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딤전1:13-15)
초대교회 김익두 목사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뭘 보여 달라고 하자 '나를 보고 믿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즉 '내가 변한 것을 보면 예수를 믿을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익두 목사는 그만큼 예수를 만나고 나서 크게 변화된 사람 중 한사람입니다.
한번은 부흥회를 하기 위해서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그때 옆자리에 노인 한 분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데 자기를 향해서 연기를 뿜어냈습니다. 그래서 자리를 피해 앉으면 따라와서 곁에서 연신 연기를 뿜어냅니다. 그래서 참다못해 그 노인은 밀쳤는데 그만 넘어져 담뱃대가 부러졌습니다. 그때 그 노인이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말하기를 '그러면 그렇지 김익두가 별수 있나'하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김익두가 '나를 아느냐'고 물으니 '언젠가 자네에게 맞아 죽을 뻔했던 사람인데 듣자니까 김익두가 변했다 해서 일부러 정말 변했나 시험해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그가 '잘못했으니 용서하라'고 하자 노인은 '그만하면 되었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오늘 자네에게 맞아죽었을 것이네'하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참 엄청난 변화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받은 결과입니다.
바울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바울도 예수를 알고 나서 180도 변화된 사람입니다. 가던 길을 완전히 되돌아 유턴해 간 사람입니다. 변화한 후에 바울이 본문에서 이렇게 간증합니다. '나는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 그 말은 '나는 전에 깡패였었다'는 말입니다. '나는 전에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죽이는데 앞장섰고 박해자 핍박자 쉽게 말하자면 깡패였다.' 그 말입니다.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데 진두지휘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긍휼을 입어 용서받고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간증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으면 사람이 이렇게 변화하고 바뀝니다. /믿/ 이때 새롭게 열리는 눈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할/
①세상을 보는 눈이 뜨입니다.
예수를 만나서 깊은 체험을 하게 되면 이 세상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이 달라집니다. 전에는 이 세상이 정떨어지고 비관되고 사기와 거짓과 부패와 소란으로 가득 찬 소망 없는 세상으로 보였는데 이렇게 변화하고 나면 이 세상이 망할 세상이 아니고 살만한 세상으로 바뀝니다. /할/
그래서 나오는 찬양이 495장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던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아멘!/ 이 찬송은 '버틀러'라는 사람이 예수를 알고 은혜를 받고 나서 변화된 마음으로 작사한 고백이랍니다. /할/
②사람을 보는 눈이 뜨이게 됩니다.
사람은 날마다 사람들과 만나고 교제하고 친교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좋게 보이는 것만 아닙니다. 살다보면 좋은 사람도 있지만 보기 싫은 사람, 미운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사람 중에는 아주 생각하기도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입고 보면 평소 가까이 하지 않던 사람들도 예쁘게 보이고 그 영혼이 귀하게 여겨지고 전에는 무관심했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은혜를 입고 보니 그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이 은혜를 입으면 먼저 '너(이웃)를 보는 눈'이 뜨이게 됩니다. 그래서 비로소 '너의 값을 알게 되고 너의 존재를 알게 되고 너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이 너를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 눈이 뜨여야 관계가 좋아집니다. 내가 은혜를 입어야 너를 보고 너를 생각하는 눈이 뜨이게 되어 살아가면서 관계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할/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소란한지 아십니까? 이 너를 보는 눈이 감겨져 있어서 너의 존재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갈등이 있는 집안, 관계, 이웃을 보십시오. 모두 이 눈이 뜨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관계가 껄끄러운 것입니다. /믿/
③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뜨입니다.
이 눈이 뜨이게 되면 나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깁니다. 나는 똑같은 나인데 내가 은혜를 입고 보면 나의 삶, 나의 존재, 나의 인생의 소중함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나를 소중한 존재로, 소중한 가치를 지닌 사람으로 바치고 드리고 헌신하게 됩니다. /아멘!/
사람이 자신을 소중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태도가 참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디라고 삶을 포기하고 인생을 포기하고 자신을 증오하고 삽니까? 오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값을 모르고 의미도 가치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뚝하면 원망하고 시비 걸고 자살해 버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참 좋은 배경에서 태어났습니다. 똑똑했습니다. 공부도 잘했습니다. 좋은 대학에서 공부도 했습니다.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앞길이 훤히 보장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도 받았습니다. 그는 세상적인 좋은 조건을 다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상 적인 조건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소중하고 우월하게 하고 우상일는지 모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조건들이 별로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알기 전에는 그 조건들을 대단히 자랑스러운 조건으로 알고 만족해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조건들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알고 난 후에는 그 좋아하고 자랑하던 조건들을 모두 분토와 같이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미련 없이 버렸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알고 난 후에는 그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값이 없는 것들이 아닙니다. 모두 값나가는 조건들이고 간판들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상당히 위력 있는 조건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은혜를 받고 난 후에는 그 은혜에 비해 보니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할/ 그리고 예수 안에서 발견된 자신의 값을 알고 의미를 알고 가치를 알고 나니까 넘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감사의 신학을 정립시켰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할/
④그리고 바울이 크게 눈을 뜬 것은 예수님을 보는 눈이 새롭게 떠진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는 제 일인자였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기독교인들이 도망간 다메섹으로 체포하러 가다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바울은 '주님의 은혜가 훼방자인 사울을, 핍박자인 사울을, 포행자인 사울을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주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는 예수님을 보는 눈을 바꾸어 줍니다. 은혜를 받고 보면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됩니다. 여기까지 가야 합니다. /아멘!/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습니다. 단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시자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고 그물을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에 던졌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이 잡혔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서 기적을 맛보고 나서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선생'이라는 고백과 '주'라는 고백은 천지차이입니다. 선생은 가르치는 사람 정도입니다. 주라는 고백은 '쿠리오스'라는 고백인 데 '당신은 나의 두목입니다'라는 말입니다. 두목에게 부하는 절대 순종입니다. 절대 복종입니다. 모든 생애를 다 맡긴다는 고백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나를 보는 눈을 바꾸어 줍니다.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전 이름은 사울입니다. 사울은 가장 큰 자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가장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자기는 가브리엘 문하에서 공부하고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당시 당당한 로마 시민권을 가진 가장 큰 자인 줄 알았는데 은혜를 받고 보니 자기는 가장 작은 자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보니 자기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은혜의 능력입니다. /할/
⑤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눈이 뜨입니다.
바울은 야망 가였습니다. 바리새인 사회에서 크게 출세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던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고 나서 바울은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련 없이 주저하지 않고 사도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도의 길을 걸으며 한번도 회의에 빠지거나 갈등을 느끼지 않고 누구보다 행복하고 확신 있게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인생 마지막에서 가서 그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딤후4:7-8절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다.' 그 말은 '나는 이 길을 만족하게 걸었다'는 그 말입니다. /할/ 이것이 성공한 인생입니다. /아멘!/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세상을 보는 눈, 사람을 보는 눈, 또 자기를 보는 눈, 그리고 예수를 바로 보는 눈,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아는 영안'이 열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세가 순종하지 못한 이유는? (출 7:6) (0) | 2022.03.20 |
---|---|
비판하면 비판을 받게 됩니다! (마 7:1-5) (0) | 2022.03.20 |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기자! (잠 16:1-9) (0) | 2022.03.20 |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기자! (잠 16:1-9) (0) | 2022.03.20 |
예언의 성취로 오신 예수! (마 2:13-23) (0) | 2022.03.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