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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주인!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 21:1-11)

by 【고동엽】 2022. 3. 16.

나귀 주인!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 21:1-11)

 

  사람은 자기가 정열을 쏟고 일생을 바쳐서 일하고 헌신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일생을 다 바쳐서 유감 없이 봉사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입니다. 이 같은 일은 분명 축복입니다. 본문을 보니까 여기에서도 한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3년 간의 공생애 기간이 거의 끝나 가고 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으로 가까이 가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가까이 도착하였다는 것은 그의 사역이 거의 끝나 가고 있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즉 십자가 위에서 죽을 날이 임박했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들어가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시하시기를 마을에 내려가서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한 마리를 끌고 오라고 하십니다. 주인이 왜 끌고 가느냐고 묻거든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하십니다. 그러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가서 주께서 쓰시겠다 하니 나귀 주인은 아무 소리 않고 풀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화려하게 입성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일주일 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나귀 주인!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①이 사람은 '이름도 없는 충성자'입니다.
  본문은 사복음서에서 다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보아도 이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 곳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끝까지 무명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무명의 충성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그만 일을 하고서도 이름을 나타내려고 안간힘을 다 쏟습니다. 그래서 조금 선심을 쓰고서도 과대 선전하고 나타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이 사람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서도 끝까지 무명 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삭막하고 메마른 것 같아 보이지만 오늘날도 이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만 숨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큰일을 했으면서도 나타내지 않고 남을 돕는 인생을 살았으면서도 숨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래도 이 정도라도 지탱이 되고 있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봉사라고 하는 것은 공개가 되면 그 향기가 반감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타내지 않을 뿐이지 묻혀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이 세상을 언뜻 보면 엉망진창인 것 같고, 사람이 사람을 팔아먹고, 사기와 속임과 부정과 거짓이 난무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좀더 관심을 가지고 깊이 들여다보면 이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름도 없는 충성자, 여기 나귀 임자가 바로 이름도 없는 충성자입니다.

 

  ②이 사람은 '빛도 없는 충성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였다고 하는 이름과 명예와 빛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경력입니까?
  천국의 새 예루살렘성의 기초석에는 이 12사도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람들입니까? 예수를 위해서 순교만 해도 영광인데,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는 장로만 되어도 영광인데, 예수님의 12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영광입니다.
  그런데도 여기 이 나귀 주인은 이름도 없고 빛도 없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화려한 예루살렘 입성 뒤에 숨겨져 보이지 않는 촌사람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올림픽에서 한 사람이 금메달을 따면 신문에 얼굴이 나오고, TV에 비쳐지고, 박수와 환호와 찬사가 쏟아지고, 금으로 만들어진 메달이 주어지고, 상금이 수여되며, 하루아침에 영웅이 됩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 혼자서 금메달을 땄습니까? 그 사람이 금메달을 따기까지 그 뒤에서는 빛도 없이 충성스럽게 함께 훈련하면서 함께 땀을 흘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김연아 뒤에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얼굴도, 상금도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부분을 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숨어 있는 사회, 그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이 같은 나라가 부강한 나라입니다. 빛 없는 충성자, 여기 이 나귀 주인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③이 사람은 '보상도 없는 충성자'입니다.
  그 당시 분명히 나귀 한 마리가 큰 재산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니까 두말 않고 보냈습니다. 이 사람은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니까 그저 만족스럽게 바침으로써 기뻐했을 뿐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정성껏 기른 나귀를 주께서 요긴하게 쓰신 다니 그것으로 보람과 기쁨을 느낀 것입니다. 이것이 보람이고 뜻이고 기쁨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바로 이 같은 뜻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리마대 요셉도 그렇습니다. 그는 자기가 들어갈 빈 무덤을 주님께 받쳤습니다. 구레네 시몬도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를 자신이 대신 졌습니다. 사람들이 욕하고 조롱하고 비웃었지만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를 대신 졌습니다. 그 후 그는 두고두고 그것을 얼마나 영광으로 알았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모두 다 보상 없는 참 헌신의 충성자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을 철저하게 보상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조금도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약간이라도 손해가 올 것 같으면 데모부터 합니다. 길거리에 눕습니다. 길을 가로막고 시위를 합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남의 불편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남의 손해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④이 사람은 '무조건의 충성자'입니다.
  '가서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제자들이 가서 '주께서 쓰시겠다'하니 아무 말 없이 나귀를 풀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무조건의 충성자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주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이유가 많습니까? 바쁘고, 시간이 없고, 형편이 안 되고, 사람이 마음에 안 들고, 적성에 맞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하고 그럽니다. 그렇게 해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네 인생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우리는 내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내 시간, 내 물질, 내 인생, 주님이 필요하시다 하면 내놓아야 합니다. 무조건의 충성,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의 요구라면 조건과 핑계가 없는 무조건의 충성, 이것이 신앙인의 인생관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도맡아 책임을 지시는 것입니다. 

 

  ⑤이 사람은 '참 기쁨을 아는 사람'입니다.
  참 기쁨과 보람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순교자는 자기의 목숨을 하나님께 바칠 때 그곳에서 만족을 얻고 기쁨을 얻습니다. 헌신자는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을 위해서 쓰여질 때 기쁨과 보람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마음과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줄 때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봉헌의 기쁨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귀의 주인은 자신이 귀하게 기른 나귀 한 마리를 주께 드림으로써 보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통해 마침내 슥8장에서, 사62장에서 '주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리라고 예언해 놓은 그 예언'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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