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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시는 평가서(눅 18:9-14) 옥한흠 목사님 전도 설교

by 【고동엽】 202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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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나 직장에 들어갈 때 더러 추천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추천서가 첨부되어도 그 추천서는 우리 현실에서 그렇게 큰 효력을 발생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경우 대부분 추천서를 본인이 받아다 본인이 제출합니다. 그러니 자동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없고 많이 미화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쓴 추천서는 신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현실에서의 추선서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부수적인 자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서류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이 추천서입니다. 추천서를 받아든 사람은 그것을 보고 그 사람을 받을 것인가 아니가를 결정합니다.

 

  우리나라 어떤 목사님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에 미국 주요 도시를 돌아 보면서 교회들을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외국인 가정은 방문 전에 반드시 연락을 해서 사전 허락을 받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각 도시를 돌면서 그 지역에 있는 교회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사전에 각 교회로 연락을 하고 그곳에 가면 교회에서 신세를 질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추천해 줄 것을 지도교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추천서를 쓰는 사람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그 사람을 추천합니다. 그러므로 미화해서 쓰지 않고 자기가 겪으면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씁니다. 추천서는 본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추천하는 사람이 추천서를 원하는 사람에게 직접 우편으로 발송해 버립니다.

  이 목사님은 몇 개월 동안 여러 도시를 돌면서 교회를 연구할 수 있었지만 추천서를 지도교수가 어떻게 썼는지 전혀 알지를 못합니다.

  추천서를 쓰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쓴 것이지만 그 내용이 좋지 않을 경우 나중에 그 사실이 밝혀지면 그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추천자가 추천서를 쓸 경우 그 어려움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추천서를 쓰신다면 뭐라고 쓰실까요?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쓰시는 분입니다. 그렇게 쓰시는 이유는 그것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지만 당사자는 하나님을 사람을 미워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라서 죄인라고 쓰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싫어서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하나님을 무조건 비판합니다. 내가 죄를 지어 죄인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 인간은 죄인일 수밖에 없을까요? 그 이유를 살펴 보겠습니다.

 

1.하나님이 원하는 기준에 이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를 볼 때는 의로와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영원한 죄인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9-14)”

 

  오늘날 현대인들 중에는 바리새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크게 두 종류입니다.

  첫째는 사람의 인생을 육신의 생명으로 한정하고, 숨이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죽음 이후에 있는 천국과 지옥도 부정하고 죄에 대한 벌도 의에 대한 보상도 없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죄에 보상도 인정하고 죄인에 대한 심판도 인정하여 나름대로 선을 행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 정도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현대인은 은근히 자기를 의인으로 인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하나님도 ‘나를 의인으로 인정해 줄 것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선을 부정하십니다. 더러 불신자들 가운데 감동적인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선을 부정하십니다.

 

  이 명자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경찰관의 아내로 네 자녀를 데리고 어렵게 살았습니다. 어느 해 겨울 방안으로 연탄 가스가 들어와 남편과 세 아이가 죽고 9살 난 딸 아이와 단 둘이만 겨우 살았습니다. 이 사실이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상당수의 사람들이 무명으로 그 여인을 도왔습니다. 당시에 불신자들도 힘써 그녀를 도왔습니다. 남편 죽고 자식 잃고 난 뒤에 이 여인은 큰 돈을 만질 수 있었습니다.

  졸지에 큰 돈을 갖게 된 이 여인은 그 돈을 혼자 쓰지 않고 절반을 잘라 어려움을 당하는 가난한 택시 운전사 가정을 도와 주었습니다. 하나님도 이 여인이 행한 일을 잘한 일이라고는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이 일로 천국에 가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 정도면 무조건 천국에 들어갈 것 같은데 하나님은 아니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의 불의를 아시고, 불신자의 선도 아십니다. 하나님이 이 여인이 행한 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선이 하나님에게 만족을 줄만한 선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에게는 인간의 그 어떤 착한 행위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에는 미달합니다.

