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만이 아닙니다 마9:35, 대하7:14, 창6:6
2014 추양목회힐링캠프 개회예배
◑서론
▲부족한 사람을 귀한 모임, 2014년 추양목회힐링캠프에 불러주신
강병훈 목사님과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며, 죄송한 마음도 가지게 됩니다.
주님 앞에 설 때 부끄러운 것 밖에 없고, 물론 고맙고 고맙지만
너무 부끄럽고 부끄러운 것밖에 없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은 것 같은데, 제가 스스로 볼 때도 하나님 보실 때도
말세의 징조,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그 외에도 위선까지 겸해 있는 죄인인 것을 생각할 때 부끄러운 것밖에 없고,
한국교회가 존경하는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앞에 설 때,
너무 고맙지만 또 부끄럽고 부끄러운 것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난 십 수년 동안 매일 백 여번씩, 이런 기도를 드려왔습니다.
"하나님은 저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저는 망할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둘째는, 그런데 아직까지 저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심부름꾼으로 사용해주시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 번째는, 내 죄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서, 주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서,
주님이 원하신다면 주님과 누군가를 위해서 제물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되는 죽음을 죽을 수는 없습니까?
저는 그럴 자격은 없지만, 그런 은혜를 제게 베풀어 주시겠습니까?"
한경직 목사님 생각만 해도, 너무 귀한데 14년전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1902~2000)
지금까지 종교와 정치와 모든 분야를 초월해서 한경직 목사님을
정말 존경하고,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서 안타까운 그런 마음들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달에도 숭실대학교에서 열린 '한경직 기념 강연회'에서도, 기독교지도자들, 불교, 원불교,
천도교 지도자들까지도, 한 목사님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진솔하게 나타내었습니다.
14년 전에 한경직 목사님이 우리 곁을 떠났을 때, 너무 공허하고, 너무 안타까워서
그 슬픔과 안타까움을 다 표현 못 했는데, 고훈 목사님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아무 말 없으셔도
무슨 일 안 하셔도
당신은 우리의 힘이셨습니다.
한 사람을 만인만큼 소중하게
만인을 한 사람 대하시듯
어떤 요구에도 거절 못하시고
누구의 의견에도 손들어 주시고
단 한 사람에게도 섭섭함 주신 일 없으신
한국의 성자여!
한국의 작은 예수여!
모든 것 가지고도 아무 것도 없으신 가난한 목자
아무 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 다 가지신 사랑의 목자여.
우리가 오늘 여기 이토록 슬픈 것은
아무리 둘러봐도 당신 같은 목자는 하나도 없는
이 텅빈 세상이 너무 슬퍼서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안타까운 마음, 슬픈 마음을 표명했는데,
림인식 목사님은 '한경직 목사님은 예수님을 닮으신 분이시다’
정진경 목사님은 '20세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성자이셨다.‘
강원용 목사님은 '길고 긴 20세기를 흔들림 없는 자세로 사도의 길을 걸어오신 목사님이시다’
강신명 목사님은 '세계에서 성자로 불리는 목회자이시다’
김준곤 목사님은 '내가 흠모하고 흉내내고 닮고 싶은 목자이시다’
김희보 목사님은 '한국교회에 백년 역사에 있어서 목회자로서 영원히 기억될 최고봉에 서신 분이시다.‘
신현균 목사님은 '뵙기만 해도 감격의 눈물이 볼을 적시게 하시는 분이다.'
박조준 목사님은 '나의 믿음의 아버지시다.'
옥한흠 목사님은 '목회자의 삶에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시다'
김용기 장로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시다'
손봉호 교수님은 '한국교회에 내리신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시다’ 그랬습니다.
▲저 김명혁 목사는, 개인적으로 한경직 목사님의 지극한 사랑과 가르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제가 한 살 때 한경직 목사님을 뵈었고, 저희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이
한경직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신의주제2교회에서 부목사로 목회하셨습니다.
