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싸매시는 하나님! (시 147:1-3)
우리는 종종 인터넷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이 집단자살을 하는 기사를 참 많이 접했습니다. 그들은 몇 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우선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이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해서 만났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연탄이나 화덕을 자살 도구로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돼 있으면서 혼숙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통점은 유사한 집단자살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요, 자칫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한동안 인기 연예인들의 자살 문제로 안타까워했는데, 이제는 집단자살 문제가 생겨서 큰 걱정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일까요?
⑴우선 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삶을 지탱해 갈 수 없을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자살입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자살했겠는가?’ 동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자살의 상황적 요인입니다.
⑵그러나 이것보다도 더 본질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사실 자살한 사람들보다 더 힘든데도 견디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죽어도 열 번은 더 죽어야 하지만 잘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들이 꼭 상황적 요인 때문에 자살한다고만 볼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요인이 있습니다. 바로 마음의 문제입니다. /할/
사실 자살 충동을 느껴본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누구라도 상황이 너무도 힘들고 어려우면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마음이 건강해서 자살 충동을 잘 추스르고 이겨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자살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자폐증을 앓고 있거나 애정 결핍증에 시달려 왔습니다. 한 마디로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이런 상한 마음이 자살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시도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건강한 마음이 삶을 지탱해 낼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행복을 일구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상한 마음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조금만 상황이 어려워도 쓰러지고 넘어집니다. 바로 상한 마음 때문입니다. /할/
①언제부터 인간에게 상한 마음이 생겼습니까?
원래 우리 인간의 마음은 건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건강하게 창조하셔서 우리 인간의 내면 저 깊은 곳에 담아두셨습니다. 이 건강한 마음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그리고 세계를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릴 수 있게 됐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간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하여 죄를 범했습니다. 당장 그 마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마음이 상하기 시작했습니다.
⑴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깨졌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⑵사람과의 사랑의 관계도 깨졌습니다. 미움과 다툼과 배신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⑶세계를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욕구 불만으로 몸부림치게 됐습니다. 이제 인간의 마음은 상한 마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원 마음입니다.
얼마 전 에이즈에 감염된 부부가 아기를 출산해서 충격을 준 일이 있습니다. 아기를 검사해 보니 역시 양성으로 판정됐습니다. 이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에이즈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 태어난 것입니다. 아기가 얼마나 불쌍합니까?
우리 인간이 그렇습니다. 태어날 때 마음이 이미 건강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병에 대한 ‘양성’ 판정을 받고 태어납니다. 무척 약합니다. 상처받기 쉽고 깨어지기 쉬운 상태입니다.
이제 이렇게 태어난 사람들은 이 험하고 악하고 각박한 세상 속으로 내던져집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그 속에서 상처받고 상처 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상처 나고 아물고 덧나며 모두가 저마다 상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할/
②상한 마음의 증상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⑴자신과의 관계입니다. 마음이 상한 사람들은 많은 경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존감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약하면 약한 대로 자신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어서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마음이 상한 사람들은 이 자존감에 큰 상처가 있습니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못합니다. 자기가 아닌 다른 자기였으면 좋겠습니다. 늘 자기 모습에 불만입니다.
그래서 늘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남들이 내게 뭐라 말할까?’ 여기에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남들이 내게 좋지 않은 말을 하면 그것이 화살이 돼서 내 마음에 꽂힙니다. 그 말 때문에 기가 죽습니다. 그 말이 두고두고 나를 괴롭힙니다. /할/
⑵타인과의 관계입니다. 마음이 상한 사람들은 많은 경우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상한 사람들은 타인과의 사이에 마음의 벽을 쌓고 살아갑니다. 과거에 타인에게 거절당한 기억 때문입니다. 과거에 타인에게 배반당한 기억 때문입니다. 과거에 타인으로부터 심한 상처를 받은 기억 때문입니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오늘도 높게 마음의 벽을 쌓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그 마음의 벽이 내게 더 큰 상처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나는 왜 늘 혼자인가?’ ‘왜 아무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가?’ ‘나는 왜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는가?’ 이런 마음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자신을 괴롭힙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할/
⑶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마음이 상한 사람들은 많은 경우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며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 고백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경우 하나님이 멀리 느껴집니다. 늘 나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연극에서 조연이나 엑스트라처럼 여겨집니다. 또 어떤 경우 하나님께 대해 섭섭한 마음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하나님께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특별히 대우해 주시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또 어떤 경우 하나님께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부르짖는데 왜 나를 외면하시는가?’ ‘왜 이토록 오래 나를 이 고통 속에 내버려두시는가?’ 때로는 하나님께 화가 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상한 마음은 때론 나 자신과의 관계 속에, 때론 타인과의 관계 속에, 또 때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그 증상을 나타냅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증상들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우리 마음 속에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해가 되십니까?/할/
③이런 상한 마음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 희망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지금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께서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한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려고 이미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이미 우리의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상한 마음을 치유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⑴우리 상한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 맡겨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섣달그믐에 우동을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오사카의 작은 우동 집에 섣달그믐에 젊은 부인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우동 한 그릇을 시키는 것입니다. ‘세 사람이 와서 우동 한 그릇을 시킨다...’ 홀에서 서빙을 하던 여주인이 금방 눈치를 채고 주방에 있는 남편에게 눈치를 보냈습니다. 남편이 조금 큰그릇에 사리까지 듬뿍 얹어서 따끈한 국물을 그릇 가득 담아냈습니다. 세 사람은 잠시 기다리더니 우동이 퉁퉁 분 후에야 그릇을 비었습니다.
