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가기 |
마26:26∼29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8세기에 독일에 있는 어떤 가정에서 한 남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머리도 남달리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 가지 신체적인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는 허리가 굽은 곱사등이였습니다.
그는 청년이 되면서 같은 동네에 사는 한 처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처녀에게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면서 결혼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처녀는 그가 가진 장애 때문에 선뜻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자기는 건강하고 자기의 아내가 될 신부는 허리가 굽은 곱사등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는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애원을 했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저를 곱사등이로 만들어 주시고, 제 사랑하는 아내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간절한 소원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그의 신부는 허리가 펴지고 그 대신 그의 몸은 허리가 굽어져서 곱사등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비록 꿈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에 대해서 그는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결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짝 지움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으십니까?"
그 여인도 믿음이 깊은지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진솔하게 자기가 꾸었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여인은 그가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는지 깊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에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고서 그를 자기의 남편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독일의 음악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였고 또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모제스 멘델스존과 그의 헌신적인 아내 프롬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받는 신부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모든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자신이 대신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고초를 겪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노르웨이에 있는 어느 시골에 가면 종탑의 모양이 특이한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보통 교회의 종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뚝 서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종탑에는 어린양의 조각이 서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그 교회가 건축을 할 때였습니다. 시골 교회라서 재정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 교인들은 교회를 건축할 때 직접 나서서 일을 했습니다. 교회의 건축이 거의 마무리될 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높은 종탑을 세우기 위해서 교인 가운데 한 사람이 건물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실수로 그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그 사람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때마침 그 시간 그 밑에는 한 무리의 양떼가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양떼위로 떨어졌습니다. 그 결과 어린 양 한 마리가 깔려서 죽고 그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 놀라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 교회는 종탑에 죽은 어린양의 조각을 세워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서 외쳤던 음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고초를 겪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대신 우리의 모든 죄는 깨끗하게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눈물샘이 터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해서 눈물짓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그의 신실한 열 한 제자들과 함께 남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옛 언약을 의미하는 유월절 만찬을 종료하셨습니다. 그 대신 새 언약을 의미하는 성찬을 새롭게 제정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성찬과 관련해서 세 가지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찬의 내용과 성찬의 의미와 성찬의 기한입니다.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성찬의 내용을 살펴봅니다.
성찬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두 가지로 되어있습니다. 떡과 포도주입니다. 유월절에는 누룩이 없는 떡, 이른바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딱딱하고 맛도 없습니다. 포도주도 평소 마시던 포도주에 물을 많이 타서 희석을 시켰습니다. 거룩한 예식이 술기운으로 인해서 경건에 지장을 입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찬의 내용물은 지극히 간단하지만 그 예식은 너무나도 거룩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6절 말씀입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여기에 여러 가지 동작들이 나옵니다. 누가 떡을 가지셨습니까? 누가 축복하셨습니까? 누가 떡을 떼셨습니까? 누가 제자들에게 떡을 주셨습니까? 누가 받아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모든 동작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27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잔은 가지신 분도 예수님이시고, 사례하신 분도 예수님이시며, 그것을 제자들에게 주신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고 말씀하신 분도 역시 예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성찬을 제정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아울러서 성찬을 집례하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떡을 받고 잔을 받을 때 우리 믿음의 눈을 통해서 친히 성찬을 집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떡을 받고 잔을 받을 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찢기신 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손을 분명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던 골고다 언덕에서 지팡이 하나를 기념품으로 샀습니다. 자기의 절친한 친구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는 성지순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기의 친구를 만나서 자기가 선물로 사온 지팡이를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도 우리와 함께 성지순례를 갔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그랬네.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 있던 골고다 언덕에서 자네 생각이 하도 간절하게 나기에 자네에게 주려고 이 지팡이를 선물로 사 왔다네."
그러자 친구는 선물을 받으면서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네가 나를 잊지 않고 생각해 주어서 너무나도 고맙네. 그런데 이 지팡이를 보면서 이런 느낌이 강하게 전해지네. 그때 그 자리에는 자네말고도 또 나를 잊지 않고 생각해 주셨던 분이 계셨다네."