그래서 한목사님은 저를 아주 어릴 적부터 안아주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제가 11살 때 평양을 떠나서, 부모와 동생들을 이북에 두고,
주일성수와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38선을 넘어 왔을 때,
(피난오신) 한경직 목사님을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제게 사랑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는, 김치선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교회에
제가 새벽기도, 주일낮, 저녁, 철야기도 등 빠짐없이 참석했는데,
수요일마다 영락교회에 가서 예배 드렸는데,
당시 한경직 목사님의 시편 강해도 하셨고, 제가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제가 서울고 고3때 "좋은 목사가 되려면 무슨 공부를 해야 됩니까?"
한 목사님을 찾아뵈었을 때 역사를 공부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역사를 싫어했지만, 저는 어릴적부터 목사님 말씀을 그저 백퍼센트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사학과에 진학해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미국갈 때 한 목사님을 찾아가서 추천서를 받아서, 미국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돌아와서도 한목사님은 저를 계속 사랑해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한 목사님께 무리한 부탁도 많이 드렸었습니다.
1988년 제4회 케직 사경회가 내장산에서 개최되었을 때
'한목사님 오셔서 설교해 주세요.'
그 외에도 박윤선 목사님, 박종렬 목사님, 영국의 짐 보이스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해 주셨어요.
주일성수운동을 그때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열심히 전개했는데
"한목사님, 명동에 오셔서, 책상에 좀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주일성수 하겠다고 싸인 좀 받아주세요."
한 목사님이 오셔서 한 시간 이상 거리의 책상앞에 앉으셔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싸인을 받아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무리한 부탁도 많이 드렸습니다.
마지막 26년동안 남한산성에 계실 때, 1년에 여러 차례 제가 찾아뵙곤 했습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백운형 장로님(한경직 목사님 보좌)이 제가 가면
'한목사님이 김명혁 목사님 보시면 제일 좋아하세요' 귀띔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에 그 마음에 있는 말씀을 토해 내시고, 일본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우시면서 그 메시지를 일본 교회에 가서 전했을 때, 많이 일본목회자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지금 남한산성에서 한경직 목사님이 기도하고 계십니다.'
고지 혼다 목사님, 핫도리 목사님 등 여러 분들이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본론
너무 서론이 길어졌는데,
오늘 여기 캠프 주제가 '이땅 고쳐주소서'
제가 이 주제를 생각하면서 역대하7장과 마9장 말씀이 금방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땅을 고쳐주신다고 그랬습니다.
역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목회가 고침을 받아야 되고, 땅이 고침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고쳐주겠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이 구절들을 볼 때
'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고치시는 분이시구나!'
아담과 하와의 죄로,
그 다음 우리들의 죄로, 이 세상은 다 병들었습니다. 다 파괴되었습니다. 다 못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치시고, 고치십니다.
예수님도 고치시고, 고치십니다.
성령님도 우시면서 고치시고,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사도바울은 '피조물이 다 탄식한다. 우리도 탄식한다. 지금 죄가운데 살고 있다.'
이것을 고침 받아야 되는데,
예수님은 이것을 고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죠.
지금 온 세계는, 탄식하고 있습니다.
인재와 자연재해, 태풍, 전염병, 지진, 화산폭발, 이런 재난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싸인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데 대한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회개하면 고쳐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 땅 고쳐주소서!"
라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고치십니다.
그런데 또 우리들이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너희가 이렇게 해라, 그러면 고쳐주겠다
너희가 다 내 이름으로 와서 회개하고, 울면서 기도하면 내가 그 땅을 고치겠다...'
고침을 받으려면 예수님께 나와야죠.
문둥병자가 '나 좀 고쳐주세요' 하며 죄인들이 나와서 '나 좀 고쳐주세요'해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고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2가지를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1. 땅이 고침을 받으려면.. 울어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도 우시고, 성자 예수님도 우시고, 성령께서도 우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모든 조상들이 왜 저럴까 할 정도로, 자주 우셨어요.
창6:6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나님은 창6장에 보시면 '내가 지은 것들이 왜 저럴까?' 거기에 한탄하셨다고 되어있는데,
여기서 '한탄'이란 말은,
하나님이 기가 차서 한탄하신 게 아니라, 슬퍼하시고,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스스로) 위로하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고요.
