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성장과 시련
약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려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
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오늘 본문은 시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때로 아픔이 오고 시련이 오는 것을 되도록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평안하고 무사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살아가는데 찾아오는 많은 시련들을 온전히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신앙적으로 온전함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여기 온전함이라는 말은 성숙함을 말하고 성장함을 말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평안하기를 갈구합니다. 일이 잘되고 건강하고 평안한 삶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새해 여러분들이 써낸 기도 제목을 보니까 건강, 평안, 일이 잘됨을 희망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아주 소박한 꿈이고 바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그렇게 건강과 평안과 일이 잘되는 복만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더 열심히 하나님을 잘 믿을 것인데 말입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새신자들이 교회에 등록하고 출석하자마자 그날부터 건강하고 평안하고 형통한 은혜를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그 새신자들이 얼마나 잘 믿고 신앙생활을 잘 할 것인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장로님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대표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일주일 동안 분주하게 일하다가 기도준비를 할 때 잘 안됩니다. 그래서 고민이 많습니다. 구역 강사들이 가장 긴장하는 날이 금요일 구역예배 드리는 날입니다. 왜 그날이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가르치려고 준비를 해서 예배드리는데 잘 안됩니다. 그런데 예배드리러 갔는데 어느 교우 남편이 눈치도 없이 같이 예배드리겠다고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대학교수입니다. 이쯤 되면 참 눈앞이 암담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장로장립 받던 날, 구역 강사가 되던 날, 목사 안수 받던 날부터 입만 열면 술술 나오도록 만들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분은 그런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목사라고, 장로라고 답안을 미리 보여주는 그런 하나님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참 냉정하시고 아주 객관적이고 공평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성도들이 죽을병에 걸려 눈물 흘리고 금식하며 기도한다고 해서 다 고쳐주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공부는 안하고 금식하며 기도만 한다고 대학에 합격시켜 주시는 그런 하나님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밭이나 선한 사람의 밭이나 동일하게 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평안함만 주시고 형통만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은 불신자들과 똑같이 고민하게 하시고 고뇌하게 하시고 실패하게도 하시고 아픔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의 성숙을 기대하시고 성장하고 여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고민이 많은 존재들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성도들에게 초능력을 주시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랍비가 유대인 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길에서 돈이 가득 들어있는 지갑을 주웠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는가.”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첫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많고 생활을 가난한데 하나님이 특별히 나에게 주신 선물로 알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랍비가 “너는 도둑놈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도둑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나는 즉시 주인을 찾아 돌려주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랍비는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 지갑을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을 나도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나는 나의 약함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달려있습니다.” 그때 랍비가 “네 말이 맞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돈이 가득 들어있는 지갑을 주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지급을 주우면 그 순간부터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게 되겠습니까. 지갑을 주우면 그때부터 우리는 상당한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주인에게 돌려주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수준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지갑을 줍자마자 곧바로 경찰서를 찾아갈 수 있는 능력도 기질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갈등하다가 결국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는 그런 수준의 능력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의 성숙을 원하십니다. 신앙이 여물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이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신앙의 모습에서 향기가 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바램이십니다. 우리에게 약간의 특혜도 특별한 자질도 주시는 것 없이 이제는 알았으니 스스로 알아서 성숙해지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신앙이 성숙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몇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성숙은 참 좋은 것”
성숙함은 무엇이든지 참 좋은 것입니다. 그 모습은 보기에 좋고 내용이 좋습니다. 과일이 잘 익은 모습을 보면 얼마나 보기가 좋습니까. 보기도 좋지만 맛도 좋고 향기도 좋습니다. 씨앗을 심었더니 잎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더니 그 열매가 아주 탐스럽게 익어갑니다. 거기서 맛이 나오고 멋이 나오고 진가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숙함이 주는 기쁨입니다. 성숙함은 이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자녀들이 잘 커서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보면 또 얼마나 보기가 좋습니까.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행복해집니다. 그 아이가 커서 결혼을 하고 또 손자를 낳았습니다. 그 손자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른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목회자들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모이면 손자 자랑입니다. 손자 자랑을 너무들 하니까 손자 자랑할 때는 돈을 내고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너무 자랑을 하니까 듣는 사람들이 그만하라고 돈을 거둬준다고 합니다. 사실은 손자 자랑을 해도 괜찮습니다. 얼마나 그 모습이 예쁩니까.