그가 누구인지를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자네는 믿음이 그토록 좋다고 하면서 그분이 누구인지를 모르겠는가? 바로 예수님일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네와 나를 생각하시면서 그 모든 고초를 겪으시고 돌아가지 않으셨는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생각하시면서 그 모든 고초를 달게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시간 성찬을 친히 집례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찢기신 손, 예수님의 피 흘리신 손, 우리에게 떡과 잔을 주시는 예수님의 손을 우리 믿음의 눈을 통해서 우리가 분명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성찬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방금 우리가 살펴본 대로 성찬의 내용물은 지극히 간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 엄청나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떡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26절 끝 부분입니다.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떡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찢어 주신 예수님의 몸이요, 예수님의 살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이 되면 반드시 누룩이 없는 떡, 이른바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왜 그들은 유월절에는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었습니까? 본시 누룩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삶에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가 애굽에서 살던 삶의 영향을 받지 않겠습니다. 과거와 단절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러한 의미로 그들은 누룩 없는 떡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떡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떡을 받아 먹을 때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찢어 주신 예수님의 몸이라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잔 안에 담긴 포도주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28절입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잔에 담긴 포도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한 방울도 남김없이 우리를 위하여 아낌없이 흘려주신 예수님의 거룩한 피, 예수님의 뜨거운 보혈입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언약을 맺을 때 반드시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제나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피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인 우리는 더 이상 짐승을 잡아서 피를 뿌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어린양이 되셔서 피를 흘리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죽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옛 언약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친히 몸 버려 피 흘려 우리의 모든 죄를 한꺼번에 씻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히9:22절 하반부의 말씀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느니라."
우리의 죄가 사함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되 단순히 죽으실 수는 없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병에 걸려 돌아 가신다든지, 심장마비로 돌아가실 수는 없으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서 반드시 피를 흘리시면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가시면류관에 찔리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굵은 못에 박히셨습니다. 날카로운 창으로 허리를 상하셨습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셨습니다. 그리함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는 잔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한 방울도 남김없이 흘려주신 예수님의 피라는 사실을 우리가 다시 한번 깊이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20세기 초에 이탈리아에 지오바니 파피니라는 유명한 소설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글을 잘 썼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늘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파피니가 죽을병에 걸려 꼼짝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그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이 그의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일러주었습니다.
"그의 병에는 인육, 사람의 고기가 제일 좋습니다. 사람의 고기를 구해서 먹이면 어쩌면 그의 병이 나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파피니의 어머니는 예리한 칼로 자기의 허벅지를 도려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요리를 해서 아들에게 먹였습니다. 그 덕분인지 파피니는 차츰 원기를 회복했습니다.
며칠 뒤에 파피니는 자기 어머니에게 그 고기를 다시 한번 먹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외출한 틈을 타서 또다시 자기의 다른 쪽 허벅지를 도려내었습니다. 그러다가 동맥을 잘랐습니다. 피가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잠시 뒤에 외출에서 돌아온 파피니는 그 끔찍한 장면을 보고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죽어가는 어머니를 품에 안고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오열하는 목소리를 듣고 그의 어머니는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들아, 나는 죄 많은 몸으로 너의 목숨을 일시적으로 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신 몸으로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주셨다. 그러니 너는 반드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간절히 부탁한다. 꼭 예수님을 믿도록 해라."
그때부터 파피니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의 유언대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뒤 그는 "그리스도의 이야기," "떡과 포도주"등 신앙적인 글을 통해서 자신의 남은 삶을 복음을 전하는데 바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다 주셨습니다. 오늘 성찬을 통해서 우리가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루는 성 프랜시스가 자기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갑자기 왜 우십니까?"
성 프랜시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생각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네."
그 뒤로도 성 프랜시스는 종종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흐느껴 울곤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처럼 심령이 메말라 있는 우리들, 눈물이 메말라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의 눈물샘이 터지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십자가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시면서 자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다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해서 눈물짓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성찬의 기한을 살펴봅니다.
우리가 성찬을 언제까지 지켜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시고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입니다.