그러니까 우신 것이라 봐도 됩니다.
예수님도 우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우신 것이죠.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아 지옥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성령님도 우십니다
롬8:28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탄식하시면서 울면서 기도하신다고 그랬어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우시면서, 우리를 고치시는구나.. 죄를 사하시는구나..'
너희도 좀 그렇게 울 수 없느냐?
너희도 회개하면서 울 수 없느냐?
우시는 것뿐만 아니라, 그저 불쌍히 여기십니다. 니느웨도 불쌍히 여기셨어요.
요나보고 '내가 니느웨를 아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내가 저 죄인을 아끼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 로마군인들, 불쌍히 여기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도 '주여 저 군인들을 용서해 주세요!'
그때 백부장이 회개하죠. '저런 분 처음 봤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죠.
'진실로 저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불쌍히 여기니까 백부장도 고침을 받죠. 죄사함 받죠.
그래서 이 땅이 고쳐지려면.. 제가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첫째는, 우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울고 계시고, '나와 같이 좀 울 수는 없겠니?'
자기 죄를 바라보면서, 민족의 죄를 바라보면서, 옆 사람의 죄를 바라보면서
나도 좀 울 수는 없을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처럼 울 수는 없을까?
한경직 목사님은 맨날 우셨어요.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도 맨날 우셨어요. 그러니까 땅이 고침을 받아요.
▲2. 땅이 고침을 받으려면.. 긍휼이에요.
진리의 칼로는 안 됩니다. 진리의 칼은 절대로 아무 역사도 못 일으킵니다.
칼을 빼든 베드로에게, 칼을 집어넣으라고 하셨어요.
지금 보수 교회는 특히 진리의 칼을 휘둘러요. 아녜요, 긍휼이요, 용서입니다. 자비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요? 헤세드라 합니다. 긍휼과 사랑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마음에는 긍휼, 긍휼이 있었다고, 보좌하시던 장로님이 증언했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마음에는 긍휼이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마음에도 긍휼이 있었습니다. 맨날 우시면서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저 안재선, 저 사람 불쌍해서 어떻해?'
자기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생각하면서
물론 두 아들 때문에 밤새 통곡하며 우셨죠.
다음날 아침에 그를 보시면서 '저 사람 불쌍해서 어떻게 해? 저 사람 죽으면 지옥 갈 텐데..
저 사람을 살려야지.. 사랑해야지..' 눈물과 긍휼이 안재선도 살리고, 이 땅도 살리는 게 아닐까요.
"이 땅 고쳐주소서!" 이게 이루어지려면
설교 잘하는 것만 가지고선 안 되요.
천사의 말 가지고는 안 되요.
기적 많이 베푸는 것만 갖고도 안 되요. 이단되기 딱 좋아요.
심오한 신학 강의해도 안 되요. 죄인들이 안 변해요.
또 자기는 오히려 교만해지기 쉬워요.
그저 울면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처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처럼
한경직 목사님처럼, 울면서 모두를 불쌍히 여기고 ..
독재자들 포함해서, 일본도 포함해서, 북한도 포함해서
모두를 불쌍히 여길 수 없을까요?
악의 축은 없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사전에는
예수님의 사전에도 그런 단어는 없습니다.
모슬렘도, 공산당도, 모두를 불쌍히 여기면서 울 수는 없을까요?
◑다시 한 번 두 가지로 생각을 해봅니다.
어떻게 해야 이 땅이 고침을 받을 수가 있을까요?
▲1. 눈물의 기도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생각납니다. 그가 죽을 병에 걸렸어요.
나라가 위기에 처했어요. 두 가지 위기가 동시에 나타납니다.
개인이 위기에 처하고, 동시에 나라가 위기에 처합니다.
왕하20장에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어요.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어요.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당신은 죽을 것이다'하니까 통곡을 해요. 울었어요.
그러니까 즉시 하나님이 이사야보고, 너 빨리 가서 히스기야에게 내 말을 전해라.
'너는 죽지 않을 것이고, 살 것이다. 이 나라가 안전하게 된다고 말해라.'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이 기다리신 것인가요?
