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벨의 신앙(예배)! (창 4:1-7)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땀을 흘리며 수고를 해서 얻어진 것으로 가정을 이끄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가인은 '얻었다'라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는 뜻입니다. 또 얼마 후에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아벨'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벨은 '비었다. 공허하다.'는 뜻입니다. 아담이 아벨의 이름을 지으면서부터 벌써 그 아들의 운명을 알았을까요? 어째든 둘째 아들은 아벨입니다.
그 후에 세월이 흐른 다음 가인은 농사를 짓는 농부이었으므로 땅에서 얻은 소산(농작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였기 때문에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웬일인지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시고 아벨이 드린 제물만 열납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의문을 제시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을 열납하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만 열납 하셨을까요? 이것은 굉장한 의문입니다.
당시 제사가 지금의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도 어떤 성도의 예배는 받으실 것이고, 어떤 성도의 예배는 안 받으신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기독교의 모든 축복은 예배로부터 얻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린 예배를 하나님이 외면하신다면 이것은 엄청난 비극이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예배드리는 행위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조금 후에 제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본문 속에 가인은 우리가 얼른 생각해 보면 농부니까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린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또 아벨도 목자니까 양으로 제사를 드렸으니 둘 다 자기의 처지에서 합당한 재물을 드린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 문제를 자기들의 의견을 제시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가인의 제사는 피가 없는 제사를 드렸기에 하나님이 외면하셨고, 아벨의 제사는 피가 있는 제물이기에 열납 하셨다고 말합니다. 의미 있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할/
①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3)
'소산'은 '과실, 열매'란 뜻으로 땅에 씨를 뿌려 거둬들인 알곡의 '수확물'을 의미합니다. 여기 '제물'은 히브리적인 음으론 '마나'인데 '선물로 삼다'에서 파생된 말로 '희생제물'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 감사와 충성을 상징하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가인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죄인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하시는가? 제사의 목적이 뭐겠습니까?
▶여러분! 구약에서 제사의 목적을 3가지만 기억합시다.
⑴알현의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알현은 신하가 왕 앞에 자기의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은혜 중에 이렇게 잘 지냅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는 특별한 날이 되면 부모님을 찾아가 뵙습니다. 왜? 항상 우리를 사랑하시고 어떻게 지내는가 궁금해하시는 그 분들 앞에 제가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내 모습을 보여 드림으로써 그 분의 마음을 안심케 하고 그것이 그분들에게 최고의 예의가 되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알현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가 어디 있는지 무엇 하는지 우리 형편이 어떤지 모르는 분이 아닙니다. 알고 계시지만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나와서 '하나님 은혜로 제가 이렇게 잘 지냅니다'하고 내 마음을 드리는 것이 제사(예배)의 목적이고 알현의 개념입니다. /할/
⑵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옛날에 왕을 알현하려면 절대 빈손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황금을 가지고 알현했습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하나님 앞에 죄인이 그냥 나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⑶교제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하나님과 막힌 담이 헐어지고 참다운 교제 속에서 감사와 감격이 있고 축복을 받고 그 은혜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예배)의 목적이요 죄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입니다.
중요한 것은 롬12;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지정의'의 바른 인격적인 예배를 드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요즘 말로 말하면 가인은 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제물을 드리고 예배당에 와서 앉아는 있었으나 제물보다 귀중한 자기 자신(지정의의 인격)을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믿/
그러나 아벨은 제물 뿐 아니라 아벨 자신도 드렸습니다. 이것은 중심문제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기뻐하실까?' 찾고 구별하고 생각하여 성심 성의를 다해서 구별된 것으로 제일 좋은 것, 제일 처음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면서도 자신은 드리지 않았고, 정성이 없는 제사였습니다. 그 제사에 자신을 담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 편한 대로, 자기 생각대로 드렸지 '하나님을 생각함이나, 하나님 경외함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할/
②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5-6).
여기 '첫 새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벨이 거둔 첫 소산이란 점에서 가장 귀한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받쳤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출13:2). 또 하나는 '희생제물이란 점에서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산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 것'이라 귀합니다. 창3:21절에 나오는 '가죽 옷'은 원 복음입니다.
