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롬 12:1)
로마서는 크게 세 단계로 분류가 됩니다. '죄론과 구원론과 생활론'으로 분류해서 기록했습니다. 1-11장까지에서 죄론과 구원론을 밝힌 사도 바울은 이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어떻게 바로 살 것인가? 그 생활 면을 본 `12장에서부터 밝히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로마서는 믿음을 강요하고 야고보서는 행함을 강요한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로마서가 행위보다는 믿음을 더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행함은 무시해 버리는가? 아닙니다. 행위에 있어서도 야고보서 못지 않게 심도 있게 행위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행위론을 가르치는데 그 첫 번째가 하나님께 대한 예배(1-2)이고, 두 번째가 교회생활로 봉사에 대한 것(3-21)이며, 세 번째가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생활면(13-15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예배론입니다. 예배 성공이 인생 성공입니다. /할/
①그 몸으로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⑴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려라!
기뻐하시는 제사는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형식과 의식이 아닌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⑵거룩한 산 제사를 드려라!
거룩하다는 뜻은 '성결되다, 구분되다, 깨끗하다'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약의 제사는 흠 없는 짐승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흠 없는 짐승 대신 성도의 자신의 심령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바꿔졌습니다.
깨끗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되기 위해 우리의 죄와 허물을 주님께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시51:17절을보세요!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할/
⑶몸을 산 제사로 드려라!
여기서 몸은 단순히 육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부를 가리킵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것만 예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 드리는 자와 바쳐지는 제물이 분리되었습니다.
결국 형식적인 예배 생활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짐승을 바치고 제물 예배가 되기보다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더 구체적으로 '산몸을 제사로 드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전에 나와 자신을 드리는 예배요, 둘째는 살아 움직이는 내 자신의 삶 그 자체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예배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만 하나님께 나 자신을 바치는 거룩한 시간을 가질 것이 아니라 생활 전부를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예배 시간만 예배가 아니라 예배를 마치고 교회 문 밖에 나가는 순간부터 또 하나의 새로운 예배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업가는 사업 그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일 자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활 그 자체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믿/
②산 제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약의 성도들은 짐승을 잡아서 죽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면서 살아갑니다. 산 제사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생활을 통해서 드리는 제사를 가리킵니다.
▶어떤 가정에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 부부집사님 가정에서 일어난 일로, 하루는 부모님이 아들 내외를 불러 놓고 말하기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고 하니 너희들도 우리가 죽더라도 제사를 드리지 않겠구나? 우리는 죽어서 굶기 싫다.'고 합니다. 부부집사는 깜짝 놀랐지만, 그 순간에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제사는 죽은 제사입니다. 저희들이 그것보다도 훨씬 더 좋은 산 제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후로부터 아들 내외는 더욱 정성을 다해서 부모님을 잘 모셨습니다. 끼니때마다 늘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차려 드렸습니다. 철마다 보약도 지어서 드렸습니다. 용돈도 넉넉하게 드렸습니다. 얼마가지 않아서 부모님은 아들 내외를 다시 불러놓고는 '그래, 너의 말이 맞다. 산 제사가 죽은 제사보다 훨씬 더 낫구나. 걱정하지 말고 이제는 마음껏 교회에 다녀라. 이제 우리도 너희들을 따라서 교회 다녀야겠다.' /할/
그렇습니다. 산 제사는 우리의 생활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⑴살아있는 영이 드리는 제사입니다.
중생한 사람이 드리는 제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혼이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사람들은 산자 같으나 죽은 자들입니다. 육신은 살았으나 영혼은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전 인격적인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2:20절을 보세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⑵최고의 것을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최고의 것을 드렸습니다. 100세에 얻은 이삭까지도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능, 시간, 물질 아낌없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영국에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아들 4형제가 있으면 첫째는 정치가, 둘째는 군인, 셋째는 학자, 넷째는 목사를 시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맨 못난 것 이것저것 할 수 없으니 목사나 시키자 그런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국이 쇠퇴해 가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옛날에 미국인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고, 영국 사람들은 자기 자신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부강해 졌지만, 영국은 해뜨는 나라에서 해가 지는 나라로 쇠퇴해진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법칙은 30, 60, 100배의 축복입니다.
존번연 목사는 '우리가 덧셈을 하면 하나님은 뺄셈을 하시고 우리가 뺄셈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덧셈으로 채워 주신다'고 했습니다. /믿/
⑶산 제사는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는 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는 것처럼 우리도 주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헌신이란 말은 일반 세상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 기독교 전문 용어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이 날 때부터 헌신의 요소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드리는 대상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물질 앞에 자신의 전체를 드리면 그 사람은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이고, 명예 앞에, 권력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히 지나친 경우가 있습니다. 너무 자식에게 빠지면 그 부모는 자식의 종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우리의 귀한 몸을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크리소스톰' 교부는 산 제사는 '눈은 악을 보지 않고, 혀는 비방의 말을 하지 않고, 손은 죄를 짓지 아니하면 그것 자체가 제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면 하나님이 더더욱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손은 구제하고, 봉사하고, 기도하고, 입은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그 자체가 바로 산 제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할/
③'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어떤 것이 영적 예배입니까?
구약의 성도들은 레위기에 기록된 절차와 의식에 따라서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제사 드리는 제사장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기계적이고 의식적인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신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가 말, 우리의 행동, 우리의 몸가짐, 심지어는 우리의 얼굴 표정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연속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찡그리고, 우리가 화를 낸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천사의 얼굴처럼 은혜로운 모습을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바로 영적 예배입니다. 약2: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믿음의 생활화! 하나님의 말씀의 생활화!'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할/ 또 영적 제사는 합당한 봉사, 당연한 섬김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합당한 봉사란 주님이 섬김을 보여주셨듯이 우리도 섬겨야 합니다. 섬김은 자신을 낮추어야 남을 섬길 수 있습니다. 남을 진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를 섬길 때, 내가 좋아하는 대로 섬기는 것과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섬기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 그것으로 섬겨야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기분, 내 감정, 내 생각에 맞추어 내 평안한대로 예배드리는 것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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