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빌 4:8-9)
빌립보교회는 이방여인인 루디아 집에서 처음 시작했는데 성도는 귀신들렸던 하녀와 빌립보 감옥에 있던 간수와 그 가족들로 형성(행16:33)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교회였지만 이 빌립보교회는 참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의 선교 비를 지원(2:25,30)했습니다. 바울로 인해서 교회가 핍박받고 성도들이 어려움 당할 때 성도들은 그 고난을 다 극복하고 복음을 끝까지 굳게 지켜 나갔습니다(1:7, 28-30).
바울사도는 이런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본문을 정확히 번역하면 '너희는 배우고 받고 듣고 또한 내 안에서 본 그것들을 행하라'입니다. 바울은 범사에 모범적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3:17절에서도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이 무엇인가 하면 8절 내용입니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목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완전'입니다.
⑴'무엇에든지 참되며' 우리는 범사에 참된 삶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위선과 거짓과 속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매우 미워하시는 악입니다. 성도의 성도다운 특징은 진실함에 있습니다. /아멘!/
⑵'무엇에든지 경건하며' 여기 '경건하다'고 번역된 원어(셈노스)는 딤전3장에서 '단정하다'고 번역된 말로서 '진지하다, 존경할 만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범사에 진지한 태도로 무엇을 생각하고 믿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존경할 만한 인격자의 모습입니다.
⑶'무엇에든지 옳으며' 옳은 삶, 의로운 삶, 그것이 성도들의 생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불의하거나 불법, 위법하거나 부당한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정정당당하게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할/
⑷'무엇에든지 정결하며' 여기 '정결하다'는 원어(아그노스)는 '순수하다, 단정하다, 순전하다, 무흠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사로운 욕심과 부당한 정욕을 품으므로 ‘불결한 자, 불순한 자, 흠이 있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⑸'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인격의 완전함을 묘사한 말씀입니다. 그런 인격이라면 하나님과 사람들이 사랑할 만하며 칭찬할 만한 인격입니다. /할/
본문은 ‘듣고 알고 본대로 행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부모도 곁에 함께 있으면 힘이 됩니다. 부모의 자리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은 그 자리가 비워지게 되면 비로소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심’은 참 엄청난 힘이고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지금 여기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마음이 믿음입니다. 그 신뢰하는 마음을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이 신앙고백입니다. /아멘!/
2차 대전 때 독일군 감옥으로 사용하던 비밀 지하 동굴에 유대인들이 수용되어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채 강제 노동에 시달리며 극한 상황에서 버티고 살았습니다. 그 동굴이 나중에 발굴되었을 때 동굴 벽에는 많은 낙서 흔적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낙서 중에 ‘태양이 구름에 가려 빛나지 않더라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는 사랑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지라도 나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낙서의 흔적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신앙고백입니다. ‘진정 하나님은 지금 이 자리에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 이 고백이 바른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삶의 대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듣고 보고 가르침 받은 것을 실행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 실행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①‘봉사하는 삶’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봉사의 삶을 살아갈 때 주어집니다. /믿/ 그때 주어지는 행복은 돈을 벌 때 보다 더 강렬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행복감은 하늘이 부여하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서해안에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 100만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서해안으로 달려갔습니다. 그중 70%가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참 건강성을 지닌 민족입니다. 외환위기를 만났을 때 모두 반지를 빼들고 줄지어 선 모습을 보고, 기름 유출로 재앙을 만났을 때 모두 서해안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세계가 놀랐습니다.
봉사의 삶은 성경이 가르치는 삶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할/
②‘나눔의 삶’입니다.
이 세상을 감동시키는 삶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삶입니다.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웃에게 수고와 땀을 흘리는 일도 있습니다. 시간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너무 시간 주기를 꺼려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혼자의 시대입니다. 함께 더불어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독한 시대입니다.
노년의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이 가난보다 고독한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외된 노인들끼리 모여 먼 산만 쳐다보고 앉아있습니다.
물질을 나누는 일도 있습니다. 내게 물질이 넉넉한데 주위에는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내게 나누라고 많이 주신 것입니다. 물질은 나눌 때 그 효과가 배가 됩니다. 물질은 나눌 때 향기와 효과와 영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물질을 쌓아놓음에 대해서 엄중 경고합니다. 마6:19-21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할/
③‘전하는 삶’입니다.
내가 만난 예수를 알고 사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성인의 죄’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면서도 가르쳐주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죄입니다. 앞에 함정이 있음을 내가 미리 알았다면 마땅히 뒤에 오는 사람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내가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있으면 그것이 알고 있는 사람의 죄라는 것입니다.
이기적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멸망 받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 이기적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내게 배우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강조합니다. 내가 은혜 입음도 축복입니다. 구원받음도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큰 복은 그 복을 나누고 알게 해 주는 전도의 일입니다. /할/
④‘섬김의 삶’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강조한 것이 이 섬김의 삶입니다. 사마리아인 비유를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도 이같이 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가정을 잘 가꾸는 일도 섬기는 일입니다. 자녀들을 잘 양육하는 일도 섬김의 일입니다. 직분을 최선을 다해 충성하는 것도 섬기는 일입니다. 직장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도 섬기는 일입니다. 전도하는 일도 최상의 섬김의 삶입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갈 때 내가 은혜를 입게 되고 너에게 감동을 주게 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본문은 ‘듣고 알고 본대로 행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듣고 알고 본대로 행하면’ 그 결과로 행복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 열매는 바로 ‘평강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리라’입니다. /아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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