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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주 예수를 믿으라(Ⅴ) 성 경: 사도행전 16:25∼34
설교자: 변한규 목사 (광주중앙교회)
오늘은 우리 교회가 지키는 총동원 전도 주일입니다.
5월 한 달동안 교회에 등록하시고 새가족이 된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 시간에는 특별히 새 가족이 된 여러분들을 중심으로 하여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라는 같은 본문 같은 주제로 다섯번째 증거하는 말씀이 지만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 가? 그 이유는 백가지도 넘을 것입니다. 그중 세가지를 말씀드리자면.....
첫째, 예수를 믿으면 평안을 얻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돌을 던져 유리를 깬 학생이 나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 학생은 무책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회에는 무책임한 인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살기가
각박하고 혼탁한 사회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지성인일수록 책임감이 강하며, 신앙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성숙한 인격의 첫째 요소는 바로 책임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느 냐?"고 물으셨을때, 가인이 "이 모든 책임이 내게 있습니다!"라고 말하였었 더라면 역사는 더 곱게 변천되었을 것입니다. 5.18때, 무등산은 알고 있다고 할 때, "이 모든 것 내게 책임이 있습니다"라 고 손을 들고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면 역사의 먹구름이 속히 거쳤을 것입니다.
본문은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는 말씀인데 전도자에게도 전도해야하는 책임이 있으며, 간수에게도 죄수를 지켜야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또한 그에게 주어진 책임 때문에 옥에 갇히면서 까지도 예수를 전하였고, 하다못해 옥중에서까지도 예수님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본문에 간수는 옥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을때 죄수들이 모두 도망한줄로 알고서 칼을 빼어 스스로 자결하려고 하였는데 이것 또한 자신의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웠기에 그랬겠습니까? 철학자들이 흔히 말하는대로 그의 마음은 불안이었고, 초초와 전율 공포 였을것입니다. 그래서 간수 는 이렇게 그들에게 물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평안을 얻으리 까?"그랬더라면 바울의 전도 메세지 내용이 이렇게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평안을 얻으리라!" 왜냐하면 실제적으로 예수를 믿으면 평안을 얻을 수 때 문입니다.
요 14: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느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사랑하는 성도여! 여기에서 평안은 첫째로 나의 평안, 즉 예수님의 평안이라는 사실입니다. 물질로 말미암은 평안이 아니며 쾌락이나 명예를 통해 얻는 평안이 아닙니다. 평안에는 사람이 만든 평안이 있고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는데 여기에서 평안은 헬라어로 '샬롬', 즉 예수를 믿으면 얻는 평안를 말합니다.
또 하나는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일시적인 평안이요 조건적인 평안입니다. 재물로 말미암은 평안은 재물이 없어질 때 도망하는 평안이며, 쾌락이 주는 평안도 조건적인 것이라 쾌락이 도망하면 역시 도망하는 평안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샬롬' 이 평안은 무조건적인 평안으로 부자나 가난한자나 모두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연 생수는 돈을 주고 사야 먹고 청정공기 또한 돈을 주고 사겠지만 그러나 이 평안은 무값으로 주는 선물이며 예수를 믿는 자라면 누구나가 얻을수 있는 영원한 평안입니다.
가 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얻을수 있으며 누릴수 있으며 천국에 가서는 영원히 누릴수 있는 평안입니다.
뉴욕행 비행기를 타면 15시간 가량을 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내 방송에 의하면 고도12000피트 시속 800킬로 대기 온도는 영하 40도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만일 나 혼자라면
한 시간도 견디어 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비행기 안에 있으면 먹으면서 잠자면서, 영화를 보면서 평안히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안에 있으면 땅에서도 하늘 위에서도 평
안합니다. 본문에서 간수에게 "주예수를 믿으라!"고 전하였더니 간수는 예수를 믿고서 그의 맘속에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온 가족들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고 바울처럼 담대히
전할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간수의 온 가족이 복음화를 이루어 평화로운 가정을 이룰 수 있었습 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평화를 누릴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 가요?
둘째로 권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 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권세라는 단어에 오해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부청장 시장 선거일이 다가오
는데 곧있으면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거도 할 것입니다. 당선만 되면 그들의 그 권세는 대단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권세는 이러한 권세가 아닙니다.
세상권력이 주는 권세가 아닙 니다. 여기에서 권세란 예수를 믿으면 합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예수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왕자와 공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조건은 가문과 학문과 재산이 아니라 바로 '믿음'하나가 조건인 것입 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성도가 되고 믿음으로 거듭나고, 믿음으로 의
롭다함을 얻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보호를 받게 됩니다. 대통령의 자녀만 되어도 경호원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도 넘어질 때가 있겠지만 그러나 성도의 별명이 무엇입니까? 7전 8기하는 인생이 아닙니까? 넘어질지라도 일 으켜 주시며 눈물이 날 때에는 눈에 눈물을 닦아주시며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일어 설 수 있는것입니다. 자녀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어찌 아버지가 그 자녀를 외면하겠습니까?
예수님 을 믿으면 예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 같이 주저않고 싶을때 나를 밀어주시는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 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사람이 태어날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지요?
