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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스리기(4)-마음을 기경하라
마가복음 4:1-20 눅8:4-8(9-15) 마13:1-9(18-23)
[눅8: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눅8:15]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렘4:3]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호10:12]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같은 예수 믿고 같은 교회 다니면서 같은 목사님 밑에서 하나님 말씀 듣는데 어떤 사람들은 놀라운 은혜를 받고 많은 열매를 맺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무 변화가 없이 답답하게 사는 것을 봅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성경 말씀은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을 줍니다. 그 이유를 마음 밭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 본문의 개략 설명...
예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실 때 대다수의 청중들은 농경문화에 살고 있었으므로 그 말씀의 표면적인 의미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5-8절은 씨 뿌리는 비유에 관한 말씀으로서, 씨 뿌리는 자나 씨앗 자체보다도 오히려 다양한 종류의 토질(土質) 곧 성도들의 마음 밭에 강조점이 있는 것을 봅니다.
"씨 뿌림의 성공" 여부는 토양의 성질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즉 그 토양이 씨를 받아들일 준비가 갖추어져 있느냐 없느냐에 크게 좌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됨됨이"에 따라서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도 되고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향기도 됩니다."
이 성경 말씀을 통해 어떤 마음 밭일 때 열매 맺지 못하고, 어떤 마음 밭을 가질 때 은혜를 받고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마음이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 독특한 성질들을 가려내려고 오래 전부터 애써 왔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자신에 대해 의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즉, 자신이 지금 지구 어디엔가 있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느 때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내성(耐性)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과, 또한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언뜻 쉽게 생각하면 마음을 정의하는 것은 쉽고 간단한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대체로 마음이란 단어는 기억, 감정, 지능, 이성, 지각, 판단을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그러나 마음이란 단어를 정의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마음은 심장이 아니라 뇌에 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 성경에서 마음을 정의하는 단어는 히브리어 בל (레브)이며, 헬라어는 καρδὶα(카르디아)로서, 인간의 내면생활의 중심처이고, 종교생활의 근원이며, 하나님께서 역사(일)하시는 장소이고, 이곳에서 또한 윤리적 태도 및 행위가 결정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인에게 있어서는, 육체적 능력과 정신적 능력이 구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인간의 최고 내부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것이 감정적, 의지적인 힘뿐 아니라, 육체적인 힘의 근원, 지적 능력의 터로 이해하였습니다.
따라서 사고, 태도, 공포, 희망 등의 역사(일)는, 모두 마음에 의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마음에 있어서 행해지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천국에 대한 비유로 주제가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물론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밭은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결론은 아무리 좋은 씨도 좋지 않은 밭에 뿌려지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본문 전반부에서는 마음에 대한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그 마음을 밭으로 예수님은 비유를 들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길가 같은 마음 -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5절에서 “길가에 떨어지매” 라고 했습니다. 밀이나 보리 등을 사람이 손으로 뿌리는 일은 통상적이었습니다. 팔레스틴의 토지는 보통 가늘고 길게 분할되어 있고 분할된 밭 사이에 좁은 길이 있어 자유로이 다닐 수 있었습니다. 씨를 뿌릴 때는 이 좁은 길에도 씨가 뿌려질 수 있었습니다. 이 곳에 떨어진 씨는 당연히 뿌리를 내릴 수가 없으며 농부들이 지나다닐 때 그 발에 밟히거나 새들의 먹이가 되어 버리게 마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의 해설을 8:12절에서 해주셨습니다.
길가와 같은 상태의 인간은 말씀을 듣기는 하나 그 말씀에 대해 냉담(冷談)하거나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말씀이 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마귀가 틈타는 결과를 낫는다고 말씀했습니다.
마귀는 길가와 같은 상태의 사람들이 말씀을 듣는데 그치고, 받아들이기를 보류(保留)하고 있을 때 그 말씀을 빼앗는 역할을 합니다. 5절과의 관계에서 살펴볼 때 씨앗은 밟히기도 하고 새에게 먹히기도 한다는 점에서 말씀을 빼앗아 가려는 마귀의 훼방은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습니다.
▶ 에덴에서의 마귀 역사,
마귀는 미묘하고 짓궂은 원수입니다. 그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유익을 얻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입니다. 그는 "부주의한" 자들의 마음속에서 말씀을 빼앗아감으로써, "그들이 믿어 구원받게 되는 일이 없도록" 만듭니다(12절).
이러한 사실이 부가적으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런 것입니다.