'자기가 죄사함 받고, 치유함을 받고, 고침을 받고,
나라가 치유함을 받는데, 히스기야 왕의 눈물이 필요했구나..'
왜 이 사건을 성경에 기록했을까요?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눈물의 기도가 필요하다‘
그 다음, 다윗 왕의 눈물입니다.
간음죄, 살인죄를 범했습니다.
선지자 나단을 보냈습니다. '다윗 왕이여, 당신은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울었어요. 그때부터 평생 울었습니다.
다윗처럼 그렇게 많이 운 사람은 없어요. 밤새 울고, 통곡하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고치십니다. 다윗을 고치시고 그 나라를 고치셨어요.
다윗은 자기 죄 때문에, 백성들이 재난을 당하는 것을 볼 때
잡혀가는 것을 볼 때, 집이 불타는 것을 볼 때, 울 기력이 없기까지 울었어요.
자기 죄 때문에 울고, 백성들의 불행 때문에 울고,
하나님이 그걸 받으시고, 다윗을 고치시고, 그 땅을 고쳐주셨어요.
다윗 왕국을, 그때 뿐 아니죠. 예수님 오실 때까지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그랬어요.
'다윗의 눈물을 보시고, 다윗뿐만 아니라 그 백성들과 후손들까지 고치셨구나..'
다윗의 눈물은 예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다 너희들 구원 얻는다' 라고 선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십니다. 통곡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고, 나사로를 보고 우시고, 맨날 우십니다.
그 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도 우시고, 성자 예수님도 우셔요.
'그는 육체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가까이 오사 성을 보고 우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며 우셨어요.
성부 하나님이 우셔요. 인류의 죄가 사해져요. 회개하고 돌아오고 사람들이 살아나요.
'아, 눈물이 이렇게 귀중한 것이구나!'
사도바울이 눈물의 사람이 됩니다.
그는 원래 눈물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을 때려 죽일 때도 눈물이 없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우시는 것,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볼 때 울고 또 울고 울어요.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나는 망할 자입니다. 저주 받을 놈입니다. 만물의 찌끼입니다.'
사도바울이 우니까, 그 눈물을 통해서 이방인들이 살아납니다.
로마 사람도 살아나요. 이상합니다.
'내가 지금도 눈물로 너희에게 이 글을 쓴다. 내가 3년 동안 눈물로 너희에게 말씀을 전하지 않았느냐.'
나는 지금도 운다.
그 눈물이, 그 편지를 받는 이방인들, 교회들이 살아나요.
그래서 저는 사도바울을 생각하다가,
'사도바울은 설교자가 아니었구나. 신학자가 아니었구나. 눈물의 사람이었구나!'
어떤 단어,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가지면, 성경이 다 그걸로 보여요.
맨날 우는 것으로 보이고, 맨날 회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죄가 더하는 곳에 은혜가 넘칩니다.
아, 이렇구나. 내게는 선한 것도 쥐꼬리만큼 밖에 더 없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What a wretched man I am!'
바울이 이렇게 울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살고, 그가 손에 닿는 것마다 고침을 받아요.
길선주 목사님은, '나는 아간입니다.'
1907년 1월에만 그 고백을 하신 것이 아니라 평생 그 고백을 하셨답니다.
방지일 목사님의 증언에 의하면,
길선주 목사님은 부흥회 할 때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하소서.♪
그 찬송을 맨날 부르며 우셨답니다.
'나는 아간입니다. 나 때문에 여기 있는 성도들이 은혜를 못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대현 교회에서 모두 통곡을 했습니다. 그 눈물은 저주 받은 조선 땅을 치유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같은 해에 목사가 된 분이신데,
제주도 성내 교회에 가서 13년 동안 목회하면서, 매일 새벽마다 우셨답니다.
딸 이사래 권사님이 그랬어요. 자신이 유치원 아이일 때
'어머니가 아버지 빨리 오시라고 가 봐라' 교회 문을 살짝 여니까,
아버지(이기풍 목사님)가 새벽기도 마치고 통곡을 하시면서 우셔요.
