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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아구까지 채우게 하소서! (요 2:1-11)

by 【고동엽】 2022. 3. 17.

새해는 아구까지 채우게 하소서! (요 2:1-11)

 

  본문은 예수님의 첫 번째 행하신 기적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어느 집 잔치에 초대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잔치를 하다 보니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그 때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께 포도주가 모자란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마리아가 포도주 떨어진 것을 걱정한 것을 보면 친척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여자여’할 때 원어로 ‘귀나이’인데 아주 정중한 말로 ‘귀부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고귀한 여자를 부를 때에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깊은 의미가 들어 있는데 기독교는 순종하는 종교임을 드러낸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이 기적으로 포도주를 만들어 낼 것을 기대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기적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 집 앞에는 돌 항아리가 6개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자, 하인들이 물을 항아리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자, 하인들이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니 연회장은 잔치에 온 손님들에게 포도주를 대접했습니다. 손님들이 포도주를 마셔 보고 나서 말하기를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할/

 

  ①그 기적은 막다른 골목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은 철두철미하게 망하고 실패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때 새 길이 보이고, 새 문이 열리고, 새 눈이 뜨이고, 새로운 생각이 열립니다. 성경은 바로 그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

  여기 잔칫집을 보십시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 말은 막다른 골목에 처했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이 지점이 기적이 일어나는 지점입니다. 기적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바닥이 났을 때입니다.

여러분, 한해를 살다보면 바닥까지 내려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오늘 본문의 기적의 원리로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②그 기적의 원동력은 순종입니다.

  기적은 그렇다고 막다른 골목에 처하기만 하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는 또 순종이라는 요소가 꼭 있어야 합니다. 이 순종은 무조건적인 순종이 역사를 일으킵니다. /할/

  그때 일꾼들이 생각합니다. 이해가 안 갑니다. 순종할 기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성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금방 자기들이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 놓았는데 그 물을 그냥 떠다 주라고 하십니다. 이해가 되겠습니까? 즉시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때 일꾼들이 거부했더라면 그 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꾼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순히 순종을 합니다. 그리고 그 물을 떠다 손님들에게 갖다 주었더니 손님들이 저마다 어디서 이렇게 맛좋은 포도주를 만들었느냐고 야단입니다.

  ▶그들의 순종은 어떤 순종인가? ‘아구까지’ 채우는 순종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아구까지 채워야 합니다. 하다가 말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

  ⑴노력도 아구까지 차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람나라 나아만이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문둥병이 깨끗이 낫고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7번의 아구가 찼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리고 성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칠일동안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을 매일 한 바퀴씩 돌라고 명하셨습니다. 매일 돌았습니다. 6일째까지도 성은 꼼짝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마지막 날 돌 때 무너져 내렸습니다. 노력의 아구가 차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멘!/ 우리 모두 새해에는 모든 일에 열심을 냅시다. /할/

  ⑵고난도 차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고난을 계속 당하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런데 그 고난도 아구가 차야 끝이 납니다. /믿/ 렘29:10-13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갔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말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은 70년이 차야 포로에서 해방됩니다. 69년에 안 됩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기간이 있습니다. 그 기간은 기도하는 기간이고 아구까지 채우는 신앙의 기간입니다. /믿/

  ⑶그러면 우리들 마음의 항아리에는 무엇을 채워야 할까요?

   ㈀정직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시112:2절에 ‘정직한 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라는 말씀처럼 축복은 정직한 자에게 임합니다.

  ㈁거룩함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거룩함은 그리스도인의 정신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고 했고, 히12: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믿음은 구원의 기본이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히11:6).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바로 알아야 바로 믿고 행할 수 있습니다.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주님은 배신하고 떠나 갈릴리로 내려간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시고 목양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요일4:12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할/

  ㈅충성된 마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주께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멘!/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시50:14-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소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네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할/

  ㈇기도로 아구까지 채워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이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않느니라.’고 하셨고,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만나주시고, 두드리면 열어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아구까지 차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할/

 

  ③모든 기적의 원천은 예수님입니다.

  모든 기적의 열쇠는 예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은 예수님이 주체이십니다. 우리가 기적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한다면 예수를 잘 믿어야 합니다. /아멘!/ 그러면 오늘도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④기독교는 변화가 일어나는 종교입니다.

  맹물이 변하여 맛좋은 포도주가 됩니다. 고기 잡던 어부가 사람을 낚는 대사도로 변한 베드로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보면, 네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⑴색이 변했습니다.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그 보혈로 씻김을 받는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할/

  ⑵맛이 변했습니다. 맹물 같은 내 인생이 맛을 내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⑶용도가 변했습니다. 포도주가 큰 잔치에 쓰인 것처럼 우리 모두가 천국복음 운동에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가?/아멘입니까?/

  ⑷위치가 변했습니다.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멘!/

 

  ⑤본문에서 또 하나의 기독교의 본질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진다.’는 종교입니다.

  ⑴요셉도 처음 생애 보다 나중이 좋았습니다(창39:10-23).

  ⑵야곱이 그리했습니다(창32:27-32).

  ⑶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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