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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지금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잘 모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은 아주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을 판단하는 권위의 표준은 언제나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사람의 판단과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보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런 가정을 좀 해 봅시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30년 전에 “나는 건강하다” 자부하신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어쩌다 병이 나서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아무래도 이런 병인 것 같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당시에는 의료기술도 미진했던 때인지라 의사도 대충 환자의 의견에 동조하여 치료를 했습니다. 그 때는 사람들이 자기 진단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병원에 가면 첨단 의료장비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뇌파 검사, 간염 검사, 내시경 검사, 장검사 등 기계로 정확하게 인간이 병든 부분을 진단합니다. 그래서 멀쩡한 사람도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면 여기저기 고장난 부분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나타난 결과를 보면 온전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멀쩡한 사람도 건강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 자신도 과거에는 건강에 대하여 자신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건강에 대하여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어제까지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쓰려져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고 몇 개월 살다가 죽는 것을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30대 젊은 나이에 얼굴이 노랗게 변하여 간암으로 죽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멀쩡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머리 아프면 두통약 사다먹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안되니까 병원에 갔는데 검사 결과 뇌종양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스스로 아무리 정상이라고 고집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육체에 대하여 아무도 자신이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상스러운 고집하나가 있습니다.
자기 영혼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은 자꾸 자신의 육체만 가지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이것은 스스로를 동물화시키는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옷 잘입고 잘먹고 쾌락만 즐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동물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과학에서도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부인하면 비문명인입니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인간에는 영혼이 있고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것입니다. 육체는 유한하지만 영혼은 영원합니다. 영혼은 육체처럼 장사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의 영혼에 대하여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단해야 합니다. 영혼의 거울인 성경으로 위를 들여다보고, 뇌파검사를 해보고, X-레이로 투시해 보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 영적으로 진단이 되어집니다.
성경을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성경을 모르면 현대인이 아닙니다. 35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을 장사 지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핍박 속에서도 날마다 부활했습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이라고 했던 소련에서도 성경은 줄기차게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중국의 철권통치 아래에서도 성경은 읽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매년 6억권 이상 판매되고 있습니다. 거짓말이 이렇게 많이 팔리겠습니까? 거짓말이라면 벌써 사라졌을 것입니다. 말씀 앞에 굴복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가 죄, 죽음, 심판, 피 등입니다. 대부분 원색적인 단어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원색적인 용어들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밖에 판단하지 않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불쌍한 자입니다. 원색적인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말을 허무라는 말로, 죄를 약점이라는 말로 사실을 약화시키면 안됩니다. 내 영혼의 병에 대하여 바른 말을 하지 않으면 바른 진단이 나올 수 없고 치료되지 않습니다.
한국 의사와 미국 의사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의사는 병을 진단해서 암이라고 판명이 되면 분명하게 암이라고 환자에게 말해 줍니다. 그러나 한국 의사들은 환자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암을 수술하고도 조금 안 좋아서 그 부분을 떼어 냈으니까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환자를 거짓말로 위로합니다. 가족들에게만 사실대로 말해 줍니다. 그러면 가족들은 환자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눈물을 닦습니다. 잘못하면 환자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모르고 있다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죽음에 대하여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러나 미국 의사들은 정확하게 말해 줍니다. 바로 말하지 않으면 나중에 소송을 당합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X-레이를 보여주고 자세히 설명을 합니다. “지금 당신의 상태는 이렇습니다. 수술을 해도 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래도 당신이 원하면 수술을 해보겠습니다. 수술을 할까요 말까요?” 물어보고 환자의 요구대로 합니다. 수술도 포기하고 낙심해 있을 때는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물어보고 신앙을 권면합니다. 영적으로 준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환자는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가 차츰 죽음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색적으로 알려줄 때 바른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영혼에 대하여 바르게 진단해 줄 때 인간은 준비할 수 있습니다. 내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은 어떤 것입니까?
1.당신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21-22)”
인간은 하나님과 겉으로만 원수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원수가 되었습니다. 근본부터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악한 행실을 일삼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상태는 마음 바닥으로부터 하나님과 원수관계입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이의를 말하는 분이 계실 줄 압니다.
“나는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인정합니다. 신앙생활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가 왜 하나님과 원수입니까?”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원수 맺은 관계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관계는 하나님과 원수 맺은 관계라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주관적인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객관적 관계가 원수 맺은 관계라는 것입니다. 자기 주관적 입장이라면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 입장일 때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말을 수용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가 된 것에 대한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 상태는 하나님과 원수 맺은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무관심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무관심하다면 이것은 죄악의 담이 막힌 것입니다. 혈통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절대로 무관심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무관심해서도 안되는 관계입니다.
때로는 적대관계에 놓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거부반응이 일어나는데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권력가와도 원수관계를 맺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평안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그것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2.당신의 세계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2)”
불신자들에게는 인생에 중요한 두 가지가 없습니다.