그래서 자기도 거기서 울었다고 했어요. 순교하실 때까지 그러셨답니다.
무슨 능력이 아닙니다. 눈물입니다.
제주도 땅도, 전라도 땅도, 고치신 분이십니다.
한경직 목사님이야 말로 눈물의 목자이십니다.
17살 때부터 울었습니다.
고등계 형사의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 자기의 연약함을 탄식하면서 을고,
1924년 황해도 구미포 해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통곡하며 우셨습니다.
프린스턴 신학교 졸업할 때, 폐병 말기 선고를 받고 통곡하면서 우셨습니다.
진학은 물론 인생 자체를 포기해야할 그때
하나님만 바라보며 처절한 눈물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귀국 후 신의주 제2교회에 오셔서, 불쌍한 아이들 보면서 우셨습니다.
영락교회, 처음에는 천막교회를 세우고, 주일날 예배를 드리는데
폭풍이 치고 소나기가 쏟아져서 천막이 다 내려앉았어요.
그때 통곡을 하며 우니까, 당시 2천여명 영락교회 성도들이 다 울었습니다.
부산에 피난 가서 목사님들 4백명과 함께 노진현 목사님과 함께,
한 주간 동안 울면서 회개기도를 인도하셨어요.
그분은 맨날 우셨어요. 자기 죄 때문에 울고, 민족의 죄 때문에 울고,
모두가 너무 불쌍해서 울고, 북한동포들, 한국의 아사자들이 굶어죽는 얘기를 듣고 우셨어요.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우셨어요.
은퇴 후 26년 동안 남한산성에서 매일 기도하시면서 우셨어요.
아마 저 김명혁 목사만큼 자주 찾아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한목사님이 계시던 그곳,
아마 이철신 목사님 다음으로 제가 제일 많이 찾아가죠. 그 분은 매일 가시니까요.
외국인들 오시면 제가 그곳으로 모시고 갑니다 얼마전에도 독일 분들이 오셨는데,
제가 거길 모시고 갔습니다.
그분들이 거기 조그만 방에 들어가서 앉아 잠시 기도하시면서 너무 감동을 받아요.
▲2. 이 땅이 어떻게 고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진리는 아니에요, 설교도 아니에요.
"눈물"과 함께 "긍휼, 용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긍휼, 용서,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은 긍휼, 용서,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은 그저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셨어요.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셨어요.
성부 하나님도 그러셨어요.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버리기까지 하셨어요.
성령께서는 성부, 성자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셔요.
'아 사랑이 살리는구나. 진리는 아니구나' 긍휼, 용서, 자비, 사랑은
어떤 면에서 진리의 기준하고 조금 어긋나요.
천사들이 반대할 수도 있는 거에요. 왜 저 사람 용서하세요?
예수님을 못 밖는 저 로마군인들, 저들을 왜 용서하세요? 천사들이 그렇게 반대할 수도 있죠.
무조건적인 긍휼, 용서, 사랑.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걸 이어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았죠.
저는 지금도 '내가 아직까지 사는 것은,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등 여러 분들의 그 사랑 때문이다.
지금도 천국에 가서 기도하겠다고 하시던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 때문에, 내가 지금 사는 게 아닐까?'
긍휼, 용서, 사랑. 긍휼, 용서, 사랑. 그것으로 북한 땅도 고칠 수 있고,
모슬렘 땅도 고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 용서, 사랑은 지옥 문을 다 깨뜨려버리니까요. 사랑의 힘이 너무 크니까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지니셨던 긍휼, 용서, 자비, 사랑을 나도 조금 지닐 수는 없을까?
니느웨를 살리면서, 내가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
하나님께서 그러셨어요. 내가 아끼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
다윗이 긍휼을 입어요. 어떻게 자기를, 간음 살인죄 모든 죄를 지은 자기를
하나님이 그저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신 것을 볼 때,
그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이 죽었을 때, 다윗이 울었어요.
그 손자 므비보셋에게 사랑을 베풀어요.
자기를 막 욕하는 그 신하에게 긍휼을 베풀어요. 왕을 대적하는 저 시므이, 죽일까요?
