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뱀과 십자가! (민 21:4-9)
이스라엘이 광야 길에 원망할 때 불 뱀이 나와 물어 죽게 되었을 때 모세의 처방입니다.
1. 왜 원망했는가? 그 원인은?
①길이 험하다고 원망했습니다(4).
가는 길이 험하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4절 끝의 ‘마음이 상하니라’입니다. 길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길이 험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험했던 것입니다. 마음이 편하면 몸도 편하고 길도 편하고 하는 일도 편하고 결과도 편합니다.
②먹고 마시는 문제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민20:2절에 “마시는 물 때문에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고 다투었다”고 했고, 21:5에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 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고 했습니다.
민20:5절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를 향한 불평과 원망이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다는 점입니다.
출17:2절 "백성이 모세와 다투었다"고 했고,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40년 간 광야생활을 했지만 단 한 명도 목말라 죽거나 배고파 죽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고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그것말고 정력에 좋은 것들, 스테미너 식, 군것질할 것들이 없다며 원망한 것입니다.
③하나님을 불신했기 때문입니다.
민20:12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지도자였던 모세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문제였습니다.
모세에게 대들고 모세에게 덤비고 원망하고 시비를 건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출3:14절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했습니다. 그 뜻은 "나는 나다"라는 것입니다. 출20:3절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시136:2절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고 3절에서는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비교할 신이 없으신 하나님, 오직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이 신앙이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구원도 무너지고 기도도 무너지고 축복도 무너져 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신앙이 무너지는 바람에 다 무너진 것입니다.
2. 원망의 결과는?(6)
원망, 불신, 배신의 결과는 저주, 재앙, 죽음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결과는 같습니다. 감사하면 살고 원망하면 죽습니다.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 됩니다.
3. 죽음에서 살수 있는 방법은?(7-9)
모세는 이 참담한 상황을 놓고 하나님께 회개와 용서의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 사건이 중요합니다.
9절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고 했습니다. 주목할 것은 놋으로 만든 뱀은 아무런 힘도 신통력도 치유능력도 없는 무생명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이었기 때문에 쳐다본 사람들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요3:14-15절에서 이 사건을 설명하셨다는 점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라보라 그러면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바라보는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그대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무슨 소리, 뱀독이 퍼져 가는데 구리뱀 바라보면 산다고? 허튼 소리, 병원에 가야 할지. 독을 빼야 살지, 응급처치를 해야 살지’라며 그 날 거기서 놋뱀을 바라보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죽었습니다. 십자가 믿고 구원받는 것도 같습니다.
'2천년 전에 죽은 예수를 믿어야 산다니 허튼 소리야 그건 말도 안 된다. 현대의학이나 과학이 있는데 무슨 미신 같은 소리야'라며 믿지 않으면 누구라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처럼 그대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단순사고라야 성립됩니다.
놋뱀을 몇 분 이상 바라보아야 하느냐? 어떤 쪽에서 바라보아야 하느냐? 각도는 어느 정도라야 하느냐? 바라보는 눈의 크기는 어느 정도라야 하느냐? 바라볼 때 곁에 누가 있어야 하느냐 등을 생각하고 따지면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놋뱀을 바라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그 말씀을 믿고 십자가 바라보고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장대에 매단 놋뱀을 바라보는데 뭐가 필요합니까? 과학도 철학도 문학도 예술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죽기 일보 전에, 독이 퍼지기 전에, 숨이 끊기기 전에 빨리 바라보아야 합니다. 회의를 할 필요도 없고, 다수결로 결의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아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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