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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에 해야할 3가지
신명기16:13~17
2001년 9월 30일 최일환 목사 주일낮 설교
16:13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所出을 收藏한 후에 칠 일 동안 草幕節을 지킬 것이요
16: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居하는 레위인과 客과 孤兒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16: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16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空手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16: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物件을 드릴지니라
설교:
내일이 추석입니다. 이번 추석은 근래에 최고의 풍년으로 맞는 추석입니다. 우리 민족은 대대로 풍성한 추수를 맞게 하신 것을 감사하며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켜왔습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풍년 은공을 조상신에게 돌리며 제사를 드리지만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그들과 같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이 추석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성경을 읽다보면 우리 나라와 이스라엘이 비슷한 것은 절기를 지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 절기를 지키는 이유나 방법은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이 많이 다름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처럼 절기를 단순히 먹고 즐기는 절기로 보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기를 지키며 또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자세로 절기를 지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추석명절을 보낼 수 있는 것일까요?
적어도 저와 여러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추석명절을 세상 사람들과 같이 보낼 것이 아니라 구별되게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추석에 우리 성도가 해야 할 일 3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대해 행해야 할 의무가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에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감사의 고백입니다.
그러기에 데살로니가 전서5:18에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전체가 감사의 고백이라 할 정도로 감사라는 단어가 많습니다. 성경전체 184번이나 감사라는 단어가 쓰였고 그중 시편은 전부 150편으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감사"라는 단어가 76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감사하라"는 명령구절이 35번이나 반복되고 있음을 통해 하나님이 감사고백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성도는 범사에 감사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범사란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며 성공했을 때에나 실패했을 때에나 어떤 일에든지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결실의 절기인 추석을 맞아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말로만의 감사가 아닌 예배로서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받으시는 최고의 감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민족을 들어 쓰십니다. 감사하지 않고 귀하게 쓰임 받은 민족이 없었고, 개인도 없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축복 받은 미국은 매년 11월 넷째 목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국가의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감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을 비롯하여 마리아, 사도 바울, 죄 많은 여인, 삭개오 등 모두가 감사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 다 우리에게로 돌아옵니다. "감사는 벽을 향해 공을 던지는 것과 같아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라는 말 그대로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불행은 감사를 모르는 것입니다. 타락하고 범죄한 우리 인간은 감사를 잃어 버렸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미워하고, 시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에겐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마귀도 물리칩니다. 감사하는 집과 감사하는 신앙생활은 마귀가 틈 탈 길이 없습니다.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칩니다. 감사는 영혼에도 축복이 되어 건강한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죽으면 다 죽고 감사가 살면 다 삽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건강하며, 감사하는 사람은 소망이 넘칩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추석에 해야할 두번째는
2. 받은바 은혜의 복을 헤아려야 합니다.
추석을 맞아 우리 성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엇그제 어디를 다녀오면서 들판을 바라보니 얼마나 보기 좋은지요? 황금 물결이 들판에 출렁이는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매년 풍년을 겪었지만 올해는 특별히 풍년이랍니다. 적어도 한 두개씩은 올라와 난리를 치던 태풍이 올해는 한 개밖에 거쳐가지 않았습니다. 전부 일본으로 빗겨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흔히들 재수가 좋다고 하나 분명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재수나 운수가 아니고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우리 나라 경제도, 정치도 어지럽고 복잡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 가정과 교회를 지켜주셨고 여러분의 건강도 지켜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 은혜는 껍데기 은혜이고 알맹이 은혜는 구원의 은총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한해 동안 날마다 때마다 지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시간에도 주를 찬송하며 예배 드릴 수 있었고 맡겨주신 막중한 직분을 감당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왜 감사가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많은 복을 주었는데 그 복을 내가 얻은 것으로 알거나 또는 우연히 얻은 것으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를 할 줄 모른다면 더 이상 복을 누릴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월리엄 헐스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신문사 편집인으로 있으면서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했고, 돈이 모이는 데로 취미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골동품 수집가였습니다. 귀중한 세계적인 미술품과 골동품을 수집하고 그것을 즐기며 사는 것을 마치 생의 목적처럼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진귀한 미술품이 있다고만 하면 세계 어디라도 좇아가서 그것을 사들이곤 했습니다. 이미도 많은 귀중한 것들은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유럽에 왕가에서 사용했던 도자기하나가 있다는 것을 정보에서 알게되었습니다. 잡지에서 그 그림을 보는 동안 그는 마음이 뛰었습니다. 아주 그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저것을 내가 꼭 사들여야겠다."
그리고 그것을 사기 위해 유럽을 여러 번 여행을 했고 추적을 해보았지마는 종적을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 가지고 있는 건지, 이 귀중한 물건이 어디가 숨어있나, 그렇게 안타까워하고 심지어는 실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잡지를 보는데 잡지에 그 골동품에 대한 이야기가 났는데 "그 골동품이 미국인에게 팔렸다" 라고 써 있습니다. 깜짝 놀라서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굴까? 하고 이름을 자세히 보았더니 자기 이름이었습니다.
