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기초가 아닌 것(3) 인간의 능력 - 이한규목사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인간과의 관계보다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기초합니다.
우리는 각기 고립된 개체로서 외로운 영혼으로 주님과 대면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주님과의 관계에서 다른 사람이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주님'과 '나'사이에 중간자를 두고
그 사람의 힘을 빌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간자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더 확실히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을 권면하고 나누는 어떤 사람은 필요하지만
그 사람일지라도 주님과 나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안됩니다.
주님과의 직선적 관계를 방해하려는 모든 시도는 좌절되어야 합니다.
바다에서 항해할 때 우리는 별을 보고 우리의 진로를 잡아야지
모든 지나가는 배의 불빛을 보고 진로를 잡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뒤르껭은 그의 사회학적 이론에서
"종교는 사회가 개인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의 말은 거짓 종교에 대한 경종이 될 것입니다.
거짓 종교는 개인을 무력화시켜 그를 효과적으로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절대자와의 관계에서 참된 진리를 추구하려는
자아의식이 없이 종교에 몸담을 때 그는 타인으로부터
이용만 당하는 존재가 되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카리스마에 대한 지나친 향수는 없어야 합니다.
'인간의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힘'보다
'인간의 인격'을 볼 줄 아는 시야를 길러야
진리에 보다 근접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뚜렷한 자아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에 임해야 합니다.
중간자들이 말하는 찬란한 유토피아에 마음을 빼앗길 필요도 없고,
중간자들이 보여주는 은사와 능력에 지나치게 감동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감동해야 할 대상은 은사와 능력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은 첫째는 하나님이요,
둘째는 하나 님이 베푸신 은혜며,
셋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실 역사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이율배반적입니다.
자유를 원하면서도 자유를 두려워합니다.
아이들이 어른처럼 되고 싶어하면서도
어른들이 져야 할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얼마 전 소련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쵸프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힘을 줘야 한다.
그들에게 힘이 없으면 스탈린의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국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소련 국민은 모순에 빠져 있다.
더 좋은 사회를 원하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하려 하지 않고
강력한 지도자가 대신해 주길 바란다. 즉 반민주적인 통치를 원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능력있다는 목자의 손길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스스로 성경을 펼치기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지도자 의지형'의 본성을 단호히 거부하고
책임 있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자라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어떤 능력을 가진 인간도 아닌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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