'아니야, 저 신하가 나를 욕하므로, 내가 더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 수 있어.'
다윗은 그 후에, 아무에게도 대적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울왕이 얼마나 자기를 죽이려고 했습니까? 그런 사울 왕이 죽었는데, 웁니다.
모순이죠. 그러니까 땅이 고침을 받습니다. 그 사랑에 녹아지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예수님은 말할 것 없죠.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병인을 고치시고,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희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긍휼, 긍휼, 긍휼을 보이셨어요.
수가 성 여인은 남편 다섯이 있었지만, 그를 긍휼히 여기셨어요.
그의 인생이 바뀌어지죠. 고침을 받았어요.
인간쓰레기 막달라 마리아, 일곱 귀신 뿐만 아니라, 일곱가지 죄악에 사로잡혔던 그에게 긍휼을 베푸셨어요.
그는 눈물의 여인이 됩니다. 마지막까지 울면서 주님만 사랑합니다. 그가 고침을 받습니다.
강도, 로마군인, 백부장이 설교로 변화받았나요? 신학강의듣고 변화되었나요?
'저 분은 의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며 변화됩니다.
진리의 횃불이 아니라, 긍휼, 용서, 사랑을 베푸는 그 방식이
땅을 고치는 그 방식입니다.
스데반이 그랬죠. 스데반의 긍휼, 저 사울을 용서해 주셔서,
사울을 고쳐주세요.
그 사울을 통해서 안디옥이 고쳐지고, 이방이 고쳐집니다.
'스데반의 일로 이방에 간 사람들’
스데반의 용서, 긍휼, 자비, 사랑을 통해
사도행전의 역사가 바뀌어집니다. 모든 땅이 고침을 받습니다.
바나바, 착한 사람입니다.
진리의 사람이 아닙니다. 긍휼, 용서, 자비, 사랑입니다.
바나바 때문에 안디옥 교회가 되고, 이방인 선교가 이루어지고
사도행전이 이루어집니다.
바나바 없으면 사도바울은 없고, 스데반 없으면 사도바울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나중에 긍휼, 용서, 자비, 사랑.. 계속 그럽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으로 옷 입고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고 그리고 사랑을 더하라.'
사도바울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 제주도를 변화시켰는데,
물론 이기풍 목사님, 사모님도 기도의 여인이었어요. 그러나 긍휼 용서 자비 사랑이에요.
아침에는 맨날 거지 떼가 집에 가득했어요.
조금 지나면 나환자가 찾아오고, 귀신 들린 자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을 밥을 또 먹입니다.
진리 만은 아닙니다. 제주도가 바뀌어집니다.
이기풍 목사님과 유남해 사모님의 긍휼 용서 자비 사랑!
윤(남해) 사모님은 제주도 도민을 늘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교인들 중 누가 운명하면 달려가서 시신을 목욕시키고,
얼굴에 화장을 해 준 다음에 손수 만든 수의를 입혀서 밤새 유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늘진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돌보셨죠.
이기풍 목사님도 구렁이에게 잡혀서 지금 죽음을 당하는 소녀를
구렁이를 자기 목숨을 내놓고 잡아죽이고, 소녀를 구해요.
물에 빠져 죽어가는 여인을, 자기 생명을 내걸고 물에 들어가서 살리기도 하셨어요.
설교만은 아닙니다.
주기철 목사님, 그의 신앙은 사자같죠. 그러나 그의 마음은 비단결 같다고 그래요.
주영하 공산당도 그 앞에 무릎을 꿇어요.
일본 고위 경찰도 해방 후에 '조선에 진짜 목사님이 한 분 계셨다. 주기철 목사님이다.'
감옥에서 주먹밥 하나를 받으면, 언제나 절반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셨답니다.
긍휼 용서 사랑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긍휼 용서 사랑은 말할 것 없지요.
나환자의 환부를 입으로 빨아주었으니까요.
네, 그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이들을, 나보다 부모처자보다 더 사랑하게 해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사랑하게 해 주시옵소서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 더 사랑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주님보다는 더 사랑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천국에서 얻을 무슨 명예, 상급 위해서 사랑하지 않게 해 주시고,
세상에 어떤 명예 때문도 아니고.