식물이나 사람이나 열매를 맺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거기다 사람이 성숙해서 인격과 지성이 푹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 또 얼마나 보기가 좋습니까. 그 모습이 참 인간의 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흐트러진 모습을 가다듬게 되고 반항하던 사람들이 삶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숙하고 익어가는 모습을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성숙함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성숙은 시간이 필요”
그런데 이렇게 익어가고 성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식물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결실하기까지도 한 계절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또 아이가 성장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이 세상에서 자기구실을 하려면 적어도 30년의 세월이 흘러야 가능합니다. 그래도 내어 놓기가 미덥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영적인 성장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하겠습니까. 평생 신앙생활 해도 그 신앙이 미완성입니다. 신앙인이 영적으로 성숙해지려면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성격이 매우 급합니다. 그래서 신앙도 빨리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일 년 믿고 세례 받고 집사 되고 권사 되고 장로 되고 싶은 마음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빨리 성장되기를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빨리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 보다 얼마나 단단하게 얼마나 온전하게 성장할까를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절대로 급하게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면 우리를 즉시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사람으로 성숙하게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출애굽을 시키는데 그 준비시간만도 80년이 걸렸습니다. 출애굽 후 가나안까지 가는데 40년의 세월동안 가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성장속도에 맞추어 나아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문제는 성장 때문입니다. 준비 때문입니다. 준비 없이 그 땅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사람을 영적으로 성장시키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서 성장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이 배우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려야 암기되고 기억되게 하셨습니다. 한 가지를 외우는데도 한번 읽으면 기억되게 하신 것이 아니고 몇 십번씩 반복해야만 겨우 외워지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계속해서 반복해야만 가능하게 하셨고 노력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고 옛날로 돌아가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서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간 속에서 섭리하시고 역사하시고 운행하시며 일하십니다. 그러면서 한없이 기다리십니다. 참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기를 원하시고 신앙이 여물기를 기다리십니다. 왜 성장하지 못하느냐고 질책하지도 않으시고 화도 내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족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기도해 주시며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20년 30년 신앙생활을 했으면서도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모든 성장에는 고통이 따른다,”
성장하는 데는 반드시 괴롭힘과 고통이 수반됩니다. 식물들이 꽃을 피우기까지는 상당한 고통이 뒤따릅니다. 꽃이 피는데 꽃샘추위가 얼마나 괴롭힙니까. 때로 비바람이 얼마나 괴롭힙니까. 무엇이나 성장하려면 반드시 이 같은 고통이 수반됩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데도 고통이 따릅니다. 우선 공부해야하는 고통이 따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지옥훈련을 받듯 공부하는데 고생을 해야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숨이 막힐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그러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또 공부를 마치면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 생활에 적응하는데도 고통이 뒤따릅니다. 때로 실패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 곁을 떠나야 하는 고통도 있습니다. 그때 모두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인가, 부모 밑에 있을 때가 좋았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세상에 적응하는 동안 고달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성장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은 버릴 것을 버려야 하는 아픔입니다. 믿지 않을 때 하던 습관들을 끊고 버려야 합니다. 그때 포기해야 하는 아픔이 수반됩니다.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되면 옛날의 습관도 끊어야 합니다. 술도 끊고 담배도 좋지 않은 습관들도 끊어버려야 합니다. 끊고 버려야 하려니까 이것이 보통 질긴 것이 아닙니다. 인이 박혀서 끊기도 어렵지만 또 한편 마음에서는 허전하기도 하고 아까운 마음도 듭니다. 오늘 같은 시기에 뭐 이런 것을 다 가리라고 말하느냐고 말하겠지만 이런 것은 경건생활에 장애로 작용합니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된다고도 하지만 술은 적당히 마셔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시면 반드시 취하게 되어있고 취하면 실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한 사람에게 다가가 죽이려고 위협했습니다. 살려면 3가지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네 어머니를 살해하든지 네 여동생을 창녀로 팔던지 아니면 술 열 잔을 마시든지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술 열 잔을 마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해서 어머니를 살해하고 여동생을 팔아버렸습니다. 술은 정신을 혼미케 하고 영을 혼동 시켜 결국 실수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에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술을 끊어버려야 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이런 고통 말고 또 하나의 고통이 더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적으로 시험을 받는 일입니다. 신앙인에게는 끊임없이 이 시험이 다가옵니다. 알고 보면 이 시험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때 당시는 아픔이 있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 시험을 거치고 나면 곧 좋은 결과가 주어집니다. 겨울이 되면 춥고 얼고 눈이 오고 으스스 하고 좋지 않지만 그 겨울 때문에 봄이 기다려집니다. 그리고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에 반가움이 있고 신비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언제나 더운 나라에서 살면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도 반갑지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불행입니다. 폭풍이나 강풍은 사납게 세상을 흔들어 놓지만 그것이 지나고 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온 세상이 맑아지고 공기와 물과 세상을 맑게 변화시켜 줍니다. 또 큰 어려움을 당한 사람은 그 당시는 어려움도 있고 고통이 따르지만 그 어려움을 이기고 지난 후에는 더 감사하게 되고 더 알게 된 것 많아서 감사할 일이 많아집니다.
부부싸움도 싸울 때는 눈물나고 서운하고 마음도 상하지만 싸우고 나면 정이 더 새로워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 싸우는 부부는 안 싸우는 부부보다 더 정도 좋고 감칠맛 나게 산다고 합니다. 여러분 적당히 싸우며 사십시오. 싸우되 무례하게 싸우지 말고 품위 있게 싸우십시오. 어느 부부가 싸웠습니다. 남편이 화가 나서 집을 나갔습니다. 나가서 한참을 돌아다녔는데 더 이상 갈 곳이 없었습니다. 집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가 보았더니 창문이 열려있습니다. 창문 너머로 아내의 찬송소리가 들렸습니다.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자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자여 어서와 돌아와” 이 남편이 그 찬송의 뜻을 곧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들어가서 화답하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여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 없이 다니니” 부부싸움 하고 집 을 나가는 사람은 서툰 사람입니다. 나가면 어딜 가겠습니까. 그래도 나간 사람이 있으면 창문 열어놓고 찬송을 부르세요. 그 정도면 부부의 정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가지 아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형통만 주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편안함만 주시고 건강과 부요함과 잘됨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시험은 기회이고 은혜이고 변화의 찬스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늘 변화를 주시려고 애쓰십니다. 만일 그런 시험이 없으면 이 세상은 새로워짐이 없이 곧 망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실패가 없으면 엉망진창 될 것입니다. 실패가 있으니까 모두 조심하고 생각을 깊이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형통만이 아닙니다. 때로 형통이 저주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훈련하시고 강하게 만들어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신앙이 조금씩 성장하게 하고 발전하게 하고 변화하게 하고 끊고 버리고 새 길을 찾아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시련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이로써 인내를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인내를 키우게 되고 그래야 온전한 믿음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신앙인들로 하여금 아주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드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성숙하고 여물은 신앙인으로 만들어 세상에서 할 일을 다 하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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