29절입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포도나무에서 난 것, 곧 포도주를 이제부터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제자들과 함께 마시는 그 날까지는 다시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구약의 유월절 만찬이 종료된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 이후 우리는 두 번 다시 유월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때의 만찬을 일명 "최후의 만찬"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유월절 만찬이 종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새롭게 제정해 주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을 지키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은 성찬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언제까지 성찬을 지켜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우리 주와 더불어서 먹고 마시는 그 날까지입니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시고 우리에게 오시는 그 날에 우리는 공중으로 끌어 올려갈 것입니다. 그 직후 우리는 계19:9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지극한 영광 가운데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해서 다시금 먹고 마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까지는 우리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명에 따라서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을 계속해서 거룩하게 지켜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시금 성찬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성찬 앞에 놓여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믿음의 눈을 통해서 골고다 언덕에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조용히 바라보십시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가시에 찔린 예수님의 얼굴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양 손과 양 발에는 굵은 못이 박혀 있습니다. 못 박힌 자리에서도 붉은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우리를 위해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서는 예수님을 못 박은 자들의 희롱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의 몸은 아래로 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처는 더 커져갑니다. 예수님의 찢겨진 몸은 점점 더 크게 찢어져만 갑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시간은 흘러갑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예수님의 음성을 우리가 들을 수 있습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예수님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출혈로 인해서 예수님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습니다.
"내가 목이 마르다."
그 소리를 듣고서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 포도주를 적셨습니다. 갈대에 꿰어 예수님의 입에 대었습니다. 네 시간,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 드디어 예수님은 운명하셨습니다. 잠시 후에 군병들이 예수님께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가운데 한 군병이 날카로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푹 찔렀습니다. 그곳에서는 피와 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하늘과 땅도 차마 그 광경을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해는 빛을 잃었습니다. 온 땅에는 어둠이 내렸습니다. 땅은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이와 같이 온갖 고초를 겪으시면서 돌아가셔야만 되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모든 고초를 겪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조금이라도 동참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자 몸부림이라도 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에 감격하며 눈물짓고 헌신을 다짐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의 남은 생애를 주를 위해서 쓰임 받기를 원하는 거룩한 마음의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8세기에 독일에 있는 어떤 가정에서 한 남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머리도 남달리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 가지 신체적인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는 허리가 굽은 곱사등이였습니다.
그는 청년이 되면서 같은 동네에 사는 한 처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처녀에게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면서 결혼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처녀는 그가 가진 장애 때문에 선뜻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자기는 건강하고 자기의 아내가 될 신부는 허리가 굽은 곱사등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는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애원을 했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저를 곱사등이로 만들어 주시고, 제 사랑하는 아내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간절한 소원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그의 신부는 허리가 펴지고 그 대신 그의 몸은 허리가 굽어져서 곱사등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비록 꿈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에 대해서 그는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결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짝 지움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으십니까?"
그 여인도 믿음이 깊은지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진솔하게 자기가 꾸었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여인은 그가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는지 깊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에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고서 그를 자기의 남편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독일의 음악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였고 또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모제스 멘델스존과 그의 헌신적인 아내 프롬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받는 신부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모든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자신이 대신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고초를 겪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노르웨이에 있는 어느 시골에 가면 종탑의 모양이 특이한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보통 교회의 종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뚝 서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종탑에는 어린양의 조각이 서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그 교회가 건축을 할 때였습니다. 시골 교회라서 재정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 교인들은 교회를 건축할 때 직접 나서서 일을 했습니다. 교회의 건축이 거의 마무리될 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높은 종탑을 세우기 위해서 교인 가운데 한 사람이 건물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실수로 그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그 사람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때마침 그 시간 그 밑에는 한 무리의 양떼가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양떼위로 떨어졌습니다. 그 결과 어린 양 한 마리가 깔려서 죽고 그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 놀라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 교회는 종탑에 죽은 어린양의 조각을 세워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서 외쳤던 음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고초를 겪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대신 우리의 모든 죄는 깨끗하게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눈물샘이 터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해서 눈물짓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그의 신실한 열 한 제자들과 함께 남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옛 언약을 의미하는 유월절 만찬을 종료하셨습니다. 그 대신 새 언약을 의미하는 성찬을 새롭게 제정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성찬과 관련해서 세 가지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찬의 내용과 성찬의 의미와 성찬의 기한입니다.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성찬의 내용을 살펴봅니다.