벌써 그 소장품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지마는 그것을 가져다 두기만 했지 살펴보질 않았던 것입니다. 그 소중한 골동품을 이미 자기가 가지고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다니면서 찾아보려고 그렇게 애를 썼던 것입니다.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것,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한 가치를 모르는 바로 그 어리석음을 지칭하는 교훈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 때만 은혜가 됩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은혜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믿음, 가장 소중한 건강, 자기가 지금 처하고있는 이 현실의 귀중한 의미를 내가 깨닫지 못한다면 은혜도 은혜 될 수 없고 복도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가 은혜 되는 것은 은혜를 은혜로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로 느껴야합니다. 은혜로 감격해야합니다. 그리고 은혜로움 그 안에서 만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은혜 된 현실을 보면서 은혜 앞에 자기자신을 위탁해야 됩니다. 바로 그러한 생이 그리스도인의 생이요 바른 생이요 행복한 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광야에서 모세와 하나님께 원망불평하며 난리를 쳤을까요?
은혜를 못 받아서가 아닙니다. 받은바 은혜를 헤아리지 못하고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어떻게 홍해를 건넜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물을 마셨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아말렉을 쳐부술 수 있었습니까? 자신들의 힘으로입니까? NO!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과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은혜와 사랑을 헤아리지 못하므로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추석에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헤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하되 말로만이 아닌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리며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올 때 공수(빈손)으로 나오지 말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추석에 풍성한 감사를 드릴 줄 아는 것이 올바른 성도의 자세입니다.
이 추석에 해야할 세 번째는
3. 받은바 은혜를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막절이나 우리나라의 추석은 기쁜 날입니다. 그러기에 그 기쁨을 혼자 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와 자녀와 노비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과 함께 기뻐하며 잔치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오늘날 말로 번역하면 가족과,회사 직원들과, 교회 목회자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잔치하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여러분의 이웃입니까? 여러분의 가족도 이웃이겠으나 여러분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설교 준비하다가 감동을 받았는데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기뻐하며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성령의 감동으로 제안을 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섬김의 집 노인들을 생각하시고 또 에벤에셀의 정박아 어린이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개척교회를 하느라 한 두명의 성도를 어렵게 섬기며 살아가는 목사님들, 그리고 그오산에 있는 광야 선교회에 장애자선교회, 해외에서 고국의 추석을 생각하며 지낼선교사들, 그들을 생각하셔서 그들과 함께 추석의 기쁨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이 일에 동참을 원하시는 분은 적은 정성이라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일이지만 그들에게 줄 선물과 떡, 그리고 쌀, 아니면 단돈 만원라도 동참하시면 우리에게는 즐거운 추석이 그들에게도 즐거운 추석이 되도록 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우스운 얘기하나 할까요? 어느 날 신앙이 좋은 교인 하나가 길거리에 나섰다가 아주 끔찍한 보았습니다. 한끼의 식사가 없어서 헤매는 사람, 노숙자들도 보고요, 젖이 나오지 않는 빈 젖을 빨면서 우는 어린아이를 보았어요. 너무 비참한 모습을 보다가 그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렇게 비참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대책을 세울 겁니까, 안 세울 겁니까?" 하고 하나님 앞에 협박기도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대책이라고? 이 답답한 녀석아, 내가 심심풀이로 너를 만든 줄 아느냐?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이 뭐냐! 바로 그 사람을 돕는 일은 네가 할 일이야 이놈아 그래서 나는 넉넉히 너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지구상에 넉넉한 양식을 주었습니다. 온 세상 사람이 이제부터 50년까지도 충분히 먹고 남습니다. 사람들이 못돼서 나누지 않고 혼자서 너무 많이 먹어 문제입니다. 그래가지고는 뭐 찜질 방에 가서 땀을 흘리고 앉아 있고 다이어트 하느라고 야단들입니다. 그거 다 죄요.
어떤 목사님이 이북을 다녀왔는데 우리 돈 20,000원, 달러로 15불이면 한 가정이 먹고산답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어 굵고 병들어 삐쩍 말랐답니다. 성도여러분! 왜 그들을 우리 주변에 두셨는지 그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받은 바 은혜가 많다면서 그 은혜를 나만 누리려면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심리학자는 인간을 세 단계로 보았습니다.
첫째는 받는 단계요, 두 번째는 소유하는 단계요, 세 번째는 주는 단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땅에다 씨를 심는 단계, 자라나는 단계, 열매 맺어서 주인을 기쁘게 해주는 단계가 있습니다. 믿음 생활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단계, 은혜 받는 단계, 은혜 받은 다음에는 주는 단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항상 은혜를 받으려고만 하면 안됩니다. 10년 정도 믿었으면 교회 봉사를 하고, 이웃 사랑을 하고, 가진 것을 주기도 하면서 이제는 듣는 것보다 봉사하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행20:35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교회도 개척하는 과정이 있고, 개척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이 있고, 성장한 다음에는 자기 성을 짓거나 자기 바벨탑을 쌓지 말고 나누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교회, 어려운 교회를 도와주면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때 열매 맺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단계의 사람입니까?
이 추석에 여러분은 어떤 것을 할 것입니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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