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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28)

by 【고동엽】 2022. 3. 17.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28)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에게는 잊을 수 없는 교회입니다. 마게도냐를 건너가서 처음으로 찾아가 복음을 전한 도시가 빌립보입니다(행16:9-40). 그 교회는 루디아를 중심으로 많은 여성도들이 바울의 선교 사역을 적극 지원한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를 위하여 바울은 옥중에서도 간절한 기도를 했습니다(1-11). 그의 기도는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됩니다.

  ⑴‘사랑이 더욱 넘치기를’기도했습니다.

  바울은 그 사랑이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지식과 총명을 갖춘, 그래서 절제와 분별력을 갖춘 사랑이 넘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진정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⑵예수를 구주로 믿어 죄 사함을 받은 성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소망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교회에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를 휩쓸고 있던 두 가지 극단의 풍조가 마침내 빕립보 교회를 아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쾌락주의’입니다. 이 쾌락주의는 윤리적인 실천이나 절도 있는 삶을 무시하는 신앙 형태입니다.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죄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살아가는 데 윤리적인 것은 무시해도 괜찮다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이 쾌락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무질서한 삶이 뒤따랐습니다. 그뿐 아니고 이 쾌락주의에서는 인생은 아주 짧은 것인데 괜히 고민하면서 복잡하게 살지 말고 쉽고 단순하게 살며 인생을 즐기며 살라고 강조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삶을 사는 자들에게 어디 내일을 볼 수 있으며, 거기 어디에 고민이 있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고, 인생에 대한 책임감인들 있습니까? 여기에는 규모나 질서나 책임이나 윤리는 없습니다. 그런 풍조가 세상을 휩쓸었고 이 풍조가 교회 안에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은 기독교 신앙의 적입니다. 규모 없는 생활, 오늘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생활, 현실만을 쫓는 생활, 이것은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적입니다.

  또 하나는 금욕주의입니다. 쾌락주의의 정반대는 금욕주의입니다. 빌립보 교회에 쾌락주의와 함께 이 금욕주의 즉 율법주의가 깊이 침투해 와서 아주 엄격한 금욕을 강조했고 엄격한 삶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할례가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주장해서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혼동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그 당시 세네카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금욕주의자였습니다. 자기를 학대하면서 철저하게 금욕하는 불교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 같은 금욕주의는 중세기까지 계속되어 갑니다. 물론 신앙생활이 엄격해야 하고 절제가 있어야 하고 경건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기독교 신앙은 아닙니다. 자기를 학대하면서까지 수도하고 금욕하고 세상을 아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기독교 신앙은 아닙니다. 이것은 쾌락주의와 함께 아주 좋지 않은 극단주의입니다.

  바로 그런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강조했습니다.

 

  ①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한 마음 한 뜻으로 협력하는 생활입니다(27).

  여기 ‘생활하라’는 말은 ‘시민답게 살라’는 말입니다. 즉,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빌3:20) ‘하늘의 시민답게 살라’는 강조점이 담겨 있으며 하늘의 시민답게 사는 기준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고 ‘일심으로’ 즉 한 뜻으로 하나가 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마음과 정신이 하나가 되어 복음을 위하여 애써야 할 것을 강조한 말입니다. /할/

  시인도 시133편에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했습니다. 이 연합의 아름다움은, 서로의 상처가 치료되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퍼지는 아름다움입니다. 또 생명이 약동하는 아름다움입니다. /아멘!/

 

  ②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사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28).

  이 능력을 경험한 성도들은 온갖 악형과 희롱과 핍박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 어떤 상황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담대했습니다. 이 같은 경험을 경험한 다윗은 시3:6절에서 고백하기를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할/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도 담대했고 그의 친구들도 일곱 배나 더 뜨거워진 풀무불속에서도 담대했습니다. 이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세상이 두려워합니다. 이 같은 확신을 가진 성도들을 사단이 무서워합니다. /아멘!/

  이 같은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치 못할 것이라고 히11:38절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③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헌신의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내가 누군가에게 헌신하고 바치고 섬기는 생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삶입니다. 사실 헌신에 삶은 고생도 따르고 땀도 흘려야 하고 수고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그런 일을 통해서 기쁨을 얻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봉사하고 헌신하고 누군가를 섬길 때 어떤 삶의 맛이나 행복감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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