아니 면 마귀의 자녀로 태어나는 지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 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은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 생명은 예수를 믿을 때만에 가능한 것입니다.
학교에 가보면은 내 아들과 비슷한 아이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내 아들만이 내 아들인 것입니다. 이말은 다시말해 내가 낳은 내 생명의 씨가 들어있는 아들만이 내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 하셨으나 피조물이
지 아직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수가 강대상을 만들었는데 자신이 만들었다고 해 서 그 강대상이 아들이 될수는 없을 것입니다. 인생은 날때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목숨으로 나는 것입니다. 엡2:1에 보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하지 않습니까?
칼 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죄를 범하니까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한다고 하였습니다.
포도를 맺히니깐 포도나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이니깐 포도 열매를 맺힌다는 것과 같은 말 입니다. 인생은 육입니다. 육으로 나는 것은 모두 육이며, 돌은 아무리 닦아도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 나오는데 그 니고데모는 관원이며 선생이며 율법 사였으며 기독교의 진리를 모두 다 알고 있었으나 예수님께선 그를 향하여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 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십니다. 그때 니고데모가 말하기를 "그러면 모 태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만이 거듭나는 것이냐?"고 반문합니다. 이러한 니고데모의 모습처럼 성도 들 중에는 이성적으로 믿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되 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체험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때문에 울기도 하고 가슴을 쥐어 뜻기도하며 헌신을 다 짐하기도 하고 주님을 위하여 순교까지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이 자녀된 이 감격을 누리면서 사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할까요?
셋째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본문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 원을 선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옛날옛적 일을 묻지도 않으십니다. 간음한 일이 있
느냐? 도덕질 한 일이 있느냐? 학벌이 무엇이냐? 재산목록이 무엇이냐? 이웃을 미워한 적이 있느 냐? 부모를 속이고 불효노릇을 한적이 있느냐? 전혀 묻지 않으십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 자들입니다.
눅19장 9절에 금방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삭개오를 향하여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느 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에는 오늘 구원이 있으며 내일 구원이 있습 니다. 오늘 구원이 없이 내일 구원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살 았을 때에 오늘 가정에서 작은 에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오늘 구원인 것입니다.
그런 데 예수님을 믿는 권사님도 세상을 떠나실 때가 있고 장로님도 이처럼 세상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도 세상을 떠날때가 있습니다. 왜그럴까요? 그것은 세상이기 때문이요, 죄의 값은 사 망이기 때문이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육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낙화는 슬픔이 아니라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왜 죽냐하면 바로 천국에 가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일 구원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구원 받은 성도들의 특징을 본문에 바울과 실라를 통하여 살펴보자면 기도하고 찬송하였다는 것입니다. 장소를 묻지 아니하고 시간을 묻지 아니하고 밤중중 되어 옥중에서 이렇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와 찬송뒤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옥토가 움직였으며 옥문이 다 열려졌던 것입니다. 지금도 기도가있고 찬송이 있는 성도들에게는 땅을 움직이고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는 능력을 힘입을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고 찬송 할때에 옥문이 열리며 괴롭혔던 쇠고랑이 벗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바울과 실 라는 전도하였습니다. 전도란 평안을 주시고 권세를 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일입
니다. 밑지라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보라는 것이 아니라 평안과 권세를 주시는 예수님 구원을 주시 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소개하는 것이 전도라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신령한 의미에서 예수 복덕방입
니다. 복덕방 아저씨가 이사람 저사람에 좋은 집을 소개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이사람 저람에 게 기쁨의 좋은 소식을 소개하기 위하여 바울처럼 주예수를 믿으라! 고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전
하는 것입니다. 무론 강권적인 방법도 있고 사랑의 방법도 있겠지요 고금동서 묻지 아니하고 한사 람이 한사람을 전도할 때에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이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입니다. 둘에 둘을 더하면은 넷이되는 수확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약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간수 한사람에게 예수를 전하였으며 간수는 가족 한사람 한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결과 본문 34절에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중하는 말씀이며 체험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간수 자 신도 온 가족도 구원받았으며 온 가족이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이 일은 얼마나 큰 행복이며, 큰 축 복이며 큰 성공입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의 가족또한 이러한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우 리 가정의 호주가 되시며 우리 가정의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또 예수님께 장부를 맡겨야 하며, 예 수님께 우리의 계획을 부탁드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평안을 얻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권세를 얻습니다. 구원을 얻습니다. 또한 예수를 믿어야 영적 지진이 생기고 묵은땅이 흔들리고 내 인생을 괴롭히는 환란의 쇠고랑이 벗겨지고 죄악의 수갑이 풀려지는 축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 다. 함께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영원한 재벌이 있을 수 없고 영원한 건강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권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영생을 누릴수 있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이러한 축복에 한사람도 예외없기를 바랍니다. 예 수믿고 가족적을 천국에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듣는 사람마다 복음전하여 복스 러운 소식 두루 퍼지네 사람있는 곳에 전할 소식은 어느누구나 오라 어느누구나 주께 나오라 어서
와서 주의 말씀 들으라 하늘 아버지가 오라하시니 어느누구나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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