  우리는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수십 층 빌딩을 보면 높다 말합니다. 산에 올라가 이 산은 높다 말합니다. 그러나 구름 위에서 보면 모두가 납작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대단해 보여도 하나님이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

  미국에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여자 배우가 있습니다. 그녀는 많은 남자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가 한 남자와 가장 길게 결혼 생활한 것이 고작 5-6년입니다. 보석을 사주고 달래고 달래서 겨우 5-6년을 삽니다. 그 다음에는 다른 그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만이 간음이 아닙니다. 마음 속에 나쁜 상상만 해도 그것을 하나님은 간음으로 보십니다. 하나님은 동기와 행동을 하나로 보시는 것입니다. 시작과 끝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표준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떤 목사님이 주례를 하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16년간 사랑을 나누다가 결혼한 부부였습니다. 여자 나이 40에, 남자 나이 50에 결혼을 했습니다. 부모가 반대하여 결혼하지 못하다가 끝내 결혼한 것입니다. 남자는 중간에 방황하기도 했지만 여자는 일편단심으로 그 긴 세월을 견디었습니다. 기가막힌 사랑입니다. 그런 여자나 마음에라도 나쁜 생각을 안가질까 몰라도 우리같은 보통 평범한 사람은 사랑했다 미워하고 미워했다 다시 사랑하곤 합니다.

  이런 인간이 스스로 ‘내 마음은 깨끗하다’ 하니 하나님이 보실 때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준에 맞는 인간이 없습니다.

 

2.하나님 추방한 세계에서의 선은 선이 아닙니다.

  한 때 프랑스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국왕을 무시하고 바다로 나가 해적이 되었습니다. 지중해 연안을 떠다니면서 여객선을 습격했습니다. 물건을 빼앗고 여자들을 강제로 욕보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해군이 이들을 섬멸할 힘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해적들은 나쁜 일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동료를 위하여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물건을 빼앗으면 한 사람도 욕심부리지 않고 공정하게 분배하여 나누어 가졌습니다. 아무리 예쁜 여자가 있어도 혼자 차지하지 않고 공유했습니다. 동료가 부상을 당했을 때는 밤잠을 자지 않고 곁에서 치료했습니다. 그 후 프랑스 군대에 의하여 모두 체포되었을 때 이들은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이들이 “우리도 좋은 일을 한 것이 있습니다” 말했지만 국왕과 법을 무시한 선은 선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안 믿는 세계의 선은 선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추방하고 자물쇠를 잠근 그들의 선을 하나님은 선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자신들이 앉아서 행한 선은 하나님과는 관계없습니다.

  가출한 아이가 친구를 도와주었다 해도 어머니는 그 선행을 선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십일조를 드렸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대하여 행했을지라도 내가 했기에 자칭 의인이라고 하는 자들의 선은 하나님이 인정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세계에서도 내가 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치 않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 없는 세계에서 한 일이야 더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니까 나름대로 판단합니다. 현대인들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 13:23)”

  흑인이 목욕탕에 가서 다른 사람의 두 세배의 시간을 들여 목욕을 한다 하여도 검은 피부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흑인 특유의 냄새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표범은 반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죄인된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가 원하는 완전한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선얼 보시기 바랍니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1-12)”

  자기 행위와 선행으로 구원받을 육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8-9은 말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면 천국은 천국일 수 없습니다. 보통 착하다는 유순한 사람을 보면 그 마음의 교만이 보통이 아닙니다. 스스로 괜찮다는 사람들로 천국이 가득찬다면 그곳은 교만한 사람 천지일 것입니다. 그곳은 결코 천국일 수 없습니다.

  자기의 악한 행실보다 자기의 선행, 의로움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본문에서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세리와 창기가 왜 구원을 받습니까? 자기를 믿을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예수님만 바라 보았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까? 자기 선행과 의로움을 의지했습니다. 행위를 의지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어서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감옥에 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열 사람 중에서 7-8 명은 자신은 죄없이 들어왔다고 말한답니다. 감옥은 자칭 의인이라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감옥보다 더한 곳이 지옥입니다. 그곳에는 100%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구원은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어떻게 얻는 것입니까?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갈 2:16-18)”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행위로는 안됩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선행을 가지고 천국에 올 자를 허락하신다면 저는 자신없습니다. 그 완전하신 하나님을 만족시킬 자신이 없습니다. 천주교는 행위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 없이 한 과거 선행이 하나님께 전혀 인정받을 수 없듯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악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외국에 나가면 우리나라 지폐는 휴지 조각입니다. 그런데 누가 크레디트 카드를 주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의 그 어떤 것을 가지고도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예수라는 카드 밖에 없습니다. 이 축복을 우리만 누리는 것은 너무나 아깝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하나만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 앞에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선물을 받으라고 하나님이 요청하십니다. 사람들이 지금도 거절합니다. 그러나 주저하지 말고 받으십시오. 그러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출처 : 전도카페
글쓴이 : 박성도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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