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기도를 배우자! (대상 4:9-10)
야베스에 대해서 성경은 아주 짤막하게 유다 자손임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야베스가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이름과 그의 어머니의 증언을 통해서 야베스는 태어날 때 아주 고통스럽게 낳았다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야베스라는 뜻은 '고통,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야베스가 태어날 때 뿐 아니고 그가 자랄 때도 아주 고통스런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 말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자랐다는 말입니다. 아주 초라하게 자랐다는 말입니다. 야베스는 그 많은 백성들 중에서 가장 빈약하고 초라하고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후에 야베스는 크게 성공한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야베스는 '그 형제들 보다 귀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 야베스가 후에 크게 성공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야베스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서 마침내 성공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야베스는 오늘 성공을 바라는 현대인들의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
그러면 야베스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성공했습니까? 이 야베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 특징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할/
①야베스는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혀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대이고 희망이고 비전입니다. /할/
현재 환경은 고통스럽고 불만족스럽고 어려움이 있고 초라하고 빈약하지만 그런데 야베스는 그런 환경을 보지 않고 미래를 보고 먼 훗날을 보고 앞으로의 시간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내 지역을 넓혀 주십시오'
사람은 이 같은 미래에 대한 꿈과 계획과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이 같은 생각이나 마음 그리고 기대와 뜻이 있으면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미래를 위해서 이런 기대나 꿈이나 소망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기도하게 됩니다. /믿/
'킬케골'이라는 철학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은 다름 아닌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은 비전이 없는 삶이고 기대도 꿈도 희망도 없는 삶을 말합니다. 사람에게 이 같은 기대나 비전이 없으면 희망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때로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두 아이를 강에 내다 버린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의 마음을 열어보면 분명 그 마음속에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마음 어디에도 희망의 싹이라고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아이들을 강에 던져 버렸을 것입니다. 또 근래에 와서 자살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하나같이 어딜 봐도 희망이 없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약을 먹고 불을 질러 죽고 철길에 떨어져 죽고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을 것입니다.
이 무 소망이 문제입니다. 절망이 문제입니다. 경제가 더 어렵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닙니다. 야베스에 기대가 우리의 기대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야베스는 꿈과 기대와 소망과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내게 복을 주시려면 내 지역을 넓혀 주십시오' 이 꿈이 있으면 현재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모두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는 반드시 이 희망과 꿈과 비전과 기대와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야베스에게는 이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야베스는 그 꿈을 이루어 형제들 가운데서 가장 유력한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꿈과 기대와 비전이 있습니까?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기회는 또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씨를 심으면 반드시 싹이 나듯이 기대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 뜻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믿/아멘!/
②야베스는 믿음으로 내일을 소망하며 기도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지금 야베스가 처한 환경은 어려움과 고난과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환경이 어려우면 살아가기가 참 힘듭니다. 배고픔의 고난, 열악한 환경에서 자랄 때의 아픔, 추위, 더위는 상당히 무섭습니다.
오늘도 고시원, 하숙집, 셋방으로 전전하면서 살아가는 기댈 곳 없는 젊은이들은 남들의 평안함을 보게 되면 자신의 모습은 더욱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삶에는 먼 훗날이 잘 안보입니다. 오늘 현재가 너무 힘겹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낙심하게 되고 도중에서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야베스는 참 대견합니다. 그가 처한 환경은 열악하고 가난하고 고통스럽고 낙심의 요소들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꿈이 있었고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그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소서'
야베스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꿈을 이루려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이런 기도하는 믿음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생각해 보면 참으로 굉장한 복입니다.
고아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조지 뮬러'는 고아를 양육하다가 먹을 것이 떨어지면 얻으러 가지 않고 기도 굴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교섭하고, 청원을 해야 하는데도 그는 먼저 기도 굴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기도하고 나오면 먹을 것을 실은 마차가 왔다는 것입니다. /할/
어느 건축가의 아내는 남편이 집을 짓는데 지어놓은 집이 팔리지 않으면 남편은 아내에게 '빨리 기도원에 갔다 오라'고 안달을 했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짐을 싸들고 기도원으로 가서 기도했습니다.
