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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용기! (삼상 17:45-49)

by 【고동엽】 2022. 3. 19.

다윗의 용기! (삼상 17:45-49)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좋은 재산은 용기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럽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자신의 뜻을 조목조목 말할 수 있는 용기,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장점을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 필요시 '아니요'와 '예'를 분명하게 말하고 자신이 필요할 때 주저하지 않고 자신을 헌신의 도구로 내 놓을 수 결단, 이것은 모두 용기입니다.
  오늘은 이런 용기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용기, 자신감, 믿음, 확신처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이지 않는 재산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재산 중 재산입니다. /할/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몇 가지 재산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지식의 재산'입니다. 오늘은 지식사회입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오늘은 기술, 지식, 정보,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능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밀리지 않고 낙오되지 않고 앞서가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아멘!/
  두 번째는 '좋은 이웃'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나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시대입니다. 반드시 좋은 이웃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부모, 좋은 형제, 좋은 친구, 좋은 이웃과 좋은 지인들은 모두 좋은 이웃입니다. 이 사람들은 나에게 평생 함께 해주고 때로 용기도 주고 나를 보호해주는 좋은 이웃들입니다. 이런 이웃들이 없으면 살아가기가 외롭고 힘듭니다.
  세 번째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은 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이 힘을 받고 살아가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 도움, 함께 하심을 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인의 생활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본문은 아무리 보아도 신비스러운 내용입니다. 골리앗과 다윗이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은 비교가 안 되는 상대입니다. 확률로 보면 100:0입니다. 도박사들이 도박을 걸었다면 골리앗은 100이고 다윗은 0입니다. 그런데도 이 싸움에서 다윗이 이깁니다. 성경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다윗의 눈빛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다윗의 눈빛은 상대방을 제압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옛날 전투에는 기선을 제압하는 눈빛이 좌우했습니다. 그 눈빛에는 아주 무섭고 날카로움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이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을 가지고 내게 오지만 나는 만 군의 하나님을 앞세우고 나아간다'.
  누가 이런 사람을 당해냅니까? 그런데 골리앗은 코웃음을 칩니다. 방심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던진 돌이 방심하던 골리앗의 이마 통에 박혀 쓰러진 것 아닙니까? /할/
  다윗의 이 영적 자신감, 믿음, 용기, 주저 없음이 얼마나 강력한 힘입니까? 이런 용기, 힘, 능력, 확신 이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요소들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 후광을 입는데서 오는 힘이고 용기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야 이런 후광을 입고 후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 몇 가지 경로가 있습니다.
  ①기도 속에서 만납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하면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신앙인의 일상의 생활입니다. 그 일상의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무한한 힘을 공급받아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기도의 삶입니다.
  아마도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난 경우는 고넬료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고넬료는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고넬료가 제 9시에 기도를 합니다. 오늘 시간으로 말하면 오후 3시입니다. 그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피고한 시간이고 여름으로 말하면 가장 더운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기도했습니다. 그 말은 고넬료가 매일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아마 고넬료는 그런 기도하는 삶을 오랫동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시간에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기도 속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기고 앞날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에게는 이렇게 기도하는 시간과 삶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모세가 왕궁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살인을 전과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그곳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루도 왕궁생활을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를 회상하면 오늘 자신의 초라함과 형편없이 낙오됨에 크게 비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 언제까지 나를 이렇게 놔두실 것입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이제 나는 어찌해야 합니까?'
  얼마나 심각한 기도입니까? 좌절의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너 있는 곳에서 신을 벗으라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라' 모세가 그때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애굽으로 가라, 가서 고통받고 있는 네 민족을 구원하라'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부름 받고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중요한 삶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입니다. /아멘!/