1)소망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고 살 때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안 믿고 사는 사람들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젊었을 때는 성공적인 삶을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그것이 모두 신기루인 것을 깨닫고 허망함을 느끼게 됩니다. 젊었을 때 대기업에서 자기를 놓고 서로 스카우트 하려고 흥정할 때는 자만했었습니다. 그러나 40, 50을 거치면서 소망을 잃었습니다. 정말로 인생의 황혼을 향하고 있는 분들, 여러분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사십니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식 위해 사십니까? 아닙니다. 앞으로는 60-70이 되어서는 혼자 살 것 각오해야 합니다. 자식이 똑똑하면 할수록 불효할 수 있습니다. 며느리가 잘나고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그만큼 골치를 썩어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었으면 그만큼 떨어지는 허무감도 깊습니다. 돈이 많이 있었으면 그럴수록 더욱 비참합니다. 도저히 희망이 없습니다. 이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상입니다.
성경은 보이는 것이 소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은 기대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에 봉사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아침의 안개와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분들 자문자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정상적인 대답은 하나님이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 믿으니까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나 자신입니다. 세상 마지막 때에는 자기를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투자합니다. 결과는 너무나 비참합니다. 실상은 내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중립이 없습니다. 하나님 편에 속하든지 마귀 편에 속하든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 예수님을 모르시는 분들, 여러분들이 마귀의 지배를 받는다 말하면 거부반응을 나태내실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든지 마귀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지배받기를 거절하면 마귀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안 섬기니까 마귀가 대신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불신자들은 점쟁이를 찾아다닙니다. 현대인일수록, 지식인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재벌, 정치인, 국회의원들은 유명한 점쟁이들을 단골로 찾고 있습니다. 인텔리요 엘리트들이 그러합니다. 내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매여 있으니 자동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하여 지배받고 있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중에 집안에 부적이 있는 사람 손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왜 그런 것을 가져다가 벽에 붙이고, 장롱과 베개 속에 넣어 둡니까? 마귀가 지배하니까 두려움으로 그렇습니다. 꼼짝없이 당하는 것입니다. 종노릇합니다. 쇠사슬에 매여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부적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종이조각, 그림조각,글씨조각입니다. 온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이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믿는 나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적을 모두 불태워 버립니다.
우상숭배자들은 결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잔치도 못하고, 이사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묘자리도 마음대로 못쓰고 잠자리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불쌍한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오면 간단하게 해방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닐 때 인생은 비극적 인생이 됩니다.
3.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나 원수가 되어 하나님이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인생은 윤회가 아닙니다. 역사에 시작이 있었던 것처럼 종말도 다가옵니다. 그날이 되면 하나님이 모든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그날까지 행악자는 머리에 계속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 오래 살면 살수록 그는 진노를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장수가 불행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날에 어느 것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발가벗고 설 수밖에 없습니다.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받을 때는 계급장을 모두 떼고 장교와 사병이 다같이 훈련을 받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든 하나님 앞에는 모두 빈손 들고 서게 됩니다. 그날에는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 속에서 쌓은 진노에 대한 심판을 받습니다.
이 상황을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관계를 개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해결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는 하나님이 풀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원수된 매듭은 하나님이 푸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원수된 관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이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원수된 관계를 해결하실 분으로 오셨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마귀에게 종노릇하게 되어 있습니다. 식물인간이 되어 살다가 죽어도 인간은 죄인입니다.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평생을 손발을 꽁꽁 묶여 살다가 간대도 죄인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원수된 관계입니다. 강도가 자기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인이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대신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내 죄를 그대로 받은 곳입니다. 십자가의 자리가 바로 지옥입니다. 그곳에서 지옥의 우리의 고난을 그가 담당하셨습니다.
마음 문을 열면 그가 보입니다. 믿으면 그가 보입니다. 지구 수십 억의 인구가 그를 믿고 있습니다. 믿고 확인하고 간증하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죄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인류에게 선언하셨습니다.
“십자가로 원수된 관계를 해결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누구든지 용서받는다.”
부자지간에 원수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로 여기지 않았고 아들은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어머니가 그 일로 큰 병을 얻어 죽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임종을 앞두고 각처로 연락하여 아들이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아들을 오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당신의 아들입니다. 사랑하세요"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을 향해서는 “아버지를 사랑해야지” 말씀했습니다. 그들을 손을 마주잡게 하셨습니다. 잘못을 서로 고백하고 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그런 관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피흘리며 하나님과 나를 손잡게 하셔서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를 믿으면 구원얻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 엄청난 일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전하는 것, 변화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4.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이 사랑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함을 조비 못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습니다.
5.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얻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믿음은 나를 포기하고 상대방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탈 때 안전을 믿고 맡기기에 타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모두 맡기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죄, 인생 모두 맡으세요.” 의심없이 예수님에게 모두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랑거리를 들고 나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를 붙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나의 모든 것을 그가 용서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근본적으로 신분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의인으로 보십니다. 용서받는 기쁨이 넘칩니다. 근본의 죄와 신분이 해결됩니다.
불신자들은 고독하고 고통을 당할 때 술집을 찾고, 친구를 찾고, 담배를 찾습니다. 텔레비전을 들여다보고 있으나 마음의 번민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께는 다 고백을 합니다. 링컨은 남북전쟁 당시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기도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비서가 좇아가서 깃발을 세웁니다. “지금은 대통령이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하는 표시입니다. 링컨은 시간제한이 없이 기도했습니다. 카펫트에 구멍이 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노예해방보다도 국가가 양분될 위기를 막은 기도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찾은 하나님, 그가 만난 하나님을 여러분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입니다.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인생 가운데 쌓이게 됩니다. 여기에서 벗어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이 시간 영접하시고 새 삶을 얻으시기 바립니다.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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