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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어리석은 자가 누구인가? (시 14:1-7)

by 【고동엽】 2022. 3. 20.

어리석은 자가 누구인가? (시 14:1-7)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히브리말로 '나발'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외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한 내적으로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하나님과 관련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이 '나발'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무신론자를 가리키는데, 무신론이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학설과 생활 태도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정말 이 세상에는 무신론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신론이 교회 안에도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자기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만 무신론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무신론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론적 무신론입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름대로 조직적이고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무신론입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유신론에 대해 나름대로 논리적 근거를 대면서 이론적으로 논박하는 사상적 태도를 말합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증명해 보라!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이 만들어 놓은 허상이고, 조작된 개념일 뿐'이라고 강변하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을 괴롭히고 공격합니다. 물론 우리는 저들과 맞서서 논쟁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들을 사랑하고 저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믿/
  다른 하나는 실천적 무신론입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실천적으로는 부정하는 무신론입니다. 말로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남에게 당당하게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는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우리 기독교 안에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사탄이 자기 수하 예언자를 불러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세상에 내려가 하나님이 죽었다고 믿도록 사람들을 설득시켜라' 그가 세상에 내려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 곧 바로 사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사탄이 '도대체 어떻게 설득했기에 이렇게 빨리 돌아왔느냐?' '제가 세상에 내려가 보니 사람들은 매일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고, 죄짓는 일에만 여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삶으로 이미 하나님이 죽었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 실천적 무신론입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믿고 인정하면서도 손과 발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들도 분명히 무신론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종류의 무신론자들은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무신론자로 살아갑니다. 자기가 무신론자인지 모르고 무신론자로 살아가기 때문에 이들의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할/
  오늘 본문은 무신론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계신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①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입니다(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구 소련에 있었습니다. ▶구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인류의 최초 우주비행사로 역사에 그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가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 48분 동안 지구를 1바퀴 궤도 비행한 것이 인류최초의 우주비행이었습니다. 그는 인류 최초로 우주에 나갔다 돌아와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지구는 푸르다. 그러나 어디에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구상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저 하늘 저 우주에 가서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볼 때 하나님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철저한 하나님의 존재 부정인 것입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십니다. /아멘!/ 그러면 왜 이 무신론자들의 이런 부정을 하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롬1:19-20절에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존재 흔적을 잘 알 수 있도록 남겨두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 가운데 남겨두셨고, 또한 우주 만물 속에 남겨두셨다는 것입니다. 그 흔적만 보면 누구도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게 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의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신 그 흔적을 찾지 못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아니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눈이 먼 것입니다. 영적인 장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흔적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눈이 먼 것입니다.
  가가린처럼 믿음의 눈이 멀지 않았다면 그래서 우주에 가득 찬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노래할 것입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할/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는 그의 명저 '국부론'에서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이란 한 마디로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사회 발전 경제 번영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이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 역사에 개입하고 계시고 우리 개인의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무신론자들은 이것을 볼 수 있는 눈이 먼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우주 만물 속에 가득한 하나님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영의 눈이, 그리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을 볼 수 있는 영의 눈이 활짝 열리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②악을 행하는 자라고 했습니다(1).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무신론자들은 겁도 없이 악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역사학자들은 지난 20세기에 인류에게 가장 핵심적인 화두를 던진 사람으로 독일의 철학자 '니체'를 꼽습니다. 그는 '신은 죽었다'라고 광기 어린 선언을 했습니다. 신이 죽었기 때문에 이제 인간의 초인적인 권력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니체의 이 사상을 기점으로 결국 무신론적 허무주의와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시작됐습니다. 그의 사상에 화답이나 하듯 수많은 초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레닌, 마오쩌뚱, 김일성, 저 일본의 천황 등입니다. 이들이 나타나 1,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공산혁명을 주도했습니다. 저들은 모두가 무신론자들이었습니다. 이 무신론자들은 그동안 인류가 겪어보지 못했던 전쟁과 살상과 인권유린의 악을 저질렀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이 20세기는 악이 난무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작품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무슨 말인가? 이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기에 함부로 아무 일이나 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은 '하나님이 없다'는 말입니다. 왜 그러지 아십니까? 무슨 범죄든 다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TV 뉴스를 보니까 한 평범한 주부가 화장품 가게에서 15분 동안에 무려 7차례 절도행각을 벌인 것이 보도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진열되지 않는 어떤 화장품을 달라고 주문하고는 주인이 그것을 찾는 동안 진열된 화장품을 가방에 정신 없이 넣었습니다. 그러기를 무려 7번, 의심이 생긴 주인이 감시 카메라를 보고 경찰에 신고해서 체포 됐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만일 감시 카메라가 찍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도둑질을 할 수 있었을까요? 마찬가지로 무신론자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보신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기 때문에 그 큰 악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악에 가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래서 실천적 무신론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감찰하십니다. 욥34:21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신다'고 했고, 시33:13절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라고 말씀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살전2:4절에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할/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에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행에라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까맣게 잊고 하나님 앞에서 악을 저지르는 일이 절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믿/아멘!/

 

  ③하나님께서 인생을 평가하시고 심판하십니다(2-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 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평가하십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신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현재적 평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온통 부정적인 것들뿐입니다. 조금 실감나는 표현으로 바꿔보면, 1절에 '어리석은 것들'은 '이 썩은 것들, 이 가증스러운 것들, 이 더러운 것들'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행여나 이 소리를 들을까 봐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살아야 합니다. /믿/
  하나님이 우리 인생사를 굽어살피십니다. 어떤 사람을 찾으려고 살피십니까?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없는가?'를 살피십니다. 그런데 살피신 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다'고 한탄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한탄하십니까? 어리석은 인생들이 심판이 없다고 믿고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심판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 오늘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심판이 있음을 모르기 때문에 제 멋대로 살게 됩니다.
  ▶미국 연방 대법원장을 지낸 '호레이스 그레이' 대법관이 어느 날 거리에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무죄 석방을 받은 사람을 길거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레이스 판사가 그를 붙잡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당신이 유죄인 것은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있소. 당신에게 꼭 일러둘 말이 있소. 후일에 당신은 인간보다 현명하시고 뛰어나신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거기서는 세상의 법률이 아니라 공의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요'
  그렇습니다. 분명히 심판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미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한 채로 그 심판대에 설 것입니다. 5절에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할/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자기가 지은 죄 그대로 다 짊어지고 그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감당할 수 없는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히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여러분! 우리는 한 번 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후 반드시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날을 대비해야 합니다. /아멘!/
  본문은 다윗의 작품으로써 다윗은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지만 모두가 부패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모습을 보면서 통탄하여 이 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이 시를 통해 '너희들이 바로 무신론자들이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껍데기와 모양만 하나님 백성이지만 그 안은 무신론자들보다 더 타락하고 부패하였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로 엡4:17절에서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 하였느니라 오직 너희는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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