주님이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안재선까지 사랑하시죠.
안재선은 자기 두 아들을 총으로 쏘아죽인 마귀새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안재선을 고치십니다. 설교가 아닙니다.
그 긍휼 용서 사랑이에요.
제가 엊그저께 안재선이 아버지 손양원 목사님께 보낸 편지를 읽었어요.
아버님 전상서
천부님의 은혜가운데 아버님 어머님 지체만강하심을 비옵니다.
집안 동생들과 동희와 큰아버님도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애양원 동산교회 내에도, 주님의 은혜로서 무고하십니까?
소자는 객지서 하나님의 진리의 힘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를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감사합니다.
이 죄인은, 아버님 손목사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죄값을 회개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음으로 중생하였습니다.
중생하였으나 소자는 인간인고로 때때로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여 주심을 진실로 감사하며
죄를 회개합니다.
주의 피로 쌓인 진리로 된 부산고려고등성경학교에서
여러 귀하신 주님의 종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뵈오며
열 두 사도의 교훈과 진리를 배우게 해 주신 은혜와 사랑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 여기 순교의 각오를 가집니다.)
우리 신자는 다 순교할 의무가 당연히 있다고 나는 주장합니다.
십계명을 지키고 실행하는 자가 신자요, 중생한 사람이니
우리가 천당 지옥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망에서 죽었던 자리에서 중생하고 보니
이제 비로소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후략)
이 편지를 보면서 '아, 안재선이 고침을 받은 것은, 손양원 목사님의 눈물과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구나'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 망할 땅, 대한민국 땅이 아직도 고침을 받고 있는 것은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이 흘린 땅과 피 때문이 아닐까?
내가 아직까지 살고 있는 것이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의 삶과 죽음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그저 긍휼 용서 자비 사랑의 분이셨어요.
신의주에 가서도 그러셨고, 양로원, 고아원, 베다니 교회 지을 때도
피란민 돕기 위해 베다니 교회 세운 것입니다.
대전 대구 부산 가서도, 그저 피란민들 돕고 그 일을 하셨어요.
월드 비전을 그런 와중에 만드셨어요.
그 분은 설교만이 아니에요.
영락 보린원, 모자원, 경로원, 노인요양소, 농아원, 장애아원, 어린이집, 재가노인복지상담소,
1990년 1월 17일에는 '사랑의 쌀’
아직까지 이 땅이 망하지 않는 것은,
우리 선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사랑의 눈물의 긍휼의 유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하나님, 이 땅을 고쳐주시옵소서.
우리들을 살려 주시옵소서.
주님의 피를 보시고,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흘린 피를 보시고
주님이 흘리신 눈물을 보시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흘린 눈물을 보시고
이 망할 수밖에 없는 남한 땅, 북한 땅을 좀 고쳐주시고, 살려주시옵소서!
우리도 좀 울게 하시고, 우리도 모두를 좀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사랑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는 눈물이 말라져버렸습니다. 눈물을 주시옵소서.
사랑이, 용서가 없어졌습니다.
우리에게도 한경직 목사님이 지니셨던 그 긍휼 용서 자비 사랑을 주시옵소서.
북한을 위해서, 일본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기도하시던 한목사님의 그 기도.
우리도 조금은 이어받게 해 주시옵소서.
이 땅을 고쳐주시옵소서.
남한 땅, 북한 땅을 고쳐주시고, 살려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감사하고 감사드립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주님 앞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최권능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정진경 목사님,
귀한 선배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아직까지 우리가 버림을 받지 않고
저들이 흘린 피 때문에, 땀 때문에
저들의 기도소리 때문에 우리를 아직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살려주시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고 부끄러운 것 뿐입니다.
주여, 돈 사랑을 좀 끊게 하시고, 자기 사랑을 끊게 하시고
쾌락 사랑을 좀 끊게 하시고,
가난을 애처로, 고난을 스승으로, 죽음을 자매로 여기며 살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 모습,
길선주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의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우리 몸에 지니고,
이 땅을 살리는, 이 땅을 고치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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