마귀는 온갖 수단을 다하여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들었을 때에 그것을 믿지 못하게끔 만듭니다. 또는 그 말씀이 당장 우리에게 필요해진 때에, 잊어버리게 하거나 떠내려가게 만드는 것입니다(히 2:1). 또는 다시 우리가 기억하게 되면, 우리 마음속에 그 말씀에 대한 나쁜 편견을 유발시키거나, 다른 데로 우리의 마음을 "돌리게 합니다." "우리가 믿어 구원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즉 우리가 믿어 "기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서 온갖 일을 다 하면서, 갖은 수단을 다하여 방해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집중하여 듣지 않으면 말씀은 길가로 떨어집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지 않으면 말씀은 길가로 떨어집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마음에 선입관념을 가지고 들으면 말씀은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 말씀을 들을 때 마음에 거부감이나 비판의식을 가지면 말씀은 길가로 떨어집니다.
▶ 말씀을 들을 때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말씀은 길가로 떨어지고 맙니다.
▶ 수문 앞 광장의 이스라엘처럼 말씀을 받아야 함.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나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큰 권세와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씨앗을 저버리면 인간 스스로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결실이 없는 것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우리 주위에 배회하면서 말씀의 씨앗을 빼앗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2. 돌(바위) 같은 마음 - 말씀을 지속하지 못하는 사람
본문 6절에 “바위 위에 떨어지매” - 마태(마 13:5)나 마가(막 4:5)는 '돌밭'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돌로만 이루어진 곳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밭에 간혹 바위가 있어 그 바위 위에 흙이 얇게 덮여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땅에서는 씨에서 싹이 나서 조금 자라기는 하지만 수분이 부족하고 자양분이 없으므로 해가 뜨면(마 13:6) 곧 말라 죽게 됩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은 8:13에서 해설해 주고 계십니다.
“바위 위에 떨어졌다는 것은... 시험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라고 하셨습니다.
바위 위에 얇게 흙이 덮혀 있는 것과 같은 상태의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때 감정적 흥분과 피상적 열정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감정의 상태를 넘어 말씀이 심령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하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신앙을 예수께서는 뿌리 없는 믿음이라고 규정하는바 이들의 믿음은 일시적이며 잠정적입니다. 믿음의 진정성 여부는 시험에 견디어 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검증(檢證)되어집니다.
이들의 믿음은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말씀을 듣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립니다.
한편 본문에서는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믿음이 참인가를 검증할 수 있는 '시험'이 필연적임을 암시합니다.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믿음은 마치 뿌리 없는 식물과 같이 그 생명이 오래가지 못하며 따라서 그 과실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시험을 견디어낸 믿음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약 1:12).
▶ 바위 같은 마음이란 완고하고 깨어지지 않는 마음입니다.
▶ 바위 같은 마음이란 전통에 젖어 있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증거 해도 수용하지 않습니다.
▶ 바위 같은 마음이란 믿는 것이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손해나 어려움을 준다고 느낄 때는 믿음을 미련 없이 버리는 마음입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으면 상당한 이익이 있는 줄 알고 열심히 교회에 나오나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거나 불이익이 다가오면 헌신짝 같이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 바위 같은 마음이란 말씀을 듣고 계속 반복하여 묵상하거나 마음에 늘 새기지 않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 바위 같은 마음이란 들은 말씀에 믿음을 더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살전2:13)
완고하고 패역한 마음, 불신앙하는 마음, 오직 신앙을 유익의 가치로 여기는 그러한 마음은 돌짝밭 같아서 조금 교회에 왔다 갔다 하다가 다 시들어 버리고 신앙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3. 가시 떨기 같은 마음 - 말씀을 키우지 못하는 사람
본문 7절에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 팔레스틴에는 유난히 가시가 돋은 식물들이 많이 자랍니다. 헥커(Hacker)와 같은 학자의 분석에 의하면 히브리 성경에는 가시나 가시 종류의 식물을 의미하는 용어가 22종류나 된다고 합니다. 아무튼 가시 떨기 속에 뿌려진 씨는 싹이 나고 자라기는 하지만 왕성한 성장력들 지닌 가시떨기에 자양분(滋養分)을 빼앗겨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은 8:14절에서 해설해 주셨습니다.
“ 가시떨기에...일락에 기운이 막혀” - 가시떨기와 같은 상태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영
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상당한 정도의 신앙을 갖게 되지만 궁극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의 가치를 혼동함으로써 결국에는 실패하는 부류들입니다.
마치 세례요한의 메시지에 대해 그것이 옳은 것임을 알지만 세상적인 지위와 부귀에 대한 미련 때문에 결국은 인정하지 않고 죄를 범했던 헤롯 안디바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가시 밭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다음의 세 가지가 문제가 됩니다.
▶ 첫째는, 이생의 염려입니다. 마가는 '이생의' 대신에 '세상의'라고 표현했는데(막4:19), 지극히 세속적인 것에 대한 염려 때문에 신앙이 온전히 성장하지 못하게 됨을 말함에 있어서는 같은 뜻입니다.
이 염려는 신앙생활에 매우 해로운 것으로 영혼의 저항력을 조금씩 약화시켜 마침내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죽은 영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것을 경계하여 염려하지 말 것에 대한 교훈을 주신 바 있습니다(12:22-34;마 6:25-34).
