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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증거 하는 베드로! (행 2:14-21)

by 【고동엽】 2022. 3. 20.

성령을 증거 하는 베드로! (행 2:14-21)

 

  베드로의 설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제자들의 방언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님'을 말했고, 또 하나는 16-21절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잇습니다. /할/
  욜2:28-32절의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오순절마다 읽는 성경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구인 욜2:28:32절을 본문으로 성령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멘!/

 

 ①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14)
  베드로의 말을 의역하자면 '여러분이 우리를 보고 술에 취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 몇 시입니까? 겨우 3시(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 밖에 안되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술에 취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제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의 강조 점은 무엇입니까?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입니다. 마땅히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를 기울여야 합니다. 베드로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큰 은혜는 주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영음'이라고 합니다. 세상엔 여러 가지 소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교회 안에서만이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계23장에서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무려 7번이나 했습니다(계2:7, 11, 17, 29, 3:6, 13, 22 참조).
  여러분, 귀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영음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성령이 그 심령에 거하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 귀 있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가 바로 되어야합니다. /아멘!/

 

  ②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다(15).
  당시 주님의 사도들은 신령한 성령의 은사를 받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사도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하나님께 경건히 그리고 사모하는 일념으로 기도하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매수하기를 술판이나 벌여놓고 쾌락 놀음이라 하고 있었다고 몰아 세웠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무지 때문에 크게 상황을 오판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세상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새 술에 취한 자들입니다.
  오늘도 세상 사람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향락의 술, 허욕의 술, 온갖 비리의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술 취한 사람은 정신을 잃고 방향을 잃어버리고 흐느적거립니다.
  창9:20절 이하에 보면, 옛날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았던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자다가 아들들에게 염치없는 수치를 당했습니다. 술은 노아가 먹고 괜히 그 사건을 통하여 함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9:24-25절에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세상 속에 취하여 인생을 잃어버리고 더러운 죄악 속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면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자신들이 세상 술에 취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취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할/

 

  ③요엘 선지자의 예언대로 받은 성령 학을 들으라고 했습니다(16-17). 
  지금 베드로는 욜2:28-32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오순절에 나타난 역사는 바로 예언의 성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사건은 베드로 자신이 주장한 사건도, 제자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약성경의 요엘서 예언의 성취요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아멘!/,
  요엘 선지자는 주전 870전의 선지자로서 요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는 900년 전이됩니다. 이미 900년 전에 요엘 선지가가 예언한 것이 17-21절까지 나옵니다.
  17절의 '말세에'라는 말은 요엘서에서는 '그 후에'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후란'말은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신 후에'란 말로 '말세'란 앞으로 올 미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성경은 말세를 복수로 쓸 때가 있고, 단수로 쓸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세는 복수로 쓰였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말세는 예수님의 초림 시부터 재림 시까지 복음시대를 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이 말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날도 말세입니다만 말세란 상당히 긴 기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 단수는 요1서 2:18절에 나오는 '마지막 때' 입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를 뜻하며 흔히 말세지 말이란 말로 표현됩니다.
  우리가 쉽게 표현하면 밤도 초저녁이 있고, 깊은 밤중이 있고, 먼동이 트는 새벽녘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주님 재림의 때를 비교해 본다면 말세기간, 즉 먼동이 트는 새벽녘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강림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이 가라사대'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약속의 내용은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입니다. 여기 모든 육체는 성령을 부어주시는 범위를 말합니다. 모든 육체는 한 마디로 말해서 모든 인류를 의미합니다. 성에 구별 없이, 환경과 혈통이나 계급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주신다는 말입니다.
  요엘서에는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준다'고 했습니다. '만민'은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면 누구에게든 임하십니다. 아무리 영리한 개라고 해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주십니까? '부어 주리니' 이 말은 '값없이 무상으로, 풍성하게, 끊임없이' 주신다는 말입니다. /할/
  ▶다음에는 요엘서의 예언의 내용입니다.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예언은 '미래의 사건을 예고한다는 뜻'이요, '알아맞힌다.'는 뜻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이 완성되기 이전과 이후의 예언의 범위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완성된 오늘날에 와서는 새로운 계시 성을 가진 예언은 없으며 본문에서 말하는 예언은 이미 예언하신 말씀을 바로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예언한다고 해서 앞날을 말해 주는 자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모든 성경은 다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예언할 것이요'란 말은 성령 충만을 받으면 주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증거 할 능력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벧후1:20절에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는 말은 제 마음대로 풀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조명, 인도 따라 풀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였습니다. 그 중 하나가 환상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을 선견자(삼상9:9,11,18,19)로 불렀습니다. '환상'이라는 말을 영어로 번역하면 '비전'(vision)이라는 말입니다.
  환상은 위대한 일을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따라서 환상이 없는 민족은 망합니다. 개인도 환상이 없이 큰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잘못된 환상 때문에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폴레옹은 전 세계를 정복해서 통치하겠다는 잘못된 환상 때문에 수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조명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때문에 항상 환상을 좇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꿈을 통해 역사 했습니다. 창20:3절에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아비멜렉은 꿈을 통해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인 것을 알았습니다.
  또 하나님은 요셉, 바로, 다니엘 등에게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심지어 신약성경에서는 요셉이 꿈에 경고를 받았고(마2:12), 빌라도의 아내도 꿈에 예수님에 관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마27:19).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후로 하나님은 꿈이나 환상으로 어떤 계시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계시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꿈은 늙어지면 모든 것이 자신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육신은 후패하나 영혼은 새로워져 꿈을 가지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꿈과 환상은 다른 것인데, 꿈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앞을 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연세가 많은 노인들이 앞을 본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바로 영원한 미래의 세계, 자신의 영원한 정착지인 천국을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노인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 때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사람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노인들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멘!/

 

  ④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18).
  17절의 말씀을 더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종과 여종'되는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령이 임하시면 종도 은혜를 받고 예언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제한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 문제이지 우리 하나님은 남종과 여종에게도 한량없는 은혜로 채워 주십니다. /믿/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종은 주인에게 속한 사람으로 주인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할/

 

  ⑤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1)
  누가 주의 이름을 부를 수가 있습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가 부릅니다. 롬8: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롬8: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여기 '부르다'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기도 가운데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롬10:13절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행6:30-31절에 빌립보 감옥의 간수 장이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하고 부르짖을 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구원의 도리를 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마7: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라'고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주여'와 베드로나, 바울 사도가 전하신 '주의 이름'이 다르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똑같은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여'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할/
  ▶그런데 마7:21-23절에 보면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주의 뜻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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