다음 해 섣달그믐에 또 그 세 모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작년처럼 우동 한 그릇을 시킵니다. 안주인이 금방 알아보고는 남편에게 우동 세 그릇을 말아내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보고는 작년보다 조금 더 큰그릇에 눈치 채지 못하게 우동 사리를 더 담고 국물을 더 따끈하게 담아냈습니다.
그 날 밤 아내가 참다 못해서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 사람이 왜 그렇게 야박해요 그깟 우동 세 그릇이 얼마나 한다고... 섣달그믐에 우동 세 그릇으로 불쌍한 사람들 배불리 먹여 보내면 얼마나 좋아요!’
남편이 조용히 말합니다. ‘이 사람아! 우동 세 그릇에 허기를 채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보다 마음을 다치게 하면 안 되는 거야 우동 몇 그릇의 배려보다는 그 마음을 보듬는 배려가 더 중요한 거야!’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을 고치기보다는 마음을 다치게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맡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 상한 마음을 가지고 혼자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감추거나 피하지 마십시오. 그 아픈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그 상한 마음을 주님께 열어 드리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치유를 시작하십니다. 어루만지시고 싸매시고 고치십니다. /아멘!/
⑵상한 마음 있는 그대로 기도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그 상한 마음을 주님께 있는 그대로 토해 내십시오.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십시오.
시62:8절에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들 있는 그대로 다 말씀드리라는 것입니다.
또한 시109:6절 이하를 보면 깜짝 놀랄만한 기도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 쪽에 서게 하소서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간단히 말하면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너무 미워 죽겠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기를 ‘하나님 그의 마누라가 과부가 되게 하시고 그 자식들은 고아가 되게 하시고 그 가족들이 거지가 되어 빌어먹게 하시고... 더 나아가 그 집안의 씨를 말려 대가 끊어지게 하시옵소서’
이 기도가 바로 다윗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상한 마음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털어놓으라는 것입니다. /할/
여러분! 남편이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십니까?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하나님 제 남편이 죽이고 싶도록 밉습니다. 어떻게 손 좀 봐주십시오’ 시어머니가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미우십니까?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하나님 시어머니 미워 죽겠습니다 어떻게 좀 해 주십시오.’
그런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런 기도는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상한 마음을 받으시고 말 같지 않는 내용은 잊어버리십니다. 이런 기도가 치유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상한 마음속의 독을 빼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실제로 다윗은 이렇게 사울을 죽이도록 미워하고 그가 죽기를 기도했지만 실제로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살려주었습니다. 그 마음이 치유 받았기 때문입니다. /할/
⑶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실 때 처방을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할 때 우리의 상한 마음이 치유가 됩니다. /아멘!/
요요 현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이어트를 할 때 고생고생해서 살을 뺐는데 얼마 안 가서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요요라는 놀이기구처럼 던졌는데 다시 돌아오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요요현상을 없애려면 다이어트하고 난 뒤에 생활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돌아갈 가능성을 뿌리째 끊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아문 것 같았는데 얼마 안 가서 다시 도집니다. 상처가 덧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마음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눅19장을 보면 상한 마음을 가지고 힘겹게 살아가던 삭개오가 치유 받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고는 철저하게 주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적극적으로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 때 삭개오는 온전히 상한 마음을 치유 받게 됐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가 상한 마음으로 주 앞에 설 때에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때 그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용서하라 하시면 적극적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화해하라 하시면 적극적으로 화해해야 합니다. 사랑하라 하시면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나누어 주라 하시면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가 다시 도지지 않습니다. 아문 상처가 다시 덧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아픈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들이 있습니다. 주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주님께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토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따르십시오. 그러면 고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어떤 마음에 병이라도 치유를 받아 주안에서 행복한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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