▶ 둘째는 재리(財利) 입니다. 재물에 대한 지나친 열망 때문에 진리를 따르지 못한 예는 '어리석은 부자'(12:16-21), '부자 관원'(18:18-23)과 같은 이야기에 아주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 셋째는 일락(逸樂) 즉 생의 향락이다. 일시적이고 표면적이며 충동적인 육체의 쾌락을 위해 영혼의 존귀한 가치를 망각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숭고한 영혼을 조금씩 침식하여 마침내는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요 4:36) 맺지 못하게 하는 생의 향락은 크게 둘로 나누입니다.
첫째는 그 자체가 죄악이 되는 술 취함, 음란한 행위, 폭력 등이며
둘째는, 그 자체는 죄악이 아니나 심하게 빠져들 경우 죄가 될 수 있는 유흥, 스포츠 등입니다.
가시가 우거진 숲에 씨앗이 떨어지면 싹이 나더라도 가시 기운에 눌려서 제대로 자랄 수 없습니다.
눅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가시 덩쿨이란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탐욕과 욕심입니다. 현실적인 이해관계에만 관심을 가지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말씀을 키우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 예수님을 찾아 온 부자 청년 :
이런 것들을 단호하게 물리쳐 말씀을 아름답게 키워 100배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축복합니다.
4. 좋은 땅 같은 마음 - 말씀을 잘 받아 잘 믿고 잘 지키는 사람
본문 8절에 “좋은 땅에 떨어지매” - 충분한 습기와 자양분을 구비하고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잘 성장하여 30배, 60배, 백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마태나 마가의 경우에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3단계로 구분되어 있으나(마 13:8;막 4:8), 누가는 나머지 두개는 생략한 채 백배의 결실만을 언급함으로써 풍성한 결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은 8:15에서 해설하고 있습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 - '마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르디아'는 인간의 영적, 지적, 의지적인 요소가 집중되어 있는 전인적(全人的)인 좌소를 가리킵니다.
돈벌이나 사리사욕과 같은 낮은 차원의 성취에 몰두하지 않고 지혜나 의로움 등의 숭고한 일을 획득하는 일에 열심인 태도를 묘사하는 말입니다.
복음의 씨가 뿌려져서 좋은 열매를 맺기에 적합한 마음은 그 다음의 형용사 '좋은'이라는 단어에 의해 더욱 분명해집니다. '좋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데'는 숭고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시에는 작은 것들을 과감하게 포기할 줄도 아는 내면 상태를 가리킵니다.
▶ 좋은 마음이란 가르침과 계명을 받을 자세가 잘 된 마음입니다(15절). 죄악 된 타락에 물들지 않은 마음, 하나님과 의무에 집중하고 있는 마음, 정직하고 부드러운 마음, "말씀을 듣고 떠는" 마음이 바로 착하고 좋은 마음이니,
▶ 좋은 마음은 들은 것을 "이해하는-깨닫는"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 좋은 마음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마가복음),
▶ 좋은 마음은 말씀을 "간직하는 것입니다"(누가복음).
▶ 좋은 마음은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염려, 재물에 대한 욕심, 그리고 쾌락과 같은 마귀의 시험을 '인내'로 견디어내 마침내 백배의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인내'는 모든 영적 열매가 발아(發芽)하고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는 우리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며 생명을 얻고 넘치게 얻게 할 수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어떤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말했습니다.
씨앗은 그 속에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으면 싹이 나고 줄기가 돋고 입이 나고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그 속에 삼십 배 혹은 육십 배, 백배로 결실 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하신 근본 중심은 씨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고 밭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호세아 10:12절 말씀입니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4:3절입니다.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묵은 땅을 갈아엎어야 토질이 바뀝니다.
묵은 땅의 기경이 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 밭을 새롭게 고치라는 말씀 아닙니까?
길가 밭과 같고, 돌밭과 같고, 가시덤불 밭과 같은 마음을 갈아엎어 옥토 같은 마음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길가 밭과 같은 마음의 소유자를 냉담형이라 합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감정형이라 합니다. 가시덤불 같은 마음을 소유한 자 세속형이라 합니다. 좋은 밭과 같은 마음의 소유자를 성령형이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의 소유자입니까?
길과 밭과 같이 완악하고 교만한 마음은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의 역사입니다.
돌밭과 같이 말씀의 뿌리가 마르게 하는 불신과 원망과 불평과 시기와 질투 같은 돌을 우리의 마음에서 걷어내야 합니다.
가시덤불 밭과 같이 말씀이 말라버려 열매를 못 맺게 하는 잡초와 같은 세속주의를 뽑아 버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옥토 같은 마음을 준비하여 말씀의 씨앗을 통해 100배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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