성찬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두 가지로 되어있습니다. 떡과 포도주입니다. 유월절에는 누룩이 없는 떡, 이른바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딱딱하고 맛도 없습니다. 포도주도 평소 마시던 포도주에 물을 많이 타서 희석을 시켰습니다. 거룩한 예식이 술기운으로 인해서 경건에 지장을 입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찬의 내용물은 지극히 간단하지만 그 예식은 너무나도 거룩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6절 말씀입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여기에 여러 가지 동작들이 나옵니다. 누가 떡을 가지셨습니까? 누가 축복하셨습니까? 누가 떡을 떼셨습니까? 누가 제자들에게 떡을 주셨습니까? 누가 받아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모든 동작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27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잔은 가지신 분도 예수님이시고, 사례하신 분도 예수님이시며, 그것을 제자들에게 주신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고 말씀하신 분도 역시 예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성찬을 제정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아울러서 성찬을 집례하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떡을 받고 잔을 받을 때 우리 믿음의 눈을 통해서 친히 성찬을 집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떡을 받고 잔을 받을 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찢기신 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손을 분명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던 골고다 언덕에서 지팡이 하나를 기념품으로 샀습니다. 자기의 절친한 친구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는 성지순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기의 친구를 만나서 자기가 선물로 사온 지팡이를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도 우리와 함께 성지순례를 갔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그랬네.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 있던 골고다 언덕에서 자네 생각이 하도 간절하게 나기에 자네에게 주려고 이 지팡이를 선물로 사 왔다네."
그러자 친구는 선물을 받으면서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네가 나를 잊지 않고 생각해 주어서 너무나도 고맙네. 그런데 이 지팡이를 보면서 이런 느낌이 강하게 전해지네. 그때 그 자리에는 자네말고도 또 나를 잊지 않고 생각해 주셨던 분이 계셨다네."
그가 누구인지를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자네는 믿음이 그토록 좋다고 하면서 그분이 누구인지를 모르겠는가? 바로 예수님일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네와 나를 생각하시면서 그 모든 고초를 겪으시고 돌아가지 않으셨는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생각하시면서 그 모든 고초를 달게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시간 성찬을 친히 집례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찢기신 손, 예수님의 피 흘리신 손, 우리에게 떡과 잔을 주시는 예수님의 손을 우리 믿음의 눈을 통해서 우리가 분명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성찬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방금 우리가 살펴본 대로 성찬의 내용물은 지극히 간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 엄청나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떡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26절 끝 부분입니다.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떡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찢어 주신 예수님의 몸이요, 예수님의 살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이 되면 반드시 누룩이 없는 떡, 이른바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왜 그들은 유월절에는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었습니까? 본시 누룩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삶에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가 애굽에서 살던 삶의 영향을 받지 않겠습니다. 과거와 단절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러한 의미로 그들은 누룩 없는 떡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떡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떡을 받아 먹을 때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찢어 주신 예수님의 몸이라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잔 안에 담긴 포도주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28절입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잔에 담긴 포도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한 방울도 남김없이 우리를 위하여 아낌없이 흘려주신 예수님의 거룩한 피, 예수님의 뜨거운 보혈입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언약을 맺을 때 반드시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제나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피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인 우리는 더 이상 짐승을 잡아서 피를 뿌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어린양이 되셔서 피를 흘리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죽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옛 언약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친히 몸 버려 피 흘려 우리의 모든 죄를 한꺼번에 씻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히9:22절 하반부의 말씀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느니라."
우리의 죄가 사함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되 단순히 죽으실 수는 없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병에 걸려 돌아 가신다든지, 심장마비로 돌아가실 수는 없으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서 반드시 피를 흘리시면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가시면류관에 찔리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굵은 못에 박히셨습니다. 날카로운 창으로 허리를 상하셨습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셨습니다. 그리함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는 잔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한 방울도 남김없이 흘려주신 예수님의 피라는 사실을 우리가 다시 한번 깊이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20세기 초에 이탈리아에 지오바니 파피니라는 유명한 소설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글을 잘 썼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늘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파피니가 죽을병에 걸려 꼼짝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그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이 그의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일러주었습니다.