'집이 팔리게 하옵소서, 이 집이 팔려야 선교지에 보내던 선교비를 제때 보낼 수 있습니다. 팔리지 않으면 선교지에 보낼 돈이 없습니다, 그러면 모두 굶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내려오면 집이 팔렸다고 합니다. 그 기도에 명분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기도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응답이 있지요, 그렇다고 매사 선교비를 보낸다고 거짓말하고 기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 속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할/
다윗은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쁠 때 하나님께 기도했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수님도 가장 힘들 때 산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전날 밤에도 산에 올라가 밤새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던 때도 먼저 산으로 올라가셔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시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아멘!/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복이고 은혜이고 특권입니다. 어떤 때는 답답할 때 골방에 들어가 조용히 기도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조용히 들려오는 하나님의 격려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조용히 기도해서는 시원찮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산에 가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소리를 높여서 '주여, 여호와여, 아버지여'하고 기도하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자신감이 생겨납니다. 확신도 옵니다. /믿/아멘!/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할 수 있다는 것도 축복입니다. 우리들이 어디 가서 누굴 붙잡고 그렇게 부르짖을 수 있습니까? 부모형제도, 이웃도 들어주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성경은 '네 입을 크게 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부르짖으면 응답하겠다는 메시지입니다. 야베스는 그 어려운 환경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야베스가 그 상황에서 기도할 때 조용조용히 기도했겠습니까? 아마 그는 큰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도가 절대 필요합니다. 렘33: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할/
다시 야베스에 기도를 들여다보십시다. 야베스는 지금 처한 환경을 원망하고 탓하지 않고 기도하기를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근심에서 벗어나 평안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희망과 꿈과 비전의 근거이고 소망입니다. /할/
이것이 있는 사람은 오늘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다 이길 수가 있습니다. 장래를 바라보며 비전이 있고 꿈이 있고 기대가 있는 사람은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입술에 이 기도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③야베스의 기도는 마침내 응답을 받았습니다.
9절에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보다 귀중한 자'라고 했습니다. 10절에서는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응답하셔서 만족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뜻과 기대를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야베스는 아주 초라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 가장 귀중한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할/
우리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이 응답을 받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 나라를 걱정하면서 성전에서 뜨겁게 기도를 합니다. '이 백성을 기억하소서' 그때 환상 속에서 하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하늘 보좌가 나타납니다. 그 보좌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옷자락이 자신이 앉아있는 성전지붕을 덮은 것을 보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 뜻은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렇게 지키고 있다'라는 그 말입니다. /할/그것이 응답의 생활입니다. 기도생활에는 이런 응답을 받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아멘!/
한나라는 여인을 보세요! 이 여인은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전에 나가 '나에게 아들을 주세요, 주시면 나실 인으로 바치겠습니다'하고 기도했습니다. 여기 나실인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실인이 되면 평생 독주를 마시면 안 되고 몸에 병들어도 약을 먹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죽은 시체를 보거나 만져도 안 됩니다.
그 말은 어머니가 죽어도 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한나는 그래도 내 몸으로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한나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으면 음성도 없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로 기도했다고 성경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그 모습을 보고 '술 취했구나 제발 술을 끊어라'고 큰소리로 책망을 했습니다. 그때 한나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입니다'라고 하자, 한나의 심정을 이해한 엘리제사장이 이렇게 말합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할/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아들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이것이 응답의 생활입니다. /아멘!/
우리 모두에게도 야베스 처럼 분명한 꿈과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환경을 탓하고 원망하고 현실만 바라보면 가지고 있던 꿈도 상실되기 쉽습니다. 현실만 보면 그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꿈을 갖는 것이 절대 중요합니다. 그리고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꿈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대와 꿈을 갖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또 모든 기도에는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응답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할/ 우리 모두 이렇게 응답을 받고 꿈을 이루고 성취하며 살아가는 축복받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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