그 순간 우리도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날 생생한 소망을 확신 가운데 표현합니다. 그는 여기서 영광스런 미래의 극치의 순간을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왜 우리는 위엣 것을 찾아야 합니까? 왜 우리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를 응시해야 합니까? 왜 우리는 하늘의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합니까? 오늘 우리 본문이 밝혀주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과거, 현재, 미래를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차원이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는 물리 달라야 하고 보는 눈이 달라야 하고 삶의 차원이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붐!
새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의 죽음, 장사, 부활이 여러분을 위한 사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안전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인 생명을 소유하십시오. 영광스런 미래를 가지길 원하십니까? 그리스도를 지금 만나십시오.
우리는 이세상속에 살지만 차원이 다른 삶을 누려야 할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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