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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주시는 평안의 복음! (요 14:27)

by 【고동엽】 2022. 3. 16.

주님이 주시는 평안의 복음! (요 14:27)

 

  인생의 행복이 어디에서 옵니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평안에서 옵니다. 그래서 행복이 곧 평안입니다. 이 평안을 헬라말로 ‘에이레네’라는 말로 ‘평화’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동의어로서 히브리말로는 ‘샬롬’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평화와 안녕’입니다.

  샬롬은 일반적으로 구약에서는 작별 인사를 할 때와 문안 인사를 할 때 사용을 했습니다. ‘당신에게 평안이 있기를 빕니다.’는 뜻에서 사용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샬롬은 막연한 평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임재하신 결과 나의 마음속에 임한 평안의 상태를 샬롬이라고 합니다. 또한 샬롬은 임무의 성취를 나타낼 때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일을 성취했을 때 오는 만족감, 기쁨, 완수의 감격을 말할 때 샬롬을 사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관계가 손상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릅니다. ‘나의 평안을 너의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할/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수고를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고향도 버리고, 배와 직업도 버리고, 아내와 헤어지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 같은 제자들에게 주님은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영원한 평안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구체적이고도 영원한 평안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그런데 이 같은 평안이 주어지려면 몇 가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우리가 거듭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 안에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옛날의 내 생각이나 구태 의연한 나의 생활 태도를 가지고서는 주님의 평안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주어진다 해도 며칠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변화되고 거듭날 때만이 이 평안이 내게 주어집니다.

  사람들은 평안을 찾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봅니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평안의 출처는 그렇게 먼 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입니까? 행복과 평안은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감추어진 평안은 사람이 주 안에서 거듭날 때만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평안이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나서 거듭났습니다. 그러고는 모든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생각도 변화되고, 정신도 변화되고, 의식도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버리노라. 이제부터 나는 주님만을 위하여 살기로 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는 주님을 알고 나서 지금까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신들린 사람처럼 주님을 위해서 지칠 줄 모르며 살아갔습니다. 고난이나 죽음 따위는 그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있다면 오직 예수밖에 없었습니다.

 

  ②우리의 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목적이 분명하고 할 일이 있는 사람은 탄식할 겨를이 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정당하고, 일에 확신이 있는 사람은 그가 할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는 예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예수 때문에 매를 맞을 때는 더 감사를 느꼈고, 옥에 갇히게 될 때는 오히려 찬송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목적을 알고 그 목적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세 사람의 석공이 대리석에 예수 상을 조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첫 번째 사람이 ‘죽지 못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일을 통해서 결코 기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런 사람에게는 품삯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일에 기쁨을 느끼고, 그 일이 힘들수록 마음에는 더욱 벅찬 평안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실하게 거듭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한번 살아볼 만한 가치 있는 세상입니다. /할/

 

  ③우리는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참 평안은 내가 주님에게 완전히 매여 있을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속이 분명해야 합니다. 나의 주인이 주님이시면 주님에게 내가 꼼짝할 수 없을 만큼 붙잡혀 있어야 합니다. /아멘!/ 느슨하면 안 됩니다. 풀어져도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사랑의 쇠사슬로 꽉 매여 있어야 합니다. /할/

  옛말에 ‘한 사람에게 매이는 것이 가장 큰 자유인 것을 아는 사람만이 결혼할 자격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에게 매이고, 한 여자에게 매이는 것을 불편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결혼하면 안 됩니다. ‘내가 누구에게 매인다는 것, 그것도 스스로 매인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고귀한 자유입니까? 매일 뿐만 아니고 미쳐야 합니다.

  몸은 매였는데 마음은 따로 돌아가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무한한 자유는 매이고 미칠 때 주어집니다. 몸만 매이는 것이 아니고 정신까지 함께 매이고 미쳐야 정말 자유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에게 매이고 주님을 위해서 미쳐야 합니다. 몸만 매이는 것이 아니고 마음도 정신도, 심지어는 나의 운명까지도, 그의 손에 매어 놓아야 합니다. /할/ 그래야 우리에게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한 하늘이 주는 평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믿/

 

  ④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 오는 축복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천하없어도 평안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속은 복음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머릿속은 온통 천국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디에 가서 입만 열면 복음이 술술 나왔습니다. 그리고 입만 열면 예수, 부활, 십자가, 천국에 대한 말이 술술 터져 나왔습니다. 바울에게는 오로지 복음뿐이었습니다. /할/

  사느냐, 죽느냐 그 따위 문제들에 대해서는 관심조차도 없습니다. 우리도 이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돈을 벌었느냐, 못 벌었느냐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학교에 갔느냐, 못 갔느냐 그것도 근본적인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새 하늘과 새 땅의 확신을 갖는 신앙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안, 정신과 영적인 평안, 신앙의 평안, 하나님과의 평안, 주 안에서의 평안’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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