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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은의 전도사랑방(5) 뫼비우스의 띠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마음씨 착하고 선행을 많이 베푸는 지킬이라는 박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매일 밤 살인과 절도 등 끔찍한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났습니다. 범인이 잡히지 않아서 냉가슴을 앓고 있던 중에 드디어 단서가 잡혔습니다. 유명인사가 지팡이에 맞아 살해되었는데, 그 범행에 사용된 지팡이의 주인이 지킬박사의 것이었습니다....지킬박사는 결국 자살하고 맙니다. 스티븐슨의『지킬박사와 하이드씨』라는 소설로서, 인간의 이중성을 갈파한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그 차이는 있을 지라도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이중성이 있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한편으로는 천사에 방불할 정도로 위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짐승과도 같은 이들이 우리 인간입니다.
뫼비우스의 띠
이런 인간의 이중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런 이중성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비참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위대함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위대해야 합니다. 또한 죄는 없어야 합니다.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어찌 소경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누가복음6장39절)? 이런 존재가 과연 가능할까요? 성경의 증언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비참한 처지인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순전한 인간이시고, 또한 가장 위대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어찌 이런 존재가 가능합니까?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습니다. 직사각형의 띠를 비틀어서 각각 그 끝을 연결하면 뒤틀려진 고리가 생깁니다. 한 면에 개미를 두고 기어가게 하면 그 반대 면으로도 개미가 기어가게 되는 아주 묘한 공간을 이룹니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영원과 순간이 교차하면서 태어나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입니다(마태복음1장18절). 단순한 인간의 생각의 차원과는 전혀 다른,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하나님이시며,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인간이신 그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이시기에 인간을 대신해서 인간의 죄를 지실 수가 있어서 인간의 비참을 해결하실 수 있고, 또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위대함을 이루셔서 그 위대함을 인간에게 회복시켜주실 수가 있으신 것입니다. 온 세상에 참사람이시고 참하나님이신(요한복음1장14,18절). 예수님만이 이렇게 하실 수가 있으십니다. 그래서, 성경의 사도행전 4장12절에서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합니다.
십자가, 십자가
그 예수가 인간 세상에 존재했던 형벌들 중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시다고 하는데 왜 이런 형벌과 저주를 받으셨을까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이사야53장4절)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절). 그래서 이 십자가의 소식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넘어지게 하는 거치는 돌이며 거리끼는 것이고 미련한 것입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쁜 소식, 복음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십자가의 형벌을 통해서 자신이 져야 할 죄의 값을 치루셨다고 믿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그 죽음이 어리석다고도 합니다. 바로 여기에 중요한 갈림길이 있습니다. 인간의 이중성을 해결함으로 참된 내가 되는, 영생이냐? 아니면, 거짓된 자아의 고뇌 속에서 당하는 영멸이냐? 참 자유냐 아니면 영원한 속박이냐? 이 선택 앞에 우리가 놓이게 됩니다. 이 갈림길을 다음 번 모임에 더욱 깊이 생각해 봅시다.
다음의 질문들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눠봅시다.
1. ‘뫼비우스의 띠’와 유사한 것이나 현상들을 아는 대로 나눠보세요.
2. 인간의 이중성(죄)를 해결하실 수 있는 자의 자격에 대해서 자신이 생각한 것과 위에서 제시한 것이 어떻게 다른가요?
3. 나는 십자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눠봅시다.
손성은
삼일교회 담임목사, 예장고신
크리스챤설교신문 제9호 2011년7월15일자 11면
http://choys0000.blog.me/1017950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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