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믿음을 확인하고 살아라! (고후 13:5-10)
오늘 성경을 보면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 믿음이 좋다 안 좋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베드로하면 믿음이 좋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넘어졌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께 찾아왔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중생도 모르느냐고 핀잔만 듣고 돌아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서서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해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겉에서 보고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자로 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바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믿는 것과 바로 믿는 것은 개념상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잘 믿는다는 말을 씁니다. 또 잘 한다는 말도 사용합니다. 잘 하는 것과 바로 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잘 믿는 것과 바로 믿는 것도 차이가 있습니다.
잘 믿는다는 말은 형식적인 의미입니다.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와서 예배생활을 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바로 믿는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전도합니다. 헌금도 합니다. 교회 봉사도 합니다. 보이는 측면에서 형식적인 그 모든 일을 가리켜서 잘 믿는다는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잘 믿는 것 보다 바로 믿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①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가? 예수 밖에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쉽게 말하면 ‘믿음 안에 있느냐? 믿음 밖에 있느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누가 뭐래도 내 자신은 내가 더 잘 압니다. 믿음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고백하는 신앙이고, 또 하나는 행하는 신앙, 즉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요15장에서 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를 비유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로서 예수께서 우리 안에 우리가 예수 안에 반드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절대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원 가지에 붙어 있다는 것은, 즉 연합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요15: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렇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이 붙어 있는(연합)것입니다. /할/
②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늘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너의 안에 계신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내안에 계신 줄 믿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예수를 알고 믿는 믿음이 내게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데는 문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회교도 유대교도 천주교도 통일교도 하나님을 믿는 일에 이의가 없습니다. 모두 똑같은 신앙으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문제가 나오면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종교들 간에도 이 예수 때문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 일에 우선 몇 가지 신비한 내용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아들 됨, 나의 구주됨, 동정녀탄생, 십자가의 죽음, 부활, 승천, 재림 등입니다. 한결같이 이성적으로 믿기 어려운 조건들이고 영적인 도움이 없이는 믿기가 불가능한 일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믿지는 못합니다.
신학자 ‘칼 융’이 ‘오늘 신앙인들은 너무 추상적으로 예수를 믿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는 하는데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예수가 나를 구원하시고 나의 구세주 됨을 지식으로만 알뿐 체험되고 고백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이 어느 날 꿈에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의 입구에서 그는 천사로부터 ‘너는 누구냐?’고 제지를 받습니다. ‘나는 어거스틴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자, 천사가 자세히 보더니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네 머릿속에는 키케로의 철학만 가득 들어있다.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하고 호통 치며 내려가라고 하더랍니다. 놀라서 눈을 떠 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믿음이 좋은 줄로 알았습니다. 예수의 진실한 제자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철저하게 회개하고 그 다음부터 예수에 대한 지식으로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성자가 됩니다. /할/
③이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바로 믿는 것과 바로 사는 것은 동전 앞뒤와 같습니다. 내가 바로 믿으면 바로 살 수가 있습니다. /아멘!/ 사도 바울은 7-10절을 통해서 네 가지를 강조합니다.
⑴7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게 하시지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 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옳은 자'라는 말과 '버리운 자'라는 두 가지 말이 나옵니다. 옳은 자는 합격자, 버리운 자는 불합격자를 말합니다. '우리가 다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이 말은 가정법입니다. 우리가 차라리 불합격자가 될지라도 너희들은 합격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너희들은 선을 행하기를 바라고 바로 살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뜨거운 영혼 사랑인가? 이런 사랑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아멘!/
⑵8절에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진리는 기준을 의미’합니다. 진리는 거스르면 안 됩니다. 기준은 따라가야지 거스르면 안 됩니다. 기준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바로 믿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복음입니다. 그 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아멘!/ 바로 믿고 바로 살기 위해서 예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할/
⑶9절에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약함'이란 다 내려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려 놓고 버려야 하늘의 신령한 것들이 채워집니다. /믿/ 사도 바울은 '약함이 곧 강함'이라고 했습니다.
⑷10절에 보면 "이를 인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삶, 진리를 위한 삶, 온전하게 되는 삶’ 이것을 사도 바울이 눈물어린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차라리 버린 자가 될지라도 너희들은 합격자가 되라, 바로 사는 자가 되라’는 것을 바울이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할/
여러분! 우리들에게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그러면 나에게 이런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믿음은 모든 것의 배경입니다. 빽입니다. 힘입니다. 뜻입니다. 의미입니다. 우리의 생존의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아멘!/ 이 믿음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인하라 너희 안에 예수께서 계신 것을 모르느냐 모르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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