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리라! 높이리라! 응답하리라! (시 91:14-15)
150편의 주옥같은 신앙고백으로 구성된 시편은 그 저자에 있어서도 실로 다양합니다. '다윗, 솔로몬, 고라의 자손들, 아삽, 헤만, 에단, 모세,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무명의 기자들'이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삶의 다양한 정황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귀중한 신앙고백이 시편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나를 인도하시고 지키시고 함께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즉 오직 인간문제의 해결 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의 신분이 왕이든지, 문지기든지, 궁정의 악사든지 간에 결국 하나님의 지키심 밖에서는 참 평안히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이같이 인간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어떤 자를 어떻게 지키시고 보호하시는가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좀더 능력 있는 신앙 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를 이해하고 내가 해야 할 것은 해야 합니다.
첫째, 건지리라!(14상)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면 그를 건지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누군가가 건져 줘야 삽니다. 마찬가지로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시련과 어둠,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많은 논리들이 있습니다 만은 저는 만화와 영화로 소개되었던 '외인구단'의 주제가 첫 부분에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아마 이 말은 청춘남녀 간에 흔히 있는 사랑고백쯤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어쩌면 이 고백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진실한 사랑고백이 아닐까 합니다.
"전 주님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백이 진정 우리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이 어디에 처하든지 건지십니다. 그런데 사랑은 고백으로 끝나서는 아니 됩니다. 고백과 행동이 일치할 때 올바른 사랑입니다.
'건진다'는 것은 영화롭게 하고 높일 뿐 아니라 이제는 다시 어려운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어디서 건지십니까? 죄에서, 사망에서, 질병에서, 실패에서, 가난에서, 악의 무리에서 건져주십니다.
사38:17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
둘째, 높이리라!(14하)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안다'는 것은 단순하게 면식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어우러져서 대화를 나누고 교제하고 식사를 나누는 등 예수님의 표현대로 "그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그로 더불어 먹을 때" 비로소 안다는 표현이 가능한 것입니다.
또 여기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체험(사랑)함으로 아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야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접촉해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지위, 명예, 재력, 능력, 인격, 신앙 등 모든 분야에서 높아지기를 갈망합니다. 또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도 모색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삼상2:7절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격상을 위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저가 나를 안즉"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을 알기를 원합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실천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일은 성경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읽고, 듣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전하는 과정을 통해 광대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그것은 곧 "내가 저를 높이리라"는 말씀을 성취하도록 만듭니다.
셋째, 응답하리라!(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하나님을 어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하나님은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 오늘 그 이유를 간구라는 말에서 찾게 합니다.
'간구'란 최선을 다하는 기도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한번도 간구해 본 일이 없다면 우리는 이 시간 문제를 놓고 간구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내가 응답하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간구한다'는 말은 '일시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계속적인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기도를 생활화 한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이미 생활화 한 사람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에서 세상을 사모하여 부르짖는 그 소리가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기도소리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무슨 말입니까? 성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소리보다 세상을 사모하는 소리가 더 높다는 것입니다. 점점 기도 시간들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중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금요기도회 삼일 기도회 새벽기도회를 참여하다가 이리 저리 핑계를 댑니다. 그리고 빠집니다.
심지어 혼자 갖는 개인 기도시간마저도 이 핑계 저 핑계로 게을리 합니다. 그것은 은혜를 입은 자,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사는 자의 삶의 특징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좀더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자가 바로 은혜를 입은 성도의 모습입니다. /할/
제자들이 각 촌을 다니며 기적을 일으키려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낙심하고 돌아왔을 때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심으로 기도의 중요성과 능력을 일러주셨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속적 능력과 방법의 한계에 부딪힐 때 사람들은 곧 잘 좌절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고 아주 명확하게 선포합니다. 시86:7절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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