여기서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드렸다고 강조합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낳자마자 '이것은 하나님께 받치자'고 마음먹고 그 양을 키우는데 온갖 정성과 사랑을 드려서 바치기까지 잘 관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그의 소산으로 드렸다고 말했을 뿐 그의 소산의 첫 것, 혹은 잘 익은 것으로 드렸다는 말이 나와 있지를 않습니다. 한마다로 정성이 없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제물은 정성으로 드려야 합니다. /아멘!/
'그 기름으로' 여기 '기름'이란 '살찌다'란 단어에서 파생된 말로 '기름진 것'을 의미합니다. 즉 아벨은 양의 첫 새끼 중에서도 모든 양들 가운데 가장 살찐 기름진 것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최고를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는 최상급을 드려야 합니다. /아멘!/
여기 '열납하였으나'에서 '열납'은 '주목하다. 존경하다'라는 뜻으로, 즉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재물이므로 기쁘게 받아드렸다는 의미입니다.
아벨은 형보다 나은 제물을 드린 사람입니다. 히11: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을 칭찬해 주시는데 형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이런 칭찬을 하신 것입니까! '그 예물을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라는 말씀대로 예물을 보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무슨 말인가? 처다 보지도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 재물에 대해선 관심조차 기울이지 아니하셨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도 실패합니다. 예배에 실패한 가인은 결국 살인자가 됩니다.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안색이 변했다는 것은 기쁨이 사라지고 근심이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속이 편치 않다는 말입니다. 기쁨이 없는 삶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아벨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이 분노는 아벨에 대한 질투 때문입니다. 가인은 믿음도 없이 정성도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껍데기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껍데기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고 본문은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가인처럼 드리지 말고 아벨처럼 드리라는 교훈입니다. 지금 가인은 자기분수는 깨닫지 못하고 질투하고 있습니다. 질투는 비교의식에서 생깁니다. 질투는 무섭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은 질투하지 않습니다. /아멘!/
③아벨의 제사를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⑴하나님은 먼저 아벨의 인격을 열납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보다는 먼저 제사를 드리는 아벨의 마음을 열납 하셨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십니다. 마음 없이 드려지는 형식적이요, 요식적인 예배행위는 가인의 제사가 됩니다.
잠15:8절에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할/ 하나님은 재물을 받으실 때, 재물의 종류와 양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 드리는 자의 마음 자세를 보십니다.
또 하나님은 속성이 의로우시기 때문에 의를 따르지 않은 재물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5:23-24절에서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우리가 먼저 갖추어야 할 자세는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저와 여러분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는 삶'이어야 합니다. /아멘!/
육신은 의식주 세 가지가 중요하지만 영혼의 사람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입을까?'는 사람이 사는 방법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인간의 목적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는 방법보다 사는 목적이 더 중요합니다. '육신보다는 영혼이, 물질보다는 생명이, 이 세상보다는 영원한 저 하늘나라 저 천국이 더 중요'합니다. /믿/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행복한 성도들은 다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대인 관계가 중요합니다. 마7:5절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또 마18장에서는 형제의 죄를 일곱 번 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⑵아벨은 믿음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히11: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은 믿음을 굉장히 중히 여기십니다. 히11:6절에서 '믿음을 가장 기쁘시게' 여기셨고 롬14:23절에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하셨습니다.
⑶아벨은 첫 것을 정성껏 드렸습니다.
여기 첫 것은 으뜸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첫째 되고 가장 최선의 것을 가장 좋은 것을 골라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의 예배를 보십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드리는 제사를 흠향하십니다. 예배드리는데 졸기나 하고 세상 생각이나 잔뜩 하다가 가면 정성 없는 가인의 제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⑷아벨은 피 흘리는 재물을 드렸습니다.
레17: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벌써부터 아벨은 이 땅의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바라보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귀한 예배의 정신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예수 믿고 구원받았고, 신약의 성도들은 오신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할/
⑸아벨은 마지막에는 자기의 생명과 피를 순교의 제물로 드렸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비극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축복입니다. 형과 싸우다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죽지 않고 형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면서 형의 손에 맞아서 순교자처럼 죽는 제물이 되었습니다. 마치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처럼 또는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처럼 아벨은 형에 대한 사랑과 용서를 나타내 보이면서 고귀한 죽음을 죽었습니다. 그래서 아벨의 피는 하나님께 상달된 피 제사가 되었습니다. /할/
④가인의 제사는 왜 안 받으셨을까요?
한마디로 믿음이 없고 의가 없고 정성이 없는 인간 행위 적인 제사를 드렸기에 그렇습니다. 또 그의 인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과연 가인의 인격은 어떠했는가? 요한일서3:12절에 가인의 인격에 대하여 말하기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인의 '행위'라는 말입니다.
이 제사는 바로 그의 인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거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가증한 제사를 드리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의 제사를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가인이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변화를 입어야 하는데 오히려 분노와 적개심이 가득 차서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가인의 행위요, 바로 그의 인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중심을 보십니다.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깨 드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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