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갈 1:6-10)
본문 6절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여기서 다른 복음은 행4:12절에서 말한 ‘오직 예수’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7절에서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함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조하기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누구든지 저주를 받을 것이라(8)’고 말합니다.
여기 저주는 헬라어 ‘아나데마’라는 말로 두 가지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일’이고, 또 하나는 ‘결국 우상과 같이 파멸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 ‘누구든지’라는 말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 또는 ‘하늘로부터 온 천사’ 그리고 심지어 사도바울 자신도 포함하여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결단을 촉구하기를 ‘이제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0)’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소 로마서라고도 부릅니다. 로마서에서 강조하는 이신득의 즉 ‘믿음으로만 의로워진다.’는 말씀이 갈라디아에서도 그대로 강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고 의로워지고 죄 사함 받음은 율법으로가 아니고 순전히 예수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누구든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를 두고 이단이라고 부르고 경계해야 하는가?
①‘다른 복음’을 좇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가 됩니다(6).
참된 복음은 행20:24절에서 천명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입니다. 도무지 은혜 입을 자격이 전무한 죄인들을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불러 구원해 주시는 그것이야말로 곧 복음의 본질입니다. 그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죄인 대신 죽게 하셨고, 그 은혜 안에서 죄인들에게 믿음을 주셨고, 그 은혜 안에서 죄인을 의롭다고 칭해 주셨습니다. /할/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는 이 같은 ‘은혜의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 즉 ‘공로의 복음’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거짓 선생들’ 즉 초대교회 안에 있던 율법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인데, 그들의 소위 복음이란 것은 행15:1절에 나타난 말로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구원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믿음에다가 ‘율법 준수’라는 것을 하나 더 첨가시킨 것입니다.
이 주장은 지극히 심각한 오류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작해 놓으신 일을 사람 편에서 율법 순종을 통해 완성해야 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서 바울사도가 흥분한 것입니다.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는 말은 ‘내가 깜짝 놀랐다.’라는 뜻입니다. ‘뭐라고? 그리스도의 공로에다가 사람의 공로가 더해져야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오직 예수 안에 있습니다. /믿/할/
②‘다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참된 복음을 변질시키는 죄가 됩니다(7).
바울은 분명하게 ‘다른 복음은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는 이 은혜로운 복음 외에 다른 그 어떤 구원 얻을 복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교회 안에는 바fms 복음을 바꾸려는 시도는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 행위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케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변케하려 하다’라는 말은 원문에는 훨씬 더 강한 말로 ‘뒤집어 놓다’ 혹은 ‘바꾸어 놓다’라는 단어입니다.
지금 우리 교계 안에서도 ‘교리는 따지지 말고 그저 모든 기독교가 하나가 되자’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소리입니다. 오직 예수 이외는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기를 소원합니다./
③‘다른 복음’을 믿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멸망의 저주에 빠지게 합니다(8-9).
여기서 두 번 사용된 ‘저주’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저주의 대상을 가리킬 때 쓴 말입니다. 예를 들면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죽게 되었던 아간이라든지,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의 칼날 아래 멸망당해 갔던 가나안의 여러 이방 민족들이 바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저주하시기로 작정하셨고 이제 남은 순서는 완전히 진멸 당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대에 제물로 바쳐질 것밖에 남아 있지 않는 상태를 표현한 말입니다.
바울은 그 저주의 대상이 단지 갈라디아 교회들 내에 있는 거짓 교사들뿐이 아님을 명백히 했습니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그 누구든지 저주의 대상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바른 복음을 전했던 바울이 나중에라도 혹시 마음이 바뀌거나 정신이 나가서 다른 복음을 전하게 되면 그 자신조차 예외 없이 저주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④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⑴예수가 목적이어야 합니다. 예수 없는 행복은 그 생명이 짧습니다, 얼마 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필수입니다. ▶15세기 이태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42세 때 밀라노의 로드비치 공이 와서 예수의 최후의 만찬 모습을 그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다빈치는 혼신을 다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예수를 중심에 놓고 제자들을 좌우로 여섯 사람 씩 배열했습니다. 그림이 완성되자 친구에게 평가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친구가 그림을 보더니 아주 감탄했습니다. 제자들을 예수님 좌우로 잘 배치했고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예수님 손에 든 은잔이 가장 아름답다고 칭찬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빈치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붓으로 그림을 X자로 지워버렸습니다. 이에 놀란 친구가 ‘왜 아깝게 그림을 망쳐놓느냐?’고 반문하자, 그때 다빈치가 ‘이 그림은 예수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중심이 은잔이 되어버렸으니 실패작이다,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다.’ 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생애, 마음, 정신, 예술 혼, 삶의 목적이 예수가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자신만만한 태도가 나온 것입니다. /할/
⑵내 삶에 중심에 예수를 모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는 주일날만 만나고 믿는 대상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일날 와서 예배드리는 동안만 예수를 부르고 일주일 동안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그 예수가 내 삶에 구체적으로 관여를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예수를 언제나 앞세우고 예수가 언제나 내 생활의 중심부에 있어야 합니다. 그 삶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아멘!/
1623년 청교도들이 드디어 미국 땅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 제일 먼저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이곳까지 온 목적이 진정 하나님께 예배하고 마음껏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은 자기 집을 지었습니다. 집을 짓는데도 3가지 법칙을 고수해서 지었습니다.
하나는 교회를 중심으로 돌려가며 짓는 일이었고, 창문은 문만 열면 교회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길을 닦을 때는 모든 길은 교회로 통하도록 길을 내었습니다. 이런 정신과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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