  ②실패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실패의 순간은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참 불행한 자리입니다. 실패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뺏고 실의를 안겨주고 고뇌하게 하는 그런 순간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 신앙인들에게 실패의 순간은 참 중요한 순간일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그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복을 받는 자리입니다. 그렇게 보면 실패는 축복의 도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할/
  작가 오혜령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의 인생을 보면 참 파란만장합니다. 이분은 4살 때 폐렴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국교 4년 때는 신장염, 방광염, 관절염에 걸려 2년 동안 혼수 속에서 살아갑니다. 여고 1년 때는 하반신 마비로 2년 동안 누워 있다가 겨우 두발로 일어납니다. 1주일 뒤 불치병 진단을 받고 2년 동안 누워 살며 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기고만장합니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당해 한 달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납니다. 다음해에는 갑상선으로 고생하다가 겨우 낫는가 했는데 1주 후에 위암판정을 받습니다. 그때 이 분이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자비하시다구요, 사랑의 하나님이라고요, 웃기지 마세요'하고 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얼마나 화가 나고 원망스럽고 분노가 치밀겠습니까? 그 심정을 이해할 만 합니다. 
  그런데 위암이 임파선 암으로 번져갑니다. 그때 이분이 자살을 기도합니다. 아파트에서 추락하려는 순간 경비원에게 발각되어 실패합니다. 방문을 잠그고 장미꽃 50송이를 사다 놓고 향에 취해 죽으려 하는데 가족에게 발각되어 또 실패합니다. 그때 이분이 또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는 약이 올라 참을 수 없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도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누구기에 죽지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하고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다가 지쳐서 잠을 잡니다. 그런데 잠 속에서 환상이 나타나더니 어거스틴의 참회록의 한 구절인 '오 새로운 아름다움이여 내가 왜 이제야 당신을 알게 되었나요'라는 구절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깨어나니 꿈이었습니다. 잠에서 개어난 이 분이 비로소 살려달라고 참회의 기도를 합니다. 그러니 그 기도가 얼마나 처절했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그분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 분이 그 중병의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나고 그 병에서 회복됩니다. 이분이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떤 분은 이렇게 힘들게 하나님을 만나는 분이 있습니다. 얼마나 처절하게 만난 만남입니까? 그런데 또 어떤 분은 아주 쉽게 하나님을 만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그렇게 한번 하나님을 만나면 일평생 동안 그 만남의 은혜를 가지고 감격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할/


  ③그런가 하면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어느 골수불교신자는 열심히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렸습니다. 어느 날인가 대웅전에 가서 예불을 드리다가 쓰러져 잠을 잤습니다. 잠자다 꿈을 꾸는데 아주 선명하게 '십자가가 보이고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잠이 깨자마자 주지스님께 그 이야기를 했더니 '당신은 여기 오지말고 교회에 나가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온 분도 있었습니다. 대웅전에서 잠을 자다가 십자가를 보고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꿈을 꾼 것도 신비한 일이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대뜸 당신은 교회에 나가라는 주지스님도 참 신비로운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습니다. /할/


  ④또 '사역하는 중'에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역하는 중에 하나님을 만난 경우는 참 많습니다. 사역 중에 만난 가장 극적인 경우는 다윗과 골리앗과 싸울 때입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처음부터 비교가 안 되는 싸움이었습니다. 골리앗은 방심과 자만에 빠져있습니다. 다윗이 막대기를 들고 나가니까 골리앗은 내가 개인 줄 아느냐고 코웃음을 칩니다. 그렇지만 다윗의 태도는 그것이 아닙니다. '너는 칼과 창을 가지고 오지만 나는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노라' 누가 이런 사람을 당해냅니까? 그래서 다윗이 보기 좋게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이 용기, 배경, 후원이 신앙인들에게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에게는 이 후원자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최대의 배경, 최대의 빽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후광을 얻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⑤이런 위대한 다윗의 신앙은 어떤 신앙인가?
  ⑴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입니다. 45절에서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했습니다. 소년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46절에서도 다윗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믿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아멘!/
  ⑵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싸웠습니다. 26절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 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싸웠습니다.
  자기의 조국을 위하여 싸우는 사람은 많습니다. 자기의 명예와 영화를 위하여 싸우는 사람도 많습니다. 의무감으로 싸우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를 모욕하는 일을 보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싸우러 나갔습니다.
  우리는 내 얼굴에 먹칠을 당하면 이성을 잃어가면서 싸우지만 여호와를 모욕하는 일을 보고는 아무런 감각도 없다면 그 영혼은 불쌍한 심령입니다. /할/
  ⑶다윗은 승리를 확신한 사람입니다. 32절에서 무서워 떨고 있는 사울 왕에게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고 했고, 37절에서는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이다'고 했으며, 46절에서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싸우기 전에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선언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믿음입니다. 바울은 롬8:37절에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고, 고전 15:57절에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믿는 자가 위대한 승리잡니다. /할/
  ⑷다윗은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믿었습니다. 47절에서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속에는 이 전쟁이 골리앗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면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골리앗과 하나님과의 싸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지키고 내가 보호하고 내가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믿고 맡기면 하나님이 지키시고 관리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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