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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기독교의 본질! (요 20:21-22)

by 【고동엽】 2022. 3. 19.

기독교의 본질! (요 20:21-22)
 
  한 마디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구원받고'와 '성령 받고'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구원받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 받아야 합니다. /아멘!/

 

  ①구원을 받아야 합니다(요3:16).
  빈부에 상관없이, 노소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종종 '사는 게 고역이다, 죽지 못해 산다, 살맛이 안 난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사람들마다 다 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의 짐, 부자의 짐, 질병의 짐, 절망의 짐, 실패의 짐, 깨어진 관계의 짐, 죽음의 짐을 지고 삽니다. 사람들은 그 짐을 내려놓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그 짐만 내려놓으면 행복할 줄 압니다.
  그러나 문제는 짐을 내려놓으면 그 다음에 또 다른 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흙탕 속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습니다.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먼저 진흙탕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인간은 모두 죄의 진흙탕 속에 빠져 있습니다. 모두가 죄인입니다.
  롬3: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또한 23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믿/
  예수님은 죄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십니다. 그런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롬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할/
  예수님이 우리의 죄의 부산물인 질병, 고통, 실패까지 대신 다 담당하셨습니다. 사53:5-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인간이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행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믿/아멘!/

 

  ②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 교인에게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강하게 명령했습니다(엡5:18). 성령을 받으라고 강력하게 명령하는 이유는 우리를 유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습니다. 은사를 받습니다. 9가지 열매를 맺게 됩니다. 힘으로 안 되고 능으로 안 되는 일이 됩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처럼, 성령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베드로가 행2:38절에서 말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할/
  성령을 받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성령을 받으면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신분의 변화가 일어나고,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하면 권세 있는 신앙 인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악한 마귀가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합니다. 온갖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받습니다. 병을 이기는 권세도 받습니다. 막16: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아멘!/

 

  ③성령이 하시는 일 가운데 가장 큰 일은 '눈을 뜨게 하는 일'입니다.
  눈을 뜨게 해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게 하고, 믿게 하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할/
  ⑴자기 자신을 보게 하십니다.
  이 눈이 열리기 전에 자신을 보면 모두 자기위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교만하고 자만하고 큰소리치게 됩니다. 남의 흉만 보게 됩니다. 자신을 보는 눈이 아직 뜨여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뜨게 하신 눈으로 자신을 보면 자신의 무능이 보이고 무지가 보이고 죄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능하면서도 교만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할/
  베드로는 호언장담하던 사람입니다. 그 말은 그만큼 그는 자만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그런 기질을 타고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주 앞에서 실수하고 실패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나서 비로소 그는 자신을 보는 눈이 활짝 뜨였습니다. 그 뜨인 눈으로 자신을 보니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초라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하고 고백했습니다. /아멘!/
  바울도 예수를 만나기 전에 얼마나 기고만장했습니까? 그래서 유대교에 충성하기 위해서 얼마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섰습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바울은 자신이 가장 의로운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그가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때 사도바울이 이 신비의 눈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그 뜬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봅니다. 바라보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자시의 모습이 엉망입니다.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까지 추구하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수를 핍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예수를 전하는 사람으로 일생을 바칩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이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보면 '나는 죄인입니다'하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이 사람되고 신앙 인이 진실한 신앙 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⑵너(이웃)를 보게 하십니다.
  이 너를 보는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보는 눈이 뜨이면 동시에 너를 보는 눈도 뜨이게 됩니다. 너를 보는 눈이 뜨이면 너의 영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이 눈이 뜨이기 때문에 중보의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눈이 뜨여야 신앙이 성숙해 집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초월하고 나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할/
  ⑶깊은 곳을 보게 하십니다.
  이 눈을 뜨게 되면 평소에는 생각도 없고 개념도 없고 관심도 없던 것들이 신기하게도 눈에 보이고 눈에 들어옵니다.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이 성령의 인도를 받고 보니 그것이 눈에 보입니다. 생각이 납니다. 느끼게 됩니다. 깨닫게 됩니다. 감동으로 비추어집니다. 이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할/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 갑니다. 가서 온갖 수난을 당하고 살다가 마침내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후에 요셉은 마침내 애굽의 총리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눈앞에 자기를 노예로 판 형들이 나타났습니다. 순간 눈에서 불이 났을 것입니다. 형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떨고 있습니다. 당연히 떨일 입니다. 지금 요셉이 말 한마디면 자신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죽을 판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 형들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이 요셉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그때 형들을 대하는 요셉의 모습이 요셉의 인생가운데서 가장 극적인 장면입니다. 그때 요셉이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45:48절을 보면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으로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창50: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할/
  이 대목을 해석하는 모습으로 보아서 요셉은 깊은 곳을 내려다보는 통찰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눈이 열린 눈입니다. 열려도 그냥 열린 것이 아니고 활짝 열렸습니다. 그때 요셉의 눈이 열리지 않았더라면 형제들은 그 날 요셉의 손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열린 눈으로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역사를 보았고 자신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먼저 보내신 이유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멘!/
  ⑷세상에서 가장 큰복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손길을 보는 눈을 가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언제나 이렇게 조용히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지도 모르고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우연과 섭리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우연은 이런 것입니다. 독일 병사가 소련군에 쫓겨 도망갑니다. 소련군은 탱크를 몰고 오는데 독일군은 가지고 있는 소총에 총알마저 다 소진된 상태입니다. 속수무책입니다. 이에 화난 소대장이 단 한방 남은 권총을 꺼내 몰려오는 탱크를 향해서 쏘았습니다. 탱크를 맞추려고 쏜 것이 아니고 그저 화가 나서 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쏜 한방의 총알이 제일 앞서 오던 탱크의 기관총 총구에 맞아 기관총이 파괴되면서 탱크는 멈추어 섰고 이어서 탱크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잠시나마 적의 전진을 막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우연입니다. 맞추려고 쏜 것도 아닌데 우연히 적의 기관총 총구에 맞아 탱크를 폭발시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까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만큼은 분명하게 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런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아가 돌을 던졌습니다. 던진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맞아 죽는 바람에 그 날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은 모두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무슨 힘으로 골리앗을 이깁니까? 그것은 다윗 배후에서 사역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만 '내가, 나 때문에, 내 힘으로'라는 표현을 잘도 사용합니다. 무지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구원받고, 성령 받고, 우리의 영안이 활짝 열려 자신을 보고, 이웃을 보고, 더 깊은 곳을 보며,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날마다 체험하며 사는 귀한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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