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본받으라! (빌 3:17-18)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하면서 자신뿐 아니고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추천하니 그도 본받으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교만한 말 같지만, 그 당시 빌립보교회에는 이단이 성행했고, 율법주의자들의 유혹도 아주 강했고, 거짓 선지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흔들렸습니다. 그때 바울은 나처럼 예수의 복음을 귀하게 여기며 확신 있게 살아가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강조했습니다. /할/
이 세상에는 이런 본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시대나 본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옛날에는 위인들이 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위인전을 많이 읽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위인들을 본을 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받는다'라는 말을 '본뜬다'는 말입니다. 그 본을 오늘은 모델이라고 하고 멘토라고도 합니다. /할/
①인생의 본은 위인들이고 모범 자들 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난을 겪고 각고 끝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인생에 하나의 본이 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그런 위인을 스타라고 했습니다. 별을 스타라고 하는데 위인은 별처럼 떠 있으면 됩니다. 별이 높은 하늘에 떠 있기 때문에 사막에서나 바다 끝에서 길을 잃었어도 별만 보면 방향을 찾을 수 있듯이 위인은 그 시대에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모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위인들로 링컨을 말하고 이순신을 말하기도 합니다.
링컨은 숫한 어려움과 가난 그리고 실패 속에서도 끝까지 도전해서 마침내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이순신은 사심 없이 군인으로 때로는 백의종군하면서 나라를 지켰고 나라를 먼저 생각했던 위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수세기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인생의 모델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위인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 적으로 보면 아브라함 같은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지도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할/
②삶의 모습에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삶의 모델이고 본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슈바이처를 그런 삶의 본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슈바이처는 자라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 좋은 기득권과 재능과 입지적인 조건들을 다 버리고 고난의 길을 자초해서 아프리카로 들어가 일생을 인류애를 가지고 희생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삶의 모습을 이야기 하기는 쉽고 말하기는 쉬워도 그런 삶을 살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렇게 인류애를 가지고 아프리카를 위해서 헌신의 삶을 살아가다가 죽어 부인과 함께 그 땅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참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삶의 모습으로 얼마든지 세상에 메시지를 줄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시대를 살아가는 위인들은 그 시대에 상당한 메시지를 줍니다. 그래서 위인이 있는 사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사회에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있고 위인이 있고 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③사업의 본을 보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살벌하고 속임이 많고 변칙이 많은 것입니다. 이런 때에는 어느 모델이 될 만한 기업가나 재벌이 나서서 본이 되어 준다면 그 영향이 클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전문가들이 한국에서 가장 존경하는 기업가로 꼽은 사람이 유한양행의 고 유일한씨입니다. 그는 1896년 평양에서 8남매 중 맏이로 태어납니다. 1904년 9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미국에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칩니다. 그때까지 그 이름이 '유일형'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나이가 어렸지만 조국 한국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이름을 '유일형'에서 '유일한'으로 바꿉니다. 그의 뜻을 듣고 그 아버지가 그 네 동생들 이름도 모두 '형'자 돌림에서 '한'자 돌림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1926년 31세 때 귀국하여 일제치하의 고국 실정을 목격하고 교수직을 맡기로 왔지만 계획을 바꾸어 민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유한양행이라는 기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약품을 만들어 유항양행을 일으켜 놓고 1936년에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겨놓고 사재를 털어 1954년 교육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때 만든 교육기관이 유한공고와 유한대학입니다. 그리고 그는 총 주식 40%를 공익단체에 기증하고 자신의 소유주식을 사회에 환원하고 1971년 3월 11일 76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세상을 떠날 때 나머지 지니고 있던 집까지 공익재단에 기부하고 빈손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자 20년 뒤(1991년) 그의 딸 유재라 씨가 미국에서 숨을 거두면서 그의 재산도 유한재단에 다 기부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4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유일한이라는 사람을 사람들이 지금도 잊지 않고 가장 기억에 남는 기업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 분이 별이고 스타이고 모델입니다. /할/
④신앙의 본을 보인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아주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9절에서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그리고 본문에서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굉장한 자신감입니다. 신앙인에게는 이런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바울의 신앙고백을 보면 하나같이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의 달려갈 일을 마치고 믿음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노라' '나는 이제부터 예수만 알기로 작정하였노라'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
이것이 자신감이고 확신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복음에 대해서 분명하게 살아가는 나를 본받으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보라고 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이 자신감이 제일가는 자본입니다. /할/
사업가 코카콜라 사장이 어느 날 TV에 나와 대담하다가 팔뚝을 걷어 보이면서 '지금 내 몸 속에는 코카콜라가 흐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코카콜라 회사가 급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장의 그 자신 있는 태도가 듣는 이들로 하여금 믿음을 주었고 공감을 주었고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⑤그러면 우리가 바울의 어떤 신앙을 본받아야 하는가?
⑴바울의 예수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본 받자! 고전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또 고전2:2절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리고 갈6:14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바울은 십자가만 '믿고, 알고, 전하고, 자랑한 사람'입니다. /할/
⑵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한 생활을 본 받자! 롬14: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⑶바울은 날마다 십자가 아래에서 죽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전15:31절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누구나 날마다 죽어야 할 옛사람의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살면 그리스도가 죽고, 내가 죽으면 그리스도가 살고, 또 육을 죽여야 영이 산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우리도 날마다 십자가 아래서 죽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⑷바울의 충성심을 본 받아야 합니다. 고전4:2절에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⑸바울의 이 고백을 본 받아야 합니다. 갈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이 이처럼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한 것은 바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전11:1절에서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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