"그의 병에는 인육, 사람의 고기가 제일 좋습니다. 사람의 고기를 구해서 먹이면 어쩌면 그의 병이 나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파피니의 어머니는 예리한 칼로 자기의 허벅지를 도려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요리를 해서 아들에게 먹였습니다. 그 덕분인지 파피니는 차츰 원기를 회복했습니다.
며칠 뒤에 파피니는 자기 어머니에게 그 고기를 다시 한번 먹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외출한 틈을 타서 또다시 자기의 다른 쪽 허벅지를 도려내었습니다. 그러다가 동맥을 잘랐습니다. 피가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잠시 뒤에 외출에서 돌아온 파피니는 그 끔찍한 장면을 보고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죽어가는 어머니를 품에 안고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오열하는 목소리를 듣고 그의 어머니는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들아, 나는 죄 많은 몸으로 너의 목숨을 일시적으로 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신 몸으로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주셨다. 그러니 너는 반드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간절히 부탁한다. 꼭 예수님을 믿도록 해라."
그때부터 파피니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의 유언대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뒤 그는 "그리스도의 이야기," "떡과 포도주"등 신앙적인 글을 통해서 자신의 남은 삶을 복음을 전하는데 바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다 주셨습니다. 오늘 성찬을 통해서 우리가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루는 성 프랜시스가 자기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갑자기 왜 우십니까?"
성 프랜시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생각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네."
그 뒤로도 성 프랜시스는 종종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흐느껴 울곤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처럼 심령이 메말라 있는 우리들, 눈물이 메말라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의 눈물샘이 터지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십자가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시면서 자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다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해서 눈물짓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성찬의 기한을 살펴봅니다.
우리가 성찬을 언제까지 지켜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시고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입니다.
29절입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포도나무에서 난 것, 곧 포도주를 이제부터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제자들과 함께 마시는 그 날까지는 다시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구약의 유월절 만찬이 종료된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 이후 우리는 두 번 다시 유월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때의 만찬을 일명 "최후의 만찬"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유월절 만찬이 종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새롭게 제정해 주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을 지키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은 성찬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언제까지 성찬을 지켜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우리 주와 더불어서 먹고 마시는 그 날까지입니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시고 우리에게 오시는 그 날에 우리는 공중으로 끌어 올려갈 것입니다. 그 직후 우리는 계19:9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지극한 영광 가운데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해서 다시금 먹고 마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까지는 우리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명에 따라서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을 계속해서 거룩하게 지켜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시금 성찬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성찬 앞에 놓여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믿음의 눈을 통해서 골고다 언덕에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조용히 바라보십시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가시에 찔린 예수님의 얼굴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양 손과 양 발에는 굵은 못이 박혀 있습니다. 못 박힌 자리에서도 붉은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우리를 위해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서는 예수님을 못 박은 자들의 희롱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의 몸은 아래로 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처는 더 커져갑니다. 예수님의 찢겨진 몸은 점점 더 크게 찢어져만 갑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시간은 흘러갑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예수님의 음성을 우리가 들을 수 있습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예수님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출혈로 인해서 예수님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습니다.
"내가 목이 마르다."
그 소리를 듣고서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 포도주를 적셨습니다. 갈대에 꿰어 예수님의 입에 대었습니다. 네 시간,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 드디어 예수님은 운명하셨습니다. 잠시 후에 군병들이 예수님께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가운데 한 군병이 날카로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푹 찔렀습니다. 그곳에서는 피와 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하늘과 땅도 차마 그 광경을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해는 빛을 잃었습니다. 온 땅에는 어둠이 내렸습니다. 땅은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이와 같이 온갖 고초를 겪으시면서 돌아가셔야만 되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모든 고초를 겪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조금이라도 동참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자 몸부림이라도 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에 감격하며 눈물짓고 헌신을 다짐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의 남은 생애를 주를 위해서 쓰임 받기를 원하는 거룩한 마음의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선한 마음으로 출발을 / 마 18:1-4 (0) | 2022.03.31 |
---|---|
( 교역자 교육 )온가족 여름 수련회 GBS (0) | 2022.03.31 |
(직분 은퇴식)아름다운 완주 / 딤후 4:7-8 (0) | 2022.03.31 |
(세례 성찬)세례식과 성찬식 순서 (0) | 2022.03.31 |
(세례 성찬)세례와 성찬은 (0) | 2022.03.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